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구디역)' 앞.
난 전철을 타려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저 쪽에서 '지팡이'(워킹 스틱)를 탁탁 거리며 다가오는 젊은 청년이 보였다.
이 동네가 처음인 듯 그의 행동거지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장애 중에서도 '시각장애'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는데, 그 청년도 낯선 동네에 와서 그런지 영 방향감각을 잡지 못하는 듯 보였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그러나 추운 겨울 날, 찬 바람이 쌩쌩부는 대로에서 그를 주목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나는 그를 아까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 눈길이 갔다.
그는 내가 서 있는 곳을 지나쳐 6-7미터를 더 갔다.
그는 뭔가 직감적으로 자신이 잘 못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듯했다.
서너 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때 내가 그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젊은이. 어디를 가는 길이에요?"
"구디역요"
"그러면 이쪽 방향이 아니에요. 조금 지나쳤어요. 나랑 같이 가요. 나도 지금 그 역으로 가는 길이니까요"
"아, 예~ 고맙습니다"
신호가 바뀌고 양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교행했다.
그는 연신 워킹 스틱으로 자신의 앞길을 확인하느라 탁탁 거렸다.
매우 분주한 시간, 스틱이 사람들의 발에도 걸렸고 그의 어깨도 타인들과 몇 번 부딪혔다.
안 되겠다 싶어 그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자, 내 손을 잡으세요"
번잡한 교차로라서 그런지 그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그 청년의 손을 잡았다.
"아아....."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손이 무척 차가운데 장갑을 끼고 다니지 그러세요?"
"장갑을 끼면 감각이 무뎌져서 더 헤매거나 실수하기 십상입니다. 다른 분들께 더 폐를 끼칠 수도 있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청년의 그 한마디에 내 콧등이 찡해졌다.
내 심장의 과녁에 화살이 정통으로 박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걸 보면 그의 멘트가 내 가슴을 몹시도 시리게 했던 모양이었다.
느릿느릿 걷느라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는 끄트머리에 건너편 인도에 당도했다.
역까지 가려면 'ㄱ'자로 된 횡단보도를 다시 한 번 건너야 했다.
난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내 조카 같은 20대 초반의 앳된 청년.
어쩌다 실명했는 지 난 알 수 없으나 이 추운 날씨에 장갑도 없이 낯선 곳에서 어렵게 길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보행하기 힘들죠?"
"예...러시아워 때는 사람들이 바빠서 그런지 더 양보를 안 해 주셔요. 그래서 전철을 타기가 어렵고 시간도 몇 배나 걸려요"
우리는 언제부턴가 숨막히는 레이스가 인생살이의 정석인 양 그렇게 뛰고 있다.
'함께 사는 사회'나 '약자에 대한 배려' 같은 문구는 바람 부는 육교에나 내걸린 공허하고 진부한 표어에 지나지 않는다.
앞만 보고 달리는 그런 '습관적 저돌성'과 타인에게는 아예 작은 관심조차 두지않는 '이기적인 양태'를 신앙처럼 신봉하며 사는 지도 모른다.
돈과 지위면 다 된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다른 사람이 탈락해야만 내가 산다고 믿는 세태다.
그러나 30년 이상 긴 세월을 놓고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조금 늦게 간다고 실패한 인생이 아니며 약간 빨리 간다고 그가 꼭 성공한 삶도 아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다.
어떻게 전개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고통총량의 법칙'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변의 '원칙'이다.
지금 주변을 챙기며 따스한 손길을 내민다고 해서 수십 년 후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지에 더 늦게 도착하는 것도 아니다.
이 땅에 아기 예수가 오신 날, 바로 '성탄절'이 멀지 않았다.
날씨는 여전히 춥지만 그래도 가끔씩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조금 손해 보고 져준다는 느낌으로 살았으면 싶다.
자신에겐 한없이 엄격해도 타인들에겐 좀 너그럽게 대했으면 좋겠다.
그 청년과 나는 다른 플랫홈에서 전철을 탔다.
그 청년이 자신의 목적지까지 잘 가주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오늘도 날씨가 무척 춥다.
세상이 얼어붙을수록 작은 온정과 배려가 그리워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게다.
그런 세상을 향해 기도하면서 이 아침에 '큐티'를 마무리 한다.
사랑발전소 회원님들.
오늘 하루도 내내 행복하시길 소망한다.
모두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2010년 12월 16일.
아침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