그는 내가 평생에 걸쳐 이룬 것을 불과 30살에 모두 이루어 버렸다. by 폴 뉴먼
나와 같은 세대의 모든 배우들은 말론 브란도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by 로버트 드 니로
그는 내 영감의 원천이었다. by 알 파치노
그는 우리에게 자유를 줬다! by 잭 니콜슨
말론 브란도 보다 스탠리 코왈스키를 더 잘 연기할 배우는 없다! by 테네시 윌리엄스
말론 브란도
영화 연기의 혁명을 일으킨 인물이자 영화 연기론의 정전(正典)을 다시 썼고 현대적인 영화배우의 틀을 잡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를 넘어 20세기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단일 인물 중 하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1950년대에 엘리아 카잔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 반항아의 아이콘이자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로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인기와 영향력을 자랑했으며, 전성기가 지난 1970년대에 <대부>를 통해 다시금 '역시 말론 브란도'라는 말이 나오게 할 만큼 뛰어난 연기를 선보임
<대부> 참고
기존의 영화 주인공의 특징이 정의롭고 선한 캐릭터였던 반면에 말론 브란도가 만들어낸 역사적 논란이 있거나 금기시 되는 캐릭터는 단순한 선역, 악역의 경계를 넘어서서 기존의 극연기법보다 더 현실적인 리얼리즘과 입체감을 가지게 되었음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 현대의 산업사회를 부정하고 기존의 질서와 도덕을 거부하며 문학의 아카데미즘을 반대한, 방랑자적인 문학가 및 예술가 세대 이른바 비트 세대인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잭 니콜슨, 로버트 듀발을 비롯한 현존하는 대부분 전설적인 연기파 명배우들에게 있어서 말론 브란도는 배우로서 영화판에 첫 선보인 새로운 연기법과 자유분방하면서 반항적인, 당대 영화사에 유례없었던 캐릭터로 이들을 연기자로서의 꿈을 꾸거나 그를 모방하게 만든 롤 모델이자 선구자
<로버트 드 니로> 참고
<알 파치노> 참고
또 한명의 역사상 최고의 배우 폴 뉴먼과의 라이벌리
말론 브란도의 영원한 라이벌 폴 뉴먼
<폴 뉴먼> 참고
폴 뉴먼은 클래식 시대의 스타들 중에서는 가장 늦게까지 정상의 위치에 있었지만 말론 브란도는 그보다 먼저 50년대 전성기를 맞았으며 당시 임팩트나 대중문화계에 미친 영향은 폴 뉴먼에 비해 절대적으로 앞섰으며 동경과 질투심을 불러 일으키고 결코 넘을 수 없다는 상실감을 안겨준 거대한 존재였음
폴 뉴먼, 제임스 딘과 함께 50년대 미국의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배우이며 모성애를 자극하는 제임스 딘의 반항아 이미지, 폴 뉴먼의 도시인의 풍모가 강한 냉소적이고 이지적인 반항아의 이미지와는 달리 말론 브란도는 야성미와 섹시가이의 원조
"너는 반항아인가? 신사인가?"
말론 브란도가 야성적인 미남이었다면 또다른 선택이 될 수 있는게 바로 폴 뉴먼이며 할리우드에서 남자 배우 스타일을 결정하는 양대 산맥이었음
폴 뉴먼을 비롯한 말론 브란도와 동 세대 내지는 살짝 뒷 세대의 연기 아이콘들에게 있어서도 그는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 내지는 당대 영화계 1인자로서 군림해 왔고 폴 뉴먼은 그를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줄곧 말했으며 또다른 시대의 아이콘 제임스 딘은 아예 그를 모방하면서 등장했음
말론 브란도는 1950년대, 당시 젊은 세대에게 가장 큰 열광을 받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는데 속옷 취급을 받던 티셔츠를 영화에서 마음껏 입고다니며 이를 일상복이자 보편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바꾸었고 그가 영화속에 보여준 가죽재킷과 베레모, 오토바이는 당대 청년들의 머스트 해브였으며 제임스 딘이 유행시킨 것으로 유명한 청바지를 영화 <와일드 원>에서 먼저 입은 것도 바로 말론 브란도였음
역사상 가장 위대함의 시작
1924년 4월 3일,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출생하였고 청소년기에는 문제아 취급을 받았으며, 보다못한 아버지의 강권으로 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바로 중퇴하고 뉴욕에 상경해 뉴욕 배우 학교에서 연기 수업을 시작
1944년에 <엄마를 기억해>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
1947년 브로드웨이의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에서 스탠리 코왈스키 역을 맡으면서 굉장한 호평을 받았고 일약 브로드웨이의 간판스타로 자리 잡았는데 할리우드는 그를 스카웃하기위해 온갖 공을 들였지만, 장기적인 계약때문에 모두 거절
역대 배우들중 최고의 전성기
6년 후 신체가 마비된 군인들의 이야기인 <맨> (1950)으로 장편 영화에 데뷔
데뷔 1년만에 동명의 영화판에서도 주연을 맡았고 생애 첫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1950)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혁명아 자파타> (1952)
1950년대 막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른 청년세대의 반항기를 표현함으로서 당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 된 <위험한 질주> (1953)
이 작품에서 그가 선보인 모터사이클과 가죽자켓, 청바지, 엔지니어 부츠는 반항적인 젊은이의 상징이 되었고 반항아 연기로 여러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제임스 딘도 이 작품을 통해 말론 브란도의 연기를 모방했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할리우드의 정상급 배우로 성장한 엘리아 카잔 감독의 <워터 프론트> (1954)
이는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피아니스트>로 29살에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기록을 깨기 전까지 30세로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기록
이외에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한 <아가씨와 건달들> (1955)
일본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파일럿 <사요나라> (1957)
나치장교역을 맡은 <젊은 사자들> (1958)
<바운티호의 반란> (1962)
등에서 엄청난 연기력과 흥행력을 과시했음
다시 찾아온 전성기
1960년대에 스스로 감독한 영화 <애꾸눈 잭> (1961)의 실패 이후 과거의 영광을 잃고 쇠락하는 듯 했으나,
배우로서 중장년기에 접어든 1970년대에는 단순히 본인의 건재함을 넘어서서 전성기였던 1950년대보다 더 뛰어난 연기력과 명작들을 남기게 됨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 (1972)에서 마피아 가문의 보스 비토 콜레오네역으로 재기하여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문제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72)
슈퍼맨의 아버지 <슈퍼맨> (1978)
카리스마와 위압감이 극에 찼던 <지옥의 묵시록> (1979)
<지옥의 묵시록> 참고
으로 화려하게 재기
아직도 존경받는 경의의 대상... 메소드 연기
영화 연기의 역사에서 말론 브란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비중이 대단하며 오늘날에도 스타를 꿈꾸며 브로드웨이나 할리우드 오디션 장의 문을 두드리는 신인 남자 배우들에게 심사위원들은 반드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나 <대부>에서의 브란도의 즉흥 연기를 시켜보는데 실제로 브란도는 즉흥 연기의 귀재였고 순간적으로 그 상황에 맞는 정확한 감정을 표현해내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음
뉴욕스쿨의 드라마 워크숍에 등록한 말론 브란도는 거기서 스텔라 애들러 여사에게서 연기를 배웠는데 그녀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을 적용하여 연기에 진정성을 불어넣기 위해서 메소드 연기법을 강조했음
1930년대 후반부터 미국 연극계에 수입된 메소드 연기의 방법론은 1940년대부터 말론 브란도, 폴 뉴먼, 제임스 딘 같은 뉴욕 액터즈 스쿨 출신의 배우들이 1960년대 이전에 연극무대식의 오버스러운 연기 기법을 따르던 방식을 벗어던지고 이러한 연기 스타일을 영화에 이식시키기 시작했고 이는 연기의 혁명이자 신기원이 됨
말론 브란도는 남자 배우들의 영원한 연기력 기준으로서, 지금 이 시간에도 치러지고 있는 수많은 브로드웨이나 할리우드 오디션 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성격파 배우라는 어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며 잭 니콜슨 같이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라기 보다는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음
<홍콩에서 온 백작부인>에서 감독이었던 찰리 채플린과 갈등이 있었는데 채플린은 극중 인물의 연기를 자신이 먼저 보여주고 배우들에게 그대로 따라하라고 주문하는 스타일의 감독이었고, 브란도는 본인의 연기 스타일에 대한 색깔이 무척 센 배우였기 때문에 충돌이 자주 일어났는데 브란도의 메소드 연기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
너무 일찍 모든 것을 얻은 비운의 사나이
불과 30살에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이 천재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배우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낍니다.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겁니다. 마르크스, 간디, 헤밍웨이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꿉니다. 배우는 너무도 하잖은 존재입니다." 라고 했는데 그의 전성기가 일찍 끝난 가장 큰 원인은 너무 이른 나이에 깨달은 삶의 아이러니와 회의 그리고 그에 따른 우울증이었음
<지옥의 묵시록> 촬영 당시 체중조절에 실패하고 다소 불성실하게 촬영에 임하는 등 배우로서의 자의식과 집중력이 예전에 비해 확연히 떨어진 상태다보니 촬영 연기와 재촬영의 반복이었고 이는 그의 커리어의 쇠퇴를 알리는 신호가 되었음
연기자로서의 성공과는 달리 여러 번의 결혼 실패에다 브란도 딸의 약혼남을 죽인 아들의 구속 그리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따릐 자살등 이처럼 평생동안 안정된 가정을 꾸리지 못했고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렸는데 이런 이유때문에 다른 남자배우들이 대부분 50대에 전성기를 맞는다는 걸 생각하면 40대 이후 브란도의 필모그래피는 부실하고 아쉬움이 크게 남음
사생활과 많은 논란 그리고 긋바이
실제로도 반골 기질이 다분했던 말론 브란도는 흑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 인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는데 <대부>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인디언 협회 대표라는 젊은 네이티브 아메리칸 여성을 대신 내보내 수상 소감 대신 미국 내 원주민 인권 문제를 거론하게 한 것은 유명한 일화
미국원주민운동(AIM) 창립 멤버로 관여했고 원주민운동 지도자들의 보석금과 거처를 제공해주기도 했으며 아메리칸 원주민의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1980년 이후로는 거의 매스컴에 얼굴을 비추지 않고 은둔 생활을 했지만 인권운동에는 적극적으로 활동했음
동시대 대부분의 할리우드 스타와 달리 자신의 양성애 성향에 대해 감추지 않았는데 2006년 출간된 자서전에서 브란도와 관계를 맺었을 거라 주장하는 유명인들만도 폴 뉴먼, 몽고메리 클리프트, 버트 랭커스터, 로런스 올리비에, 제임스 딘, 타이론 파워 등이 거론되었으며 평생 친구 겸 '동성'애인으로 지낸 배우 겸 코미디언 월리 콕스가 사망했으때 말론 브란도는 콕스의 화장하고 남은 재를 평생 보관하며, 가끔 외로울 땐 재를 담은 단지를 앞에 두고 식사를 했다고 함
1972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베르톨루치 감독이 오로지 말론 브란도와만 상의하고 상대 여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에게 일체의 동의 없이 강간 장면을 촬영한 것이 밝혀져 성폭행 논란을 불거졌음
슈나이더는 한동안 약물 중독과 자살 시도 등 매우 괴로운 시간을 보냈으나, 브란도는 이에 대해 어떠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고 베르톨루치 감독은 "강간 장면은 대본에 명시되어 있었고 그녀가 보다 현실감 있는 반응을 보여주기를 원했던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는데 사전 조율이 무엇보다 중요한 신을 촬영함에 있서 상대 배우와 충분한 합의 없이 성적 모욕감을 준 것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으로도 비판을 면할 수 없음
<슈퍼맨 1>에서 10분 정도 출연에 150억 원을 받았고 이게 90분짜리 영화로 환산하면 개런티가 1억 불은 가볍게 넘어버리는데 결국 그는 모두 350만 달러에 영화 흥행에 따른 러닝개런티까지 포함 1천 5백만 달러가 넘는 출연료를 챙겼고 이 기록은 할리우드 역대 최고 몸값이며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음
말론 브란도의 마지막 작품은 2001년에 에드워드 노튼,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찍은 <스코어>였고 2004년 폐질환으로 80세의 나이로 사망
글을 마치며...
역사상 최고의 배우들 모두가 최고라고 뽑는 풍운아... 당신이 있었기에 많은 영화팬들이 행복했고 행복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첫댓글 폴 뉴먼편 다음으로 올렸어야 했는데 순서가 바뀐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궁금한게 왜 지옥의묵시록때 다이어트 안하고 아마추어같은 모습을 보였을까요? ㅠ 제가 잘못알고있는건지
그당시 개인적인 회의와 개인사가 맞물려 폭식증으로 컨트롤에 실패하다보니 저런 슈퍼스타라면 모든걸 포기하고 싶지않았을까 싶어요.
@로더리고 살찐 모습때문인지 어둡게표현되기만 했는데 그게또 오히려 섬뜩하고 기괴하게 느껴지더라구요 ㅎㄷ
@LAX_FILE 맞습니다. 삭발한 확찐 모습때문에 오히려 공포심과 카리스마가 배가되었죠.
안그래도 현지 기후문제 등으로 제작이 딜레이되고 코플라는 미치기 일보직전인데 말론 브란도 땡깡도 엄청났다죠.. 머리를 확 밀고오기도 하는 등 코플라가 젊은 나이에 단명하지않은것도 대단한게 대부, 지옥의 묵시록 찍을때만해도 현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엄청 났다고 합니다.. 대부에선 메인스텝들이 대놓고 ㅄ 취급하고 그런것들도 다 이겨낸 거 보면 코플라도 보통 사람은 아니죠 ㄷㄷㄷ
너무좋은글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세기 최고의 배우라 불리는 인물.. 그러나 너무 뛰어난 천재성을 갖춰서 그러나 이 남자는 사생활관리느 멘탈등에서는 좀 아쉬운 감도 없잖아있었죠.. 진짜 짐승남의 원조 중의 원조같달까나 본능에 아주 충실했던 상남자!!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는 사실 제가 말론브란도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데 저 여배우와의 일화 듣고는 마음에서 지워버렸습니다.. ㅠㅠ
완벽은 없네요
로다리고님 항상 수준높은 감사한자료 고맙습니다
항상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
좋은글 잘 봤습니다. 엄청난 영향력에 사회운동까지 앞장섰던 인물이었네요. 근데 잭 니콜슨이 수려한 외모라는건 공감 못하겠어요 ㅋㅋㅋㅋ
잭 니콜슨처럼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라기 보다는...
@로더리고 아하!!!! 제가 잘못 읽었군요 ㅎㅎㅎ
@얼음계곡 말론 브란도아니였으면 못떴을지도 모릅니다ㅎ
본문에 나온 폴 뉴먼이랑 비슷 하네요 이미지가
어떤거 말씀이시죠?
@로더리고 아 둘의 외모가여 저만 그런감요 ㅎㅎ
@쉬운이 지금 다시보니 쉬운이님 말씀처럼 어떤 이미지는 비슷해보이네요ㅎ
사인을 절대로 안해주는 걸로 유명했죠~ 헐리우스 스타들 사인중에 가장 비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