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희가 묻습니다 : “‘선제적 대응’만이 살 길이다”)
제가 지금으로부터 약 18여 년 전인 2005년 대구동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예비후보부터 시작하여 지금껏 험난한 길을 계속 정치적으로 걸어왔습니다.
그 동안 저도 먹고 살아야 되는 관계로 2006년 12월 산업용 장갑업종에 뛰어들어 오늘까지 그 업종에 몸 담고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 업종은 어떠한 곳이냐 하면, 이 공급망의 최전선은 동네 건재상회 내지 건설현장인 관계로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공급망의 상단에 해당하지만 토요일도 저는 오전에 일했습니다.
1년 전부터는 토요일은 남들처럼 쉬지만, 금주 월요일 5월1일 노동절도 센터는 문을 열고 내일 어린이날 5월5일도 그렇습니다.
“‘선제적 대응’만이 살 길이다”는 이 글의 주제를 이야기하는데, 왜 이 예를 거론하느냐 하면, 사람들이 ‘선제적 대응’을 머리로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예시하는 바입니다.
‘선제적 대응’은 전략적 사고로서 머리로 하는 부분도 일정 부분 있습니다만, 비중으로는 30% 미만이라고 저는 추정합니다.
‘선제적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몸이 열심히 움직여야 되는 비중을 저는 70%로 보고 있죠.
이번 달은 공무원 등에는 노는 날의 연속이 되겠습니다만, 저는 석가탄식일 대체휴일인 5월29일에도 출근합니다.
오늘 한국은행 총재 등의 발언을 경제전략 작가 입장에서 바라보면, ‘선제적 대응’이 없는 머리로만 방법을 찾고 몸은 휴일날 다 챙기는 공무원 등의 전형적인 안이한 마인드를 엿볼 수 있어, 저의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2008년 18대 총선 낙선 직후 포루투갈 리스본으로 이주할 수는 없나 고민했겠습니까?
놀라운 사실은 제가 고민할 당시에는 리스본에 포루투갈 내국인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중국 화교들이 그 이후 대거 여기 들어와서 이 도시 뿐만 아니라 유럽상권 진입로 역할까지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제적 대응’을 한국 공무원 식으로 하실 겁니까?
아니면 정동희 또는 리스본 화교처럼 하실 겁니까?
정동희가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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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사진은 지난 달 어렵게 따낸 유럽 수출 건 컨테이너 선적 작업 과정을 유럽 바이어에게 확인시켜주기 위해 제가 찍은 현장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