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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 : 믿음 BIW : 분별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놓으신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서 사는 것이다.
암수 구별법
어느 노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부인이 부엌에 들어가 보니 남편이 파리채를 들고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뭐하는 거예요?”라고 묻습니다.
남편은 “파리를 잡고 있잖아.”라고 대답합니다.
아내는 “그래, 파리는 잡기는 했나요?”라고 묻습니다.
남편은 이기양양하게 “그럼, 수컷 셋하고 암컷 둘을 잡았지.”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에 호기심이 발동한 아내가 눈을 반짝이며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셋은 맥주 깡통에 있었고, 둘은 전화기에 있었거든.”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맥주 깡통에 있었던 것은 술을 너무 좋아하는 수컷이고, 전화기에 있었던 것은 수다를 좋아하는 암컷이라는 설명입니다.
우리들은 술을 좋아합니까? 아니면 우리들은 수다를 좋아합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의 술에 취하여야 합니다.
세상 술에 충만한 사람이 아니라 성령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수다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주님의 십자가 복음과 사랑을 전하며 살아야겠습니다.
P4.
성경은 더럽냐 깨끗하냐 라는 개념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성경은 불결하냐 청결하냐 라는 개념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성경에는 부정하냐 정결하냐 라는 개념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럽다. 불결하다 라는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는 깨끗하다 청결하다 하는 개념도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는 정결하다 정결하지 않다 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정결하지 않은 상태를 부정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 자신이 정결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정결함을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결함에 대하여 매우 중요하게 여기신다.
사람의 몸, 육체의 일부에서 부정한 지체가 있다면 무엇일까?
바로 발이다.
발은 땅, 흙을 밟는 지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유월절 만찬, 곧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의식, 곧 세족식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많은 분들이 이 세족식의 장면을 제자들이 하루 종일 활동했기 때문에 더러운 발을 예수님께서 깨끗하게 씻겨주시면서 섬기셨다라고 설명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예수님은 더러운 발을 씻겨주면서 청결케 하시는 데에 목적을 가지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제자들에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정결의식에 참여시키는 목적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더러워도, 불결해도, 청결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정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은 정결하신 분이기 때문에 정결한 사람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것이다.
정결은 은혜의 물에 부정한 발을 담금으로써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온 몸을 은혜의 물에 담그어야 마땅하지만, 발이 움직여야 몸이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발을 은혜의 물에 담그면 온 몸을 담그는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부정이란 개념은 땅, 흙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호렙산에서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는 모세에게 가시떨기나무에 불로 임재하시는 퍼포먼스를 행하시면서 찾아오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라고 말씀하신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부정한 땅을 밟고 있는 신을 벗어야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 5:15에서도 보면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는다.
하나님은 레위기 11장에서 하나님 앞에서 제사하는 제사장들, 하나님 앞에 제사를 올려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해야 함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부정과 정결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신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부정하고 어떤 경우에 정결한 것일까?
하나님은 부정과 정결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부정과 정결을 분별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D4.
① 부정케 하는 요인은 땅, 흙이라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땅, 흙이란 존재는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모든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흙, 땅이란 존재는 생명을 죽이는 악독이나 살리는 선이나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흙에는 생명을 죽이는 악독이 들어있을 수 있다.
생명을 죽이는 악독을 지니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땅, 흙이란 존재를 부정한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흙으로 만든 토기는 부정한 그릇의 대명사이다.
그러기 때문에 유월절 절기 기간이 되면 모든 토기 그릇을 깨뜨리라고 하신다.
부정한 무언가에 묻은 토기 그릇은 무조건 깨뜨리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을 토기 그릇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을 토기 그릇에 비유하는 것은 사람이란 존재는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부정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모든 사람은 부정한 존재이다.
부정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들 스스로는 절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사람이란 존재는 부정한 존재이기 때문에 짐승을 제물로 삼아서 제사드리고, 대속을 받아야만 정결케 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② 정결과 부정을 분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자신이 정결하신 분이다.
하나님 자신이 정결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도 정결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정결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결케 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부정케 하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되는 것이다.
부정케 하는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을 먹은 백성들은 부정하게 되고, 부정하게 되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경우에 부정과 정결을 구별시키고 있다.
ⓐ 짐승의 경우
짐승의 경우에는 두 가지 조건이 모두 형성되어야 정결한 짐승으로 인정하신다.
쪽발이어야 하고, 되새김질해야 하는 것이다.
쪽발이라도 되새길질을 하지 못하거나 되새김질은 하지만 쪽발이 아닌 경우에는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시킨다.
쪽발은 흙을 밟는 발에 약간의 틈이라도 생기는 특성이 있고, 되새김질은 초식동물들이 풀을 뜯어 먹을 때 혹시 독초들도 함께 뜯어 먹을 수 있다.
독초들을 뜯어 먹더라도 되새김질을 하면서 모든 독까지도 소화해내면서 독은 비게, 기름에 쌓이게 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짐승의 기름은 먹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신다.
정결한 짐승은 대체적으로 초식동물이 이에 해당한다.
소, 양, 염소와 같은 경우에는 쪽발이면서 되새김질을 하기 때문에 정결한 짐승으로 인정하신다.
정결한 짐승이기 때문에 육식을 허락하신다.
초식동물이라 할지라도 쪽발이 아니거나 되새김질을 하지 못하는 짐승은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하고 있다.
돼지, 낙타, 나귀, 말, 개, 토끼, 너구리, 원숭이 같은 경우에는 부정한 짐승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먹어서는 안 되는 짐승들이다.
대체적으로 부정한 짐승은 잡식성으로 육식을 함께 먹이로 먹는 동물들이라 할 수 있다.
ⓑ 물에 사는 물고기인 경우
바다나 강이나 호수나 냇가와 같은 물에 사는 물고기의 경우에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동시에 있어야 정결한 물고기로 인정한다.
지느러미가 있더라도 비늘이 없거나, 비늘이 있더라도 지느러미가 없으면 부정한 물고기로 분류하고 있다.
왜냐하면 물이란 존재는 땅, 흙에서 흘러오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고기에 지느러미가 있으면 흙에서 함께 흘러들어온 부정한 것들을 피하여 빠르게 지나갈 수 있고, 비늘이 있으면 부정한 것들을 막아낼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돔 종류나 조기나 잉어나 붕어와 같은 물고기는 지느러미도 있고, 비늘도 있기 때문에 정결한 물고기로 분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장어류, 고등어, 갈치, 오징어, 미꾸라지, 메기와 같은 어류들은 지느러미는 있지만, 비늘이 없기 때문에 부정한 물고기 종류로 분류시키는 것이다.
우리들의 식생활에 자주 등장하는 생선들 중에는 부정한 물고기로 분류된 생선들이 아주 많다.
ⓒ 날개가 있는 새의 경우
하나님께서 새들은 특별하게 부정한 새의 종류를 분류시켜 주고 계신다.
13-19절까지 하나님께서 부정한 새로 분류한 새들은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 말똥가리와 말똥가리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타흐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가마우지와 부엉이와 흰 올빼미와 사다새와 너새와 황새와 백로 종류와 오디새와 박쥐니라.”라고 분류시켜 주었다.
부정한 새로 분류하지 않은 새들은 정결한 새로 분류할 수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된다.
곧 비둘기, 꿩, 메추라기, 닭, 오리, 참새, 까치와 같은 새들이다.
하나님께서 부정한 새로 분류한 새들은 잡식성으로 사체도 먹는 새들이다.
그러나 정결한 새들은 벌레를 잡아먹거나 초식성 새들이라 할 수 있다.
ⓓ 곤충의 경우
곤충은 날개가 있어서 날아다닐 수 있고, 뛸 수 있는 다리가 있어야 정결한 곤충으로 인정하신다.
곤충이 날개를 가지고 날아다니는 것과 껑충껑충 뛰는 것도 땅, 흙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날개가 있고, 뛸 수 있는 다리를 가진 곤충은 정결한 곤충이기 때문에 식용으로 먹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곧 22절에서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팥중이 종류는 먹을 수 있는 정결한 곤충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날개가 있어도 뛰는 다리가 없거나 뛰는 다리는 있어도 날개가 없는 곤충은 부정한 곤충이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 길짐승의 경우
들짐승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흙에서 기어 다니거나 흙과 함께 사는 짐승들이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두더지, 쥐, 모든 뱀을 비롯한 도마뱀 종류, 악어, 카멜레온과 같은 길짐승은 부정하다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가증스럽다고 번역하고 있고, 히브리 원문 직역 성경에서는 혐오스럽다고 번역하고 있다.
가증스러운 것이나 혐오스러운 것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정결에 반하는 것들을 가증스럽다거나 혐오스럽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가증스러운 것이나 혐오스러운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하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으면 가증스럽거나 혐오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들어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면서 생령이 되게 하셨는데, 그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 자연의 기본질서를 깨뜨리려고 하는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동성애를 주장하거나 반려동물을 주장하거나 수간을 행하는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운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동성애자들과 수간을 행하는 자들은 반드시 죽이라고 매우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③ 축복으로 부정과 정결을 구별해 주신 하나님.
정결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거룩한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길은 하나님께서 정결한 짐승, 새들, 물고기들, 곤충들을 양식으로 삼도록 해 주신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은 정결한 것으로만 고집하며 먹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은 먹을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먹어도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따라서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해 주신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결함을 따라서 정결한 양식을 먹도록 구별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부정과 정결을 구별해 주신 것은 하나님 백성들의 건강과 온전함과 정결함과 거룩함을 지켜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육신적으로도 하나님 백성들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영적으로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경계선이다.
그러기에 정결한 하나님의 백성들,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부정한 떼거리들의 사체조차 만지거나 접촉해서는 안 된다.
부정한 떼거리들이 접촉한 것들은 모조리 부정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정한 떼거리들을 만지거나 옮기거나 접촉했을 때에는 반드시 흐르는 은혜의 물에 씻어야 하고, 옷을 빨면서 정결함을 입어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면서 부정한 떼거리들을 만지거나 접촉하면서 부정하게 되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시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서 거룩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결케 함을 받아야 하나님의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L4 & B4.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 사도가 욥바라는 도시에서 낮시간에 환상을 보게 된다.
하늘에서 큰 그릇이 내려오는데, 그 그릇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베드로는 즉시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하늘에서 다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 성경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마치 청결한 것처럼 해석하고 있지만, 본래 의미는 하나님께서 정결케 하신 것이라고 해석해야 옳은 해석이다.
이런 환상은 세 번에 걸쳐서 주어진다.
이 환상에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부정한 것을 정결케 하셨다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물론 이 환상에서 주어지는 의미는 하나님의 선민이 아닌 이방인들을 향하여 구원의 세계를 펼쳐가시려는 하나님의 비전, 의도, 뜻이 담겨져 있는 환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구약시대의 모든 율법을 이루셨기 때문에 부정과 정결을 구별하는 율법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다 이루어내신 것이다.
흔히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딜레마로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곧 우리나라 민속문화에 따라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거나 차례를 드렸던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 문제는 이방인의 지역이었던 고린도 교회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던 문제이다.
고린도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본래부터 온갖 우상들, 잡다한 신들이 많았던 대표적인 지역이다.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온갖 우상들을 섬기면서 살았던 사람들이고, 이들 중에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생겨나면서 고린도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관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계신다.
이방 신들에게 제사했던 음식도 본래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상숭배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 트라우마가 있고 우상을 섬기는 제사상에 드려졌던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는 사람이라면 제사에 올려졌던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주변에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제사는 드리지 않으면서 제사 음식은 탐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 앞에서도 제사에 드려졌던 음식을 먹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러나 아무리 우상에게 드렸던 음식이라 해도, 근본적으로 그 음식을 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떤 음식이든지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는 믿음, 담대함이 있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제사에 드려졌던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절제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또 하나는 흔히 반려동물이라는 미명으로 개고기 또는 고양이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
하나님 앞에서 반려동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 그 어디에서도 반려동물을 따로 인정한 말씀이 없다.
사람은 사람이고, 동물은 동물일 뿐이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들 중에 하나인 나귀도 반려동물이 아니다.
오히려 부정한 짐승으로 구별시키고 있다.
부정한 짐승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과 너무 친숙한 짐승이기 때문에 나귀를 위해서 어린 양으로 대속하여 함께 살라고 말씀하신다.
어린 양으로 대속하지 않으려고 하면 아무리 나귀라고 하더라도 뼈를 꺾어 죽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짐승도 인간처럼 대우받으면서 반려동물이라는 미명으로 불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반려동물이란 용어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인본주의에 의해서 사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 자연의 기본질서를 파괴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작품에 불과하다.
부정과 정결의 개념을 주님의 십자가로 완성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의를 이루어주신 예수님 앞에서는 개고기나 고양이고기나 토끼고기나 소고기나 돼지고기나 닭고기나 오리고기나 양고기나 염소고기나 다 똑같은 육식할 수 있는 고기에 불과하다.
어느 나라에는 소를 신성시하여 소를 먹지 않는 나라도 있고, 소를 잡아먹으면 징역을 살거나 벌금을 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낳고 자라고 성장한 한우는 너나 할 것 없이 굉장히 좋아하는 고기이다.
소고기값이 너무 비싸서 그림의 떡처럼 보여서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들의 호불호에 따라서 개고기든, 양고기든, 고양이 고기든,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오리고기든, 닭고기든 심지어 뱀고기든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고, 먹고 싶지 않으면 안 먹으면 되는 것이다.
자기가 안 먹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에 대하여 가타부타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오직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어놓으신 십자가의 보혈과 복음으로만 살면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8;12-13에서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고린도전서 10:27-31에서도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살아 부활하심으로 모는 부정을 정결케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더 이상 부정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을 입은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에게는 부정과 정결의 개념은 이미 다 해결되었고,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부정과 정결의 구별을 완전하게 온전하게 이루어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부정과 정결로 구별하는 율법의 개념이 사라지고 없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율법과 규례와 법도에서 해방을 받고 자유 함을 누리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정과 정결의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듯이,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옳음과 그름의 개념, 의로움과 불의의 개념에 대하여 매우 심각하게 여기면서 신앙 생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신앙인들은 믿음과 불신의 개념을 명확하게 분별하면서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믿음으로, 의로움으로, 옳음으로 사는 길만이 정결하게 거룩하게 온전하게 살아가는 길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기 위하여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오는 율법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이젠 더 이상 부정도, 죄도 없이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하나님과 함께 천국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오직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어주신 의, 거룩함, 정결함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답게, 당당하고 굳건하게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도 힘차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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