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진미 | 새로운 코미디에 한표! 여성주의적 결말에 한표! | ★★★ | |
이용철 | 모르니 잃어버리고, 잃어봐야 알게 된다 | ★★★☆ |
정한석 기자(씨네21) <집 나온 남자들>은 이하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첫 번째 장편영화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집 나온 남자들>은 현실세계의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무언가 미끄러지듯 기묘한 캐릭터와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징을 전작과 공유하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전작이 냉소적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시종일관 명랑해 보인다는 데 있을 것이다.
<집 나온 남자들>의 호소력이 떨어진다면 그건 영화가 전체적으로 좀 성기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종종 불필요한 상황을 설정하거나 불안정한 리듬을 타는 경우가 있다. 이 영화의 호소력은 그러므로 어떤 짜임새나 정교함에 있는 것 같지 않다. 기이한 감성과 흥이 배어 있는 장면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좋은 감상법으로 유효하다. 한때 아내가 일했다는 술집에서 과거에는 유명한 점쟁이였으나 지금은 술집 여주인이 된 여자와 두 남자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바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 느껴지는, 무료하고 허탈하지만 어딘지 원인 모를 친근감, 아내가 일했다는 피라미드 회사에서 벌어진 난장의 코미디 퍼포먼스 한판으로 성취해내는 왁자지껄한 대소동과 그 이후의 씁쓸함. 그러니까 정교함인가, 기묘함인가, 그게 <집 나온 남자들>을 판단하는 선택의 기준이 될 것 같다.
김윤구 기자(연합뉴스) 영화 '집 나온 남자들'은 티격태격하는 지진희-양익준 콤비의 호흡이 잘 어우러진 유쾌한 코미디다.
설정이 독특하며 재치 있는 대사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집 나간 아내의 비밀을 밝혀가며 아내가 있는 곳에 한발씩 다가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2006년 문소리, 지진희 주연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이하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지난해 '똥파리'로 각본, 감독, 주연을 한꺼번에 소화하며 국내외 영화제를 휩쓴 양익준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시선이 쏠린다. 주로 단편영화에 출연했던 양익준은 상업영화에서 주연급 캐릭터를 꿰차면서 배우로서 확실한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 '대장금'의 종사관 역할처럼 진지하고 믿음직한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지진희의 코믹 연기도 자연스럽고 이문식도 '제비' 캐릭터를 잘 살렸다.
|
|
|
|
|
|
|
유지나 | 소통 장애를 들여다보는 훔쳐보기 재미? 그것만은 아닐 거야 | ★★★☆ | |
이용철 | 사랑하기에 사람인 걸까, 사람이라서 사랑하는 걸까 | ★★★☆ | |
박평식 | 생생해요, 배두나만의 공기! | ★★★ | |
김봉석 | 인간은, 타는 쓰레기 | ★★★ | |
김도훈 | 어쨌거나 배두나는 불멸의 청춘을 스크린에 새겼다 | ★★ |
이화정 기자(씨네21) 인간의 고독에 대한 질문이라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겐 뗄 수 없는 숙제다. 그가 그 주제를 건네는 방식은 독특하다. <원더풀 라이프>(2001)에서처럼 이승과 저승 사이 림보의 인물을 그린다거나, <아무도 모른다>(2004)에서처럼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된 아이들을 그리는 식이다. 솔깃한 소재인 건 확실하지만, 아이디어에 국한되지 않는 철학적 사고로 그의 영화는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혼란의 시작은 노조미가 감정을 가지면서부터다. 어떤 용도로서의 자신이 아닌, 욕망을 가지면서 노조미는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고뇌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혼란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게 표현된다. CG는 거의 배제한 수작업. 마크 리 핑빙의 수려한 카메라가 뒷받침된 매 장면은 한편의 시같이 섬세하게 연결된다. 인형으로서 하는 ‘가짜’ 섹스가 아닌, 노조미가 실제의 전율을 느끼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기억할 만한 장면이다.
그럼에도 <공기인형>은 고레에다의 필모그래피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는 못한다. 노조미의 고뇌에 집중하기에 고레에다는 너무 많은 예를 찾아 헤맸다. 짧은 러닝타임에 굳이 거식증에 걸린 여자와 늙는 걸 두려워하는 노처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빠, 오타쿠 청년을 열거하지 않았더라도 노조미로 대변되는 지독한 고뇌는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라제기 기자(한국일보) 이토록 처절한 고독이 또 있을까. 누군가 곁에 있어도 여전히 그 누군가가 그리운 건 인간의 숙명인가. 끈적한 유대대신 쾌적한 단절을 택한 현대 도시인의 고독은 어쩔 수 없는 업보인가. 일본영화 '공기 인형'은 고독에 대한 영화이고, 사랑에 대한 탁월한 변주이며 종국엔 홀로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 대한 서글픈 만가다. 저린 마음 한 구석으로 찬 바람이 휑하니 불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는 노조미의, 인형인 점을 빼고 딱히 특별하다 할 수 없는 인생 여정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변주하고 반추한다. 처참하게 외로우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그 외로움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 누구를 대신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결국 이기적으로 다가설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아이러니를 전한다. 각자 용감한 혼자이지만 결국 홀로 눈물짓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처연하다.
오랜 우화를 대신한 듯한 이 영화의 주제는 백발의 노인이 읊조리는 대사에 스며있다. "요새는 다들 (가슴이) 텅 비어있어. 특히 이런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생명은 자기 혼자만으로 완결 될 수 없게 만들어졌다… 생명은 그 안에 결여를 가지고 있다…"
무표정한 인형의 표정으로 시작해 천변만화의 감정까지 껴안는 배두나의 연기가 탁월하다. 데뷔작 '환상의 빛'(1995)과 2004년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아무도 모른다'로 이미 뼈에 사무치는 고독을 표현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의 간판 감독임을 증명해낸다. 중년의 이 거장은 "인간이 지닌 수 많은 감정의 폭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공기인형이 삶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겪는 모습을 그렸기에 단순히 슬픈 영화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단순히 슬프기보다 입체적이고 복합적으로 가슴을 치는 영화다. 그래서 얄밉도록 마음이 끌린다.
지난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진출작이다. 히로카즈에 호감이 생겼다면 '원더풀 라이프'(1998)와 '걸어도 걸어도'(2008)도 찾아보시길.
김윤구 기자(연합뉴스) 로봇이 인간의 마음을 느낀다는 설정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바이센테니얼맨' 등 영화나 소설에서 여러 차례 다뤄진 적이 있어 새롭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마음을 느끼는 주체가 공기를 불어넣고 뺄 수 있는 인형이란 점이 독특하다. 노조미의 팔이 찢겨 몸속의 공기가 빠졌을 때 준이치가 공기구멍을 찾아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영화에 나오는 '빈 곳을 타인을 통해 채워야 한다'는 시 구절처럼 인간의 본질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서 성욕 해소용 공기인형을 사서 옛 여자친구의 이름을 붙인 노조미의 주인은 애처로운 인간상이다. 진지하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용기나 의욕도 없이 공기인형을 대상으로 넋두리하고 성욕을 푸는 그의 모습은 한없이 처량하다.
공기인형이 감정을 느끼고 세상에 나와 사람들을 만나며 죽음을 맞는 과정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주인과 있을 때는 눈동자도 거의 깜빡이지 않으며 인형 같다가 바깥에 나가면 세상에 환희하고 갈등하기도 하는 사람. 과장없이 섬세한 감정을 표현한 배두나의 연기는 이 영화를 지배하는 힘이다.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에 대해 깊이 들여다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도 돋보인다.
|
|
|
|
|
|
박평식 | 살인자가 심심하면 구경꾼은 돌아눕지 | ★☆ |
김도훈 기자(씨네21) <반가운 살인자>는 하이브리드 장르영화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서미애의 동명 단편소설은 (영화에서 유오성이 연기하는) 백수가 주인공인 일종의 추리스릴러였다. 단편을 장편으로 늘리기 위해 감독 김동욱은 자기 일에 도무지 매력이라곤 느끼지 못하는 양아치 형사를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끌어들였다. 형사가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하면서 영화는 스릴러에 코미디적 요소를 집어넣으려 애쓴다.
<반가운 살인자>는 하이브리드 장르영화라는 목표 때문에 종종 제 발에 걸려 넘어진다. 코미디를 위해 억지로 만들어넣은 경찰 캐릭터를 제거하고 백수 영석을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영화로 묵직하게 돌진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영화를 보다가 저 경찰 주인공부터 먼저 좀 처단하라고 살인마를 향해 기도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
|
|
|
|
|
|
이용철 | 로메로의 오리지널에 공포와 액션을 더했다 | ★★★ | |
김도훈 | 조지 A. 로메로도 박수를 칠 리메이크 | ★★★☆ |
김도훈 기자(씨네21) <크레이지>는 좀비 장르의 거장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분노의 대결투>(The Crazies, 1973)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런데 <분노의 대결투>가 로메로의 가장 좋은 영화였던가? 글쎄. 컬트팬이 꽤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로메로의 대표작으로 거론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요즘 리메이크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영화다. 비밀스런 공권력, 치명적인 바이러스,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좀비 등 여기에는 21세기 호러 트렌드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조지 A. 로메로 자신이 직접 리메이크 제작을 진두지휘한 이유도 그 때문일 거다.
문제는 감독 브렉 아이즈너다. 그는 월트 디즈니 전 회장 마이클 아이즈너의 아들이다. 전작이 2005년 개봉한 모험영화 <사하라>라는 게 못 미더운 장르팬도 꽤 있을 거다. 다만 세상의 모든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건 아니고, 제이슨 라이트먼처럼 아버지의 재능을 뛰어넘는 자식도 종종 있다. 게다가 아이즈너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1979년작 <브루드>(Brood)를 리메이크할 예정이다. 디즈니 회장의 아들이기 이전에 호러 장르를 아끼는 감독이란 소리다. 아이즈너의 장르적 감수성은 연속되는 스릴러 시퀀스들을 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오래된 이층집, 자동 세차장 등 일상적인 공간을 이용한 영화의 스릴러 시퀀스들은 웨스 크레이븐 같은 장르 대가들에게서 제대로 배운(혹은 훌륭하게 베낀) 티가 난다. <크레이지>는 스릴러 시퀀스들을 연속적으로 밀어붙이며 관객이 손톱을 물어뜯게 만드는 재주로 가득하다.
<크레이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스티븐 킹의 작품을 좋아하는 장르팬들에게도 꽤 재미있을 법한 영화다. 이건 미치광이 좀비들이 등장하는 로메로적 세계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바이러스와 음모를 엮어내는 스티븐 킹(특히 <셀>과 <스탠드>)적인 세계이기도 하다. 특히 방독면을 쓴 군부대가 마을 사람들을 총살하고 불사르는 장면을 무심하게 원경으로 비추는 장면은 할리우드영화답지 않게, 혹은 아우슈비츠 학살극답게 섬뜩하다. <크레이지>는 클래식에 대한 제대로 된 경배인 동시에 드물게 원전을 뛰어넘는 리메이크다. 프랭크 다라본트의 <미스트>나 (역시 로메로의 고전을 리메이크한)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에도 비견할 만하다.
|
|
|
|
|
|
|
장영엽 기자(씨네21) 최근 로맨틱코미디의 경향 중 하나가 바로 ‘농촌 로맨스’다. 지난해 <프로포즈>부터 올해 초 <들어는 봤니? 모건부부>까지, 시골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코미디가 종종 눈에 띈다. <프로포즈 데이>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도시의 새침한 처녀가 털털하고도 퉁명스러운 시골 총각을 만나 티격태격하다가 정이 들고, 결국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솔직히 이야기상으로 새로울 건 없다. 그러나 이런 영화의 관건은 주변 인물과 자잘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아기자기한 재미에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프로포즈>의 성공으로 알고 있다. 더불어, 실패하면 ‘모건부부’처럼 된다는 것도.
그러나 이 영화의 확실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주연배우들의 매력과 로케이션의 아름다움만큼은 거부할 수 없을 것 같다. 진흙탕을 구르고 소똥을 밟는 등 온몸을 던진 에이미 애덤스의 연기는 샌드라 불럭의 뒤를 이을 로맨틱코미디 주자로서 적합해 보이고, 매튜 구드의 구수한 아일랜드 사투리는 그의 청신한 외모와 대비되며 묘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로케이션. 색색깔의 꽃이 만개한 아일랜드 시골 농장과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코티지의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풍경에 프러포즈하고 싶을 정도다.
|
|
|
|
|
|
이용철 | 특이한 구석이 여럿인 프렌치 뮤지컬 | ★★★★ | |
문석 | 랄랄라, 21세기판 <쉘부르의 우산> | ★★★☆ |
주성철 기자(씨네21) 지난 2008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사랑의 찬가>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던 <러브 송>은 독특한 스타일의 뮤지컬영화다. 인물들은 노래와 춤을 추겠다는 특별한 준비없이 거리를 걷다 껴안고 키스하고 사랑을 노래한다. 그래서 어쩌면 정형화된 뮤지컬이라기보다 그저 색다른 연기방식의 차용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대나 주변의 환경이 뮤지컬의 무대로 바뀌는 게 아니라 오직 주인공들만 그렇게 자유분방한 몸짓으로 ‘내 소중한 천사’ ‘너의 향기’ ‘할렐루야’ ‘죽음의 노래가 춤을 추네’라며 노래한다. 말하자면 뮤지컬이라는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의 희로애락과 상대방을 향한 진실된 마음 그 자체가 중요하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의 가사를 생명력있게 만드는 파리라는 공간이다. 과연 이런 방식의 뮤지컬이 가능한 도시가 파리 말고 또 있을까. 더구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2003)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루이스 가렐에게 온전히 포커스가 맞춰진 이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멋대로 슬픔과 분노, 낙담 같은 감정을 표정으로 표현하고 쉽게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마저 매력적인 그는 <몽상가들>에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흰색 천과 시트 위에 상반신을 살짝 드러내고 누운 그 모습이야말로 이제 루이스 가렐을 호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된 것 같다.
<러브 송>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또 한번 성장하려는 이스마엘 그 자신의 이야기다. 그는 끊임없이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 거야’라며 환상과 싸운다. 사람들은 이스마엘을 계속 하나의 시선으로 묶어두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현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친다. 그렇게 힘든 감정을 껴안은 채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는 이스마엘의 모습은 영화의 음악과 너무나도 깊이 한몸을 이룬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뮤지컬의 노래는 영화 전체를 규정하는 형식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세상의 시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부여한 그들의 습성이다. <러브 송>의 스타일이 지닌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송광호 기자(연합뉴스) 영화 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 출신인 크리스토프 오노레가 연출한 '러브 송'은 뮤지컬 영화라 말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상영시간 100분 동안 음악감독 알렉스 보팽이 만든 14곡이 줄기차게 흐른다.
영화는 이성 간의 사랑뿐 아니라 동성 간의 사랑, 동생의 남자를 사랑하는 언니의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담는 데 주력한다. 사랑의 달콤함보다는 씁쓸함 쪽에 무게중심이 쏠린다.
햇살이 비치는 장면이 거의 없다. 그 대신 파리 시내를 적시는 빛줄기, 온통 잿빛인 하늘, 그리고 깊고 어두운 밤을 배경 삼은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 같은 우울한 화면을 뚫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젊은 배우로 쑥쑥 성장하는 루이스 가렐의 매력이 빛을 발한다.
줄리가 동성애나 삼각관계에 대해 거침없이 어머니에게 말하는 장면이나 죽은 줄리를 클로즈업으로 조명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러브 송'은 '파리에서','아름다운 연인들'과 함께 오노레 감독의 '파리 3부작'으로 평가받는다. 2007년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
|
|
|
|
|
|
정한석 기자(씨네21) <데드라인>은 공포영화다. 공포영화에서 시나리오작가 한 사람이, 그것도 과거의 잊지 못할 상처를 지닌 누군가가 오래된 기운이 스며 있는 집에 들어가 머문다. 그렇다면 이제 방향은 좀더 분명해진다. 그 집은 어떤 집일까. 대개 ‘유령 들린 집’이다. 공포영화의 오래된 불문율이기도 하며 <데드라인> 역시 그렇다. 주인공 앨리스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뭔가 스산한 기운을 느낀다. 전에 이 집에 살았으나 비운의 운명을 맞은 루시와 데이빗 부부의 사건이 유령 들린 집의 원인이다. 앨리스가 그들이 찍어놓은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앨리스의 놀라움은 더 크다. 그들의 불행이 그녀의 불행과도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다. 루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심각한 의처증 증세를 보인 데이빗. 앨리스는 같은 곤경에 처한 적이 있다. 의심이 병적으로 심했던 남자친구 벤 때문에 앨리스는 유산을 한 경험이 있다. 앨리스는 루시와 데이빗의 이야기에 집착한다.
<데드라인>의 구도는 비디오테이프 안에 담겨진, 서서히 일촉즉발로 전개되는 루시와 데이빗의 상황과 그걸 보는 앨리스의 두려움, 이렇게 두 종류의 분위기로 흘러간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 그러나 사연으로 친다면 루시와 앨리스는 거의 같은 인물이다. <데드라인>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의 출현이라는 공포영화의 ‘도플갱어’ 법칙을 반복하는 사연이라는 쪽으로 풀어낸다. 이 점이 기발하다. 앨리스는 점점 더 루시에 동화되어간다. 이런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무시무시하고 끔찍하다. <데드라인>은 장르영화의 전통적인 규약들을 영리하게 잘 매설한 것 같다. 그런데 잘 설치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건 규칙이 아니라 효과의 차원이다. 이야기의 설정 방식은 틀이 잡혀 있는데 공포의 효과는 시종일관 1차원적이다. 끼익거리는 문소리, 그다지 홀리지 않을 것 같은 그림자의 둔한 움직임 등에 영화의 공포 효과를 상당수 의탁한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음악이 영문 모르게 깔려 있다. 2009년 12월20일 32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여배우 브리타니 머피의 주연작이다.
|
|
|
|
|
|
이주현 | 안일한 설정+안전한 문법=씁쓸하구만 | ★★ | |
박평식 | 로마에서 노망들다 | ★ |
이주현 기자(씨네21) 로마에 가면 사랑의 분수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볼 일이다. <로마에서 생긴 일>은 사람들이 사랑의 분수를 향해 소원을 빌 때, 그 소원은 휘발되지 않고 동전에 고스란히 담기며, 동전 주인의 사랑은 분수 바닥에 가라앉은 동전의 운명과 함께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동전을 줍는 사람은 동전 주인의 구애를 받게 된다. 허술한 듯 보이는 설정이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동전의 주인공들인 소시지 재벌, 거리의 마술사, 왕자병 모델, 길거리 화가는 베스와 닉의 로맨스에 끼어들어 사랑의 훼방꾼으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이처럼 <로마에서 생긴 일>은 캐릭터들의 상호작용이 재미를 빚어내는 로맨틱코미디다.
다양한 조연들에 비해 주인공 캐릭터는 전형적인 편이다. 다만 괜찮은 배우들이 캐릭터의 빈곳을 보충한다. 베스 역은 미국 드라마 <베로니카 마스>에서 똑 부러지는 연기로 인기를 얻은 크리스틴 벨이 맡았다. 베스를 연기하는 크리스틴 벨을 보고 있으면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라 제시카 파커가 떠오른다. 사랑이라는 풀리지 않는 숙제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꽤 사랑스럽다는 소리다. 닉 역의 조시 더하멜은 훈훈한 외모에 어이없는 몸개그로 전에 볼 수 없었던 귀여운 모습을 선보인다. 제작자로, 감독으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작은 거인’ 대니 드 비토도 소시지 재벌 역을 맡아 영화에 재미를 더한다.
문제는 개성있는 조연 캐릭터들의 비중을 늘리는 바람에 정작 극의 중심에 놓여야 할 베스와 닉의 로맨스가 싱겁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이야기와 캐릭터를 넓게 펼친 것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돼버렸다. 로맨틱코미디로서 사랑의 단맛과 쓴맛을 부각하지 못한 것도 좀 아쉽다. 두 주인공들의 로맨스에 좀더 힘을 실었으면 어땠을까.
송광호 기자(연합뉴스) 영화 '로마에서 생긴 일'은 사랑을 이루게 해 달라며 분수에 던진 동전들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다.
장르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된 낡은 소재로, 이런 진부함을 상쇄할 만한 독창성이나 매력이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다. 남녀 주인공이 치고받는 대사의 감칠맛은 부족하고, 주인공들의 연기 수준도 뛰어나지는 않다.
그나마 베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50대 재벌 '알'을 연기한 대니 드비토의 연기는 볼만하다. 또 거리의 마술가, 화가, 왕자병 모델 등 '못난이 3인방'의 황당한 프러포즈 방식 등은 소소한 웃음을 자아낸다.
데어 데빌(2003), '고스트 라이더'(2007)를 연출한 마크 스티븐 존슨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제목이 '로마에서 생긴 일'이지만 로마가 나오는 장면은 별로 없다.
|
|
|
|
|
|
|
김도훈 | 정신병은 광기가 아니라 병일 뿐이다 | ★★★☆ |
김도훈 기자(씨네21)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정신병에 관대하지 못하다. 정신과 상담 이력만으로 취업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정신병을 앓는 환자들이 불쑥 찾아온 카메라를 반길 이유는 전혀 없다. <멘탈>의 무대가 일반적인 정신병동이 아닌 코랄 오카야마 정신 건강 상담소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코랄 아카야마 병원은 대안적인 병원이다. 진료의 야마모토 마사토모 박사는 일본 정신학계에서는 꽤 이름난 혁명가로, 일본 정신과 병동의 자물쇠 없애기 운동을 펼친 적도 있다. “자물쇠는 환자가 아니라 의사와 직원을 위한 것”을 모토로 말이다.
<멘탈>은 담담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단 3일간 촬영을 허락한 환자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환자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병원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수줍게 말한다. “남편이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이혼하겠다고 해서 그냥 살았습니다.” 이게 바로 정신질환자를 병자가 아니라 사회의 수치로 여기고 꼭꼭 숨겨두려는 일본의 현재다. 그리고 한국의 현재다. 2009년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정신장애인의 대다수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장기간 강제 수용된다. 정신병원은 돈벌이를 위해 환자의 대부분을 강제 입원시키고, 가족과 사회 역시 그들을 떠맡길 거부한다.
<멘탈>은 정신장애인을 배격하는 사회를 향해 강력하게 정치적 주장을 부르짖지 않는다. 대부분의 메시지는 정신장애인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대사 속에 숨어 있다. “현재 생활보호 대상자는 약값을 따로 내지 않아요. 근데 이번에 10%가 환자 부담이 된다는 말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약을 먹을 수가 없죠. 고이즈미 총리 덕분이죠.” 이건 복지국가를 버리고 신자유주의에 휘말려든 일본의 현재다. “√9(루트 9)는 ±3. +3도 맞다. -3도 맞다. 다른 사고방식. 다른 의견일지라도. 양쪽 다 맞는 것도 있다.” 이건 정신장애인이 정상인에게 되묻는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 제기다.
조용하게 가슴을 뒤흔드는 <멘탈>은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워낭소리>와 함께 PIFF 메세나상을 받았고, 두바이·홍콩·마이애미국제영화제에서도 수상했다. 일본에서는 장기 상영을 거쳐 제작후기와 출연자 대담이 실린 책 <정신병과 모자이크 터부의 세계에 카메라를 향하다>가 발행됐다. 출연한 몇명의 환자는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영화는 그들에게 헌정됐다.
김윤구 기자(연합뉴스) 다큐멘터리영화인 '멘탈'은 야마모토 의사의 환자 상담과 치료, 간호사 교육, 환자로 가득 찬 대기실, 환자가 집에서 생활하는 것을 돕는 가사도우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정신질환의 문제점을 묘사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아 감동을 준다.
환자들이 거부한 탓에 오랜 시간을 기다린 소다 카즈히로 감독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촬영한 영상은 생생하다.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의 상담 치료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영화라 내레이션은 커녕 배경음악도 없다.
소다 감독은 전작인 '선거'에 이어 2번째 '인간관찰 영화'라는 이름을 내건 그대로 현실을 연출하지 않고 가감 없이 담아내려 했다.
이 영화는 2008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워낭소리'와 함께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인 피프메세나상을 탔다
PS. 이번주엔 밀렸던 로맨틱 코미디들이 쫙 개봉하는데, 그닥 평은 안좋네요. 그나마 간만에 나온 뮤지컬 <러브송>이 살짝 끌리긴한데... ^^*
개인적으론 <공기인형>외, <멘탈>이란 다큐가 궁금하네요.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워낭소리>와 함께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다는것도 그렇지만, 정신병에 대한 다큐란게 참 궁금한듯~ ^^*
첫댓글 반가운 살인자도 볼만은 하던데...조쉬 두하멜 땜에 로마에서 생긴일도 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