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가객 - 김광석
청춘이 아니었다면 그리 깊게 상처받지도, 그리 대책없이 무너지지도 않았으리. 그렇게 또 다른 꿈을 꾸며 공허해하지도 않았으리. 청춘의 얼굴은 불안정의 얼굴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의 얼굴이다. 김수영의 시처럼 번개처럼 금이간... 찰나에 전부였다 찰나에 전무인.. 현실은 무이고 미래는 시시각각 흔들린다. 불안정은 고통이고, 나약함은 그리움을 깊게 패고, 가난은 사랑을 더 초라하게 한다. 그 진창 속에도 새하얀 꽃이 피니 그의 음악은 그 꽃이었다. |
김광석 (1964.1.22 ~ 1996.1.6)
김광석의 노래들은 80년대와 90년대를 가로지른 심연의 혼돈 속에 자리잡고 있다. 멀리는 저 70년대부터 대학문화의 이름으로 대학가에 복류해 온 통기타의 자유주의 정신이 밑그림을 이루고, 80년대라는 거대한 함성에 대응하는 신서사이저의 음향이 새로운 음악의 집단적 경험을 제련해 나아갈 즈음 그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미지의 무한경쟁으로 치달은 90년대에 이르러 그는 달랑 남은 기타와 하모니카를 두른 몸으로 이미지의 유령들과 외로운 백병전을 전개했다.
따라서 80년대 전반 서울지역 대학의 노래동아리인 '연합 메아리'에서 '새벽', 그리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활동에 이어 그룹 '동물원'의 보컬리스트로 전신했다가 마침내 직업 음악인이 된 그의 어깨에 걸린 노래운동이라는 전력과 모던 포크라는 음악적 과제는 힘겹기 그지없는 화두였다. 80년대의 비합법, 혹은 반합법 공연에서 그의「녹두꽃」과「이 산하에」에 매료된 진보적인 대중들은 그가 김민기와 한돌, 그리고 정태춘으로 아슬아슬하게 명맥을 이어 내려온 '민중의 가객'이 되어 주기를 희망했으며 사랑타령과 탈인간적인 기계적 리듬의 범람에 휩쓸려 버린 비판 정신의 담지자가 되어 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김광석은 전투적인 예술가가 아니었으며 더군다나 모던 포크의 가장 중요한 전제인 싱어송라이터의 요건을 완벽하게 갖추지도 못했다. 그의 대중적 명성을 결정지은 노래 역시 동물원의 데뷔 앨범의 첫머리에 실린 「거리에서」(김창기 작곡)과 그의 솔로 2집을 견인했던「사랑했지만」(한동준 작곡) 같은 풍부한 울림과 짙은 시정을 동반한 '러브 발라드'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는 90년대에 이르러 더 이상 소망스러운 공간이 되지 못하고 힘없이 퇴조해 간 소극장 라이브 콘서트의 문화를 움켜쥐고 댄스 뮤직과 발라드에 밀려 거의 사멸해 가던 모던 포크의 불꽃을 되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김광석의 이름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84년 김민기가 대학가 노래운동의 주역들을 규합하여 만든 합법 음반『노래를 찾는 사람들1』의 '남자들' 목소리의 일원으로서였다. 그러나 그의 비범한 가창력은 그 이후 노래운동의 공연장에서 곧바로 증명되었고(비합법 실황음반 '또 다시 들을 빼앗겨'에 수록된 '이 산하에'같은) 87년 6월항쟁 직후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렸던 노찾사의 첫 번째 공식 공연에서 그는「녹두꽃」으로 가득찬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인 직업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노찾사가 아니라 대학가의 또다른 감수성을 형상화한 그룹인 동물원이었다. 김창기. 유준열 등 재기 넘치는 청년들이 결집한 동물원은 88년의 데뷔 앨범과 그것의 성공을 이어간 이듬해의 두 번째 앨범을 통해 정치적 전복의 감수성이 닿지 못한 또다른 대안 요청의 빈 공간을 채웠다.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거리에서」와「변해 가네」「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혜화동」 같은 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노래는 일상적 구체성과 상업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이미지를 구축하여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던 주류 대중음악의 작은 대안이 된다. 김광석은
이 그룹의 간판 보컬리스트로서 1집의「거리에서」와 2집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통해 대중음악가로서의 카리스마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특히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는 한국 포크 록의 기념비적인 노래를 보컬리스트로서의 김광석의 깊은 시정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곡이다. 동물원 시절의 이 '작은 아름다움'의 노선은 그가 솔로로 전향한 이후의 그의 음악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따라서 80년대를 마감하는 해에 솔로로 데뷔한 뒤의 그의 음악적 과제는 결국 노찾사와 동물원의 음악적 이념을 발전적으로 결합하는 작업이 될 것임은 거의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쉴 새 없는 소극장 공연을 통해 '통기타 정신의 파수꾼'으로서의 트레이드마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그후 그는 모던 포크의 핵심을 향해 신발끈을 조여 맨다. 김민기의 후예들이자 70년대 말의 대학가 노래운동의 숨은 주역들인 한동헌과 한돌의 소박하고 건강한 의식을 되살려 내는 것이었다. 행진곡의 리듬과 과격한 정치선동으로 무장한 저항가의 원심력에 밀려 '소시민적'이라는 딱지를 받고 밀려나 있었던 「나의 노래」와「외사랑」, 그리고「나무」는 김광석에 의해 새로운 옷을 입고 무대에 다시 나타난다. 통기타와 하모니카, 그리고 음유시인적 이미지가 완전히 정착한 것도 이 지점이며 서구 대중음악의 영향 아래 때마침 일기 시작한 '언플러그드' 열풍은 기존의 언더그라운드 이미지에 더욱 빛나는 훈장을 그에게 달아 주었다.
'이등병의 편지' 를 한번 들어보자.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는 뒷동산에 올라서서 고향마을을 보고파하는 이등병의 외로움이 사무치게 다가온다. 그 외로운 이등병이 돌아갈 고향은 도대체 이 세상에 있을까? 인간은 떠난 곳을 그리워하고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지만 그 고향은 기억 속에서 걸러지고 마음 속에서 미화된 마음 속의 고향일 뿐 현실의 고향은 아니다. 그리고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부모는 늙고 친구는 변하고 고향 마을은 모습을 바꾼다. 인정하기 싫지만 자기 마음도 이등병일 때의 마음이 영원하지는 않다. 제대하여 그리운 고향에 돌아간지 삼일이 지나면 그 고향은 이미 이등병 시절에 그리워하던 그곳이 아니며 그저 숨막히는 일상의 공간일 뿐이란 것. 인간은 현재를 동경할 수는 없는 존재이다. 그가 돌아갈 고향은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등병은 그것을 알지도 모른다. 이 노래는 이등병의 외로움을 넘어서서 인간의 풀 길이 없는 외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꽃', '불행아'... 그의 노래, 그리고 그가 불렀을 때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깊이 그 노래가 느껴졌던 곡들은 다 슬픔이 짙게 배어있고 그러면서도 맑은 힘이 있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막연하지만 너무나 찬란하고 커다란 동경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이 구체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이상으로 대체하게 되고, 현실 속에 부대끼다 보면 나중에는 그 이상마저도 저버리고 현실의 요구에 묵묵히 따라가는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풀 길이 없는 슬픔에 연연하면 무엇하랴. 도달할 길 없는 동경은 어린 시절의 헛된 꿈일 뿐 너무나 막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모른척 아닌척 무시해도 삶이란 알 수 없는 신비로 가득차있고 슬픔 또한 기쁨의 다른 얼굴이고 결국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간다. 차라리 울고나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법. 아마도 그의 맑은 힘은 남들보다 더 많이 아파한 사람만이 슬픔의 깊은 바닥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귀한 보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보석의 빛으로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보자. 아직은 자신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동경을 버리지 못하고, 그리하여 유난히 그리움이 많았고 현실과 부딪혀서 아픔이 많았던 한 청년... 그리하여 영원히 동경을 버리지 않은 영원한 청춘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1. 서른 즈음에
2. 거리에서 3. 광야에서 4. 녹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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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인이된 가수지만 우리들의 가슴 한곳을 자리잡고있는 노래와 애절하게 불으는 목소리가 지금도 우리 가슴에..
친구 바쁘신가? 좋은소식 기다림세!
슬프면서도 맑은 그래서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요절하고 없지만 지금도 우리의 가슴에 남아있는 영원한 가객 김광석/글의 내용을 읽다보니 왜 그렇게 젊은 나이에 갔을까하는 못내 아쉬움만 남고/ 새벽(04:20) 회사라서 음악은 들을수 없고 집에가서 들을수 밖에~~~ 좋은 글/음악 감사!!! 다음에도 부탁하네
음악이 오늘 내 맘 같아 고맙다 친구야
눈을 살며시 감고 추억에 마음을 맡기고, 바람부는 바닷가를 거니는 상상하며 음악에 젖어보네.마음에 정화는 눈물이라는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