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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 : 25 하나님의 어리석음 - 고전 1 : 27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고전 1 : 25 하나님의 어리석음 -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하나님의 방법은 최고의 방법이다.
그것은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며 가장 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은 사람의 최선의 생각보다 낫고 그 어떤 힘 있는 수단보다 낫다.
그것은 사람의 웅변적 말이나 수사학적 말보다 힘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감동시키는 정도가 아니고, 사람의 죽었던 영을 살리고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한다.
우리는 오늘도 전도와 설교의 효력을 믿는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과 하나님의 약하신 것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사도가 그렇게 표현한 것은 26절 이하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택하신 학식 없는 미련한 자들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약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택하신 권세 없는 소외되고 약한 자들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께 속한 미련하고 약한 자들이 세상의 지혜롭고 권세 있는 자들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즉, 사람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 사람보다 강하니라
인간이 교만하여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일축했지만 도리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났다.
비록 십자가가 인간의 눈으로는 하나님의 패배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능력이 된 것이다.
바울은 또 말한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선택하시고 때가 되어 부르신 자들을 가리킨다. 이것을 효력 있는 부르심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방법은 최선의 방법이다. 그것은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며 가장 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은 인간의 최선의 생각보다 낫고 그 어떤 힘 있는 수단보다 낫다. 그것은 인간의 웅변적 말이나 수사학적 말보다 힘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조금 감동시키는 정도가 아니고, 사람의 죽었던 영을 살리고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한다. 우리는 오늘도 전도와 설교의 효력을 믿는다.
우리는 말세지말인 오늘날 인본주의적인 자유주의 신학이나 은사주의, 신비주의를 경계하고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한다.
성경적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의 복음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사실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이 속죄신앙을 가지자. 이 신앙이 구원의 길이다. 그러나 이 신앙이 없으면 그는 멸망에 이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이 복음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따라 이 십자가의 말씀, 곧 속죄의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해야 한다.
5. 하나님의 선택 ( 1 : 26 - 31 )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선택하는 기준을 설명함으로써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잘못된 신앙 의식을 바로잡고자 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지혜가 있거나 능력이 많아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은 무능력하고 약하며 미련한 자들을 선택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신앙적 지혜와 영적 능력을 자랑함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의 선택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 되었다.
현대의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의 신앙적 지식과 영적 능력 및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미련하고 연약한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고전 1 : 26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
형제들이라는 말은 신자들이 주 안에서 믿음의 한 식구 됨을 보인다.
그것은 사회적 신분, 학력, 재산 정도를 뛰어넘는 말이다. 교회에는 높고 낮은 계급이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부르심을 받은 형제들이다.
여기에서 부르심이란 성령의 역사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것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를 실제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효력 있는 부르심이다.
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바울은 앞에서 논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고린도 교회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 한다.
'부르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레신'(*)은 하나님의 주체적이고 동적인 모습이 강조된 말이다.
* 롬 11: 29 -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엡 1: 18 -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고린도 교회의 부르심이 하나님한테서 왔음을 시사한다.
'보라'의 헬라어 '블레페테'(*)는 문법상 직설법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본 절에서는 명령형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Morris, Alford, Meyer).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 속에 담긴 의미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됨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을 받고 양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음과 신의 성품에 참예하여 영생을 소유한 신적 존재가 된다고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세에 이미 영생을 누린 자들이다. 그런데 그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세상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자들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으니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것이다.
2]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 능한 자가 ...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육체를 따라'의 헬라어 '카타 사르카'(*)는 '육체를 표준으로 삼아'라고 해석되는데, 대개 '육체'는 인성(人性)을 뜻하므로, 세속적인 관점으로 분별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문구는 '지혜로운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에 모두 적용된다.
'지혜로운 자'(*, 소포이)는 헬라의 철학자들처럼 높은 교육을 받은 지적인 사람들을 가리키고 '능한 자'(*, 뒤나토이)는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자를 의미하며, '문벌 좋은 자'(*, 유게네이스)는 사회적으로 상류 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바울은 이 세 용어를 사용해서 지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유력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상류 계급에 속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이러한 외적인 조건에 근거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고린도 교회에는 육신적으로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 정치적 권력이나 재력(財力)이 있는 자, 좋은 가문이나 사회적 신분이 있는 자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은 고린도교회만의 현상이 아니고 역사상 모든 교회들의 일반적 현상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예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 마 19: 24 -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세상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그의 무지와 어리석음이지만 세상의 만족과 즐거움은 그를 어둡게 하였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였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은 믿음에 입문하기가 비교적 쉽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음을 일깨운다.
육체를 따라서라는 말은 육신적으로 타고난 조건 곧 태어난 환경과 배경을 말한다.
지혜 있는 자라는 <소포스>는 여기서는 학벌이 좋은 사람을 뜻한다. 예수님 공생애 당시 제자 중 배운 자가 많지 않았으며, 초대 교회를 통하여 학식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점차 세상 지식과는 관계없이 영적인 지식이 충만한 사람들이 많이 나타남으로써 사도를 계승하게 된 것이다.
능한 자는 <뒤나토스>인데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다. 당시의 교인들은 힘 있는 로마인들보다는 피지배자로 억압받는 사람들이 많이 믿었으며, 돈 많은 사람보다는 돈 없는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많이 되었다.
또 남성보다 여성이 많았음은 물론이다. 문벌 좋은 자인 <유게네스>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귀족 계급을 가리키는데, 귀족보다는 가문의 배경이 없는 평민 계층이, 평민보다는 노예 계층이 많이 믿었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에 온통 무식하고 힘없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이면서도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므로 가문적으로 배경이 든든하였고, 또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대교의 율법을 배웠고 헬라 지식에도 풍부하였으므로 학벌로도 누구에 뒤떨어지지 않았으며, 바리새파로서 당시엔 권력층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빌라도로부터 주님을 달라고 하여 예비한 무덤에 안장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 같은 이는 부자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바나바, 아볼로, 회당장 그리스보, 니고데모 같은 이는 학식이 많은 자였고, 백부장처럼 권력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그밖에도 많은 부자들과 귀족들도 있었다.
그러나 교회에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다수는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출신 배경이나 환경이 어려운 이들이 더 많다는 뜻이다.
바울은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형제들’이라는 명칭은 주 안에서 믿음의 한 식구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사회적 신분, 학력, 재산의 차이를 뛰어넘는 명칭이다.
교회에는 높고 낮은 계급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부르심을 받은 형제들이다.
여기에 ‘부르심’이란 내적인 부르심을 가리킨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부르심이다.
이것은 우리를 실제로 구원하시는 효력 있는 부르심이다.
고린도 교회에는 육체를 따라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 몸의 건강이나 정치적 권세나 물질적 힘이 있는 자, 가문이나 사회적 신분이 있는 자가 많지 않았다.
더러 조금은 그런 자가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오늘날의 교회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야고보서 2: 5도,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이 세상에서 부족함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찾는 자가 드물다. 그것은 그의 무지와 어리석음이지만 세상의 만족과 즐거움이 그를 영적으로 어둡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의 가난한 자들은 비교적 믿음에 들어가기가 쉽다.
고전 1 : 27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우리 중 다수는 과거에 미련한 자들, 약한 자들, 천하고 멸시받는 자들,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었다.
머리가 좋고 말을 잘하는 자들이 아니고 좋은 학교 출신도 아니고 몸이 건강한 자들도 아니다.
세상적으로 존귀하거나 인정받거나 잘난 자들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택함을 입었고 구원을 받았다.
1]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택하사'의 헬라어 '엑셀렉사토'(*)는 '뽑아내다', '선택하다'라는 뜻의 '에클레고'(*)의 부정과거 중간태형으로 혼자서 스스로 선택한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이 28절까지 반복적으로 제시되어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선택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어리석고 약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선택하신 사실은 외적인 조건들이 일시적이며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구원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련한 것이라는 <모로스>는 머리가 나쁘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학식 없는 자 또는 배움이 없는 자를 뜻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말 미련한 자들은 학식이 많음을 뽐내면서 자신이 멸망 길로 가고 있음을 모르는 자들이다.
택하다라는 <에클레고>는 26절에서 부르심이라고 한 <클레시스>와 같은 말이며, 교회라는 <에클레시아>와도 같은 뜻으로서 모두 세상과 구별하였음을 뜻하는 말이다.
2]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낮은 자를 택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이 헤아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5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하나님께서는 인류 중에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된 자들을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의 영원하시며 불변하신 목적과 그의 은밀한 계획과 기쁘신 뜻에 따라 오직 그의 값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고 ; 신앙이나 선행들이나, 혹은 그것들 가운데서 끝까지 견딤이나, 혹은 피조물 안의 다른 어떤 것을 조건들로나 그를 그것으로 이끄는 원인들로 미리 아심이 없이 하셨으며 ; 모든 것이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송하게 하셨다.
(1) 선민 이스라엘의 민족적 선택
* 신 4: 37 -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 호 13: 5 -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2) 특별한 직무와 봉사에 합당한 인물의 선택
* 신 18: 5 -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 삼상 10: 24 -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 시 78: 70 -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3) 구원받을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
* 행 3: 4-8 -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 롬 11: 5 -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 엡 1: 4, 11 -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 벧전 1: 2 -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4) 구원의 선택에서 제외된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받게 된다.
* 마 11: 25-26 -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 롬 9: 13 -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롬 9: 17-18 -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 롬 9: 21-22 -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 벧후 2: 9 -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지혜 있는 자는 학식이 있고 세상 지식이 많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학식 있는 자들이 부끄럽게 되는 이유는 세상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학자인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음으로써 지혜가 자라고 인격이 성장하게 되어 세상 사람들이 놀라게 된다.
행 4 :13에 보면 베드로가 붙잡힌 후에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그리고 뭇 서기관들 앞에서 설교하듯이 변론할 때 그들이 베드로를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놀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교회 내에서도 먼저 믿은 자들 중에는 학식 없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중에 믿은 학식 있는 자들이 그들을 보면서 늦게 믿음으로써 자신들의 영적 지식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약한 것이라는 <아스데네스>는 강함이라는 <스데네스>에 부정 접두어 <아>가 붙어서 장점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며, 세상의 약한 것이란 이러한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뜻한다.
강한 것은 <이스퀴로스>인데 강점(장점)이 있는 사람 또는 권력 있으므로 힘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바울 사도는 약한 자들이 오히려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 있는 자들은 세상에서 세도를 부리며 자신들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조금만 어려운 일을 만나도 금방 위축되고 자신들이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알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남을 돕고 힘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가 부패하고 무능하여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만, 처음 우리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던 시기에는 기독교와 성도들에 대하여 좋은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만큼 성장한 것이다.
기독교가 타락하지 않고 정상적이라면 복음에 능력이 나타난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부끄러움은 최후의 심판 때에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그때의 부끄러움이란 과연 상상할 수 없는 부끄러움일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생애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면서 모든 자랑과 교만과 온갖 정욕 속에서 살았으나 그 모든 것들로 말미암아 결국 자신들이 영원한 멸망을 하게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몸부림치며 통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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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