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사에서 나와 어제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개관시간이 맞지 않아
그냥 지나쳤던 석탄 박물관을 들러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고한에서 태백으로 나오는 얼마 되지 않은 도로상에
몇 개나 서있는 안내판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는
'용연동굴'을 구경하라고 손짓을 하기에 조금 망설였으나,
시간이 넉넉하기에 일단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매표소에서 언덕을 한참 오르자 산중턱에 용연동굴의 입구가 나타났다.
표를 받는 안내인에게 동굴을 구경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더니, 40분쯤 걸린다기에 짧지 않은 동굴임을 알아 재작년 휴가 때
갔었던 단양 고수동굴의 감동이 떠올랐다.
헬멧을 쓰고 굴에 들어서자마자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긴 계단이 있었다.
설마 했지만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객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어,
왠지 으쓱하고 섬뜩한 느낌이 들어 등골이 서늘하였다.
계단을 다 내려가고 철제 플랫 홈을 따라 계속 걸으며,
사람이 있는가를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인적은 없었다.
원격조종하는지 내가 지나간 동굴 뒤쪽에서 갑자기 '쏴'하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놀란 가슴에 동굴특유의 차가움마저 겹친 데다,
옛날에 들었던 귀신이야기까지 떠올라 도통 여유 있는 마음으로
천천히 둘러볼 기분이 아니었다.
그 얘기인즉슨, 재래식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는데,
왠지 변기통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아래를 내려다보니,
소복차림의 귀신이 히쭉 웃으며 손짓을 하더라는 얘기였다.
황당한 얘기였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들은 이후로 밤에는
재래식 화장실에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고,
부득이 낮에 갈 경우에도 이따금 아래를 내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
(밝히기 싫지만)지금도 재래식 화장실인 처가에 가서
하룻밤을 머무를 경우가 있을 때에는, 혹시라도 밤에 찾아올
불상사를 대비하여 낮에 미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곤 한다. ^^
만약에 전기라도 나가 희미하게 비추는 등불마저 나가버리면
대책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서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좌우지간 맘이 급하다 보니 천천히 둘러보며 음미해야할 동굴을
20분 만에 탈출(?)했고, 한번은 미처 못보고 낮은 바위에
머리를 찧기도 했는데, 헬멧이 없었다면 그대로 나동그라질 뻔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특이하게 생긴 모양을 따 이름 지어진, '사천왕',
'도깨비 성', '독불장군', '죠스의 무덤'은 돌 모양이 재미(?)있어
기억에 남는다.
다만, 동굴안의 적적함을 달래주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인위적으로 만든 화려한 모양의 분수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여하튼 내가 간(肝)이 큰 편은 아니기도 하지만 으쓱한 지하 동굴은
혼자 둘러볼 일이 아니다.
첫댓글영월의 고씨 동굴이 떠오르네요. 깊고 험하고..미묘한 냉기, 습함..등등..워낙 외진 곳에 있는 동굴이라 관광객이 몰리지 않는 동굴을 멋 모르고 들어 갔다가 고생 좀 했더랬습니다. 저는 그나마 당시 지금의 남편과 연애 할 때 같이 갔기에 망정이지 보케리님 상황 될 뻔 했죠.
첫댓글 영월의 고씨 동굴이 떠오르네요. 깊고 험하고..미묘한 냉기, 습함..등등..워낙 외진 곳에 있는 동굴이라 관광객이 몰리지 않는 동굴을 멋 모르고 들어 갔다가 고생 좀 했더랬습니다. 저는 그나마 당시 지금의 남편과 연애 할 때 같이 갔기에 망정이지 보케리님 상황 될 뻔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