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한 장 / 고미선
마하보디 사원에서다. 대부분 여행사 일정은 한 번 입장하면 대탑의 위엄을 살피고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하지만, 수원불교문화원장은 대탑을 중점으로 이틀에 걸쳐 살피자고 제안하였다. 그는 순례 목적지를 선정하여 가려는 곳에 현지 안내인 안내만 받을 뿐이다. 의문점을 다 풀고 나면 대탑을 세 번씩이나 찾았던 이유를 알 수 있으려나.
보물찾기에 나섰다. 원장은 지도 한 장을 펴게 했다. 그 종이에는 서너 개의 크고 작은 사각형만 그려져 여백이 너무 많다. 일곱 군데 지점은 작게 표시하여 설명도 없다. 지도상 큰 사각형 한쪽 면에서 다른 쪽 면으로 꺾어질 때도 10분 이상 걸어야 하는 거리다. 가운데 대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미로처럼 계속 돌게 하여 만다라 그림 초안 같다. 신발은 대탑 출입 계단 아래에 여느 때처럼 벗어 두고 부직포 덧신을 신었다. 오후가 되자 새벽예불 때 보다 밀려드는 인파가 많아졌다.
싯다르타는 29세에 출가하여 6년 동안 전정각산(前正覺山)에서 고행했다. 계율을 지키며 단식하고 고행하더니 피골상접한 채 몸이 말라갔다. 수행자 싯다르타는 유영굴에 그림자만 남겨두고 나섰다. 싯다르타는 춘다가 공양한 우유죽을 먹고 나이란자나강에서 목욕했다. 강 언덕 가까이에 한 그루의 보리수를 보고 공손히 합장하여 나무 아래 풀을 깔고 앉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경전에 전한다.
싯타르타 부처님은 정각(正覺)을 이루기 위해 마하보디 대탑을 중심으로 한군데에서 7일씩 49일간 정진했다. 일행은 지도상 지점을 찾아 나섰다. 1주 차 지낸 곳은 금강좌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니 감실 근처 같다. 새벽예불 때 가사를 올렸던 감실 옆으로 돌아서니 의자가 있다. 이 지점은 전날 저녁에 동료와 앉아 명상했던 곳이다. 금강좌는 붉은 금색 치장을 하여 유리로 덮여있다. 합장하고 걸으며 몇 번이나 지나쳐도 동판을 살피지 못 한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동판이 조그맣게 세워있고 철책으로 둘러 비와 바람을 견딘다.
2주 차는 깨달음의 축복을 주신 보리수나무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응시한 장소 찾기다. 지도를 펴고 이리저리 맞추어도 구분이 서지 않았다. 탑돌이 하던 중 대탑 대각선 구석에 있었다. 두 번씩이나 그 자리에 앉아 법의식도 올리고 30분씩 묵언 명상한 곳이다. 긴 하트 모양의 보리수 잎사귀는 온 누리에 자비를 베풀며 수행의 근본으로 삼으라 한다.
3주 차는 연꽃이 올라와 발을 받쳐주시고 사과 공양을 많이 한 장소 찾기다. 처음 입장하여 걸을 때와 새벽에 탑돌이 할 때마다 아래층 기단부를 거쳐 갔다. 과일 공양을 특이하게 테이프 붙여가며 쓰러지지 않게 쌓아서 눈여겨 사진 찍은 곳이다. 미얀마 스님과 신도들이 무리 지어 앉아 염불하고 사과를 비롯한 망고와 바나나를 높게 올렸다. 동판에는 내가 읽을 수 없는 인도어와 사과라는 영어글자가 보여 보물 같았다.
4주 차는 보석빛으로 발광한 장소 찾기다. 사과 공양 장소와 정반대 위치인 바깥 사각형에 있다. 일곱 가지 보석을 갈아 합하니 황색 빛을 띠어 불교의 황 가사 유래가 된 장소다. 하얀색으로 칠해진 야트막한 벽돌 단에 부처상이 황 가사를 둘렀다. 상상 이외의 하얀색 법단은 기복신앙으로 여겼는데 탐진치 중에서 무지(無知)인 어리석음이었다. 법단 아래에 초록색 동판이 세워졌다.
둘레에서 여러 티베트 스님과 티베트인은 간격을 좁혀 오체투지 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쉼 없이 오체투지 한다. 티베트인들은 화장기없는 얼굴에 주름살이 골골이 새겨졌다. 검은 복장에 허리를 단단히 감아 매고 텅 빈 무념 상태로 절하고 있다.배와 다리가 하나 되게 땅에 붙도록 절한다. 사람이 죽어 하관할 때 더도 덜도 없이 땅속에 누울 만큼의 자리이다. 빈손으로 태어난 몸이지만 내려놓기를 잘하라는 가르침이다. 이마가 땅에 부딪힐 때마다 멍이 들고 혹이 생겨 성한 곳이 없다. 그들은 무엇을 찾으려고 온몸을 불사르고 있을까.
5주 차는 새벽예불을 드렸던 감실 계단 입구 자리의 법화경 설법지다.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고 아난다가 기록하여 경전으로 전해진다. 새벽예불에 동참하려고 두 시간 동안 줄을 섰던 곳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법화경 사경을 여러 번 하며 신심(信心)을 얻어 제주 통일사리탑에 봉안할 때가 떠오르니 경전이 눈에 어린다.
6주 차는 무칠란다 연못이다. 여기는 예상 밖의 장소여서 찾기에 애를 먹었다. 사각형 지도에만 의지하여 돌고 돌았으니 연못이 밖에 자리하리라고 생각 못 했다. 사각형 외부 대탑 남쪽에 석주가 높이 서 있고 그 너머에 연못이 있다. 전날 저녁에 사진을 찍었던 장소다. 일행 중에 혼자 카메라 입장료 내고 목에 걸어 촬영한 사진은 빛이 모자라 실패한 줄 알았다. 휴대폰 촬영은 금지하니 나에게만 간직된 유일한 사진이 된다. 대탑에서 반사된 빛은 연못 가운데로 비추었다. 사진에는 코브라 광배와 붉은 윤슬까지 나타나 그림 같다. 하지만, 아침의 광배는 또 다른 모습이다.
연못 가운데에 둥둥 떠 있는 부처상이 있다. 광배에 코브라를 일산(日傘)처럼 올린 이유도 궁금해졌다. 바람이 불면 쓰러질까 걱정인데 흔들림도 없다. 운무 속에 코브라가 부처님을 보호해주는 느낌은 연못이 맑아 숲속 같았다. 코브라는 용왕으로 변신하여 안개∙바라∙천둥∙번개 등으로부터 부처님을 보호하였다. 코브라 광배 아래 부처님은 이끼도 끼지 않은 채 빛났다. 부처님은 인도가 다종교를 섬기니 독룡 같은 번뇌의 뿌리조차 해탈시켜서일까.
7주 차에는 라자야타나 나무이다. 싯다르타는 오래전 수행을 같이한 다섯 비구한테 깨달음을 얻고 법을 전하려 생각한 장소였다. 철책으로 높게 쌓여 나무를 보호하고 있다. 큰 사각형 사원 외벽에 부처님 전생 이야기와 고행상 부조가 있다. 고행상은 울타리 벽에 조각되어 경전 속으로 빠진다. 벽에 새겨진 부조들도 처음 입장했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벽돌로 세워진 경계로 갈음했을 뿐이다. 근래 들어 대리석에 부처님 일대기가 조각되어 여법하게 보존되었다. 원통형에 새겨진 경전조차 못 읽는 사람도 마니차를 굴리면 안도감을 찾듯이 울타리의 부조를 바라만 보아도 환희심이 일었다.
사람은 어떤 목적을 갖고 찾느냐에 따라 눈에 보인다. 보물을 찾고 나자 일곱 군데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표지판이 모두 세워져 있다. 어떤 스님은 조그마한 그물망 텐트 안에서 100일 기도 작정하고 오셨는지 참선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자리에 몇 시간이고 가부좌로 앉아 명상하는 순례객도 보인다. 서너 시간을 걸으며 살펴도 합장하고 맨발로 걸어가는 순례객은 모두가 묵언이다. 무심코 지나친 장소지만, 마음에서 일어난 탐진치를 깨달았다.
보통 저녁에 대탑을 찾은 여행자는 희미한 조명 아래 뾰족한 대탑만 기억한다. 새벽예불에 참석해본 순례객은 새벽 4시에 출발하여도 6시가 되어야 입장한다. 그들은 부딪히는 사람 속에서 대보리사 성도상 친견한 일만 반추한다.
여행 끝내고 나자 기억에 오래 남은 것은 지도 한 장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머물게 하였다. 7과 49라는 의미는 영혼과 깨달음의 숫자였다. 꽃 공양과 과일 공양, 황 가사와 부처님, 보리수나무와 경전은 49재 영혼과 생전 예수 재에서 행해지는 실지 모습이었다.
나는 대탑 안에서 이모저모를 살피고 나니 큰 파도처럼 밀려오는 가피를 받았다. 나는 왜 태어났으며 생로병사는 무엇일까. 윤회와 업은 어디에서 왔을까. 연기(緣起)법은 인과에 따라 윤회한다는 믿음이다. 살아가는 동안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진치 삼독심을 각성한 기회였다. 두려워 말라는 불법을 대탑 기행에서 다시 새긴다. 하늘빛이 파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