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출제한 문제>
1. 우리나라에서는 백성을 징발하여 군사를 삼으니 예전 제도에 거의 가까우나, 만일 급한일이 있어
임시로 조발하면 전술에 익지 못하고 온 집안이 군사로 나가면 생업을 폐지하게 되니,
어떻게 하면 병농이 생각한 바와 같이 잘되고 사졸이 정련될 수 있는가?
2. 땅이 있고 백성이 있으면 염치를 기르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노비 제도는 어느 시대에 시작하였는가?
노비 또한 하늘이 내린 백성인데 그처럼 대대로 천한일을 해서 되겠는가?
어느 집안은 노비가 많은 경우 수천, 수백명인데, 한계를 둘 수 없는가?
<성종이 출제한 문제>
왜인들의 왕래가 전에 비하여 많은데 대접하는 물자가 걸핏하면 1만 석으로 계산되니,
장차 그들과 절교하고자 한다면 회유하는 뜻에 어그러짐이 있을 것이다.
한결같이 왜인들의 욕망을 따라주면 그 비용이 끝이 없을텐데,
이를 어떻게 하면 왜인들에 대하여 그 방도를 얻고 폐단이 없겠는가?
<중종이 출제한 문제>
술의 폐해는 오래되었다. 우리 조선의 여러 훌륭한 임금님들께서도 대대로 술을 경계하셨다.
그런데도 오늘날 사람들의 술 마시기 폐단이 더욱 심해져
술에 빠져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술에 중독되어 품위를 망치는 사람도 있다.
흉년 때 금주령을 내려도, 민간에서 끊임없이 술을 빚어 곡식이 거의 다 없어질 지경인데,
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명종이 출제한 문제>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서 한번은 낮이 되고 한번은 밤이 되는데,
더디고 빠른 것은 누가 그렇게 한 것인가?
<광해군이 출제한 문제>
1. 군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인데 군사를 더이상 충원할 수가 없다.
식량은 백성이 하늘로 삼는 것인데 양식을 수송하는 길은 모두 훼손되고 없어졌다.
가혹한 세금징수는 사라지지 않고 부역은 가중되고 성을 쌓아도 지킬 사람이 없다.
북쪽 변경의 여러 진은 텅빈 장부만 붙들고 있고, 오랑캐는 날마다 노략질을 하고 있다.
이런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생각을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잘 다스리고자 하는 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고 성급하게 추진하기만 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행정 체계는 갖춰졌지만 실효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 그런 것인가?
아니면 나라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어 도저히 만회할 수 없기 때문인가?
폐단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상세히 말해보라.
2.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매우 기뻐했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숙종이 출제한 문제>
울릉도가 멀리 동해에 있는데 강원도에 속해있다.
요즘 왜인들이 죽도라 부르면서 어로 활동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우리 입장을 설명해도 도저히 들을 생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장수를 보내 점거해 지키고, 혼란을 만들지 말도록
왜인들의 왕래를 허용하고자 하는데,
변방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해 자세히 나타내도록 하라.
언뜻보면 논술시험이랑 비슷해보이긴 하는데 본인 뇌피셜로 써내려가면 안되고
온갖 유교경전을 툭치면 자판기처럼 나올만큼 다 외워서 레퍼런스 대가며 논리적으로 써야한다고 함
시험문제로 중대한 국가현안과 대처방안을 묻는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고
언뜻 뜬구름 잡는듯한 문제조차 어떤 책을 아는지, 알면 내용을 인용할 수 있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판단하려는 내용
▼ 밑은 실제 답안지
(광해군의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매우 기뻐했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명한'의 답안, 차석 합격>
"밝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어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잠깐 사이에 세월은 흐르고 그 가운데 늙어 가는구나!” 한 것은 바로 위응물(韋應物)의 말입니다.
뜬구름 같은 인생이 어찌 이리도 쉽게 늙는단 말입니까? 하루가 지나가도 사람이 늙는데, 한 해가 지나갈 때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네 마리 말이 끌듯 빨리 지나가는 세월을 한탄하고 우산(牛山)에 지는 해를 원망한 것도 유래가 오래 되었습니다.
부싯돌의 불처럼 짧은 인생 집사 선생의 질문을 받고 보니, 제 마음에 서글픈 생각이 떠오릅니다.
한 해가 막 끝나는 날을 섣달 그믐날이라 하고, 그 그믐날이 막 저물어 갈 때를 그믐날 저녁이라고 합니다.
네 계절이 번갈아 갈리고 세월이 오고 가니, 우리네 인생도 끝이 있어 늙으면 젊음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역사의 기록도 믿을 수 없고, 인생은 부싯돌의 불처럼 짧습니다.
100년 후의 세월에는 내가 살아 있을 수 없으니 손가락을 꼽으며 지금의 이 세월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이 새도록 자지 않는 것은 잠이 오지 않아서가 아니고,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흥에 겨워서가 아닙니다.
묵은해의 남은 빛이 아쉬워서 아침까지 앉아 있는 것이고, 날이 밝아 오면 더 늙는 것이 슬퍼서 술에 취해 근심을 잊으려는 것입니다.
풍악 소리, 노랫소리 귀에 그득 울리게 하고, 패를 나누어 노름을 하면서 정신과 의식을 몰두하는 것은 억지로 즐기려는 것일 뿐입니다.
은하가 기울려고 하면 북두칠성의 자루를 보고, 촛불이 가물거리면 동창이 밝아 오는가 살펴보면서
아직 닭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기뻐하고, 물시계가 날 밝는 것을 알릴까 두려워하는 것은,
이 밤이 새지 않기를 바라고 묵은해를 붙잡아 두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0년의 세월이 어느 날인들 아깝지 않겠습니까마는, 유독 섣달 그믐날에 슬픔을 느낍니다.
그것은 하루 사이에 묵은해와 새해가 바뀌니, 사람들이 날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해로 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날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사실 그해가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고, 그해가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늙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늙어 가는 세월이 안타까워 물음에 따라 조목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반에 산초를 담아 약주와 안주와 함께 웃어른께 올리고 꽃을 바쳐 봄소식을 알리고, 폭죽을 터뜨리고 환성을 질러 온갖 귀신의 소굴을 뒤집는 것은
진한(秦漢)의 풍습에서 나온 것도 있고 형초(荊楚) 지방의 풍속에서 나온 것도 있습니다.
모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재앙을 떨어 버리고 복을 기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굳이 오늘 다 말씀드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침향나무로 산을 만들고 불꽃을 수 길이나 타오르게 하는 것은 수나라에서 전해지니 천박한 풍습이나, 이 또한 말하자면 길어집니다.
환관들의 아들을 뽑아 검은 옷을 입혀 행렬을 짓게 해서, 역귀와 잡신을 몰아내는 의례는 후한 때부터 생긴 일이니, 굳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 함양의 여관에서 해가 바뀌려고 할 때 촛불을 밝히고 주사위 놀이를 한 사람은 두보(杜甫)입니다.
여관에서 깜박이는 등을 밝히고 멀리 떨어진 고향을 그리며, 거울로 허옇게 센 머리를 들여다보며 안타까워한 사람은 바로 고적(高適)입니다.
온 세상에 재주와 이름을 떨쳤건만 어느덧 늙어 버렸고, 서울에서 벼슬살이하다가 저무는 해에 감회가 깊어진 것입니다.
젊었을 때 품었던 꿈은 아직 다 이루지 못했건만 힘겹게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니, 늙음이 안타깝고 흐르는 세월이 안타까워 잠들지 못했던 것입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왕안석의 시이고, 도소주(屠蘇酒)를 나이순에 따라 나중에 마시게 되었다는 것은 소식의 시입니다.
사물은 다하면 새로 시작되고, 사람은 옛사람이 사라지면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니, 새것에 대한 감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도소주를 마실 때는 반드시 어린 사람이 먼저 마시니, 나중에 마시는 사람일수록 늙은 사람입니다.
인생은 구렁텅이에 빠진 뱀과 같고, 백년 세월도 훌쩍 지나갑니다.
지난날을 돌이키면 괴로움만 남는데 살아갈 날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글로 표현하자니 모두 안타까운 호소일 뿐입니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마음은 다 같고,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날은 다 똑같은 날입니다.
어릴 때는 폭죽을 터뜨리며 악귀를 쫓는 설날이 가장 좋은 명절이어서, 섣달 그믐날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 의지와 기력이 떨어지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세월을 묶어 둘 수도 붙잡아 둘 수도 없습니다.
날은 저물고 길은 멀건만 수레를 풀어 쉴 곳은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열에 여덟아홉은 됩니다.
몸은 성한데 운이 다한 사람도 있고, 재주는 많은데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객지에서 벼슬하는 사람은 쉽게 원망이 생기고, 뜻있는 선비는 유감이 많습니다.
맑은 가을날에 떨어지는 나뭇잎도 두려운데, 섣달 그믐밤을 지새우는 감회는 당연히 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월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지, 세월이 사람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는 않습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세월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 또한 부질없는 생각일 뿐입니다.
유감없는 인생을 꿈꾸며 두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늙어 버린 것을 문장으로 읊은 것은 그 감회가 오로지 늙음에 있었던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따뜻한 봄날 혼자 즐기면서 비파 소리를 유달리 좋아했다던 고적의 감회가 어찌 한 해가 저무는 것에만 있었겠습니까?
왕안석은 학문을 왜곡하고 권력을 휘두르면서 나라를 어지럽히고 수많은 백성들을 그르쳤는데, 그의 감회가 무엇이었는지 저로서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 기둥에 글을 쓸 만큼 재주가 한 시대를 떨쳤고, 뜻이 천고의 세월도 다 채우지 못할 만큼 컸지만,
남쪽으로 귀양 갔다가 돌아오니 흰머리였다는 미산(眉山)의 학사(學事) 소식(蘇軾)이 느낀 감회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옛사람들이 섣달 그믐밤을 지새우며 느꼈던 감회를 헤아려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감회는 이런 것들과 다릅니다.
우임금이 짧은 시간이라도 아꼈던 것은 무슨 생각에서 그랬던 것입니까?
주공이 밤을 지새우고 날을 맞이했던 것은 무슨 생각에서 그랬던 것입니까?
저는 덕을 닦지도 못하고 학문을 통달하지도 못한 것이 늘 유감스러우니, 아마도 죽기 전까지는 하루도 유감스럽지 않은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해가 저무는 감회는 특히 유감 중에서도 유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근거로 스스로 마음에 경계합니다.
“세월은 이처럼 빨리 지나가고, 나에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죽을 때가 되어서도 남들에게 칭송받을 일을 하지 못함을 성인은 싫어했다.
살아서는 볼만한 것이 없고 죽어서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면, 초목이 시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무지한 후진을 가르쳐 인도하고, 터득한 학문을 힘써 실천하며, 등불을 밝혀 밤늦도록 꼿꼿이 앉아, 마음을 한곳에 모으기를 일평생 하자.
그렇게 하면 깊이 사색하고 반복해서 학습하게 되어 장차 늙는 것도 모른 채 때가 되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니, 마음에 무슨 유감이 있겠는가?”
앞에서 거론한 몇 사람의 안타까운 감정은 논할 바가 아닙니다.
첫댓글 결국 난장판이됨.
그래도 천재들은 확실히 다르구나
애초 권력(을 가지기 시작하는 관문)이 좌우되는 거라 깨끗할 수가 없음
예나 지금이나 결국은 암기력이 좋아야
옛날 문인들은 책을 통째로 외웠다죠
하지만 인쇄술의 발전으로 그 급은 안 됨..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책은 보통 1백번은 반복해서 읽는 게 기본..
22
글 참 잘쓰네요
어허...마냥 뜬구름잡는 소리만 유도한건 아니었지만 저렇게 문제인식을 했는데도 해결이 안됬었다는건 답답하네요
한반도 자체도 좁고 구리고, 외부와의 교류도 중국과 조공 무역이 전부
그나마 지식 계층인 양반들이 전부 문과(+군인) 밖에 없어서 자연 과학이 발전 못함
조선의 공업 기술은 고대 로마보다도 떨어졌음
@힘힘 땅크기는 22만 제곱킬로미터..
유럽에 갖다놓으면 영국 본토지만, 산은 70%에 토질의 상당수는 9등급 중 7등급
거기다 화약도 없고 차나 향신료 등 사치품도 안 자람
4계절이 뚜렷해서 이모작이 남부 일부 밖에 안 됨
거기다 돌은 대부분 화강암이라 뚫기 힘들어 현대 기술로도 대규모 토목공사는 일이라 전근대에는 사실상 불가능했음
그래서 도로나 운하 같은 대규모 물류망도 못 했고
@힘힘 거기다 영국은 지리적으로 대서양과 유럽에 걸쳐 있지만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에 갇힌 포지션임
한국 특유의 작물이 인삼 말고 있는 게 없음
현대에도 석유조차 쥐꼬리 밖에 안 나오며 다른 자원도 거의 없는 수준이고
한반도보다 훨씬 작은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과학이 크게 발전한거보면 한국문제는 크기보다 사고방식이었는듯
생각을 발전시키는 방식이 아주 달라서 자연과학적인 사고를 안했죠
@The Rock 그리스는 특수한 상황이죠
그런 식이면 일본도 계속 서구 학문 배껴오기만 했고요
바칼로레아랑 비슷하네요.
캬. 프랑스는 교육은 선진국인데
거리 위생이나 국민성? 왜 이상한지 참..
-1
저 문항을 한자 로 썼다면 문제 내용도 이해를 못했을것 ...
세종대왕은 그래도 노비문제에 관해 생각은 있었네 한글로도 충분하긴 하지만 노비제를 없애고 해방 시켰다면 전세계인의 존경을 받았을텐데 아쉽네요. 차마 진행을 못 시켰겠지 반대하는 사람들을 다 죽여야 했을테니
바로 후대에 다시 노예제도 생겼겠죠
개혁의 가장 큰 단점 중에 하나가 후대에서 되돌리기 하는 것..
노비라고 해도... 외거노비라고 해서 따로 독립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유 재산을 가진 노비가 있었다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고대 유럽 영화에 나오는 노예랑은 다른 존재가 있었을 거라는 거죠.
사실 윗사람 눈치보며 매여있는 건... 현대 사회의 회사원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그런 외거노비 말고 다른 자유를 제한 당한 노비도 있었다는 건데... 그것도 생각해보면 현대 사회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지만...
조선 시대에는 범죄자를 노비로 일하게 했다고 보는 게 옳겠죠. 조선 시대 관청에 딸린 옥 같은 건 봤어도 교도소 같은 존재를 들어본 적은 없거든요.
어느 시대 어느 인종이건 범죄자라는 건 항상 나오는 것이고... 교도소 지어 밥 주고 재워 주고 감시 인원 붙이느니... 인력을 잘 활용하자 싶었을 테니 노비제가 없어질리가 없죠.
물론 반역자나 극악한 범죄자는 사형을 시켰겠지만요. 즉, 당시에 가장 합리적인 범죄자 처벌법이었다고 봅니다.
나라가 망한 이유가 있네
백종원급 썰 푸는수준 인데 ㅋㅋ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적재적소에 끼워넣어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문제네 ㄷ ㄷ
허지웅이 썼으면 이종에서 가루처럼 까였을것 같은데...
재밌네요 ㅎㅎ
광해군은 문제 내면서 엄청 씁쓸했겠네여..
정독해보기
무릇 공부라 함은
이렇게 생각의 방향과 그에 대한 논리적인 서술을 하는것인데....
지금의 공부는 뭔가 많이 다르네
와... 장원급제자들은 진짜 천재일듯
율곡이 9번이나 했다는데
ㄷㄷ
난 안되겠군 ㅋㅋ
서양처럼 합리적 과학에 힘썼어야....
힘 쓴다 쳐도 서양은 계속 각국의 천재들이 교류하고
세계로부터 식민지+무역하면서 얻은 재료들로 실험하고 하는데
조선은 그런 게 아니다보니 한계치가 있을 수 밖에 없음
구글의 프로그래머와, 중소기업 IT회사 프로그래머가 노력해도 효율이 다를 수 밖에 없듯이
상업발전시키고 무역거래를 많이했다면 강성해지고, 우물안 개구리가 되지 않았을건데 안타깝습니다
광해군이 출제한 문제가 참 맘아프네요 ㅠ
저걸 이제 한자로 풀어서 썼다는거죠??...
전시까지 모두 거치면서 살아남는 최종 급제자는 총 33명
그 33명 중에서도 실제로 입직하는 자는 3등(1등 종6품, 2,3등은 정7품)까지 단 3명이고 4등부터 10등까지는 정8품, 11등부터 33등까지는 정9품 '임용대기' 상태로 하염없이 기다리는 처지
음~ 다들 말만 잘할듯…
읽어볼것
문제 너무 어렵다
명종은 술마시다가 출제했나
문제해결능력, 논리력, 논리적 사고 및 추론, 현안에 대한 이해, 철학(성리학적 사고), 암기력, 표현력 등등을 모두 평가하는 종합능력시험이네요
광해군 1번 문제는 지금 대입해도 되것네
수학이 없어. 저 어려운고 풀어봐야 모두가 좋아하는 중앙부처 공무원 되는거임.
?
쯧쯧
무섭군요 와
과거시험 읽어볼 것
이게 차석이라고? ㄷㄷㄷ
마지막 광해군 질문답엔
세뱃돈을 받는다
세뱃돈을 준다
이게 답 아님????
과거시험
과거시험 답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