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태어난 세대들 중 천재가 유독 많았다.
해방 후 한국의 지성과 학게를 주름잡은 인물들은 다들 창의적이었다.
과학의 분야 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 예술의 전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물들이 니왔다.
나는 이게 궁금했다. 한국의 고승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카톨릭 등등에서 특출한 인물들이 나타났다.
고건 총리의 아버지 고형곤은 서울대 전신 경성제국대 출신이다.
그가 쓴 "선의 세계"는 한국에서 나온 역대 선에 관한 책으로는 단연 최고의 책이다.
종래에는 조선시대 함허당 득통의 "금강경 오가해"가 최고였었다.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해석학을 조사선에 비교분석한 수작이다. 이 책이 71년에 처음 나온 이후 이 책에 충격을 받아
수많은 서양철학자들이 선학공부를 한다고 뛰어든 시기가 80년대 후반이다. 그 영향으로 이 책은
1995년 그동안 발표된 논문들을 보충 총 2편으로 재출판하게 된다. 1906년 생이니 당시 90의 나이이다.
나는 이책의 관점에 부동의 하고 틀렸다고 보지만 해방 후 나온 한국인이 쓴 불교철학 책중 이 책만한
것을 본적이 없다. 여기서 불교철학은 성철 등의 승려들이 쓴 글들 모두를 포함한다.
이 책의 영향 때문인지 어떤지 10여년 전부터 불교TV에 나와 강의하는 중들은 죄다 실존철학
아님 현상학의 입장에서 경전을 해석한다. 강의하는 책은 금강경 등 경전인데 해설은 서양철학이다.
이거 무슨 신학대 교양강의도 아니고.... 고승이라는 자들의 강의가 정말 불교가 뭔지도 모르고
승복입고 염불이나 하는 꼴이다. 목사가 승복을 입었나? ㅋ
(http://cafe.daum.net/Wahrheit/LZpd/236 참고)
서양철학에서는 박종홍이 있었는데 유학자 가문에서 사숙으로 성리학을 마스터 한 후 20 중반에
검정고시로 서울대를 들어간 천재이다. 서울대에서도 혁혁한 실력으로 교수가 되었다.
독일관념론의 국내 일인자였는데 필자도 대학 시절 그의 책으로 공부를 했고 70-80년대
독일관념론을 공부하는 필수 교과서 였다. 박종홍은 외국유학이나 연수도 가본 적이 없는
순수국내파인데 독학으로 독일어 원서를 읽고 그 요지를 분석하여 칸트와 헤겔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천재들이다. 이들 외에도 부지기수의 천재들이 현재의 한국을 만들었다.
이 시대 인물들이 뛰어났던건 갑질할 선배도 없었고 갑질할만한 토대가 전무한 황무지였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로이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는 고팠어도.
J.S.밀이 말한대로 "배부른 돼지가 될바엔 차라리 불만에 가득찬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시대였다.
필자는 90년대 중반부터 항상 궁금했던게 70-80년대 엄청나게 유학을 갔고 또 그들이 돌아온
시기가 80년 초반에서 2000년인데 학문은 서양의 아류에 하청업자 수준으로 전락했느냐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90년대 후반에 찾았다. 모든 학게가 독창성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70년대 초부터 서울대를 중심으로 일류대는 이미 파벌이 완성되었고 교수가 최고 권력이 되고
학게가 만들어 지면서 권력 알력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서울대 출신들을 새롭게 생기는 각
대학에 보내는 추천장을 서울대 교수가 써준다.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전국에 엄청난 수의
데학이 만들어졌고 수요가 공급을 능가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지방의 3류대학은 서울대
졸업장 만으로도 4년제 교수가 될 수 있었다. 교수가 절대권력자가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독창적인 것은 교수가 된 후 니맘대로 하라고 한다. 박사까지는 나를 통과해야
한다고 갑질을 하니 그 갑질을 통과하는데 진이 빠져 바보가 되어 나온다. 국내에서 박사받는
그 순간 바보로 재탄생한다. 일류대 교수들이 학회를 장악하고 저지른 일.
부산의 모대학 독문학과에 80년에 교수로 부임한 인물은 서울대 독문학과를 수석졸업 한 후
독일 보훔대학에 유학가서 8년을 박사과정에 못들어가고 학부에서 공부만 하다가 돌아왔다.
독일은 대학졸업이 박사받는 것 보다 힘들다고 한다. 해서 국내에서 석사 마친 후 바로 박사
들어가라고도 한다. 역시나 일제시대에 태어난 전 문교부장관 이규호는 부산대 1기인가 2기인데
졸업후 독일 가서 대학학부 마치고 박사들어가 정식으로 철학박사를 받은 국내 1호이다.
독일은 대학 졸업하면 바로 박사과정이다.
해서 국내 석사는 독일가면 대졸로만 인정한다. 그 어려운 독일학부를 마치고 박사까지 받고 온
그는 문교부 장관까지 하였다. 어째든 이 실패한 서울대생은 전 지도교수를 찾아가 눈물로 호소
한 후 그의 적극추천으로 부산 모대학 교수가 되었고 정년퇴직 했다. 80년 중반 이 사실이
문제가 되자 후배가 교수로 있는 대구 계명대를 가서 88년 석사학위를 후배에게 받고 그걸로
교수자리 연명하였다.
이 사례 말고도 엄청난 일들이 학게에서 일어났다. 80년대 말까지는 서울대 석사면 교수가
가능한 시대였었다. 단 교수 추천이 필수이다. 그리고 80년대 부산 경남지방에 교수들 역시
부산대 출신들을 많이 보냈다. 이들은 부산대 교수들의 파워에 힙입었는데 70-80년대 부산대
교수들 대다수가 석사였다. 이 석사들이 제자를 양성하여 박사학위를 준 시기가 80-90년대이다.
지금도 부산대 철학과 교수 중 하나는 석사이다. 58년생을 기점으로 아랫 세대는 거의 다 박사
인데(물론 이들에게 박사학위 준 사람들은 석사학위 가진 교수들) 정년퇴직 앞 둔 하나가 석사이다
대구에 가보니 80년대 중반부터 박사학위 없는 사람은 설사 교수라도 대학원 강의나 학위수여
못하게 했는데 부산은 기가막혔다.
* 70년대 중후반부터 교수의 갑질이 시작되다.
대학교수라는 자리가 사회에서 각광받는 위치이다 보니 석사와 박사과정 진입도 어렵지만
박사학위는 더욱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권력에 맛을 들인 교수들이 자기수준을 능가하는 논문을
박사논문으로 요구하고 나아가 창의성 독창성을 가진 견해를 제시하면 아에 밟아버렸다.
해서 80년대는 해외에서 박사받는게 더 쉽다는 말까지 나오게 된다. 서울대 연고대부터
부산대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는데 유일하게 부산대 철학과 김승동 교수는 박사를 남발하였다.
석사학위만 있던 그는 박사 받는데 허송세월 하면 앞으로 학문연구는 어떻게 하느냐며 수월하게
학위를 주었고 수십명의 박사를 양산하고 부산 경남지역 교수로 만들어 주었다. 그의 제자들이
그를 은인으로 생각하는게 다른 여러가지 개인적 문제는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교수임용이라는
평생의 숙제를 수월하게 풀 수 있게 도와준 것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교수갑질의 시대인데....
문제는 이렇게 은혜를 입은 놈들이 정작 지는 3류대 4류대 가서 갑질을 했다는 것이다.
수준 낮은 박사 논문에 실력도 없으면서 교수라고 갑질한 놈들이 수두룩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제자중 인물이 없다.
*필자가 목도한 갑질
정말 기가막힌 갑질이 부산대에서 일어난다. 필자 또래 2명이 대학시절 천재소리를 듣고 석사를
들어갔는데 하나는 서울대 하나는 모교인 부산대에 들어갔다. 서울대 간 이는 유명한 최창조 교수
찾아서 지리학과를 들어가서 석박사를 풍수지리로 받았으나 부산대 철학과에서 잡놈은 오지마라고
해서 그냥 서울 경기지방에서 기간제 교수로 살고 있다. 풍수지리는 필자같은 잡놈들이 하는 거라고
동문들 교수들이 같이 갑질을 했다. 아주 꼴갑을 튼다. 고고와 고상이라는 상아탑에 갖혔으니
전국에서 철학과가 다없어지지....
더 기가막힌건 부산대 석사 간 에이씨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2년만에 석사를 통과하고 박사를
들어갔으며 다른 교수들로부터 논문 잘썼고 학자로서 재능이 뛰어나다고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박사수료하던 1991년에 논문을 제출하였다. 박사 들어가자마자 논문구상하고 수료와 동시에
제출한 것이다. 박사 논문십사에서 심사위원들은 이정도면 잘했다고 통과를 선언했으나 지도교수가
틀었다. ㅎ 제자에게 이렇게 정중히 말했다. "에이선생 아직 조금 부족하니 좀 더 보충합시다...."
이 인간은 생긴게 딱 일본총리 아베처럼 생겼다. 나는 아베가 총리 출마할때 깜짝 놀랐다.
이 인간 배다른 형제인가?.....ㅋㅋ
필자가 96년 부산대 석사과정 시험을 쳤다. 주변에서 하도 점쟁이라고 놀려대고 무시해서
도데체 니들은 얼마나 똑똑한지보자고.... 딱 2달 하루 3시간 영어공부만하고 시험 쳤다.
철학 논술이야 고딩 대학때 읽은걸로 자신은 있었고 졸업하고 10년만에 시험을 쳤는데 과수석을
했다. 전액면제 나왔는데 조교가 받은 돈 절반을 과발전기금으로 내놓으라고 한다. 닝기리...
교수들 술값이었다. 지들 술 지돈으로 쳐먹지.... 시작부터 갑질이다.
필자 대학동기가 에이씨랑 사회친구가 되었다고 도움을 받을겸 만나보라고 한다.
그와 한잔 하는 중에 그 역시 역술인이라는 직업을 폄하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 와중에
치기가 폭팔한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에이선생님 귀신 본적이 있죠?"
그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알이 터질듯하게 필자를 쳐다보는데 입에 물고 있던 소주가
그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내린다. 너무 놀라서 입에 넣은 소주가 흐르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약 한 달 후 필자를 찻집에 부른 그는 전국의 유명 점집 무당집 안가본데가 없다고 했다.
그의 친한 선배가 부산 모대학 철학교수인데 이 사람이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고는
무당에 빠져 산다고 한다. 그 선배랑 전국을 해메는 이유가 91년에 제출한 박사논문이 당시
96년 6년이 지나도록 지도교수가 브레이크를 걸어서 박사를 못받고 있다고 한다.
90년부터 98년까지 지방대 만들기 붐이 일어서 박사만 받으면 교수 100%인 상황이다.
친한 선배가 교수이니 학계 돌아가는 상황이 빤하다. 필자에게 지금껏 살면서 자신의
비밀을 맞춘 건 필자가 첨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대 빙의가 되었고
조상신의 도움으로 치유가 되었으나 여전히 빙의의 위험에 시달리고 살고 있다.
철학과를 간 이유도 그것과 관련이 있고.....허나 어느누구도 그의 비밀을 못 맞추었는데
필자가 맞추니 그 믿지 않는 사주감정을 부탁한다. 필자는 2002년 아니면 2003년에 받는다고 했다.
에이: 그러면 교수는 물건너 가는데요? 유명 무속인 두명이 올해 아니면 내년에 받는다던데...
필자 : 아닙니다. 불가능입니다.
에이 : 98년까지 교수임용이 마무리 될거고 정년퇴직 교수들도 2000년 안에 다 마무리되면 지금 제일
많은 나이대가 58년생 포함 전후 2살인데 이번 기회 놓치면 2020년까지는 전국에서
철학과 교수자리 안납니다. 안그래도 선배 교수가 "창원 모대학 티오가나서 너를 추천 했는데
박사학위가 없다고 안된다"고 했어요....선배가 지도교수 바꾸라고 몇년전부터 말하던데...
필자 : 예...차라리 91-93년이 박사받는 시기입니다. 그때 바꾸는게 답이였죠.
그랬으면 지금 대학교수 되어 있었을겁니다.
결국 에이씨는 2003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결국 지금까지 기간제 교수를 하고 있다.
알다시피 전임강사 정교수 빼고는 모두 알바교수다. 시간강사라는 말을 못쓰게 해서 20 여개의
직함이 있다. 10년 이상 시달리다 박사를 받으니 진이 빠져서 이후에 제대로 된 학문활동을 못해
여직 제대로 된 연구실적을 출판하지 못하고 있다. 창의성이 사라진 것이다.
이 썩어빠진 지도교수는 석사다. 석사가 박사학위를 주는 이상한 제도를 운영하니 부산대 박사출신
중에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놈들이 없다. 이미 언급한대로 대구는 모든 대학이 80년대 중반부터
박사학위 소유자만 박사학위를 줄 수 있게 했는데, 부산대만 그렇게하니 이상하고 괴상한 교수들
때문에 항상 학교가 씨끄럽다.
* 20대나 30대에 창의적인 연구를 해야 40대에 업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20-30대를 교수 입맛에 맞는 논문 쓴다고 모든 창의성을 소비한다.
정말 힘들게 40 다되어 박사 받아도 교수 똥구멍 빨아줘야 교수추천 받아서 전임강사(정식교수)
갈 수가 있다. 행여 밉보이면 교수가 해당 대학에 전화해서 험담을 하고 해당대학 교수들은
어차피 학회에서 형님 아우 하는 사이이니 당근 임용 탈락 시킨다. 이렇게 카르텔은 형성되고
학회 마피아가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에 무슨 창의성이 나오나? 눈치만 100단이 된다.
그러다가 교수가 되면 20년 이상 진이빠져서 그냥 편히 교수하면서 존경이나 받으며 인생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교수만 되어도 인생성공이니 괜히 나가서 모난돌이 되어 정 맞는 일
없도록 하자.....라고 판단한다.
밑의 글에서 언급한 송유근의 지도교수가 바로 학게의 모난돌이 되어 정맞은 꼴이다.
그래서 학피아들이다. 관피아 해양마피아 원전마피아 등등 사회 전분야가 마피아 같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유치원연합회 처럼 협회 마피아도 만들어졌다.
* 돈 많고 집안 좋은 놈은 갑질 교수 위에 있다.
에이씨의 반대 사례도 있다. B라는 놈인데 69년 생에 90년 중반 박사과정에 있었고
같이 석박사 통합수업을 하게되었는데 한문 독해력이 한문과 2-3학년 수준이다.
정말 기가 막힌게 단어를 다찾아놓고도 해석을 못한다. ㅎㅎ
B의 집안은 금정산 산성 마을에서도 흑염소 가든 3개를 가지고 있는 부자이다.
각 가든이 100 평씩인데 두개는 남 세주고 하난 직접 운영하는데 외제차가 3대다.
당시 3억짜리 최고급 벤츠는 아버지거, BMW 1억 큰 아들, BMW 스포츠카 2억5천은
박사생 막내꺼. 90년대 2억5천이면 서울에서도 먹어주는 가격이다. 이걸 끌고 등교를
하는데 저팔게 같이 생긴 돼지가 교내에서 최고급 차를 끌고 돌아다닌다.
1년에 두번 학회 모임하면 이놈집에서 한다. 그 비싼 흑염소를 공짜로 대접한다.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60 여명이 모이는데 그 식비만도 1회당 최소 5백만원-천만원이다.
거기에 지도교수에게 흑염소 중탕을 계절마다 상납한다.
아버지가 돈은 벌만큼 벌었으니 아들 교수만 된다면 얼마든지 돈을 쓰겠다는 입장이다.
역시 돈이 최고인가?
지도교수가 정해준 박사논문 주제가 세종대학의 정치철학이다. ㅋ
교제는 번역본 왕조실록. 한문 독해가 안되니 한글로 논문 쓰게하고 해당 인용문의 원서만
따로 찾아 써놓으면 된다. 여기에 하나더 지도교수 박사논문이 세종대왕의 성리학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다. 즉 지도교수가 손바닥에 놓고 있는게 세종대왕이고 석박사 논문도 몇 차례
냈으니 안되면 표절도 불사할 각오인 것이다. 당연히 박사가 되었다. 2000년 경에 되었지 싶은데
이후 소식은 모른다. 관심도 없고...... power of money.... 솔직히 역겹다.
작금의 시대는 배부른 돼지학자와 돼지교수들로 가득한 시대다.
배고프며 불만에 가득한 소크라테스는 어디를 찾아도 안보인다.
그래서 철학은 죽었고 그래서 세계적인 학자는 안나온다.
창의성은 선진국에 맡기고 우리는 모방의 천재로 하청의 달인으로 살면된다.
70년대부터 우리 학계는 선진국의 하수인 하청업체로 살고있다.
대학교수라는 작자들이 외국의 나이 어린 교수들의 책을 번역하거나 초청하여
그리스도를 만난양 즐거워하고 그를 초청한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착각한다,
친교방의 유발 하라리 강연이 그 한 예이다.
( http://cafe.daum.net/Wahrheit/9mN5/96
http://cafe.daum.net/Wahrheit/9mN5/95 참고)
지금 한국은 베부른 노예가 배고픈 창조자 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시대다.
40대에 세게적인 학자가 된 인물을 보고 부끄럽지 않으니 배부른 돼지들이다.
유발 하라리 수준의 책은 우리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돼지 교수와 학자들이
20대들의 창의성을 짓밟지만 않는다면..... 차라리 대학이 해체되고 학회가 없어지면
창의성에 가득한 글들이 나올 것이다.
PS. 1
80년대 초에 들은 이야기이다.
70년에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대학강단에 서기를 원했던 한국인이 있었다.
아내는 간호사인데 10년째 룸펜으로 지낸단다. 한국에 가면 100% 교수되는데 왜 한국
안가냐고 물으면 독재자에 부역하는 썩어빠진 대학교수들 학회 원로들 꼴보기 싫고
그 까마귀 떼들 밑에 가기싫다고 안간다고 한단다.
해서 독일 교민들이 똥박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유명한 독일 박사를 똥으로 만들었다고 그렇게 불렀다.
배부른게 최고로 여기던 시대다. 한국인 대다수가... 그래서 독재자들이 40년을 지배했다.
70년대부터 독일은 박사가 넘쳐나서 박사 받고도 고등학교 선생이나
택시 운전사로 연명하는 사회가 되었다. 40년 후의 한국사회가 딱 그렇게 되었으니
우리는 독일 보다 40년이나 뒤지는 사회이다.
PS.2
서울대 연고대 중심으로 시작한 학벌 학회를 중심으로 하는 교수갑질은 모든 일류대로 전파되었고
각 지방도 그 지방 일류대를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 지역교수 갑질 시대를 연다.
이는 과학계에도 그대로 전달되어 우리가 다아는 신생 명문 과학대 교수들의 갑질로 연결된다.
의대교수들은 그냥 갑질을 넘어서 미친놈 수준의 폭력을 행사하는 조폭집단이 되었다.
권력의 절대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었다.
교수갑질의 역사는 70년대 소소하게 시작되어 눈덩이처럼 커지다가 거대한 산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암세포가 되었다. 이 자충수는 결국 교수사회의 공멸을 만들 것이다.
2018년 10 26일 紫霞仙人 遊於世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