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1학년 한수연입니다!
다들 숲터에서 들살이 다녀온 거 알고계시죠? 벌써 들살이를 다녀온 지 일주일이 흘러 저희는 들살이 마무리 작업을 하며 2학기 생활에 적응 중이랍니다:)
9월 4일부터 9월 11일까지 7박 8일 간의 들살이 기간 동안 써온 저의 들살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 들살이는 하나의 주제로 함께 활동하는 모둠 들살이, 각자의 주제로 활동하는 개인 들살이, 그리고 들살이를 함께 마무리하며 시간을 보내는 전체 들살이. 이렇게 여러 형태로 들살이 기간을 알차게 보냈답니다.
그럼 저의 들살이 이야기를 느끼러 가보자요~
모둠 들살이 목적글
올해 1학기부터 ‘분류’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한 번 분류의 필터를 끼고 보기 시작하면 의식하지 않아도 구분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류라는 구분 없이 모두가 즐겁게,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
이번에 모둠 들살이에서 할 밴드는 대부분 밴드에서 사용하는 보컬, 베이스, 드럼, 건반 등으로 합주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합이 맞지 않아 보이고,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악기들이 구분되지 않고 모여 합주를 한다는 게 흥미롭다.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귀여울 것 같다.
- 09/04 (월)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무궁화호에서는 챙겨온 책도 좀 읽고, 전날 부족했던 잠도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서울역에서 무궁화호를 타니까 6시간 만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부산역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서 간단하게 짐 정리를 하고 부산에서의 첫 합주를 맞추러 해운대로 갔는데 역시나 사람들이 많고 너무 더웠다. 여름 끝나가는 줄 알았는데... 더위와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은 쪽으로 이동해서 자리를 잡고 합주를 했다.
디즈니메들리 합주였는데 사실 내 노래 부르느라 전체적으로 잘 듣진 못했다. 집에서는 높은음 안 올라가서 빽빽 소리 지르는 내가 보컬을 하다니...
들살이 오기 전에 맞춰서 산 손수건을 하나씩 매달고 합주하는데, 바다를 배경으로 손수건 장착하고 합주하니까 꽤 귀여웠다. 구도도 이리저리 바꾸면서 열심히 찍었다.
모둠 계획을 세우면서 한 장소에서 2시간씩 있으면 정말 2시간 동안 합주만 하는 건지, 장소 둘러보고 합주하는 건지 예상이 안 됐는데 생각보다 1시간 정도의 합주는 시간이 빨리 갔다.
저녁을 먹고 아침밥 재료를 장보고 들어왔다. 숙소는 게스트하우스 6인실인데 오늘, 내일은 우리끼리만 쓸 수 있다고 한다. 3일차부터 이렇게 좁은 방에 모르는 사람도 한 명 더 추가된다고 하니까 약간 긴장된다.
- 09/05 (화)
어제 11시에 잠들기 전에 오늘 아침 7시 30분으로 알람을 맞춰뒀었는데 7시에 눈이 떠졌다. 8시간 동안 한 번도 안 깨고 꿀잠 잤다. 챙겨온 책도 읽다가 준비하고 내려갔더니 솔이가 빵을 구워놓고 있었다. 솔이가 구운 빵에 잼을 발라 먹고 9시부터 본격적으로 들살이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삼락생태공원이었다. 사진에는 꽃도 있었는데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별거 없었고 해가 쨍쨍이었다. 어디서 찍을지 돌아다니다가 채원이언니가 발견한 강 바로 앞에 나무 밑에서 찍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예뻤다.
야외 테이블로 장소를 이동해서 몇 번 더 찍었는데 장소 옮기는 그새 악보 뒷부분을 잃어버려서 강제로 노래를 외우게 됐다...
땡볕에서 돌아다니고 합주를 맞추다 보니 금방 배가 고파져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두 번째 장소는 흰여울문화마을이었다. 흰여울문화마을에서는 피아노 계단에 앉아서 합주도 하고, 터널 안에 핸드폰을 새워두고 합주를 하기도 했다.
들살이 오기 전에는 그냥 결과물로 제일 만만한 영상 찍는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부터 오늘까지 찍은 영상들이 다 너무 예뻐서 결과물이 기대된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고 땡볕에서 합주를 맞추다 보니 힘들어서 근처 카페에 가기로 하고 카페를 찾는데 저렴하고 바다도 잘 보이는 카페를 찾아서 행복했다. 들살이 주제가 합주이긴 하지만 정말 밥→합주→밥→합주의 연속인 것 같다.
방학에 합주 연습할 때는 진짜 이걸 부산 가서 할 수 있나, 이랬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사람들이 관심을 안 주는 게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 09/06 (수)
오늘도 7시쯤 눈이 떠져서 챙겨온 책을 조금 읽다가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으로는 현욱오빠랑 솔이가 끓여준 누룽지를 아주 든든하게 먹었다.
오늘의 첫 일정은 몰운대였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면서 중간중간 자리를 잡고 합주를 했다. 한옥 앞에서, 나무 그늘 아래서, 전망대에 올라가서도 합주를 했다. 생각보다 전망대까지 가팔랐지만 영상도 그만큼 예뻤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왔는데도 걷고... 합주를 하다 보니 배가 고파져서 빠르게 내려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도 든든하게 챙겨 먹고 다음 목적지인 다대포해수욕장으로 갔다. 햇빛이 너무 뜨거웠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삼일차다. 내가 맡은 PD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를 세우고 또 합주를 했다.
첫날, 해운대에서는 물에 못 들어갔지만, 오늘은 발을 담그고 합주를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양말과 신발을 고이 벗어두고, 바지를 무릎까지 올리고 물에 들어갔다. 너무 시원했다...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서 20분 동안은 발을 말리고 모래를 털어내는 데 사용됐다(발톱에 낀 모래는 그냥 두기로 했다).
암튼, 이제 모둠 들살이의 마지막 장소인 감천문화마을로 이동했다. 감천문화마을에 올라가는 버스에서도, 내리자마자도, 너무 가팔랐다. 감천문화마을에 가니까 완전 사람들이 사는 곳이거나 관광객이 있는 느낌이라 어디서 합주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사람들을 피하진 않지만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진 말자는 얘기를 하면서 그나마 관광객이 없는 곳에서 합주를 하는데 이번 들살이 중에서 제일 관심을 많이 받은 곳이었던 것 같다.
지도를 보고 정말 마지막 합주를 할 곳을 정했는데, 가려던 길이 막혀있어서 또 다시 힘이 빠진채로 그늘에 앉았다. 그래도 힘을 내서 위로 올라가 보자고 의견을 모아 아까 지도로 봐뒀던 장소에 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마지막 합주를 했다.
합주가 끝나고 널브러져 있다가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어쩐지 다리가 아프더라니 식당에서 확인해보니 1만 5천 보가 훌쩍 넘어있었다. 저녁도 맛있게 먹고,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왔다.
벌써 들살이를 시작한지 3일이 지나고 내일부터는 개인 들살이다. 모둠 들살이에 오기 전에 각자 정한 역할로 나는 영상 촬영을 책임지고, 보민이는 길찾기, 채원이언니가 총무, 솔이가 아침밥, 현욱이오빠와 소운이언니가 영상 편집을 맡았는데 각자 잘해주고, 잘해줄 예정이라 모두에게 고맙다.
내 모둠 들살이 목적글이 안 어울리는 악기들이 만나 합주하는 즐거움(?)이었는데 거창하게 목적글 써놓고 오타마톤 대신 내 목소리를 쓰게 돼서 내 목적이 상실됐다. 그래도 작년 들살이보다 계획대로 착착 실행되어서 좋았다. 또 내가 노래하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평소에 고음 안 올라간다고 소리 빽빽 질러대고, 이렇게 각잡고 불러야 하는 건 처음이라서 긴장됐지만 즐겁게 합주한 것 같다. 솔이가 같이 불러줘서 고마웠다(솔아 고맙다^^)
개인 들살이 목적글
나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처럼 시각이라는 감각에 많이 의존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초, 점자를 궁금해하기 시작하면서 촉각, 시각장애 등에도 관심이 생겼다.
원래 나는 디자인 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위처럼 다른 감각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눈에 보기에 예쁜 디자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내가 디자인에 관심이 생긴 것도 평소에 눈에 보기에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예쁘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어디에서 받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처음엔 눈이 보이지 않으면 예쁘고, 아름답다는 것을 못 느낀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시각적으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 아니라 촉각을 활용해 보고,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 궁금해졌고 이번 들살이 기간 동안 촉각으로 느끼는 그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웃턴십 동안은 좀 더 전문적인 작업이었다면 이번 들살이 기간에는 자유롭게 상상해서 촉각 그림을 만들고 싶다.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그림을 만든다기 보다는 다양한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림을 만들어보고 싶다.
- 09/07 (목)
오늘은 개인 들살이의 첫날이다. 어제 모둠 들살이를 마무리하고 12시 넘어서 잤더니 피곤해서 7시 반까지 누워있었다. 후다닥 준비하고 내려가니 보민이랑 소운이언니가 계란빵을 준비하고 있었다. 맛있게 먹고 오늘의 첫 일정인 금정산으로 향했다(요즘 세상이 험해서 노을께서 같이 등반해주셨다).
내가 갈 코스는 동문에서 출발해서 정상인 고당봉을 찍고 내려오는 거라서 동문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정상에서 점심으로 먹을 김밥은 버스 환승역에서 샀다. 김밥을 사들고 환승할 버스를 기다리는데 서 계시던 할머니께서 의자에 앉으시려고 하셔서 옆으로 조금 비켰다가 해가 뜨거워서 그늘로 피신했는데, 피하지마자 사람들이 노인분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노인분들이 공항에 계신다는 뉴스를 본 것이 생각났다. 할머니께서, 내가 일어나니까 앉으라고 하셨는데 해가 덥다고 사양하면서도 조금 신경쓰였다.
암튼 동문에 도착해서 내가 갈 코스를 한 번 보고 사진 찍은 다음 기대 반, 가기 싫은 마음 반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등산을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길을 헤맸다. 내가 가는 길마다 풀들이 우거져있었는데 길이 맞는지도 확신이 안 서고 사람들이 안 잡으면 못 자는 모기도 잡는 게 무서워서 같이 잘 정도인데 그 풀들 사이를 비집고 가느라 정말 심란하고 무서웠다. 길을 잘못 들어서 같은 길을 세 번 지나기도 했다. 맞는 길로 들어서니 주황색 등산가방을 메고 등산하시는 아저씨가 보였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아저씨만 졸졸 쫓아가다 보니 이제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좀 가벼워진 마음으로 정상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면서는 그림 소재를 결정지을 때 필요한, 산에서 느껴지는 느낌들을 메모하면서 올라갔다. 사실 심란함, 배고픔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 같지만 말이다. 정상에 올라가니 바람이 엄청 불어서 혹여나 무거운 내가 날라갈까봐 다리를 바위틈 사이에 욱여넣고 김밥을 먹었다. 사람들이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는데 나도 눈치보다가 가방으로 핸드폰을 고정시키고 브이하고 여유로운 척을 했다.
고당봉비에 올라갔다가 무섭고 혼자 사진도 못 찍어서 금방 내려왔다. 내려와서 앞에 앉아있는데 혼자 온 어떤 아저씨가 사진 찍으려고 여기 있냐고 물어보시면서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내가 찍어드렸더니 반대로 아저씨가 찍어주신다고 하셔서 '아니, 네, 저도 혼자 와서 찍어주세요' 하고 사진을 부탁드렸다. 이 아저씨 아니면 나 정상까지 올라왔는데 아무도 인정해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하산했다.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사실 아니다. 오늘 일정인 등산과 바다에서 일몰 보기 중 아직 1개도 끝내지 못했다. 내려오는 길에 주황색 등산가방 아저씨를 또 만났는데 아저씨가 이것저것 설명해주시면서 가는 길 같으면 같이 가주신다고도 했는데, 내 계획이랑 다른 길이기도 하고 아저씨가 설명해주신 것도 잘 못 알아들은 상태라서 사양했다. 아저씨가 산을 잘 아시는 것 같았는데 나를 보면서 약간 답답해하셨다.
조금 헤매긴 했지만 내가 내려가기로 계획한 길로 내려가서 이제 광안리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광안리해수욕장에 도착해서 사진도 찍고 잠시 끄적이다가 일몰을 보기 위해 조금 일찍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구름이 많아서인지 내가 끄적이다가 놓친 것인지 일몰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금방 어두워졌다. 산에서 적은 키워드로 그림 구상을 한 90% 정도 끝내고 야경을 보다가 너무 늦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광안대교를 사진으로 보다가 직접 봐서 신기하기도 하고 예뻤다. 어제 개인 들살이 첫날이라고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그림 구상한 게 마음에 든다. 과연 집에 가서 만드는 것도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 09/08 (금)
오늘은 나랑 채원이언니가 아침을 준비하는 날이라서 30분 일찍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솔이는 새벽 일정이 있어서 노을과 함께 나가고 오늘은 5명만 숙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준비를 마무리하고 9시 땡! 하자마자 바로 숙소에서 나왔다. 나의 첫 활동지는 모둠 들살이 때도 갔었던 감천문화마을이다. 감천문화마을에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집들이 많이 모여있어서 그림으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에서 고른 곳이었다.
너무 골목골목이라 그냥 가고 싶은 대로 1시간 반 정도 떠돌다가 1시간 정도 일찍 카페에 들어가서 책을 읽었다. 오늘 읽은 내용은 내가 아웃턴십을 고민하면서 했던 생각에 관한 얘기가 나와서 더 흥미로웠다.
시각장애인=점자=촉각이라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하는 착각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난 내가 시각에 많이 의존해서 반대 감각인 촉각에 관심을 가진 것이었는데 책에서 예전부터 감각에 서열이 있었는데 시각이 1위고 항상 맨 뒤가 촉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발상이 계속되어 와서 촉각을 중요하다고 여기는 학자도 시각을 부정하는 감각으로만 다뤘다고 한다. 지금 내가 하는 활동이나 내가 지금 촉각에 관심이 있는 이유가 '시각<->촉각'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은 확실한데, 지금 들살이에 와서 하고 있는, 하고 싶은 활동도 이런 구시대적 발상인 건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근데 내가 시각장애인을 주로 생각하면서 그림을 만드려고 하다 보니까 점점 마음도 복잡해지고 이게 맞는 마음가짐인 건지 확신이 안 서서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그림을 만들기로 했다. ‘만지는 것’이 공공적인 장소에서 부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는 시각장애인도 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그냥 만지는 것 자체가 부정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 어린애가 식당에 있는 소품을 만지는 걸 봤을 때 나도 모르게 부정적으로 보는 걸 보면서 뜨끔했다.
점심도 먹고, 그림을 어떻게 만들지도 구상하다가 두 번째 활동지인 다대포해수욕장으로 갔다.
어제는 광안리에서, 오늘은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일몰을 봤다. 어제 광안리는 건축물들이 화려했다면 다대포는 더 담백한 느낌이었다. 다대포해수욕장역에 내리자마자 저녁 시간이 애매할 것 같아서 바다에서 먹을 바나나를 사들고, 아까 책 읽을 때 다 떨어진 메모지도 하나 사들고 다대포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벌써 4시 반 정도가 되어있었다.
처음엔 흔들의자에 앉아서 물멍을 하고 떠오르는 것들 메모도 하다가 저번에 모둠 들살이 때 왔을 때 앉아보고 싶었던 둥근 의자에 모래를 털고 앉았는데 너무 좋았다.
물멍하다가 질리면 바로 옆에 숲멍을 할 수 있었다. 앉아서 물멍, 숲멍도 하고 그림 스케치도 하고 있다가 이제는 모래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래사장에 앉아서 바나나도 먹고, 물멍 또 하고, 또 생각나는 키워드 적고, 스케치하고... 하다 보니 일몰 시간이 됐다.
사람들이 일몰 시간에 많아졌다가 해가 지니까 점점 빠지는 모습이 약간 무대가 끝나고 퇴장하는 해와 공연이 끝나고 퇴장하는 관객 같았다. 완전 깜깜해질 때까지 있으려다가 하루닫기 시간에 늦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일어나서 움직였다.
- 09/09 (토)
오늘은 개인 들살이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주말이라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조식으로 나온 시리얼과 빵을 먹고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아홉산숲이었다. 아홉산숲까지 거리상으로는 1시간이 걸리는데 버스 배차 간격이 1시간 이상이라서 2시간을 잡고 출발했다. 운 좋게도 버스가 5분 만에 와서 거의 1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대나무숲이 한 가문에 가꿔온 것이라는데 신기했다. 조상이 있는 건 맞지만 뭔가 어떤 것이 조상으로부터 내려온다는 게 잘 상상이 안 간다.
암튼 대나무숲을 걷는데 시원하고 평화롭고 너무 좋았다. 가는 길에 생각나는 키워드도 적으면서 걸었고 보민이도 아홉산숲에 오는 일정이라 중간중간 만나면 사진도 찍어줬다. 사실 걷는 것보다도 길 중간중간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대나무 보고 바람 맞는 게 행복했다. 후반에는 긴 벤치 같은 게 있어서 누워서 대나무 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도 봤다. 진짜 평화로웠다. 너무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내가 핸드폰과 에어컨만 없었다면 이런 자연을 누비는 걸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나무에 낙서하지 말라는 푯말이 계속 있었는데, 사람들이 대나무에 뾰족한 것으로 이름 같은 걸 새겨놔서 자연을 손상시키지 말라는 경고였다. 처음엔 낙서를 왜 하지,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경고문을 꼼꼼히 읽어보니 낙서가 된 대나무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또 낙서를 할까봐 낙서 된 대나무는 베어진다는 것이다. 너무 불쌍했다. 낙서 되는 게 낙인찍히는 것 같았다. 난 잘 모르지만, 대나무 입장에선 살아있고 싶을 텐데 나무를 베어내는 게 더 자연 손상 아닌가, 싶었다. 이것도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의 욕심 같았다. 아닐 수도 있지만... 암튼 그래서 낙서 된 대나무들을 여러 개 봤는데 베어질 거라는 게 잔인했다.
밥을 다 먹고 나올 때쯤 버스 시간을 확인해보니 30분이나 기다려야 하긴 했지만 1시간 안 기다리는 게 어딘가, 하고 안도했다. 다음 버스도 배차 간격이 30분이라 걱정했는데 역시나 20분 기다리기...
이럴까봐 책을 가져오긴했는데 땡볕이라 읽고 싶지 않았다. 또 버스를 타고, 또 갈아타서 두 번째 목적지인 해동용궁사에 도착했다.
해동용궁사에서 앉아서 물멍도 하고 언제 또 와보겠나, 하고 열심히 둘러봤다. 근데 역시 채원이언니의 말처럼 사람이 정말로 많았다. 절 느낌보다는 이제 진짜 관광지인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절은 고요하고 잔잔한 곳이고, 관광지는 시끌벅적하고 돈 쓸 게 많은 곳이라, 절과는 완전 상반되는 이미지인데 말이다. 소원을 적는 곳도 있었는데 소원에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복권 당첨되게 해주세요, 같은 소원도 있어서 내가 아는 불교는 모든 욕심을 내려놓는 곳인데 느낌이 이상했다. 이런 걸 생각하면서 상반된 촉각을 어떻게 만들지 생각하는데, 그전부터 계속 상반된 촉각으로는 '까슬까슬<->부드러움'으로만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촉각도 구상해보려고 했다. 오늘 하나 생각난 건 '촘촘<->송송'이다. 다른 대조되는 촉각도 더 생각해봐야겠다(보민이가 ‘말랑<->딱딱’을 말해줬다).
어제 저녁에 노을 보고 적은 키워드를 어떻게 그림으로 만들면 좋을지 간단한 스케치를 하고, 오늘 아홉산숲하고 해동용궁사에서 적은 키워드를 정리했다. 근데 사실 해동용궁사에서는 딱히 떠오르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뭔가 '절'이라고 하면 종교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부담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개인 들살이 마지막을 보내며 간단히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 개인 들살이는 정말 짧긴했다. 집에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대충 해봐도 직접 해보면 다르기 마련인데 3일이면 고쳐나갈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암튼 돌아보자면, 들살이 오면 달라지는 건 항상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그림 구상이 안 되면 어쩌지, 버스를 놓쳐서 기다리는 데 시간을 다 쓰면 어쩌지, 하는 걱정, 긴장을 가지고 하다 보니 내 주제에 집중하는 데에 때론 방해가 되기도 한다. 좀 더 가벼워질 필요는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엄마, 아빠랑 떨어져 있으니까 내가 다른 모습이 된다. 이건 그전에도 알고 있었던 거지만 이런 괴리감에서 혼자 있을 때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들살이다 보니 평소에 내가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을 좀 더 예민하게 신경쓴다던지 이런 경험은 좋은 것 같다. 물론 평소에도 신경 쓰면 더 좋겠지만...
벌써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 09/10 (일)
오늘은 조식을 챙겨 먹고 일찍 숙소를 나왔다. 오늘은 전체 들살이 날이라서 대전으로 출발했다. 기차에서 먹을 점심을 사서 기차에 올랐다.
첫날 서울에서 대전까지 얼마 안 걸리고 부산까지는 오래 걸렸다고 느꼈어서 대전까지 되게 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대전에서 못 내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잘 내려서 배차 간격이 1시간 이상인 버스까지 계획대로 잘 탔다.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니 산이 나오고 장태산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올라가는데 계속 올라가도 우리의 숙소가 보이지 않았다(나중에 들어보나 우리 숙소가 제일 위에 있다고 한다). 그래도 열심히 걸어 도착했는데 동물팀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널브러져 있다가 전체 놀이를 잘 준비할 것 같은 소운이언니, 솔이, 연우언니, 민애가 전체 놀이를 준비해줘서 전체 놀이도 했다.
개학하고 바로 들살이다 보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확 많아져서 뭔가 어색한 느낌...
오늘 저녁 담당인 소운이언니, 현욱이오빠, 민서, 성준이가 저녁을 준비할 동안 산책을 다녀왔다. 사실 이렇게 높은 숙소를 잡은 이유가 계곡에서 놀고 싶다는 의견 때문이었는데 안내소에 물어보니 계곡은 휴양림에서 들어갈 수는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저녁 담당이 해준 맛있는 카레와 감자요리를 먹고 모둠끼리 들살이 돌아보기를 했다. 우리 모둠은 어제 저녁에 했기 때문에 일지와 결과물에 관련된 얘기를 나누고 전체에서 간단히 모둠 돌아보기까지 마쳤다.
나는 매일 동물친구들 일지를 읽어보지 않았는데 각자 나름대로 동물들을 관찰하고 영상, 글, 그림 등으로 기록해 동물도감을 만든다고 한다. 우리도 찍었던 영상들이 꽤 예뻤기 때문에 결과물이 기대된다.
돌아보기가 끝나고는 밖에 나가서 별을 봤는데 오랜만에 별을 엄청 많이 봤다. 7학년 중국 들살이, 9학년 졸업 들살이 이후로 이렇게 별을 많이 본 건 처음이다.
오늘이 벌써 들살이 마지막 날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아직 들살이는 끝나지 않았으니 내일까지 화이팅이다!
- 09/11 (월)
오늘은 진짜 들살이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준비를 하고 아침 담당인 연우언니, 민애, 솔이가 해준 누룽지를 먹었다. 10시 50분엔 대전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준비를 얼른 마치고 휴양림에 있는 스카이워크에 가서 걷고, 사진도 찍고 놀이터 근처에서 누워서 쉬었다. 이제 방학도 끝나서 이렇게 여유로운 월요일은 당분간 없겠지... 누워있는데 바람도 시원하고 집에 갈 생각에 너무 행복했다.
대전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대전터미널 도착! 내가 정했던 식당은 아니지만 대전터미널 안에 있는 분식집에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이제 정말 집에 가는 일만 남았다. 이렇게 들살이가 끝나는구나... ‘벌써 일주일이 지났어?’ 이런 느낌은 아니고 ‘이제 들살이 끝났다!’ 이런 느낌이라 홀가분하다.
들살이 휴교 동안은 또 긴장이 풀려 풀어져 있을 순 있지만 이제 들살이도 정리하고, 2학기도 잘 맞이해야겠다. 그리고 들살이 때 가졌던 긴장만큼은 아니지만 너무 풀어지지 않게 긴장감을 가지고 2학기 잘 살아보겠다!
긴장감을 너무 풀지 않고 가지고 사는 건 나한테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 들살이가 끝나고 전체 들살이가 되니 긴장감이 풀리면서 내가 개인 들살이 동안 가지고 있었던 긴장감이 확 풀렸다. 그러면서 같이 이동할 때 다른 사람들을 따르고 쫓아가면서 나는 이렇게 따르고, 뒤에서 쫓아가는 게 더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항상 둘이 있으면 내가 앞에서 끄는 것보다 뒤에 쫓아갈 때가 많았던 것 같고, 별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나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하겠지, 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있을 때 하는 긴장감, 개인이었을 때의 긴장감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평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을 더 신경 쓰려고 하는 노력이니까 말이다.
난 항상 이런 긴장감을 불편해하고 긴장감을 풀고 싶었는데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면서도 그 긴장감에 내가 눌리지는 않게 균형을 잡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또, 개인 들살이 때 고민했던 것들도 놓치지 않고 계속 고민하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들살이는 잘 마무리해도 내 관심사는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
제 들살이는 잘 느껴보셨나요? 그럼 지금까지 7박 8일 간의 저의 들살이 이야기였습니다! 끝까지 저의 긴 이야기 느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고음불가 보컬에 박치 탬버린이 가세한 밴드라니~~~웃기고 귀엽당~~~ 컬러풀 머릿수건도 발랄발랄~~~
(공연 동영상은 미공개인가요? 보고프다~~~ 없다면 라이브 앵콜 요청~~~ㅋ)
사진도 글도 다정다정해서리 보고나니 마음이 몽글몽글
하고 싶은 거 계속하기~ 계속 다정하기 부디 ㅎㅎㅎ
저의 들살이 이야기를 느끼러 가보자요~ 의 발랄한 문구를 따라 시작한 들살이 이야기에 푹 빠져서 금방 후후룩~ 읽어 갔다는^^
들살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배낭 메고 들살이를 떠나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들었어요. 숲터 들살이 에세이집~ 만들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