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창포 바다에는 조개가 없다!
2005년 4월에는 주말마다 고향인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에 내려갔다.
연거푸 고향 바다*에도 다녀왔다.
어제는 5월 8일 일요일, 어버이날.
아내, 작은딸과 함께 고향에 들렀다.
5월 8일은 음력 4월 초하루, 마침 '바다가 열리는 날'이었다.
집나이 여든일곱 살인 어머니는 '바닷가에 가면 쓰러질 것 같다. 집에 남아 있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오랜만에 갯것을 잡아볼까 하여 호미 세 자루, 헌 양은그릇 두어 개를 챙겼다. 갯것을 잡기보다는 바다가 열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서울에서만 사는 딸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아내와 둘째 딸과 함께 무창포(武昌浦)에 갔더니만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바다가 열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한꺼번에 바다로 몰린 탓일까.
아침 8시 반경부터 갯물이 조금씩 바다 뒤쪽으로 빠지며 석대도(石台島) 앞 한가운데에 좁은 바닷길이 길게 나타났다. 성급한 사람들은 정강이에 차오르는 물속을 걸어서 바다 안목 깊숙이 들어갔다. 안목에는 바위너덜과 함께 약간의 모래밭이 펼쳐졌다.
나는 군화를 신은 채 무릎까지 차오르는 물을 첨벙거리며 바다 안쪽으로 힘들게 걸어 들어갔다.
아내와 작은딸은 '바다에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걱정하고...
바다 안쪽에는 바위, 모래밭, 작은 돌멩이들이 훤히 드러났다. 묵직한 갯돌을 호미로 잡아당겨 뒤로 뒤집었다. 모래바닥을 팠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짐작했던 대로 조개, 고동류는 씨가 말랐다. 다만 캐기 어려운 검은 홍합만이 갯바위 너덜에 꽉 달라붙어 있었다. 바다식물인 퍼런 빛깔의 파래만 가득 찼다.
갯것이 없어지는 갯바다라니....
'바다가 열리는 곳'으로 알려져서, 매스컴을 타면서 수천수백 명이 달마다 바다가 열리는 때(썰물, 사리)를 알고서 바닷속으로 들어와 마구 호미질하며 조개류 등을 잡고 캐 갔으니, 해산물 종자인들 제대로 남아 있겠는가.
고향 바다*이건만 외지사람들이 몰려드는 게 영 마뜩잖아서, 점잖은 체면에 갯것 잡는 것을 피했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피하던 나였다.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는 내가 늘 우려하던 대로 갯벌 갯바다는 황폐해졌다.
문득 수십 년 전의 옛일을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 시절. 여름방학이면 여름 내내 바닷가에 가서 놀며, 물 쓰는 날(썰물, 사리때)에는 낮과 밤에 갯바닷속에 들어가면 조개(바지락), 소라, 고동, 박하지, 민꽃게 등을 큰 대야(함지박)에 가득 찰만큼 잡았던 기억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는 나에게 오늘의 갯바다는 너무나 허망했다.
그런데도 신문이나 여행단체에서는 '신비의 바닷길', '바다가 열리는 곳'으로 선전하며, 갯바다에서 갯것을 많이 잡을 것처럼 홍보한다.
'순 날도둑놈들 같으니라고.'
장사꾼들의 욕심만 가득 찬 고향 바다.
외부사람들에게 덜 알려졌더라면, 아예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교통이 불편했더라면....
고향 바다가 온전히 남아 있으련만 이제는 모두 꿈이 되고 말았다. 양식한 갯것을 돈 주고 사 먹어야 할 판이 되었다. 낭만은 사라지고, 오로지 장사꾼의 잇속만 남았다.
내가 수십 년 만에 잡아본 조개류는 고작 바지락조개 열 개쯤이 전부였다. 불가사리 한 마리는 남한테서 얻고.
아내와 작은딸, 나 셋이서 잡은 게 겨우 식기 한 그릇 정도였다.
내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시절이라면 조개 몇 말은 족히 잡아야 했는데....
아쉽지만 옛 기억은, 앞으로는 나 혼자만 기억하는 것으로 끝이 나겠지.
우리 집 아이들(후손)에게는 보여줄 것이 영영 사라지고 말았으니....
공연히 바닷속에 들어갔다.
그냥 멀리 서서 욕심 사나운 외지 사람들이나 바라볼 것을.
지역개발이라는 것이 고작 자연환경을 파괴시키는 것인가, 폐허로 만드는 것인가?
2년 전, 무창포 바로 아래에 있는 독산해수욕장 갯벌에서는 개량조개를 일곱 말이나 잡았는데, 얼마 뒤에는 여기에서도 씨가 마르겠지.
2005. 5. 9. 월요일.
* 고향 바다 : 충남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 무창포(武昌浦)해수욕장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 서해안에서
해수욕장으로 가장 먼저개장했으며, '모세의 기적 신비의 바닷길', '바다가 열리는 곳'으로 알려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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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초안이기에 더 다듬어야 합니다.
오탈자, 어색한 문구 등이 보이면 서슴치 마시고 지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책에 내는 글은 정확해야 하니까요.
거듭 부탁을 드립니다.
첫댓글 참~~~~
자연을 기억하고'
또 보살펴야 하는데
어쉬움만 들고 하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충남 보령시 웅천읍 강과 바다는 많이도 변했지요.
강하구에 '부사방조제'를 설치하여 갯벌을 깡그리 없애고 농토를 만들고,
모래사장이 가득 찬 해변을 긁어서 모래를 채취, 육지로 빼내고....그자리에 대형 건물이나 가득 짓고...
제가 기억하는 1950년대, 60년대의 순순한 강하구와 갯벌은 많이도 사라졌지요.
오로지 돈벌이용으로만 개발된 강하구와 갯바다.
위 무창포해수욕장도....
제 젊은날(1972년) 소총을 메고 밤바다를 지키는 해안가 초병/군인을 떠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