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록빛 세상
연초록 신록이 싱그러워지는 때다. 어제 인적 드문 미산령을 넘었다, 낙남 정맥이 진주에서 함안으로 건너는 우뚝한 여항산에 있는 고개가 미산령이다. 보름 전 그 고개를 넘을 때 길섶에는 양지꽃과 제비꽃을 비롯한 야생화들이 지천이었다. 어제는 그런 꽃들이 거의 저물고 구슬붕이와 산괴불주머니 정도 볼 수 있었다. 산벚꽃은 아직 남았으나 활엽수림은 연두색으로 물들었다.
곡우를 일주 앞둔 사월 둘째 일요일이다. 새벽녘 잠깨어 전일 산행 일기를 몇 줄 남기고 산나물을 가렸다. 내가 유일하게 속한 문학 동인에서 단양 일대로 기행을 떠났는데 나는 동행하지 못했다. 월례회도 한동안 나가지 못해 회원들 얼굴을 본 지 오래다. 늦은 오후에 거제로 복귀해야 하기에 근교 산행은 나서지 않았다. 아침나절 집 근처 산책 정도로 바깥에 나가볼까 생각했다.
새벽에 가린 머위와 둥굴레 순을 한 봉지 담아 아파트 뜰을 내려섰다. 같은 단지에 사는 초등 친구에게 보냈다. 아파트단지 벚꽃은 진작 졌고 새순 새잎이 파릇했다. 영산홍은 붉게 피어났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니 미끈하게 자란 메타스퀘이아 가로수가 연초록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창원 시내에서 내가 사는 동네와 사격장 오르는 길과 충혼탑 사거리 일대가 메테스퀘이아 거리다.
남산교회를 지나 반송공원 북사면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길섶에는 이른 봄 피어난 산수유 꽃은 저문 지 오래다. 수분이 된 꽃잎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맺으려는 기미가 보였다. 산수유에 뒤이어 피어난 벚꽃도 모두 저물었다. 간간이 보이는 겹벚꽃이 엷은 자주색으로 피어나 눈길을 끌었다. 사이사이 배롱나무도 심겨져 있는데 추위에 약해서인지 잎눈조차 틀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창원천 건너는 창이대로다. 노변에 가로수로 심겨진 은행나무는 연초록 잎이 돋고 있었다. 느티나무도 줄 지어 자라는데 은행나무 잎보다 더 신록이었다. 아까 스쳐 지난 메타스퀘이이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잎이 돋는 사월 중하순 가로수는 눈이 부셨다. 아스팔트 거리와 콘크리트 건물이 밀집된 도심에도 싱그러운 잎을 볼 수 있었다. 꽃 잔치가 끝난 계절이 보낸 은총이었다.
고개를 돌려 반송공원 숲을 쳐다봤다. 오리나무는 잎이 돋아 무성했다. 때죽나무와 소사나무도 마찬가지였다. 높이 자란 졸참나무도 잎이 돋아났다. 아카시나무도 섞여 자라는데 잎이 가장 늦게 피었다. 이제 잎이 돋는 기미가 보였다. 아카시는 잎이 피면서 꽃도 연이어 피어난다. 예전엔 오월 중순에 아카시 꽃이 피었는데 근래 계절감이 당겨져 오월 초면 은물결로 향기를 뿜어댄다.
산책로 길섶 응달 바닥엔 광대나물과 비슷한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광대나물은 이른 봄 피었다가 저문 때다. 무슨 꽃일까 궁금했는데 야생화 전문가에서 사진을 보냈더니 ‘긴병풀꽃’이라는 회신이 왔다. 처음 들어본 꽃 이름이었다. 괴불주머니도 있었다. 반지동 대동아파트까지 가지 않고 북사면 언덕 숲으로 올랐다. 누군가 텃밭을 개간한 자리에 머위를 비롯한 푸성귀들이 자랐다.
도심 공원에서 숲이 우거진 흙바닥을 걸을 수 있음은 축복이었다. 아파트와 인접한 남사면 산책로와 달리 북사면 산책로는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숲길을 쉬엄쉬엄 걸어 산등선으로 올랐다. 산책로에 쉼터 의자에 결가부좌로 앉아 명상에 잠겨 보았다. 휴일을 맞아 산책객을 나선 중년들이 더러 보였다. 나는 그간 인적 없는 숲길에 익숙한데 사람 사는 동네에 산다는 확인을 받았다.
반송공원 정상은 운동기구에 매달려 몸을 푸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나는 창원대학과 도청 일대를 바라봤다. 시선을 명곡동과 봉곡동으로도 보냈다 봉림산과 정병산에는 신록이 물들어 가고 있었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 포장된 산책로 내려섰다. 개나리가 저문 지는 오래고 황매화가 무더기 피어 눈길을 끌었다. 도심의 꽃과 잎도 때맞추어 순차서열로 피고 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19.04.14
![](https://t1.daumcdn.net/cfile/cafe/99A9B44F5CB2980C0E)
![](https://t1.daumcdn.net/cfile/cafe/9936E9465CB298181C)
![](https://t1.daumcdn.net/cfile/cafe/99715F455CB298261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