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4일 평화목교회 주일예배 설교
홍지훈 목사
출애굽기 6: 2-8
누가복음 4: 16-19
해방을 선포하자
올 해는 삼일절 독립만세 운동이 벌어진지 99년 되는 해입니다. 내년 이면 100주년이 됩니다.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하면 벌써 3세대가 훌쩍 지났습니다. 그러니 역사를 통하여 삼일운동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100년 전 우리 민족의 상태와 독립의 열정이 어떠했는지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갈 것이 분명합니다.
삼일절을 기념하는 주일에 꼭 맞는 본문이 담겨있는 성경은 출애굽기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서 백성들을 이끌어낼 소명을 주었습니다. 모세는 파라오에게 가서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기회를 달라고 청하였다가, 오히려 모진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박해란 흙으로 벽돌을 만들 때 긴요하게 쓰일 짚을 주지 않고는, 나중에 정해진 수량대로 벽돌을 못 만들어내자 매질을 시작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바로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모세는 그래서 하나님께 고하였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대답이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내 이름은 여호와(주)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엘 샤다이,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알려주었을 뿐이지 여호와(주)라고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파라오도 여호와가 누군지 모를 것이다. 어쨌든 내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니 이집트에서의 노역 생활에서 그 백성들을 빼내어 가나안으로 가게 하겠다. 왜냐하면 나는 여호와, 스스로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6장)
백성들이 모세에게 요청한 것은 노예로 살아도 좋으니 지금 당장의 박해에서 벗어나게 자기들을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조상들과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대답으로 일관하고 계십니다. 백성들 생각에 절대 권력자 파라오의 마음을 바꾸어서 포로를 풀어주게 하고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는 일이 가능한 일로 여겨졌을까요? 요셉이 이집트에 들어간 지 430년이나 되었는데, 그들에게 민족의식과 과거기억은 어느 정도까지 남아있었을까요?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36년간 받은 것만 해도, 해방 73년이 된 오늘에도 씻어낼 수 없는 후유증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10세대나 되는 기간 동안의 노예 생활을 했다면, 떠나기 싫다는 이스라엘의 반응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릅니다.
엊그제 3월 1일 삼일절 기념식은 참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우선 기념식 장소가 독립 운동가들의 한이 서린 서대문 형무소 마당이었고, 그동안 여러 단체와 개인이 사용하던 “역사적 태극기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스스로 놀란 것은 다양한 계층의 낭독자들이 등장하여 3.1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이 독립선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거나 들어본 기억이 제게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도 하나하나 호명되었습니다. 청년시절 3.1절 행사마다 언급되던 33인중 마지막 생존자 이갑성 옹이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37년이나 지났습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 저는 익산 황등면에서 열리는 황등면 교회연합회의 3.1절 기념예배에 설교하러 다녀왔습니다. 황등지역은 독립운동으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삼일절과 광복절에 항상 연합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올해 연합회장을 지내는 황등 제자교회의 장의성 목사님과 대학원 시절에 함께 공부했던 오랜 인연으로 초청을 받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느끼는 일이지만, 국가 기념주일 기념예배의 참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역사의식을 가져야한다고 설교했는데, 그러면서 회중을 둘러보니 청년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엄마를 억지로 따라온 어린이 몇 명뿐이었지요. 모두가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 삼창을 하면서도, 교회도 늙어가고, 민족의식도 늙어서 이젠 청년도 없고 젊은 혈기도 없다는 생각을 하니 슬펐습니다.
그런데 다녀와서 오늘 설교준비를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황등의 기독교와 독립운동의 역사 가운데 등장하는 한 인물이 있는데, 그 분이 친구이자 동료인 서울 수송교회 고현영 목사님의 외증조부 계원식 장로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친구목사와 통화도 했습니다. 친구의 외조부였던 장신대 학장을 지낸 계일승 목사님만 알고 있었지, 그 조상의 이야기는 몰랐었거든요.
외고조부는 평양신학교 2회를 졸업한 계택선 목사님이셨는데, 그분도 만주의 불쌍한 동포들에게 선교하다 돌아가신 목사님이었고, 아들은 의사가 되어서 평양에서 활동하다가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일제의 박해를 피해 군산 황등면에 정착한 분입니다. 이분이 황등중학교를 세우고, 황등교회를 세웠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도시의 큰 병원에서 초빙을 해도 마다하고 황등지역을 떠나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진료하는 의사였습니다. 늘 전도했고, 진료비를 못내는 분에게는 반드시 예수 믿기로 약속해달라고 하고 무료진료를 해준 분입니다. 해방 직후 이분이 중심이 되어서 일본인에게 보복을 하는 일을 막았다는 후일담도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자기의 재산을 모두 황등교회에 기증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아들 계일승 목사, 손자 계지영 목사 그리고 외증손자까지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입니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삔에서 척결하고 체포된 지 110주년이 되는 해가 2019년 내년입니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는 이미 3.1 독립만세 운동을 10년 전 부터 시작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1879년에 출생해서 1910년에 순국을 당했으니 몇 살입니까? 겨우 29세까지밖에 못살았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보면, 안중근 의사를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영웅”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채 30년을 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안중근 의사를 우리는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점에서 내년은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더욱 더 의미 있는 해입니다.
3.1운동 직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당시 중국의 신문에 실렸던 이야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1919년 3월 27일자 익세보(益世報)는 3월 15일 서울 시내 모든 상점이 문들 닫고 상인들이 모두 독립운동에 참여한다고 하면서 “상인들은 독립운동에 열중할 뿐 이익은 전혀 따지지 않는다. 이런 한국 민족이 참으로 존경스럽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행동과 질서가 너무나 떳떳하고 당당하다고도 기록하였습니다. 손에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았는데, 일본 헌병은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였다고 합니다. 3월 28일자 신문에는 평양 산정현 교회의 강규찬 목사의 연설이 인용되었습니다. “모두가 정신 차리고 일어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 민족의 자유를 획득하여 자자손손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구차하게 한 순간의 삶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유를 찾다가 희생되는 것이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보다 백배 낫습니다!”하고 외쳤습니다.
한국의 한 여학생이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편지를 했고, 어떤 한인이 직접 윌슨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문제를 파리 평화회의에 제출할 수 있는지”의 질문입니다. 그때 윌슨은 한국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만일 한국 내부가 안정되지 않고 한인들이 혁명을 발동하면 한국 사건을 평화회의에 접수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3.1운동은 대한의 독립 선언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독립선언과 함께 민족은 저항을 그치지 않았고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에 이등박문을 저격하고, 1910년 2월 14일에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에 처형당했습니다. 104년이 지나서야 중국은 만주 하얼삔에 안중근 의사 기념공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사실, 요즘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100년 전의 이야기에 대하여서는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적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 소수의 사람들만이 민족의식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소수의 사람들만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민족은 운동경기 할 때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고 삽니다.
지금 우리는 매년 삼일절과 광복절이 돌아올 때 기념식 하는 것 외에는 일본의 지배에 항거한 일과 광복이 가져다 준 의미를 잊고 사는 것 아닙니까? 이제는 그 때 앞장서서 독립운동 하던 산 증인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이제 무엇입니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 시키는데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 예언자 모세입니다. 민족이 빼앗긴 자유를 되찾는 일 보다, 그저 매나 안 맞고 밥이나 얻어먹고 사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에게 다가가서, 하나님이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상기 시켜주는 모습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와 닮았습니다. 오늘 신약 본문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개역, 눅 4: 18-19/ 사 61:1f)라고 하신 말씀을 예수님의 입으로 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회당에서 낭독했고, 다분히 그 이면에는 자신의 역할에 관한 암시가 숨어있습니다. 갇힌 자와 눈먼 자와, 눌린 자에게 해방을 주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뒤에 게신 하나님의 목적은 <주님의 은혜의 해>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의 해>는 다른 말로 <희년>이라고 부릅니다. <기쁜 해>라는 말입니다. 희년은 7년 마다 오는 안식년이 7번 돌아온 다음해, 즉 50년 마다 돌아오는데, 그 해가 되면 팔아 버렸던 땅도 물러 받을 수 있고, 종살이 하던 자들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줍니다. 한 마디로 하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종살이 하던 자는 계속 종살이를 해야 하고, 땅이 없는 자는 계속 가난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펼쳐 읽으시던 예수님의 마음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요즘 식으로 한다면 공생애 시작 첫 번째 설교인 셈입니다. 주님은 구약 이사야 61장 1절을 읽고 나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선포하였고, 듣는 이들은 다 놀랐다고 합니다.
당시 유대 땅은 주전 63년 경 부터 시작된 로마제국의 식민지 상태였습니다. 1000년 전 다윗의 통일 왕국 시대 이후로는 남북 분열과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지나,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식민지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님은 이제 <주의 은혜의 해>가 되었다는 선포를 다시 들고 나선 것입니다. 예수의 설교는 이제 민족과 국가의 지경을 넘어서서 온 세상에 <주님의 은혜의 해> 선포한 것입니다.
삼일운동 99주년, 그리고 해방과 분단 73년, 그리고 6.25전쟁 68년을 맞는 2018년 올해, 우리 민족을 향하여 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이제 젊은이들의 머릿속에서는 일본의 지배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가고, 분단과 전쟁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데,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해방하게 하는 신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신앙이 싹튼 배경이 바로 포로와 억압이었기 때문입니다. 억압과 분단 그리고 전쟁은 반드시 벗어나야만 할 질곡이라고 신앙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야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통을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진로를 찾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를 인용한 주님의 말씀이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로된 자, 눈먼 자, 억눌린 자라는 세 가지 질곡들은 오늘 우리 현대 사회 속에 여전히 잔존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힘이 아니면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것들이 그런 세 가지입니다.
생각의 폭을 한 번 넓혀보십시오. 지금도 이념과 사상의 벽에 갇혀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이 나를 가둔 것도 있지만, 내가 나를 가두고 사는 사람들은 더욱 더 많습니다. 자유롭게 해야 할 종교적 신념이 오히려 자신을 가두어 보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겉으로는 자유인인데, 마음의 눈이 멀어서 보아야 할 것을 못보고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못 보는 줄 알았더니, 안 보고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을 맛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익산 황등교회를 세운 계원식 장로님을 보면서 당시 주민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예루살렘은 평양이 아니라, 이제 황등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그 지역 기독교인이 늘어나서가 아닐 것입니다. 황등에 자리 잡은 한 인물의 영향이 <주님의 은혜의 해>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자리한 바로 그곳에서 포로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일에 동참해야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질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99년 전 민족의 독립을 향한 삼일운동의 함성소리가 오늘날 분단의 현실과 강대국의 틈바구니 사이에 처한 우리 민족에게 희망이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앙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서는 해방의 하나님이시며, 그 해방은 민족을 초월하여 온 세상의 평화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