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판소리학회의 설립과 판소리사적 의의
정병헌*
판소리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통하여 판소리의 예술적 가치를 밝히고, 판소리 전통의 계승과 재창조 작업을 통하여 민족문화의 발전을 추구하기 위하여 1974년 판소리학회가 설립되었다. 정병욱, 강한영, 이보형, 박황 등이 설립을 주도하였고, 회장은 정병욱이 맡았다. 이 모임은 주로 한국문예진흥원의 조사 사업을 위탁받아 판소리의 전승 현황을 정리하였고, 이와 함께 연구 결과를 학술지로 발간하였다. 또한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후원으로 1974년 1월부터 1979년 9월까지 100회의 ‘브리태니커 판소리 감상회’를 개최함으로써 사라져 가고 있는 판소리를 대중에게 알리고, 지방에 묻혀 있는 명창들에게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 감상회는 브리태니커사가 1976년 『뿌리깊은나무』라는 잡지를 발간하자, 그 명칭을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로 바꾸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열던 감상회를 매주 열었다.
1974년부터 1978년까지 100회의 감상회가 열렸는데, 여기에는 21명의 판소리 연창자들이 참여하였다. 특히 중요한 것은 몇 회에 걸쳐 바탕소리 전체를 부르게 하여,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전판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감상회를 통하여 판소리가 소중한 우리 전통문화의 진수(眞髓)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또 발표한 작품을 음반(音盤)으로 제작하여 후대에 그 실상을 전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이 모임은 판소리 자료의 축적과 보급에 치중하였기 때문에, 전국적인 규모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1984년 판소리학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었고, 초대 회장에 강한영 박사를 선출하였다. 이 해에 동리 신재효 100주기 기념 연구발표회 및 판소리 연창회를 개최하였고, 이후 매년 2~3회 연구발표회가 빠짐없이 열린 결과, 2023년 100차 발표회가 국립국악원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또한 1989년 『판소리연구』 1호가 나온 이래, 매년 1~2회 빠짐없이 발간함으로서 2023년 『판소리연구』 55집이 출간되었다.
판소리 연구의 결과는 한국구비문학회나 한국민속학회, 한국국악학회 등 여러 학회의 학회지에도 발표되고 있지만, 판소리만을 모아 발표하는 학회지는 『판소리연구』가 유일하다. 1989년부터 이 학회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통하여 판소리 연구가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었고, 새로운 분야로의 확장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판소리학회의 설립은 판소리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판소리학회는 학술지에 나타난 연구 결과를 정리하고, 미래의 판소리 연구를 조망하는 단행본도 발간하여 판소리 연구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학회가 창립되는 1984년, 전남대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회 실무에는 직접 참여하기 어려웠지만, 첫 총회가 열렸던 전주의 모임부터 꼬박꼬박 모임에 참석하였다. 이때부터 명창을 초청하여 연창회를 여는 관례가 확립되었는데, 나의 기억으로는 전주 문화방송국에서 열린 연창회에서 성창순선생의 <심청가>를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그날 저녁의 모임에서 전북대학교의 이기우 교수께서 판소리학회이니 회원들도 판소리 한 마디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말씀과 함께 단가 <진국명산>을 부르셨다. 깊은 울림을 주는 선생의 소리에 깊은 감명을 받기도 하였는데, 강장원 명창에게 직접 소리를 배운 분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2대와 3대 회장은 국립극장장으로 계셨던 허규선생님이었는데, 이때부터 학회로서의 모습과 체제를 갖추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학회 초기에는 총무간사가 학회의 살림을 맡아하는 총무 중심의 학회였다. 그래서 총무간사인 정하영 선생의 주도로 1989년 『판소리연구』 창간호가 나와, 이후 매년 연구 결과를 보고할 수 있게 되었다.
1992년에는 이보형선생님께서 회장을 맡으셨는데, 나는 전 해에 직장을 서울로 옮겼기 때문에 총무간사를 맡게 되었다. 학회는 지방과 서울에서 한 번씩 번갈아 열렸는데, 오랫동안 남원시청의 지원을 받아 학회가 열리곤 했다. 그리고 남원의 지원 이후 전주와 고창에서도 지원을 받게 되어 지방에서의 학회 개최가 정례화 되었다. 학회의 재정이 열악한 상황이어서 그나마 각 지방의 지원에 힘입어 판소리와 관련된 지역에서 하루 숙박하면서 왕성한 연구 발표와 회원들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보형선생님의 재임 시절부터 저녁 식사가 끝나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각자 판소리 재능을 뽐내는 이른바 ‘재미나’가 정착하였다. 전국 명창대회의 심사위원을 맡는 이보형선생님이 주심을 맡아 장원을 뽑아 축하하는 등 학회의 진행도 정착하게 되었다. 아침이 되어 밖에 숙소 밖을 나가보면, 새벽까지 열띤 토론을 벌이는 젊은 회원들을 보며 학회의 미래가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학회 설립 초기에는 주로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발표가 주를 이루었지만, 점점 연극과 음악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총체적인 판소리 연구 성과가 도출될 수 있었다. 연구자만이 아니라 실기자들도 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연구와 실기의 폭넓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학술 발표회마다 반드시 실기자의 수준 높은 판소리 연창회를 개최함으로써 연구와 실제를 겸비한 종합적인 연구가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연창에 참여하는 실기자들은 어느 자리보다 학회에서의 공연에 전력을 다하였기 때문에 수준 높은 공연과 감상이 이루어졌다.
판소리학회는 2003년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오랜 역사와 능력을 가진 판소리학회가 있어, 신청에 있어 나타나는 인력이나 자료 제공 등의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었던 것이다. 판소리학회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11월 7일을 ‘판소리의 날’로 제정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
현재도 전승되고 있는 민속예술에서 언어와 관련되는 예술은 무속에서의 무가, 가면극, 판소리, 민요 등이 있다. 여기에서 판소리가 가장 먼저 체계적인 학술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대중과의 접근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판소리학회의 설립과 활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서양에서 전래한 예술이 주류를 이룬 것은 한국, 중국, 일본의 동양 3국이 처한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 휩쓸리게 될 때, 서양에서 전래된 예술만이 인류 공통의 예술로 살아남게 되고, 각 나라가 지켜온 문화는 그 명맥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판소리학회의 활동은 앞으로도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할 필연성을 갖는다.
* 판소리 학회 회장,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