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처럼 은준이가 늘 행복하기를.

[litmus]

은준이가 장가를 갔습니다.
지금부터 꼭 20年 전에 제가 담임을 했던 은준이가, 재작년 여름에는 사제동행으로 저와 함께 희양산에 놀러와 스스로 숯불지기 炭夫(탄부)되기를 자청해 밑 빠진 독, 원주민 酒黨(주당)들에게 고전분투의 목살 서빙을 했던 은준이가, ‘태국 왕자’ 은준이가,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사부니임, 작목반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누구의 짝인지 모르겠어요. 3 배수까지는 좁혀지는데 정작 짝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어요” 

간밤의 광란 소회를 밝혀 안전운전을 방해했던, 그 은준이가 장가를 갔습니다.

은준이가 장가를 갔습니다.
대통령이 장래희망인 자기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연예인이 되기를 꿈꾸니 그 틈새를 노려 지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귀띔했던 은준이가 장가를 갔습니다.
프랑스에서 본, 두 번의 占(점) 모두에서 ‘국무총리’ 점괘가 나왔다며 청문회를 대비해 주변 정리를 잘 해야겠다던 은준이가 장가를 갔습니다.
“(딱히 할 일이 있어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대통령께서 그 먼 프랑스를 찾아 갔는데 미래의 총리께서 공항 영접하지 않고 개인적인 일로 되레 역 귀국함은 본분을 망각한 처사가 아닐까? ㅋ, 선공후사라 했거늘.... 암튼, 은준이의 결혼, 축하하고 11일에 다시 인사하자. 나는 지금 야자감독 중.”
“ㅋㅋ 네. 어머니께서 선생님 오신다니까 엄청 기뻐하고 계십니다.”
“순전히 내 자의로 가기는 하는 건데 미래 권력에게 눈도장 찍는, 노후 대책 마련 보험 성격도 쪼곰은 있음.”
“네, 권력 남용은 자신 있으니 노후는 걱정 마세요.”
결혼을 위해 지난 달 말에 귀국한 녀석에게 문자를 날리자 역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또라이 답글을 보내왔던 은준이가 장가를 갔습니다.

은준이가 장가를 갔습니다.
중 2 점심시간 때 교실 창 밑으로 지나가던, 학생주임 ‘닭대가리’를 보고 “꼬기오오∼” 했다가 득달같이 쫒아 날아온 ‘닭대가리’에게 싸대기를 맞고 교무실 앞 복도에 두 손 든 채 무릎 꿇리면서도 속으로는 “이야, 내가 이겼다. 흐흐, 자기도 지가 닭인 걸 인정하는군.‘ 되레 쾌재를 불렀다는, 중 2 꼬맹이가 이제 당당한 상남자가 되어 장가를 갔습니다.

은준이가 장가를 갔습니다.
신부는 프랑스에서 한눈에 반한 동갑내기 유학생입니다.
신혼여행은 따로 가질 않고 일주일 동안 국내에 머물면서 인사를 다닌 다음 프랑스에 돌아가서는 서로 남은 공부(신랑-정신 치료, 신부-언어공학)를 한다는 은준이가, 2년 후면 공부가 끝나리라는 은준이가 장가를 갔습니다.

은준이가 장가를 갔습니다.
결혼식을 이끄시던 주례사제께서

“결혼식에 앞서 신랑, 신부 면담을 많이 했는데 신랑이 참 씩씩했습니다. 신랑이 누구를 닮았을까요? 엄마와 아빠.... 중에 누구를.... 닮았을까요?”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객들에게 점잖게 물었을 때에, 뜬금없이 “아내!”라고 답해 순간, 신부님을 빵 터뜨리게 했던 은준이가, ㅋㅋ, 정신 치료는 제 놈이 먼저 받아야 할 상또라이가 그제 장가를 갔습니다.

은준이가 장가를 갔습니다.
그날, 집에서 꽤 먼 식장(분당 이매동 성바오로 성당)으로 향하는 ‘사부’의 마음도 조금 설렜습니다. 제가 장가라도 가는 양 들뜨기조차 했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보통의 축의금 봉투 문구인 ‘축 결혼’은 너무 형식적이라는 생각에 “오늘처럼 은준이가 늘 행복하기를“ 굳이 겉봉투에 따로 쓴 다음 꼭 그렇게 재미있게 살라고 ‘분신사마 분신사마 오이데 쿠다사이,,,’ 주문을 걸었습니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주거부정 영혼의 은준이에게 당부 겸 축원을 했습니다.

아, 그렇게 마지막 종례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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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 아래의 글은 제가 은준이를 담임했던 해에 만든 학급문집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재기발랄한, 늘 따뜻한 심성의 은준이입니다.

[호연지기]

흐흐 잼있어요.

[배목수]

그 은준이가 장가를 갔네요. 진지해보이는 청년이었는데. 또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