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불출의 한담 / 김옥춘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가르치고 키워봤자, 저 잘나서 큰 줄 알고 부모의 공은 모른다고 섭섭해 해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식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낳고 키운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몸으로 낳은 자식이니까 본능적으로 귀하고 소중하기에 좀 더 잘 성장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동물이나 인간이나 본능이고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클 때 무엇을 해주던지 아깝지 않았고 즐거움이었고, 그런 일로 인해 행복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다 큰 후에 서운하게 할 때가 있으면 괘씸한 생각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딸이 결혼하겠다고 말했을 때 잘 살까 하며 염려를 하다가도, 평상시에 하던 대로만 하면 결혼해서도 제 앞가림은 하고 살겠지 하며 믿고 마음 편히 갖기로 했다. 결혼 준비를 할 때 경제적인 문제에서부터 모든 준비를 예비신랑과 의논해가며 스스로 해결하는 딸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아서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랑 될 청년과 10년 동안 예쁘게 사귀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걱정하고 서운해하기보다 믿음이 갔다.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을 실천하는 딸이 그저 미덥고 신통할 뿐이었다.
어려서부터 책임감이 강하고 제 할 일은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딸이었다. 어느 해 우리 집 난방시설을 연탄아궁이에서 기름보일러로 바꾸었다. 겨울이 깊어지면 새벽마다 보일러를 한 번씩 작동해야 집안이 따뜻해지고 식구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활동할 수 있었다. 보일러는 지하실에 있고 스위치는 어머님이 쓰는 안방에 있었다. 그때만 해도 기술이 모자랐는지 점화할 때 쿵쿵 덜컹덜컹 하는 소음이 심했기 때문에 어머님은 보일러 스위치 올리는 것을 무섭다고 했다. 새벽마다 건넌방에서 자던 내가 하던 것을 어느 날부터 안방에서 할머니와 같이 잠을 자는 아홉 살짜리 딸이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 후 매일 새벽이면 방바닥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한 시간쯤 달콤한 잠을 더 잘 수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어린 딸이지만 친정엄마 같다고 말했다. 자랄 때 이른 아침 아궁이에 군불을 때어 방바닥을 따뜻하게 해주던 엄마의 정을 딸에게서 느꼈기 때문이다. 더러 잠이 깨지 않을 수도 있으련만 그해 겨울이 다 가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일을 했다. 몸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따뜻해진다. 집안엔 온기가 가득했고 딸애는 온 식구들의 칭찬을 받으며 잘 컸다. 결혼을 하고도 친정집이 가까이 있으면 오며 가며 엄마를 귀찮게 할 것 같다면서 거리를 두고 신혼집을 구했다.
이제는 홀가분하게 엄마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처음엔 그것도 서운했으나 지나고 나니까 딸의 선택이 현명한 것 같다. 솔직한 자기 생각과 판단, 그에 따른 강력한 자기주장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주관이 뚜렷한 딸, 그도 나이 들면 다른 이들의 생각에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딸은 집안일밖에 모르던 나를 정말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서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미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주어 내 생활에 즐거움과 활력을 주기도 했다. 좋은 영화, 음악회, 연극공연, 교양강좌, 해외여행까지 주선해 주기도 했다. 특히 평생교육원 문학 강좌를 안내해 준 것은 내 인생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초부터 대가족이 법석대며 살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자기들 삶을 찾아 떠나고, 내 아이들도 자신들의 일에 적응하느라 바삐 지내고 있을 때, 반대로 할 일이 줄어든 나는 무료해진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를 받았다.
“엄마 세·바·시 신청할까요?”
CBS에서 유능한 강사들을 초청해서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참가신청을 하겠다는 것이다.
강사는 여섯 명, 한 사람이 15분 동안 본인들의 성공담이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살았던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이다. 여섯 명의 강사가 릴레이로 진행하는 한 시간 반은 금방 지나갔다. 강사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와 좌절을 겪고도 오뚝이처럼 일어선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신념이 확고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강연을 들으면서 지금 이 순간 학생이거나 패기 발랄한 청년들을 보면서,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강연이 참으로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럽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지만, 나는 이렇게 좋은 강연을 들은들 이제 와서 무슨 희망이 있으며 새로운 꿈을 꾸기나 하겠는가 하고 아쉬움이 커지기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에 홀린 것처럼 가슴이 마구 뛰는 것이다. 그 순간만은 나이를 잊고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보기도 한다. 끝나고 강연장 문턱을 넘으면서 가슴 뛰는 일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해도 그 순간만은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의 다짐이 흐지부지될 때쯤이면 딸에게서 또 신청한다는 연락이 온다.
비 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을 가리지 않고, 딸이 좋은 영화나 음악회가 있다고 하면 달려갔다. 이 모든 것이 늦게 시작한 글쓰기의 초석이 되기도 하고 내 삶에 활력소가 되므로 사양하지 않는다. 덕분에 자식 키운 덕을 톡톡히 보며 살고 있다. 건강하게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시집간 내 딸도 마음 놓고 살 것이다. 자식이지만 부모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따뜻하고 넉넉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러 서운한 일이 있어도 좋았던 때를 생각하면 서운한 마음은 봄눈 녹듯 사라진다. 나는 생각한다. ‘인생의 스승은 위아래가 없다’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나와 남편이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고 보호하고 뒷바라지를 해주었지만,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서 내가 도움과 보호를 받는 것이다. 자식에게 주는 재미도 컸지만, 받는 재미는 더 크다. 나는 딸의 말을 잘 듣고, 아들 말도 잘 듣는다. 자식들이 부모를 위해 뭔가 주려고 할 때,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고맙게 생각하고 받는 것이 중요하다. 자식들도 부모를 위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매우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