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청정 강원도에서는 역시 ‘슬로푸드’가 제격이다. 한여름에는 그중에서도 메밀을 빻고, 주무르고, 치대고, (가늘게) 뽑고, 삶아서 차게 먹는 막국수가 상수다. 맛이 시원하고 구뜰한 데다 가격도 착하기 때문이다. 물론 강원산 막국수라고 해서 모두 감칠맛이 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시장 냉면보다 더 달고 질겨서 조갈이 이는 진짜 ‘막 만든’ 막국수도 적지 않다. 다행히 강원도 구석구석에는 담백하고 구수한 막국수집이 꽤 많다.
❶ 트위터 추천 막국수 집 춘천 유포리막국수(@no1seok), 소양댐 밑 3대 막국수:명가막국수·샘밭막국수·유포리막국수(@JuHyoung_Cha), 춘천 봉진막국수(@Zedenist), 춘천 새술막막국수(@aura4me), 춘천 연산골막국수·철원막국수·양구 광치막국수·속초 실로암메밀국수·평창 진부 두일막국수(@merryidea), 인제 다들림(@imdrwell), 고성 화진포 박포수가든(@stuff200), 고성동루골막국수(@zeus_007), 속초 실로암막국수(@kimhyun009), 강원도 3대 막국수:춘천 유포리막국수·남부막국수·고성 백촌막국수(@masterkiton), 양구 3대 막국수:도촌막국수·광치막국수·월운막국수(@c0mpagna), 횡성 청룡막국수(@zeus_007) 홍천 새술막막국수(@ondalking98), 양양 동해메밀국수(@JHWindow), 강릉 송정해변막국수 (@2stepping_stone), 주문진 삼교리막국수(@Cheeriolo), 경포 송정막국수(@anzinn), 장평메밀막국수·진부 고바우식당(@SeanandSean), 봉평 현대막국수(@SeoHyungseok), 원주 남경막국수(@iiyoonii), 횡성 한성막국수·광암막국수(@sookeem). ❷ 만화 <식객>에 소개된 막국수 집 홍천 친절막국수·장원막국수, 양양 단양면옥·입암리막국수·동해막국수, 주문진 대동면옥, 평창 방림메밀막국수·남경식당(트위터와 중복되는 백촌막국수 등은 제외했음). ❸ 강원도 사람들이 추천한 막국수 집 양양 송월메밀국수·송원메밀국수, 인제 남북면옥·서호순모밀국수, 횡성 우천막국수, 춘천 부안막국수. |
그중 트위터 사용자들이 추천한 30여 곳과 만화 <식객>에 소개된 10여 곳, 기자의 강원도 지인들이 소개해준 6곳을 모아봤다(오른쪽 명단 참조).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곳을 추려보니 유포리막국수(춘천)·도촌막국수(양구)·남북면옥(인제)·백촌막국수(고성)·단양면옥(양양)·동해면옥(주문진)·현대막국수(평창 봉평)·장원막국수(홍천)가 꼽혔다. 과연, 이들 막국수 집의 면발과 육수 맛은 입소문만큼 특별할까. 군침을 삼키며 막국수 순례에 나선다(이하 음식에 대한 평은 어려서부터 막국수를 먹었지만 비교적 미각이 둔한 기자와, 후각·미각이 제법 예민한 전주 출신의 백승기·이정현 기자의 입맛을 합한 것임을 밝힌다).
ⓒ시사IN 백승기 막국수는 평양냉면처럼 메밀가루로 만들거나, 메밀가루에 밀가루나 전분을 섞어 뽑아낸다. 왼쪽은 전분이 10% 남짓 섞인 춘천 유포리막국수의 담백한 메밀 면. 오른쪽은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인 동치미 국물이다. |
‘옛 맛’ 생생한 유포리막국수 첫 행선지는 소양댐 아래 유포리막국수. 자동차가 막 국도에서 벗어날 무렵 언뜻 부드러운 면발과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떠올랐다. 꿀꺽. 얼마 만에 맛보는 ‘춘천 막국수’던가. 좁은 수로를 건너 과수원 옆을 지나자 드디어 유포리막국수 간판이 보인다. 소문난 집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마당에서부터 면 삶는 향이 은은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맑은 동치미 국물을 내민다. 시장기를 가셔내라는 뜻으로 알고 한 국자 떠서 혀끝으로 살살 건드려보니, 오호 슴슴하면서 제법 선뜻한 맛이다. 뒷맛도 시원했다.
곧이어 메밀 면을 양념장·참깨·김 가루로 비빈 뒤 우물거려보니 예상과 달리 매콤한 맛이 아니라 간간짭짤하다. 마른 찰흙 색의 면은 찰기가 적당해서 식감이 좋았다. 비빈 면 위에 동치미 국물을 붓고, 식초·겨자를 뿌린 뒤 면을 후루룩 빨아올리니 지친 몸이 깨어나는 듯했다. 대를 이어 ‘40년 유포리막국수’를 지키고 있는 여주인은 “옛 맛이 살아 있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비결은 따로 없다. 짭조름한 장과 슴슴하면서 산뜻한 동치미 국물 덕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백승기 칼칼한 양념이 입맛을 돋우는 도촌막국수. |
ⓒ시사IN 백승기 인제 남북면옥에서는 주문과 동시에 막국수(아래)의 면을 뽑고 삶는다(위). |
맑은 동치미 국물을 붓고 양념장을 살짝 풀어 면 맛부터 음미해봤다. 오, 툭툭 끊긴 면이 입안을 동글동글 구르며 풍미를 돋운다. 이어서 입속에 착 감기는 구수한 메밀 향. 몇 젓가락을 더 먹고 나자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온몸이 향긋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쉬운 점은 여주인이 “다른 집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다”라고 자랑한 편육을 바쁜 일정 때문에 한 점도 못 먹어보고 떠나야 했다는 것.
ⓒ시사IN 백승기 백촌막국수의 구수한 면과 삼삼한 동치미 국물. |
동행한 기자들이 면과 동치미를 가리키며 슬쩍슬쩍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실제 동치미는 무만 따로 모짝모짝 먹어도 웬만한 과일 부럽지 않았다. 담백하고 구수한 면은 이 집만의 별식이라 할 매콤달큰한 이북식 명태무침(식해)과도 궁합이 잘 맞았다. 두 음식이 어울리며 어찌나 복잡한 맛을 내는지, 마치 두 음식이 입속에서 마술을 부리는 듯했다. 그런데도 백촌막국수를 떠나면서 아쉽게 뒤를 돌아보았다. 오로지 편육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시사IN 백승기 송월메밀국수의 두부(맨 위)와 메밀국수(위). |
두툼한 두부는 담백하면서 고소했다. 그 위에 들기름과 간장·참깨가루·고춧가루로 무친 부추를 얹어 입안에 넣자 다양한 미향이 입맛을 흥분시켰다. 그러나 메밀국수는 두부를 먹은 탓인지 남북면옥이나 백촌막국수보다는 개성이 덜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면을 뒤덮은 김 가루와 참깨가루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달콤새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식객이라면 의외로 배 두드리며 즐겁게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사IN 백승기 대동면옥의 편육(위)과 회비빔막국수(아래). |
가자미식해는 백촌막국수의 명태무침과 맛과 식감이 비슷했다. 면발은 냉면과 국수의 중간쯤 됐는데, 입속에서 툭툭 끊어진 뒤 탱글탱글 돌아다녔다. 간장보다 엷고 커피보다 진한 육수를 자작하게 붓고, 그 위에 겨자와 식초를 넣고 비비자 알알하고 매옴한 맛이 구미를 당겼다. 그렇다면 맛은? ★ 다섯 개 중에 세 개 네 개 사이?
무뚝무뚝 잘라 삶아낸 편육은 씹기에 쫀득쫀득 말랑말랑했고, 뒷맛이 꽤 고소했다. 거기에 가자미식해와 마늘을 곁들여 씹으니 달콤하고 알싸하고 오묘한 맛이 소용돌이쳤다. 씹을수록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라는 생각도 새록새록. 누군가 굳이 ‘대동면옥의 편육과 막국수 중에서 어느 편을 들겠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편육에 한 표!
ⓒ시사IN 백승기 현대막국수의 매콤한 메밀전병과 막국수. |
특이하게도 이 집 막국수에는 양배추·상추 채가 들어갔다. 양념은 톡 쏘는 듯 강했고, 고춧가루 냄새가 비교적 진했다. 슥슥 비벼서 한입 먹어보니 생각보다 면이 부드럽게 끊기며 입속을 뒹굴었다. 육수는 새콤달콤한 동치미. 한 모금 마시니 온몸이 시원했다. 주인 최창길씨는 “과일·야채 등으로 만든 육수라 해장국보다 시원하다”라고 말했다.
김치를 메밀전에 잘게 썰어넣고 둘둘 말아 부치는 메밀전병도 한 입 베어 먹어보았다. 빨갛고 새콤매콤한 소를 기대했는데 의외로 푸릇푸릇하고 매콤한 소가 잡채·두부와 함께 들어 있었다. 피도 좀 두꺼운 듯싶었다. 그러나 주인 최씨는 “우리 집 메밀전병은 신선한 맛이 자랑이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소를 바꾸는 덕이다”라며, 자긍심이 대단했다. 실제로 몇 번 더 곱씹어보니, 과연 메밀의 담백함과 신선한 매콤함이 꽤 잘 어울렸다.
ⓒ시사IN 백승기 장원막국수의 면은 신선한 메밀가루로만 만든다. |
과연, 100% 신선한 메밀가루로 만들었다는 면은 부드럽고 담백했다. 은은한 메밀 향도 비교적 더 풍부했다. 사골 육수를 붓고 양념장과 식초·겨자를 풀고 먹어보니, 매콤하면서 고소한 향이 슬쩍슬쩍 코끝을 스쳤다. 툭툭 끊긴 면은 마치 간질이듯 입속을 뒹굴고….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자, 주인 이경희씨가 빈 그릇에 면 삶은 뜨끈한 물을 부어 마시면 좋다고 일러준다. 고소하고 매콤한 양념 향과 은은한 메밀 향이 뒤섞인 국물을 ‘원샷’하니 막국수 순례로 생긴 피로가 훌쩍 날아가는 듯했다.
첫댓글 경선생 오유현기자 짧은 기자생활 안타까움
같이합니다 막국수기행집 나도 좋아해 꽤
돌아다녔는데 아직 못가본집도 소개해 주어서 마주 다녀볼생각입니다 그중. 유포리
부안 도촌 월음리집을 많이다님니다 ㅎㅎ
막국수에 대한 나의 추억은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막국수 틀을 가지고 있는 주영실과는 같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막국수에 대한 향수는 조금은 가지고 있지. 어린시절 막국수는 내게는 그림의 떡이었네. 겨울 농한기에 마을 청년들이 막국수 집 사랑방에서
나이롱 뻥으로 날을 지새웠네. 막국수 집에서는 밤중에 밤참으로 막국수를 틀에서 뽑아 삶아서 나이롱뻥을 하는 방으로 들여갔지. 틀에서 빠져나오는 막국수와 대접 그득이 담아 양념을 얹어 상을 차려 방으로 들여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군.
막국수에 얽힌 이야기 잘 보았네요^^ 나의 어린 시절 퇴계동 살 때는 큰누나 가족과 함께였는데...큰 매형이 평안도 출신이라 냉면을 좋아하셨는데...우리동네에 '맹꽁이 아저씨(별명)' 라는 분이 막국수를 그때그때 뽑아 주시는데 몇인분 사다가 살얼음 뜬 동치미 국물에 참기름 살짝 뿌리고 깨보숭이 대충 뿌려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막국수를 말아 먹으면 그 맛이 아주 일품이었었는데...성인이 되고 나서는 어릴 때 그 맛을 보려고 아무리 이름난 막국수 집엘 가도 그때 그 맛이 나질 않는다네. 그때 그 맛이 더 좋았었는데^^ 날씨가 추워지니..어린시절의 추억의 막국수 생각이 간절하구먼...- 姿山 金濟成 -
어린시절의 막국수단상 그나름대로 항수가
있군! 제성학형처럼 막국수는 혹한기에 부엌에서 가마솥 수증기 들어마시며 누른 국수에 얼음둥둥 띄운 동치미국물 카 제격!
그때 그 시절을 아시나요? 어머니는그리움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