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던 김기덕 감독의 영화 <해안선>이 드디어 개봉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건장한 남아라면 일생에 한번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려가 보았을 그 군대. 영화 <해안선>은 그 안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을 보여준 영화이다. 김기덕의 영화 <해안선>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왜냐하면, 영화<해안선>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중에서 가장 사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공적이며 시사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작과들 비교하여 확실히 무엇인가가 다르다. 물론 시사적인 문제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했던 <수취인불명>이라는 영화가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 <해안선>과 같이 어떤 메세지와 자기주장이 강하게 표출되지는 않았던 영화였다. 이를 김기덕 영화의 발전이라해야 보아야 할까?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나로서는 김기덕 감독이 <나쁜 남자>이후에 비판세력을 의식하거나 흥행이란 것에 눈을 뜬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중에서 대표적이고 일반적인 것이 바로 전작들처럼 일반 관객들이 보기에 그렇게까지 괴롭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김기덕 감독 특유의 연출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로서는 김기덕 감독이 무엇을 의식한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서로 일정한 연결선을 갖지 못하고 즉시적으로 난잡하게 흩어져있는 상징들과 세련되지 못하고 거칠기만 한 표현방식은 그의 한계이기도 했지만 그 자신만의 특유의 방식이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 <해안선>에서처럼 노골적인 메세지를 던지는 것은 리얼리티를 반감시키는 국방부에서 만든 <배달의 기수>나 운동권에서 만든 유치한 선동류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역시 그가 영화속에서 확연하게 자의식을 투영시킨 것을 볼 때에 필자로서는 여전히 김기독의 영화 <해안선>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김기덕은 나쁜남자를 다시 철책이 쳐져있는 해안선에 배치시켜놓고 다시금 `운명`에 의하여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혹여나 운명에 휘둘리는 나약한 나쁜남자 강상병에게 또다시 돌을 던지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운명이라는 말대신에 이 불확실성의 세상을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는 없는 인간의 본질적인 고통을 영화화했다고 표현하겠다. 이 정도면 대강 쓸데없는 비난을 면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내용에서 필자가 주목했던 부분은 사실 강상병이 아니라 그의 동기인 김상병이었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각자의 모든 캐릭터가 서로 복합적으로 어떤 상징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김상병에 대해서만 간략히 말해 보도록 하겠다. 사람들은 군에 가게되면 보통 두 부류의 인물로 화하게 된다. 하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강상병같은 또라이가 되어 마음속 깊은 곳에 강상병을 품고 제대하게 되는 스타일과 군복무기간 동안 그저 아무 사고없이 무사히 제대하기를 바라는 스타일이다. 전자와 후자와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군대라는 곳은 어느정도 강상병의 기질을 만들어서 내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당장에 대학내에 만연한 예비역 문화를 생각해 보자. 군대문화와 예비역 문화, 그리고 대학문화와 운동권 문화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영화 <해안선>에서 김상병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앞서 말했듯이 그럭저럭 군복무기간을 떼우고자 하는 `끌려간 군인의 일반적인 모습`이면서도, 자신의 절친한 동기였던 강상병을 막 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강상병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며, 미쳐버린 여자를 범하고도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서슴없이 낙태수술을 감행하는 군인들 속에서 유일하게 죄책감을 느끼는 인간이다. 이렇듯 김상병은 필자가 보기에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특이한 사람이었다.
바로 이 김상병에게 집중해 보면 경계근무를 서는 병사를 총으로 쏜 것이 과연 강상병인지도 대강 추측할 수 있게 된다. 김상병은 총을 잃어버리고 연병장에서 기합을 받다가 뒤돌아본 곳에서 자신의 총을 가지고 서있는 강상병을 잠시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강상병의 얼굴을 흔들려 흐려보이게 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강상병의 모습이 확연하게 나온다. 이렇듯 명동에서의 그 강상병의 총검술 장면(?)은 전혀 흔들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동안 <흔들리며 보였던 강상병>은 정말 강상병이 아니라 김상병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어떤 심리의 발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군대라는 조직에서의 불합리성에 현실적으로 대항할 수는 없지만, 또한 그것을 인정할 수도 없는 심리가 결국 강상병의 환영을 만들고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감정을 대신하여 평소에 증오해 왔던 고참에게 대드는 후임병과 그 사실을 눈치챈 또 다른 후임병을 살해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개인적인 추측과 영화읽기일 뿐이니 감상하는 이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유추할 수도 있겠다. 다만 영화의 중반부 이후부터 영화는 누가 쏘아 죽였는지를 확실히 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되겠다.
영화 <해안선>은 민족 분단의 모순에서 오는 고통과 비극을 영상화했을 뿐만 아니라, 김기덕이 늘 표현해오던 인간내면의 무엇과 그 본질을 이야기하고자 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여러분들께 추천하면서 과연 군인이 우리의 적인지 고통받는 피압박자인지를, 그리고 진정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깊이 담으면서 현실을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를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가 사회의 가장 강한 고리라고 여기는 군대가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는 사실정도는 느낄 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