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비록 작심삼일이라도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이렇게 꿈을 정하고, 각오를 새롭게 해서 행동하는 것은 좋지만,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의 우선순위, 곧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분별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으면, 우왕좌왕 뛰어만 다니다가 끝이 납니다. 이 민족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도 우선순위를 잘못 매겨서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성도들조차도 삶의 우선순위를 뒤집어서 기도하고, 생활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신앙이 마치 거래인 것처럼 "하나님 이거 해 주시면, 저도 저거 할께요"라고 얼마나 많이 기도합니까? 인생의 실패와 성공은 그 사람의 "능력"보다는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온전한 성도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과 삶의 우선순위는 어떤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 먼저
"하나님 먼저",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믿음의 증거"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 먼저"입니다. 불신자들처럼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결코 삶의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 먼저"의 삶을 사는 성도는 바나바처럼 모든 것을 팔아 하나님께 드립니다(행 4:36-37). 또한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삶과 목숨보다도 하나님의 일을 우선합니다(행 20:24). 따라서 우리가 생계를 염려하는 것은 마음이 둘로 나누어져 있다는 불신앙의 표시인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는데, 무엇을 염려합니까?(시 121:3-4) 하나님 아버지는 나에게 필요한 것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시며,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하십니다(마 6:31-32).
염려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요,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로 정하고 염려하면 그것도 얻기 힘들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은 덤으로 풍성하게 받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지 모이면 먼저 예배드리고, 어느 곳에 가든지 기도부터 하고,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와 교회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물질 등을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다시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언제부터인가 쌀 한 톨이라도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버스에 타서도 기도하는 모습이 우리 주위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익명의 종교인이 아니라, "하나님 먼저"의 삶을 사는 당당한 예수쟁이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둘째, 교회 먼저
하나님 먼저의 신앙은 당연히 "교회 먼저"의 삶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집이자, 예수님의 몸이요,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내 일보다 교회 일을 우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환경이 칠흑같이 어둡고, 어려울지라도 교회 일을 우선하는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학개서의 성전 건축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생계 문제로 성전 건축을 중단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우선하지 않자 하나님은 곧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학 1:9)고 책망하십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너무 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교회 일을 우선하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삶이요, 축복의 지름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형편이 나아지고, 아이들이 다 큰 후에 봉사하겠다'고 말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상급과 축복은 보지 못하고, 이 땅의 것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의 신앙을 성숙시키고, 바른 길로 인도하며,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중요한 곳입니다(마 16:18). 따라서 교회 먼저의 신앙은 나를 성장시키고,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며, 사단에게 승리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셋째, 너 먼저
"너 먼저"의 신앙은 "그와 같으니"의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사랑만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70년대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한 광고 문구는 훈훈한 인정이 살아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 시대는 원수도 이웃도 없고, 내 이익에 필요한가 아닌가만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부와 명예와 권력에 따라 수단으로 판단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초로 세워진 "기독교"의 반대말이 유교나 불교가 아니라, "이기주의"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자, 모두가 잘 되는 길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3-4)고 권면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하는데, 어떻게 하든 나보다 남을 "낮게" 만들려고 합니다. 참된 성도의 삶은 비록 지금의 내 형편이 어려워도,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이웃에게 더 나눠주고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이삭이 생명과 같은 우물을 이웃에게 양보할 때, 하나님은 그를 축복해 주셨습니다(창 26:24). 이처럼 우리가 남을 낫게 여기면, 하나님은 우리를 높여 주시고,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넷째, 그리고 나
"하나님, 교회, 남, 그리고 나"는 삶의 우선순위이지, 그 중요성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기까지 구원하신 존재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 거룩한 자존감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과 가장들이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으로서 공부 좀 못한다고, 가장으로서 돈 좀 못 번다고 자신을 학대하고,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 것을 위해 지음받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기 위해 지음받은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사 43:7).
삶의 우선순위는 행복의 길잡이이자,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먼저, 교회 먼저, 너 먼저 그리고 나의 삶을 살 때, 우리는 아름다운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먼저, 교회 먼저, 너 먼저, 그리고 나"의 삶의 우선순위가 올 한 해 나의 삶 속에서 꼭 실천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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