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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
전자제품 살 땐 바로 요기! 중관촌
행정구역으로는 해정구 (海淀区 : 하이띠엔취)에 위치하며 북경대, 청화대, 인민대 등 40여개 대학이 밀집되어 있는 대학촌이자 한식당이 많이 있는 오도구 (五道口 : 우따오코우)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중국 과학기술의 요람인 중국과학원도 인근에 위치해 이곳 출신의 엘리트들이 중관촌으로 넘어와 사업을 시작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테크노마트 같은 현대식 건물의 상가 5채 정도가 밀집되어 있으며 컴퓨터와 PC주변기기, 핸드폰, 디카, mp3, 워크맨 등 다양한 전자제품을 브랜드별로 만나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삼성 제품도 다수 입점되어 있으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한류스타의 광고판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세계 규모의 관광명소, 부국해저세계 (富國海底世界 : Blue Zoo Beijing)
1997년 11월 오픈된 해에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곳을 방문했으며, 1998년에 부국해저세계는 북경여행국에 의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인지되기 시작했다.
총 2,350만 달러가 투자되었으며, 아시아 최장 길이인 20m의 아크릴 투명 지하 터널이 설치되어 있어서 관광객이 마치바다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사방을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북경 공인체육관 (工人體育館) 인공호수 밑에 위치하며, 건축 면적은 7800㎢이다. 450만ℓ의 인공 소금물로 채워진 중앙 탱크는 자연 생태계에서 살던 수천마리의 물고기들이 살 수 있게 해 준다.
이 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6000여 종의 해양 생물이 살고 있어서 거의 모든 열대성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데, 상어, 가오리, 뱀장어, 산호초, 랍스터, 해마, 불가사리 등의 수천종의 해양생물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하루에 두번씩 물고기와 상어들에게 먹이를 주는 전문 다이버를 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마지막 황제의 배경인 자금성 (紫禁城 : 쯔진청) (세계문화유산, 1987)
지나 보이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고궁 (故宮)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이용되며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 (紫宮)'과 같은 금지 구역 (禁地)이다" 는 데에서 연유된 것이다.
전체 면적은 72만㎡이며, 총 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 건축물이다. 1406 ∼1420년에 건조된 이래로 560년이라는 세월 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전시·소장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자금성은 외조와 내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문과 태화문을 지나면 흔히 '3전'이라 부르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나타난다. 3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금성의 내정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는 건천궁, 교태전, 곤녕궁 등이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동육궁과 서육궁이 자리 잡고 있다.
방어의 목적으로 궁전 밖에는 10m 높이의 담이 있는데, 사방에는 성루가 있고 밖에는 넓이 52미터, 깊이 6미터의 호성강 (護城河)이 흐른다. 4면의 담에는 각기 문 하나씩이 나있는데 남쪽에 오문 (午門), 북쪽에 신무문 (神武門), 동쪽에 동화문 (東華門), 서쪽에 서화문 (西華門)이 있다.
1988년 개봉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꼼꼼하게 관광을 하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리고 그냥 가로질러 가는 데에만도 2시간 정도가 걸릴 만큼 넓은 곳이다. 요즘에는 세계적인 문화공연도 종종 열려 문화유적지나 관광지로서 뿐 아니라 중국시민의 휴식장소, 문화장소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1987년에 이르러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화려하고 정교한 명 /청 황실가구전시 박물관 (북경자단박물관)
중국에서도 전문성을 가진 박물관 중의 하나이다. 박물관의 가구라면 흔히 자줏빛의 색 바랜 낡은 가구만 연상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단 박물관에 들어서면 로비 한복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나무계단 위에 화려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보좌와 병풍이다. 복제품 치고는 섬세하고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작품이다. 전시품 가운데는 유서 깊은 진품도 적지 않고 모조품이라도 인도산 티크 아니면 동남아산의 희귀한 박달나무로 만들어졌다. 1999년 9월 개관한 이 박물관은 건립에만 중국돈 2억위안의 거금을 쏟아 부었다.
명나라의 황제들이 잠들어 있는 명13릉 (明十三陵 : 밍스싼링)
기슭에 위치해 있고, 면적은 약 120㎡이다. 명 왕조가 북경으로 천도한 후 13명의 선조 황제의 릉을 이곳에 이장하였다.
명나라 선조의 장릉 (長陵)이 명 영락7년 (1409년)에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이후에 11개의 릉이 장릉의 양 옆으로 세워졌으며, 명 송정제 주유검 (朱由檢)의 사릉 (思陵)이 마지막 릉인데, 청 순치 (順治) 원년 (1644년)에 정릉 (定陵)이라고 칭해지고 땅 위에 건축하였다.
명말 (明末)과 청초 (淸初) 시기의 많은 전쟁들과 끊임없는 침략으로 인해 훼손되었으나 청 건륭 (乾隆) 50 - 52년 (1785 - 1787)에 비교적 큰 복구공사가 진행되었다. 현재는 장 (長), 정 (定), 소 (昭)릉 세 곳과 신도 (神道) 네 곳만이 대외에 개방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정릉 지하 궁전은 1956년에 최초로 발굴한 황제능묘이다.
전통을 간직한 북경의 남대문 시장, 따짜란 (大柵欄)
전통을 간직한 상점이 모여 있는 재래시장이다. 우리나라의 남대문에 비견되는 곳으로 항상 많은 상인과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상품의 종류가 다양하며 먹을거리도 다채롭다.
청나라 시절 자금성 (紫禁城: 출입이 금지된 성)은 전문을 기준으로 출입을 통제하였고, 황제의 안전을 위해 외지에서 상경한 사람들은 규정된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저녁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전문 인근에 자리를 마련해 거주하며 생활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장이 열렸으며 상업 활동이 활발해져 오늘날에 이르도록 발달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따짜란에는 동인당 (同仁堂) 한약방 본점과 장일원 (張一元) 찻집, 구불리 (拘不理) 만두집과 같이 수백년의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식당과 상점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동인당은 우황청심환이 유명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이다.
골동품과 전통의 거리 유리창 (琉璃廠 : 리우리창) 이름은 원나라때 유리기와 공장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것으로 처음에는 과거를 치르기 위해 북경으로 온 사람들 중에서 과거에서 낙방한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가져온 서적, 먹, 벼루 등을 가지고 나와서 팔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청조가 멸망한 이후에는 몰락한 귀족 자제들이 문중에서 소장하던 품목들을 가지고 나와 팔아서 생활을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 점점 하나의 시장이 형성되었고, 마침내 골동품을 거래하는 전통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상점거리로서 깊은 역사를 가진 곳이기에 상점들 자체가중국 전통 건물로 골동품의 역할을 하고 있어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중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골동품의 물건들은 비교적 비싼 편이며,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안목 또한 필요하다.
골동품 외에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도장을 파는 곳이 많으니 기념으로 하나 새기는 것도 좋다. 1000여 개 정도의 가게들은 대부분 오후 6시 - 7시 정도에 문을 닫는다.
계림의 축소판 용경협 (龍慶峽 : 롱칭시아)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또한 "작은 계림 (小桂林), 작은 삼협 (小三峽)"이라고 불릴 만큼 높이 솟은 가파른 봉우리들이 장관을 이룬다. 북경의 16 명소 중의 한 곳으로, 전체 면적은 119㎢이며, 주요 명소는 70m 높이의 콘크리트 댐으로 중국의 북방 지역에서는 최대 규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여름에는 폭포, 겨울에는 얼어붙은 폭포를 볼 수 있다. 7㎞ 길이의 배유람은 또 하나의 졀경을 연출한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나와 산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10분 간격으로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면 배를 타고 진강사와 같은 역사적 장소들도 구경할 수 있다. 강은 절벽 측면을 따라 흐르며, 관광객들은 종산 (鍾山), 봉관도 (鳳冠島)와 같은 깎아내릴 듯한 절벽 등의 30여 가지의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이 곳은 여름의 평균 기온이 6.4℃로 북경 시내보다는 낮다. 봄부터 가을까지 "작은 계림"이라 불리며, 시원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하던 용경협은 겨울이 되면 물이 얼어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은 아쉬움 대신 환상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환상적인 얼음의 축제, '빙등예술절 (氷燈藝術節)'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매년 1월부터 약 두달간 4,000평방미터의 얼음 바닥 위에서 진행되며, 올해로 벌써 16회를 맞고 있다.
빙등제는 이미 하얼빈의 것으로 유명해졌지만, 이곳의 빙등제를 "작은 하얼빈의 빙등제"라 불러도 될 만큼 그 재미와 아름다움에 있어서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용경협은 하루 안에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차를 타고 입구에서 내려서 20분 정도 걸으면 댐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258m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된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1996년에 완공되었으며, 용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길이면에 있어서 기네스북에 올라 있기도 하다.
박람, 오락, 교육성을 모두 갖춘 북경 최대의 수족관 (태평양해저세계)
태평양해저세계박물관 (太平洋海底世界博物館)은 1999년 5월에 개장한 최신식의 행양박물관이다. 북경시에 솟아 있는 북경중앙방송송신탑 1층에 자리한 이곳은 싱가폴과 중국이 합자하여 건설한 수족관으로서 그 면적만 7,000평방미터에 이르고, 투자금액 또한 인민비 2억 (한화 약 330억)에 달하는 최대규모다.
이곳에서는 해양생물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교육과 감상, 오락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종합적 성격의 수족관이다. 관내에는 바다의 맹수라 불리는 상어를 비롯해 진귀한 민물어와 각양각색의 작은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수백종의 해양생물이 전시되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먼저 '바다코끼리 (海象)'라 불리는 4미터 길이의 해마와 희귀한 해양 야생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인 소지구 (小池區)를 만나게 되는데, 그 밖에 촉막지 (觸摸池), 펭귄관 (企鵝館), 해저터널 (海底隧道), 바다표범공연장 (海豹表演區), 해저잠수함 (海底沈船), 움직이는 영화관 (動感影院), 선물용품점, 패스트푸드점, 컴퓨터 과학교실 등 다양한 테마관들이 해저세계박물관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바다표범공연장에서는 "두두"와 "번번"이라는 이름의 바다표범 2마리가 매일 오전 10시 30분, 오후 13시, 15시 30분 세차례에 걸쳐 쇼를 펼치고, 다른 곳에서는 매일 16시 한차례 상어와 사람의 공무 (共舞)를 공연한다.
또 현재는 중국정부의 교육부와 국가해양국에 의해 "전국 청소년 과기교육기지"와 "해양과보교육기지", "북경청소년해양구락부"로 선정되어있고, 이어 북경여행협회에서도 이곳을 "여행점진단위", "중관촌과기여행경점"으로 정했다.
북경최대의 번화가, 왕부정 (王府井, 왕푸징)거리
상점이 들어서 있는데, 우의상점과 신화서점 등의 유명 상점을 비롯해 우의빈관과 같은 호화 호텔도 있다. 거리의 서쪽에는 중국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북경 백화점이 있으며, 동쪽에는 신동안 (新東安)시장이 있다. 이곳은 황실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황실의 우물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왕부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황실이 있던 곳이어서인지 이곳은 아직도 화려하고, 호화로운 상점과 빌딩이 많으며 유리창거리가 우리의 인사동거리와 비교되는 것처럼 이곳은 우리의 명동, 압구정거리쯤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상업거리로 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또한 쇼핑에 빠지지 않는 먹거리도 가득한 곳으로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간식거리가 있어서 음식천국이라 불리는 중국을 실감케 한다.
특히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한 불빛으로 행인들을 유혹하는데, 군것질을 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여유가 북경여행을 더욱 즐겁게 할 것이다. 북경의 대표요리인 북경 오리구이 전문 요리점 뿐 아니라 각종 특색 있는 요리집과 국제 패스트 푸드점들의 간판을 볼 수 있다.
왕부정의 동방신천지에는 수많은 전문 판매점들이 모여 있어 중국에서 최신 유행하는 유명 상품의 패션상품을 살 수 있다. 또한, 이곳은 잘 찾아보면 대를 이어 그 전통을 살리고 있는 가게도 많이 있어 좋은 품질의 비단이나 차, 골동품 등을 살 수도 있다. 야시장은 주중에는 21시 30분, 주말에는 22시 30분에 불이 꺼진다.
북경 최대 규모의 라마교 사원인 옹화궁 (雍和宮, Yonghe Lamasery)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된 라마교 사원이다. 1981년에 옹화궁은 종교활동의 장소로 개방되었다. 청 강희 (康熙) 33년 (1694년)에 지었으며, 옹정 (雍正)이 즉위하기 이전에 살았던 곳이다.
옹정이 왕위를 이어받고 난 이후에는 이 곳의 절반은 라마교 사원으로, 나머지 절반은 황제의 정원으로 개조했는데, 후에 정원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리고 옹정 3년 (1725년)에 현재의 이름인 "옹화 (雍和)"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그러다가 건륭9년 (1744년)에 옹화궁은 정식으로 라마사원이 되었고, 청 정부가 관리하는 라마교 업무의 중심이 되었다.
옹화궁은 전체 면적이 66㎡이며, 한, 만주, 몽고, 장족, 티벳 등 여러 민족들의 건축예술이 융합되어 또 하나의 독특한 건축 풍격을 지니고 있다. 주 건물들은 죽은 용정황제가 이 곳에 묻힌 때에 황금색 유리 타일로 재단장 되었다. 사원은 아치형의 입구에 의해 크게 일곱개의 안뜰로 구성되어 있다.
안뜰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지만 반면에 높이는 점점 커진다. 또한 불교문물과 자료, 그림 등이 보존되어 있다.
서태후의 여름 별장인 이화원 (이허위엔) (세계문화유산, 1998)
황족 정원이다. 특히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더 유명하다. 북경 서쪽 외곽인 해정구 (海淀區 : 하이디엔취)에 있으며, 북경 시내에서는 15㎞ 떨어져 있다.
이화원의 전신은 북경 청의원으로, 후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불태웠을 때 함께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광서 14년(1888)에 서태후는 해군 군비를 이용해서 다시 재건했으며 이 때 이름을 현재의 "이화원"으로 바꿨다. 1900년, 이화원은 또다시 팔국 연합군의 선공을 당했다.
서태후는 서안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후에 다시 거대한 자금을 들여 복구에 나섰다. 이화원은 무엇보다도 규모가 엄청나며 총면적이 294㎡이다. 본래 평지였던 곳을 파내 만든 곤명호 (昆明湖)와 호수에서 파낸 흙으로 쌓은 만수산 (萬壽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수면이 전체의 3/4을 차지한다. 서태후가 이화원에 이처럼 각별한 관심을 둔 목적은 피서와 요양이었으며, 1903년부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서태후는 이 곳에서 신하들과 국정을 논할 일이 많이 생기자 정원 앞부분에 궁전과 생활거주지구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화원은 궁전과 정원 두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황족 정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화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곤명호는 인공호수이지만, 인공호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나다. 특히곤명호 동쪽 기슭에 있는 17 공교의 난간에 새겨져 있는 544마리의 사자도 볼 만하다.
또한 곤명호를 안고 있는 만수산은 역시 곤명호를 팔 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으로 화려한 누각이 있으며 이화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역시 인기가 좋다. 이화원의 주요 명소들로는 정문인 동궁문 (東宮門)을 비롯해, 덕화원 (德和園), 장랑 (長廊), 불향각 (佛香閣) 등이 있다.
동궁문은 이화원의 정문으로 삼명양암 (三明兩暗)의 무전식 건축양식이 사용되었으며, 덕화원에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경극극장이 위치하고 있다. 높이 21미터에 상, 중, 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랑은 동쪽으로는 요월문 (邀月門)에서 시작하여 서쪽의 장정 (石丈亭)까지 전체길이 728미터에 총 273칸의 화랑으로 이어진 복도 건축물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길며, 유명한 장랑 (긴복도)이다. 마지막으로 불향각은 만수산 앞의 산비탈길에 세워진 높이 21미터의 거석 위에 세워진 전각으로 남쪽으로는 곤명호를 향하고 있고 뒤쪽으로는 지혜해불전 (智慧海佛殿)을 기대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 장성 (長城 : 창청), 만리장성
진의 강력한 통일제국체제가 낳은 상징적 산물이다.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약 75km 쯤 떨어진 곳에 교통이 편리하다는 뜻인 "사통팔달"에서이름이 유래한 "팔달령"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의 만리장성은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어 만리장성 중에서도 대표적인 구간으로 대부분의 만리장성 관광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1015미터이며, 산세가 험준한 편이다. 장성 위에서 구불구불 기복이 심한 산세를 따라 멀리까지 뻗어있는 견고한 성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춘추전국시대에 짓기 시작한 장성은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 길이가 5천만m에 이른다.
장성은 북방의 유목민족들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지어졌다.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혹한으로 더 이상 북쪽으로 진출할 수 없게 되자 남쪽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자가 풍부한 농경지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은 단순히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막인 동시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서쪽 감숙성의 가욕관 (嘉浴館)에서 시작하여 요녕성 압록강변에 이르는 635만m 길이의 성벽은 대부분 명나라 때 지어진 것들이며, 만리장성에 설치되어 있는 가드레일과 케이블카는 좀 더 편하고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장성은 세계 7대 건축물,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또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거대한 명성을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황제가 제사를 지내던 천단(天壇 : 티엔탄), (Temple of Heaven: 세계문화유산, 1998)
전체면적은 270㎡이다. 명 영락 (永樂) 4년 (1406)에 지어지기 시작해서 영락 18년 (1420)년에 완성되었다.
천단은 "하늘"을 상징하는 사당 건축물로, 명· 청나라 황제들이 매년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당시의 황제에 봉해진 자들은 스스로를 "천자"로 간주했기 때문에 대자연을 숭배했으며, 천지를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제왕의 중요 업무였다.
그래서 고대 설계사들은 "하늘"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힘을 다했다. 천단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명확하게 내벽과 외벽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북쪽의 벽은 원형, 남쪽의 벽은 사각형으로 원형은 하늘을 상징하고 사각형은 땅을 상징한다.
이것은 중국 고대의 "천원지방 (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이다.)"에 부합하는 것이다. 북쪽 벽은 또한 남쪽 벽에 비해서 높은데, 이것 또한 "천고지저(天高地低 :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두 개의 벽은 또한 천단을 내단과 외단으로 구분하는데, 주요 건축물은 내단에 있다.
북쪽에는 기년전 (祈年殿)과 황건전 (皇乾殿)이 있고, 남쪽에는 원구단 (圓丘壇)과 황궁우 (皇穹宇)가 있다. 천단공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축물은 기년전 (幾年殿)으로, 황제가 오곡이 풍성하기를 빌던 곳이다. 삼중 처마로 된 원형 궁전이며, 높이는 38m이다.
3층으로 이루어진 푸른지붕은 유리기와라 불리고 하늘을 상징하는데 명대에는 아래부터 자주색, 황색, 푸른색의 3색이었다고 한다. 중앙의 '용정주 (龍井柱)'는 일년 사계절을, 가운데 12개의 기둥은 12개월을, 바깥쪽의 12개 기둥은 12시진 (2시간)을, 내외 처마 기둥 24개는 24개의 절기를 각각 상징한다.
※ 천단공원은 천단관련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큰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공원 안에서 새벽부터 검술과 태극권을 하는 중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른 새벽부터 전통악기를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며 수십 명이 함께 모여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모습, 일렬로 줄 맞춰 서서 느린 동작의 태극권을 연마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중국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아시아 최대 실내 온천장, 천용원 (天龍源) 함유되었으며, 지하 1916미터에서 부터 온천수가 솟아오른다. 물이 솟는 가장 아랫부분의 온도가 섭씨 44.8도이며 물이 나오는 입구의 온도는 섭씨 43.5도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국토자원부가 수질평가를 하여 온천 수질의 탄산, 나트륨, 마그네슘, 불소 함유의 광천수로 인증 하였다. 온천욕 뿐 아니라 마실 수도 있으며, 심혈관 질병, 고혈압, 고지혈, 관절염, 위장계통 질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용원 내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대형 원형탕에 중앙 분수대가 있는 천일생수 온천구 (天一生水溫泉區)와 600평방미터의 샤워, 사우나 공간과 900평방미터의 온천욕 공간을 갖춘 천상인가온천구 (川上人家溫泉區) 그리고 인삼, 당귀, 지황 등 여러 약재를 효능에 맞춰 테마별 탕으로 만들어 놓은 약욕탕, 현재 중국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실내인조 파도풀, 어린이 수영장, 수중발레와 서커스 등을 공연하는 대형무대, 마사지센터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중국 민주화의 상징, 천안문광장 (天安門廣場 : 티엔안먼꽝창)
천안문 광장은 원래 1651년에 설계되었다. 그러다가 1958년에 시멘트로 접합되고 네 배나 큰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전체 면적이 44만㎡이며, 동시에 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 중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여러 개의 인상 깊은 건축물들이 주변에 들어서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천안문, 동쪽은 중국 국가박물관, 서쪽은 인민대회당, 그리고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중국 인민영웅기념비가 서 있다. 천안문 광장은 옛부터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 행사 등이 이어졌다.
천안문 광장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1989년 4월 중국 전 총서기이자 개혁가였던 후야오방 (胡耀邦)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이 운동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산이 되어 서로 손을 맞잡고 천안문 광장으로 운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기를 느낀 당시 지도자였던 덩샤오핑 (登小平)은 이들을 진압할 방법을 강구하던 끝에 결국은 같은 해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 모여 있던 학생과 시민들을 기관총, 전차 동원 등의 무력을 이용해서 강제 진압함으로서 사건을 마무리시켰다.
이후부터 천안문 광장은 중국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천안문광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는 해가 뜨는 새벽에 거행되는 국기 게양식이다. 행진곡과 함께 군인들이 정렬하여 나타나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게양하는데, 이 의식에 걸리는 시간만 거의 30분 정도 소요된다.
국기 게양시간과 강하 시간은매번 조금씩 다른데 그 이유는 넓은 중국 대륙에서 해가 뜨고 지는 자리와 천안문 광장의 지평선이 서로 일치할 때를 계산하여 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양식이 거행될 때에는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지나갈 수 없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것은 괜찮다.
해가 어슴프레 뜨는 새벽의 오묘한 기운 속에서 벌어지는 이 작지만 웅장한 의식은 외국 관광객들 뿐 아니라 북경을 방문한 타지역의 중국인들에게 북경에 오면 꼭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 코스이다.
※ 천안문과 광장 주위의 건축물 ■ 천안문 천안문은 광장의 북쪽에 위치해 있고,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명 영락 (永樂)연간인 1417년에 지어졌으며, 옛날에는 황제가 사는 성의 정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승천문 (承天門)이라고 불렸다가 청대에 개조된 후부터 '천하를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천안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3.7m 높이의 천안문은 황제의 대형 의식이나 새 군대 파견을 위한 행사를 위해 이용 되었다. 황금색 기와 지붕과, 높이 추켜든 추녀, 그림과 조각으로 단장된 대들보, 그리고 주홍색의 웅장한 기둥들은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하얀색 대리석 위에 새겨진 조각들은 하늘의 평화와 황제의 권력을 상징한다.
■ 인민영웅 기념비 천안문 광장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인민영웅기념탑은 1952년에 세워진 기념비로 높이 37.94미터에 탑 토대만 3천여 평방 미터의 중국 역사상 최대의 기념비이다. 탑신은 견고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탑의 주변은 소박한 미의 한백옥으로 만들어진 2층의 난간이 두르고 있다. 탑에는 모택동 주석의 친필로 쓴 " 인민영웅영수불후 (人民英雄永垂不朽)' 8 글자와 중국 현대사가 대형 부조로 새겨져 있다.
■ 인민대회당 광장의 서쪽에 위치하는 인민대회당은 높이 46미터, 길이 336미터, 너비 206미터에 건축면적이 17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대회당의 정면에는 높이가 25미터에 달하는 12개의 대리석 문주가 있으며, 중앙의 로비로 들어가면 연분홍색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과 한백옥으로 만들어진 석주가 서있으며, 천장에는 수정 샹들리에가 걸려져 있다.
중앙로비를 지나면 우아한 인테리어의 대강당이 나오고 대회당의 북부로 가면 5천개의 좌석을 가진 연회장이 나온다. 모든 건축물은 중국의 전통 건축양식에 외국의 인테리어 분위기를 가미하여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다.
■ 모주석 기념당 천안문 광장의 남쪽에 있는 모택동 주석 기념당은 1977년 9월에 지어졌다. 건축물은 대추색의 화강암으로 지어졌으며, 기념당은 북청, 첨앙청과 남청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으며, 방부처리 된 모택동의 시신이 첨앙청 내에 있는 수정관에 뉘어져 있고 주위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진귀한 꽃들이 관을 두르고 있다. 북청 상층에는 모택동, 주은래 등의 개국원로의 혁명 업적이 나열되어 있다.
- 주의사항 모택동 주석의 시신이 있는 첨앙청에 들어갈 때는 카메라와 캠코더, 각종 음료는 들고 들어갈 수 없다.
■ 중국 국가 박물관 천안문광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 국가박물관은 2003년 2월28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1959년에 세워진 중국 역사박물관과 1961년에 세워진 중국 혁명박물관이 합쳐져 만들어진 곳으로 건물높이 33미터, 길이 313미터, 너비 100미터의 웅장한 기세를 가졌다. 인민대회당과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개보수를 진행하고 있다.
북경의 낭만호수, 십찰해 (什刹海, 스싸하이)
호수주변에 10개의 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하나도 남은 것이 없고 그 대신 음식점과 분위기 있는 카페, 호프집이 즐비해 연인들과, 무리지어 나온 사람들의 즐거운 수다가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벅스가 눈길을 끄는데 전통가옥을 개조해 만들어 과거와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모습이다. 또한 "星巴克" (싱빠커)라는 중국어 간판이 걸려있어 모든 외래어를 한자로 재창조해 사용하는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사동에서만 스타벅스의 한글간판을 볼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저녁이면 잔잔한 호수 물결에 조명등이 비추고, 호수에서 뱃놀이도 즐길 수 있어 하룻동안 많은 곳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하고, 나른했던 발에 휴식을 주고, 호젓하게 여행길 여담을 나누며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공묘 (孔廟, 공자사당)
공묘 (孔廟)이다. 춘추시대의 사상과 공자를 기원하는 사당 (廟)이다. 노나라의 哀공이 공자가 죽은 이후 묘를 세운 것이 시작으로 그 후의 역대 황제로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의 길이가 약 1킬로미터, 면적이 22헥타아르에 달하고, 용의 승천하는 모양이 새겨져 있는 거대한 18개의 석주를 가진 장대하고 아름다운 대성전, 53개의 돌비석이 세워져있는 13비정 (十三碑亭) 등, 공묘 내에는 귀중한 건물이 많이 있다.
대성전과 대성문 좌우에 있는 건물은 새로 개장한 진열관(陳列館)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을 사용하고 있지만 내부는 개수가 되어서 공조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소중한 문물의 보존을 완벽하게 하고 있다. 전시물은 북경의 역사를 대표하는 문물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 들어가는데 입장료가 있다.
구화산장 온천욕
구화산장의 노천온천욕은 북경시민들에게 매우 인기 있다. 북경시내에서 약35KM 거리의 북경공항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 구화산장은 800년 전의 몽고족 통치하의 원나라시대 때부터 황족온천욕장으로 지정되었으며 1954년부터는 국가급 온천전용장소로 지정되었다.
구화산장 천연 수질의 온천물에는 유황, 구리, 아연 등 금속이온과 나트륨, 마그네슘, 칼륨 등이 풍부하여 치료효과 및 피부미용에 뛰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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