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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락(與民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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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된 후 정음(正音)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임과 동시에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 악장(樂章)문학이다.
여민락은 관현합주로 연주되며 승평만세지곡(昇平萬歲之曲)이라고도 한다.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음악으로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뜻이다. 세종실록에 악보가 실려 있다. 여민락은 용비어천가의 일부를 노래로 부른 것으로, 용비어천가의 1, 2, 3, 4, 125장 다섯 장의 가사를 총 10장의 성악곡으로 만들었는데, 오늘날에는 가사 없이 기악곡화하여 모두 7장까지만 연주되고 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느린 속도로 연주되다가 4장부터는 급박(急拍)으로 되어 속도가 빨라진다. 거문고, 가야금, 향피리, 대금, 해금. 당적, 아쟁, 장구, 좌고 등의 관현악 편성으로 연주되는데 음률이 화평하고 웅대하다. 여민락을 모두 연주하려면 1시간 20여 분이 소요된다.
특히 수석피리의 주자인 수잡이의 쇠는가락이 일품이다. 쇤다는 말은 높인다라는 뜻이며, 쇠는가락은 낮은 음역으로 진행되는 선율선의 어느 부분을 수잡이 목피리가 1옥타브 위로 올려서 연주하는 가락을 말한다. 쇠는가락은 윤기 있고 활기 차게 들리기 때문에 생동감을 주며 능숙한 연주자가 아니면 연주하기 힘들다.
창제 당시 중국계의 고취곡(鼓吹曲) 선율을 모체로 해서 만들었는데, 중국의 사신을 위한 연향이나 임금의 거동 때 사용되었다. 현재는 여민락, 여민락 만, 본령, 해령의 네 종류의 악곡으로 정착되었다.
세종 당시 창제된 여민락과 오늘날 연주되는 여민락과는 차이가 있다. 즉 황종음의 음높이가 C였던 것이 Eb으로 바뀌었고, 또 당피리 대신 향피리를 쓰고 있어 향악화되었다. 따라서 세종 당시의 여민락의 모습은 오히려 당악계 여민락인 여민락 만에 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한국음악사에 있어서 가장 크고 굵직한 일들이 많이 이루어진 시기로 세종대를 꼽고 있다. 여민락 또한 후대의 임금이 늘 이상으로 삼곤 했던 세종대에 만들어진 음악으로 조선왕조의 음악문화를 대변하는 곡 가운데 하나이다. |
첫댓글 감사히 들었읍니다 가슴 설래게 들었는데 나는 아직 아무 악기도 못하니 답답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