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7월2일 토요일 말씀묵상 ♣
성경:빌립보서3:4-6(신321P)
제목: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4.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할렐루야!7월에도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
여러분!빌립보서3:1-3절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칙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1.기뻐하라(1절)
2.삼가라(2절).
오늘 본문 2절에는 이런 행복과 기쁨을 간직하고 지키기 위해 우리가 조심하고 삼가야 할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개들을 삼가고”
두 번째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
세 번째 “손할례당을 삼가라”
3.일하라(3절).
그리고 적극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성령으로 봉사하십시오”
둘째,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자랑하십시오”
셋째, “자기의 육체를 신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그리스도인의 생활 원칙을 아셨습니까?
이제는 이 원칙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시며,삼가할 것을 삼가시고,적극적으로 성령 안에서 봉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빌3:4-6절)
행16:31 말씀입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이는 바울이 빌립보에서 그가 갇혔던 옥의 간수에게 했던 말씀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은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을 기쁘게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줄로 알고, 예수님 안에서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빌립보 교회가 많이 성장했습니다. 집사들을 세우고, 또한 교회를 감독할 장로들도 세웠습니다. 그렇게 되자 인근에 있던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 빌립보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거짓된 가르침으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하려 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할례에 관한 말씀이 기록된 성경도 읽어주었을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그에게 보낸 그들의 사자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소상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빌립보서를 기록해서, 건강을 회복한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로 돌아갈 때 그것을 함께 가지고 가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힘써 말씀했습니다. 그래야 그들이 율법주의자들의 미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율법주의자들을 삼가라고 엄하게 경고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개들이었습니다. 개들처럼 그들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율법주의자들은 행악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거스르며, 성도들을 교란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율법주의자들은 몸을 상해하는 일을 했습니다. 마치 엘리야와 대결하던 바알 선지자들처럼, 그들은 괜스레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받은 육신의 할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과는 달리,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들이 참 할례자이며 언약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예로 들었습니다. 바울은 진정 육체를 신뢰할 만했지만, 그는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했습니다. 육체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바울은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4절).
빌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이 말은 “비록 나는 진정 육체를 신뢰할 만하지만” 뜻입니다.
바울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바울은 얼마든지 육체를 신뢰할 만하지만, 그는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육체를 신뢰했습니다. 그들은 할례 받은 육체로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마음에 할례를 받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오직 예수님을 신뢰하며 예수님으로 자랑할 뿐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도 육체를 신뢰하지 않음을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에게 육체를 신뢰할 만한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그 정반대였습니다. 바울은 정말 육체를 신뢰할 만했지만, 그는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했습니다.
오늘 본문 4절 후반부 말씀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육체를 신뢰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육체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육체를 신뢰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을 알기 전, 바울은 육체로 구원을 받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 난 뒤에, 바울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더 이상 육체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만을 신뢰했습니다. 더 이상 그가 가진 의는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가 가진 의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였습니다.
롬10:3에서 바울은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이 바로 육체를 신뢰하는 율법주의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맏아들과 둘째 아들의 모습은 서로 대조적입니다.
맏아들은 육체를 신뢰하며 자기 의를 세웠습니다. 반면에 둘째 아들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아버지의 자비만을 구했습니다.
맏아들이 한 말입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둘째 아들이 한 말입니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겠습니까?
맏아들의 태도가 아니라 둘째 아들의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이 사실은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보면 분명해집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멸시를 받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이와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반면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그는 가슴을 치면서 이와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율법주의자들처럼 육체를 신뢰하지 맙시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맏아들이나 바리새인처럼, 육체를 신뢰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합니다. 바울처럼 오직 예수님을 신뢰하며, 예수님으로만 자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바울은 그의 출생으로도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5절).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일곱 가지 곧 완전수로 자기가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들을 열거했습니다. 앞에 나오는 네 가지는 바울이 그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특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세 가지는 바울이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한 것들이었습니다.
이외에도 행22:3 말씀처럼, 바울은 당시 최고 학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또한 행22:28 말씀처럼,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일곱 가지 완전수로만 예를 들어도 충분했습니다. 먼저 그의 출생부터 살펴봅니다.
빌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바울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족속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이들 네 가지는 바울이 그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출생으로도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
첫째,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할례를 강조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을 믿더라도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음을 먼저 부각시켰습니다.
이스마엘과 그의 자손들은 십삼 세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교로 개종할 때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난지 팔일이 되자, 율법대로 그의 부모에 의해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정통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 받은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했습니다. 할례 받은 육체가 그에게 구원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종교 의식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구원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습니다.
둘째, “이스라엘 족속이요”
아브라함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아브라함의 후사는 이삭이었습니다. 이삭에게는 두 아들, 야곱과 에서가 있었습니다. 이삭의 후사는 야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롬9:4-5 전반부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이렇듯 이스라엘 족속은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가 이스라엘 족속임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구원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국가에서 태어나 기독교 가정에서 산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셋째, “베냐민 지파요”입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베냐민만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바울의 히브리식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딴 사울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렘에 거주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둘로 나뉠 때,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와 함께 다윗의 집에 충성했습니다. 바사의 재상 하만의 음모에서 유다인들을 구한 모르드개도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이렇듯 베냐민 지파는 작지만 긍지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베냐민 지파임을 신뢰하지 아니했습니다. 그것으로 그가 구원을 받지는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몇 대째 믿어온 집안이라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각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습니다.
넷째,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입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부모는 양쪽 다 유대인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이방인의 피가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21:40 말씀처럼, 바울은 히브리 말에 능통했습니다. 또한 행26:4 말씀처럼, 그의 삶은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랐습니다. 비록 바울은 이방 땅인 길리기아 다소에서 나서 자랐지만, 헬라파 유대인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늘 지켰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임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고 여기시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역사와 전통이 있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는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바울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이들 네 가지는 바울이 태어나면서부터 그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특권들이었습니다. 진정 바울의 출생은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
물론 바울이 전에는 육체를 신뢰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그의 구원에 유익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알고 난 뒤에, 이제 그는 더 이상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했습니다. 도리어 이런 것들이 그의 구원에 해가 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94장의 가사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예수님이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서는 이 세상의 부귀와 명예와 행복을 기꺼이 버립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했습니다.
우리도 육체를 신뢰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힘 있게 예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3. 바울은 그의 노력으로도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5-6절).
빌3:5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여기에 나오는 세 가지는 바울이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었습니다.
“율법으로는”, “열심으로는”, “율법의 의로는” 이처럼 세 가지 모두 “무엇으로는” 하면서, 같은 방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 바울은 그의 노력으로도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
첫째,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입니다.
행26:5 말씀과 같이, 바리새인은 유대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율법뿐만 아니라, 그에 더해서 조상들의 전통까지 철저히 지킨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행23:6 말씀처럼, 바울은 바리새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또한 행5:34 말씀처럼, 그는 당시 최고의 율법교사인 바리새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말하면, 바울은 전혀 손색없는 철저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임을 신뢰하지 아니했습니다. 그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교단이나, 자신이 가진 종교적 직분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둘째,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입니다.
행8:3 말씀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더군다나 행9:1-2 말씀처럼, 사울 곧 바울은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까지 잡아오려 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이단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이스라엘의 순결을 해친다고 여겼습니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했음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종교적 열심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얼마든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셋째,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입니다.
바울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족속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요구하는 의로는 아무도 바울을 흠잡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율법의 의로는 아무 것도 자책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전형적이고도 모범적인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임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선행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결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예로 들었습니다. 바울은 진정 육체를 신뢰할 만했지만, 그는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했습니다. 육체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바울은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4절).
2.바울은 그의 출생으로도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5절).
3. 바울은 그의 노력으로도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5-6절).
여러분! 오늘 우리는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
둘째로, 바울은 그의 출생으로도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
셋째로, 바울은 그의 노력으로도 육체를 신뢰할 만했습니다.
만일 육체를 신뢰하려 한다면, 바울은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했습니다. 도리어 바울은 그가 신뢰하던 육체를 해로 여기며,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는 그가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에는 바울과 상반된 태도를 보여준 인물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어떤 부자 관리입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와서 자기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이 영생을 얻지 못했음을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부자 관리에게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그에게 몇 가지 계명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 관리는 자기가 어려서부터 그것들을 다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과거의 바울처럼,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눅18:22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부자 관리는 예수님을 따르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이전처럼 육체를 신뢰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 이전에 자신이 신뢰하던 육체를 모두 떨쳐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육체를 신뢰하며 예수님을 떠나렵니까? 이는 사망의 길입니다. 아니면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렵니까? 이는 생명의 길입니다.
바울처럼,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따름으로 영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빌립보서3:4-6절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하는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빌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