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 어서 강의
이케다 선생님의 강의에서 배운다
인간주의 철학의 광채(光彩)
제5회 '마음만이 중요' -
사제불이(師弟不二) 마음의 유대를 어디까지나 깊고 강하게
<희망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에서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이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다양한 어서(御書)를 통해 현대에 보내는 희망의 격려를 강의한 <희망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에서, <센니치니부인답서(뇌문고어서)>를 주제로 한 강의를 발췌해 다시 게재했습니다.
묘법(妙法)을 실천하는 장대한 공덕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구도심에 넘쳐 스승을 구도하는 문하의 마음에 성불의 근본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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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 - 불법(佛法)의 사제(師弟)에서 최강의 유대는 '마음'입니다. 묘법유포(妙法流布)에 뜻을 둔 사제의 마음과 마음은 어떤 거리도 뛰어넘으며, 하늘에 달이 뜨면 곧 연못에 그림자가 비치듯 서로 순식간에 통합니다.
<센니치니부인답서>는 멀리 떨어진 스승과 제자가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드라마를 담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대성인이 성수(聖壽) 쉰일곱살 때인 1278년 윤달 10월 19일, 미노부에서 저 멀리 산과 바다로 가로막힌 사도 지방에 사는 센니치니(千一尼)에게 보내셨습니다.
센니치니는 대성인께서 유배 중이실 때 남편 아부쓰보와 함께 귀의해 목숨을 걸고 대성인을 지킨 순수한 문하입니다.
대성인이 미노부에 입산하신 후에도 사도의 광선유포라는 존귀한 사명을 맡아 중심적으로 활약했습니다.
남편 아부쓰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임종하기 전까지 수년간 적어도 세번 이상, 멀고 위험한 길을 헤치며 대성인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센니치니부인답서(뇌문고어서)
또 법화경(法華經)을 공양하는 사람은 시방(十方)의 불보살을 공양하는 공덕과 같으니라. 시방의 제불(諸佛)은 묘(妙)의 일자(一字)에서 생겨나셨기 때문이로다.
비유하면 한 마리의 사자(師子)에게 백자(百子)가 있다, 그 백자가 여러 금수(禽獸)에게 공격 당하는데, 한 마리의 사자왕이 짖으면 백자는 힘을 얻어 여러 금수 모두 머리가 칠분(七分)으로 깨어진다.
법화경은 사자왕과 같으며 일체(一切)의 짐승의 정상(頂上)이 되느리라. 법화경의 사자왕을 갖는 여인은 일체의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등의 백수(百獸)에게 두려워하는 일이 없다.
(어서 1316쪽 5행~18)
<현대어역>
또 법화경에 공양하는 사람의 공덕은 시방의 부처나 보살에게 공양하는 공덕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시방의 모든 부처는 '묘'라는 한 글자에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사자 한 마리에게 새끼 백 마리가 있습니다. 새끼 백 마리가 많은 짐승에게 습격 당할 때 사자왕 한 마리가 짖으면 백 마리 새끼는 힘을 얻고, 많은 짐승은 모두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깨어집니다.
법화경은 사자왕과 같습니다.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입니다. 법화경이라는 사장왕을 수지한 여성은 지옥·아귀·축생 등 일체의 백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법화경에 공양하면 무한한 공덕이
아부쓰보는 1278년 여름에도 대성인을 구도하는 마음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초겨울, 센니치니가 보낸 진심 어린 공양을 대성인에게 전달했습니다. 대성인은 답장으로 쓴 이 어서에서, 거의 해마다 남편 아부쓰보를 보내는 센니치니의 변함없는 진심을 찬탄하셨습니다.
법화경에 공양하는 공덕은 무한합니다.
그 공덕의 힘으로 어떤 장마(障魔)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근간에 그런 확신이 있으면 이보다 더 강한 힘은 없습니다.
법화경은 삼세시방(三世十方)의 제불이 성불한 근원입니다. 이 우주에는 무한한 과거에서 무한한 미래에 걸쳐 무수한 부처가 출현한다고 설해져 있습니다.
모든 부처는 예외 없이 법화경을 스승으로 삼아 성불합니다.
그러므로 법화경에 공양하는 것은 모든 부처에게 공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공덕은 무한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시방이라는 장대한 공간, 과거·현재·미래에 걸친 장원한 시간, 무수한 불·보살의 존재 - 왜 대성인께서는 이처럼 장대한 우주관을 전개하셨을까요.
당시 세계관에서 보면, 센니치는 변두리 지역의 작은 섬에 불과한 일본, 게다가 거기에서도 북쪽 변방의 사도라는 외딴섬에 사는 나이들고 이름없는 서민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광선유포의 스승을 끝까지 지키려는 마음이 얼마나 위대한가. 얼마나 숭고하게 빛나고 있는가.
대성인은 우주처럼 넓은 센니치니의 복덕을 찬탄하셨을 것입니다.
'묘의 일자'가 지닌 공덕
본문에서는 "시방의 제불은 묘(妙)의 일자에서 생겨나셨기 때문이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묘의 일자'는 묘법의 '묘'이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묘'입니다.
법화경 28품에는 수많은 법리가 설해져 있지만, 결국 모두 이 '묘'를 표현하고 가르치며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화경이 모든 부처의 스승입니다.
대성인이 말법의 중생을 위해 나타내고 홍통하신 삼대비법(三大秘法)의 남묘호렌게쿄는 참으로 모든 사람이 이 '묘'의 힘을 터득하게 만드는 대법입니다.
도다 선생님이 이렇게 읊으셨습니다.
정법(正法)
광포의 때가
왔노라
묘(妙)의 일자(一字)에
목숨을 맡기고
우리는 광선유포를 위해 불석신명(不惜身命)의 각오로 전진할 때 '묘의 일자'에 담긴 공덕을 온 생명에 모두 받을 수 있습니다.
"법화경의 사자왕을 수지한 여인"
"비유하면 한 마리의 사자에게 백자가 있다."고 시작하는 비유에서는 법화경을 공양하면 무한한 공덕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대성인은 여기에서 '묘의 일자'의 무한한 힘을 지닌 법화경을 '사자왕'에 비유하십니다. 또 법화경을 수지하고 공양하는 사람을 '사자의 새끼'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옥·아귀·축생 등 불행한 생명을 '금수(모든 짐승)'에 비유하십니다.
그 어떤 금수가 습격해도 사자왕이 포효하면 새끼 100 마리는 용기를 내어 금수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법화경을 공양하는 사람은 '묘의 일자'에 담긴 무한한 힘을 얻어 지옥, 아귀,축생 등 불행한 생명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법화경은 '사자왕의 경전'입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센니치니에게 "법화경의 사자왕을 수지한 여인은 모든 지옥, 아귀, 축생 등 백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격려하십니다.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의 경지
여기에서 대성인은 '여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여성은 남성 중심인 무가사회(武家社會)에서 일반적으로 약한 처지였습니다.
사도에서 신앙의 중심자였던 센니치니는 병이나 노화 그리고 가족문제 등으로 괴로워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겠지요. 그래서 대성인과 상담했으리라고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는 대성인이 어딘지 모르게 동요하는 센니치니의 마음을 헤아리셨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대성인은 사자왕의 경전인 법화경을 수지한 여성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센니치니를 감싸안듯 격려하십니다.
또 이 격려는, 오히려 여성의 신앙심이 강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표현하신 구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신(信)의 힘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전혀 망설이지 않는' 신앙의 진수인 경지로 이끕니다. 이 경지를 체득한 여성은 이미 어떤 마성(魔性)에도 침범 당하지 않습니다.
신심(信心)이 깊은 여성은 정사(正邪)를 순식간에 간파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삼독(三毒)에 물들지 않는 근본적인 용기가 있습니다. 만물을 기르는 자비의 일념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지혜와 용기 그리고 자비가 하나된 마음이 묘법을 깨달은 스승의 모습에 촉발되어 나타납니다. 그런 여성의 생명은 아무리 마가 준동해도 결코 분동하지 않습니다.
센니치니부인답서(뇌문고어서)
사도(佐渡)의 지방에서 이 지방까지는 산해(山海)를 거쳐서 천리(千里)에 이르는데, 여인의 몸으로서 법화경을 믿고 있으므로 연년(年年)이 남편을 사자(使者)로서 찾아오시게 하니, 정녕 법화경 석가(釋迦) 다보(多寶) 시방의 제불이 그 마음을 알고 계시리라.
비유하면 천월(天月)은 사만(四萬) 유순(由旬)이지만 대지(大地)의 연못에는 수유(須臾)에 그림자가 비치고, 뇌문(雷紋)의 묵은 천만리(千萬里)나 멀어도 치면 수유에 들린다. 그대는 사도의 지방에 계시더라도 마음은 이 지방에 왔느니라.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으니, 우리들은 예토(穢土)에 있지만 마음은 영산(靈山)에 사느니라. 얼굴을 본들 무엇하리오.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 조만간에 석가불(釋迦佛)이 계시는 영산회상(靈山會上)에 가서 만나리다.(어서 1316쪽 14행 ~ 18행)
<현대어역>
사도 지방에서 이곳 가이 지방까지는 산이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천 리에 이르는데, 법화경을 신앙하기에 여성의 몸으로 거의 해마다 남편을 대신 보내 니치렌을 찾으십니다.
필시 법화경, 석가불, 다보여래, 시방의 제불도 그 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를테면 하늘의 달은 멀리 4만 유순이나 떨어져 있지만 대지에 있는 연못에는 순식간에 그림자가 비치고, 뇌문의 북은 천만 리나 멀리 있어도 치면 순식간에 들립니다. 당신의 몸은 사도 지방에 있지만 마음은 이 지방에 와있습니다.
부처가 되는 길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더러워진 국토에 있지만 마음은 영산정토에 살고 있습니다. 만나 뵌들 무엇하겠습니까. 마음만이 소중합니다.
언젠가 반드시 석가불이 계시는 영산정토의 회좌(會座)에서 만납시다.
신심의 일념은 거리를 초월
하늘에 뜬 달은 멀리 사만유순이나 떨어져 있지만, 지상의 연못에 그 그림자를 띄웁니다. 뇌문의 북은 소리가 순식간에 울려퍼집니다.
"그대는 사도의 지방에 계시더라도 마음은 이 지방에 왔느니라."(어서 1316쪽)- "센니치니 부인 당신의 몸은 멀리 산과 바다로 격리된 사도에서 밖으로 한걸음도 나올 수 없지만, 당신의 마음은 분명히 내가 있는 곳에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센니치니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이제 평생 대성인을 만나 뵐 수 없다.'는,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대성인이 그 마음을 간파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은 감상이 아닙니다. 신심의 '일념'은 순식간에 거리를 뛰어넘습니다. 센니치니에게 '마음은 나와 함께 투쟁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격려가 얼마나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우리들은 예토에 있지만 마음은 영산에 사느니라."(어서 1316쪽) -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는 예토 즉 더러워진 국토지만, 정법을 수지한 우리 마음은 영취산(靈鷲山) 즉 상적광토(常寂光土)에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처가 되었다고 고로움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예토를 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 그대로이면서 그 흉중에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인 '행복경애'를 쌓는다면 결코 불행에 우는 일은 없습니다.
"마음은 영산에 사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어떠한 환경이나 고로움에도 휩쓸리지 않는 가장 존귀한 부처의 생명을 우리 생명에도 용현할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얼굴을 본들 무엇하리오."라는 말씀처럼, 신심이란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형식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마음만이 중요하니라.'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센니치니의 진심은, 거의 해마다 남편을 대성인 슬하에 보내는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마음이 바로 성불의 길입니다." "나는 당신의 진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라는 대성인의 진심이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라는 글월에 결정(結晶)되어 있습니다.
'스승을 끝까지 구도하는 마음'이야말로 간요(肝要)
대성인은 마지막에 "조만간에 석가불이 계시는 영산회상에 가서 만나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센니치니의 뜻은 진심이며 반드시 일생성불하여 영산정토(靈山淨土)에서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단언하셨습니다. 불법의 사제연대는 삼세 영원합니다.
아부쓰보와 센니치니 부부는 '끝까지 스승을 구도하는 마음'을 견지했습니다. 그 '마음'은 자식에게 계승되어 아부쓰보의 뒤를 이은 아들 도쿠로모리쓰나는 법화경 행자가 되어 대성인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대성인 재세 시절, 사제불이 신심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불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불이의 사제는 거리를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합니다. '사제의 마음'은 영원히 공전(共戰)의 역사를 엮습니다.
연속되는 광선유포의 투쟁에 이 '마음만이 중요'라는 대철학을 내걸고 전진합시다.
-법련 202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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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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