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431〉
■ 모일 某日 (박목월, 1916~1978)
시인이라는 말은
내 성명 위에 늘 붙은 관사(冠詞)
이 낡은 모자를 쓰고
나는
비 오는 거리로 헤매었다
이것은 전신을 가리기에는
너무나 어줍잖은 것
또한 나만 쳐다보는
어린 것들을 덮기에도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
허나 인간이
평생 마른 옷만 입을까 보냐
다만 두발이 젖지 않는
그것만으로
나는 고맙고 눈물겹다
- 1959년 시집 <난蘭.기타> (신구문화사)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시인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구차할 수밖에 없으므로 먹고사는 일이 고달프며 험난한 삶에 매달리게 됩니다. 우리 주변만 살펴봐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시집을 사는 경우가 드문 것이 현실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되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은, 詩를 전업이 아닌 취미나 부업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지혜로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 詩는 시인의 어려운 삶에 대해서 간결한 문체로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자신을 모델로 하여 쓴 것으로 보입니다.
목월은 비록 시인이 되려는 자신의 꿈을 이뤘고 어딜 가도 머리에 쓴 모자처럼 “시인 아무개”라고 불리는 등 시인이라는 말은 그에게 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자신이 몸 하나를 가리기에도 부족할뿐더러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호해 주기에는 더더욱 연약하고 보잘 것 없음을 자괴하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인생이라는 길목에서 고달프고 가난한 현실을 감내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고맙고 의미 있는 일이라며 자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런 시인들이 있음으로 해서 계절을 계절답게 느낄 수 있기도 하는 등 감성이 메마르지 않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냉정하게 평가하면, 목월은 이 詩를 쓴 1958년 당시에 이미 유명한 시인이었고 홍익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상류층(?) 신분이었으므로 시인으로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Choi.
첫댓글 시인의 애잔한 마음이 잘 담겨있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