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2학년 어소운입니다.
저는 올해 들살이를 모둠 3일, 개인 3일로 나눠 7박 8일을 보내고 왔습니다. 모둠 들살이는 ‘서투른 실력으로 충분히 즐기기’라는 목적을 가지고 같은 모둠원들과 디즈니 메들리 버스킹 영상을 찍었습니다. 개인 들살이는 지난 2년처럼 의미가 담긴 주제를 찾고, 주제에 부합하는 활동을 구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 당장 마음이 끌리는 주제가 없기에 들살이를 위해 주제를 찾게 되면 결국 주제 하나를 ‘만들어’버릴 것 같아서 였습니다. 그래서 아예 거꾸로, 활동을 통해 목적 찾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들살이 동안 ‘걷기’ 활동을 하고 왔습니다. 원체 걷기를 싫어하는 제가 하루에 20km 이상 걸으며 육체의 힘듦을 천천히 인식해 보고, 그 안에서 머릿속에 들어오는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래는 7박 8일 간의 들살이 일지입니다.
9월 4일 월요일
개인적인 일이 생겨 들살이 직전 급하게 일정을 수정해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새벽 무궁화호를 타지 못하고, 11시 50분에 서울역에서 KTX를 탔다. 아이들과 일정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뛰쳐나와 택시를 붙잡고 숙소로 향했다. 4시가 되어서야 우리 띵콘의 완전체가 모였다. 우리는 해운대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버스에 타고 내리면서도 내가 부산에 있다는 자각은 없었다. 너무 금방 와서 그런 걸까? 5년 전에는 이곳에 12일이나 걸쳐서 왔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면 금세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비수기라고 해도 해운대는 해운대인 건지 사람이 꽤 있었다. 뙤약볕 아래 우리는 그늘을 찾아 헤맸지만, 그늘일랑 한 점 보이지 않아서, 그냥 작열하는 태양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앉은 쪽이 서쪽인지 해가 지고 있었는데 일렬로 앉은 탓에 나만 뜨거워 죽는 줄 알았다. 알로록달로록 형형색색의 손수건들이 제법 귀엽다. 이 사진은 실상 뜨거움을 견디지 못한 고등학생들이 덜 뜨겁기 위하여 모자를 쓰고도 그 위에 손수건을 둘려 겨우 태양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일 뿐이지만 말이다. 한 시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각도로 영상을 찍었다. 카메라 위치를 바꿀 때마다 수연이가 “어떻게 할까?”하고 의견을 물었는데 여러 명이 장난식으로 물에 빠뜨리자는 의견을 냈다. 그다지 아이디어가 없으니 너 좋을 대로 하라는 식이다(미안 수연아…). 초반의 두세 번은 영상을 한 번 찍을 때마다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박자가 안 맞는다든가, 누가 조금 느렸다든가, 영상에 소리가 잘 들리는지 따위를 이야기하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갔다. 연주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이상하게 볼 것 같다는 대화를 자주 했었는데 내색하지 않으려 연주에 집중하면 시선이 잘 안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 사람이 많지 않아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5시 40분쯤에 영상 촬영을 그만두고 6시까지 바닷가에서 놀았다. 촬영을 관두니까 곧바로 해가 져버렸다…
해운대 근처에서 저녁을 먹은 후 숙소 근처의 마트에서 아침 거리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마트까지 가는 버스 내에서 너무너무 졸렸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하다니… 그래도 일찍 하루가 끝나서 일찍 잘 수 있을 것 같다. 즐기기 위해 어떤 일에 노력하는 건 좋다. 즐기는 일에는 온전히 열정만 있는 듯하다. 즐거움에는 모자람이나 서투름이 없다. 그래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9월 5일 화요일
들살이 둘째 날! 내일이면 모둠 들살이가 끝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애당초 시간이 3일밖에 없긴 하다만… 숙소에서 솔이가 구워준 빵을 냠냠 먹고 9시에 삼락생태공원으로 향했다. 삼락생태공원은 생태공원 겸 캠핑장 겸 수영장 겸 야구장 겸 기타 등등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에 비해 나무도 적고, 그늘도 없고, 태양은 뜨겁고… 처서 이후로 훌쩍 가을이 온 줄만 알았는데 그냥 방학에 밖을 나가지 않은 자의 망상이었구나. 정말이지 이러다가는 타들어 가버리는 줄 알았다. 개인 들살이 때 어떻게 걷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는 수 없었다. 아무려나 그건 그거고. 우리는 팀을 대강 나눠서 공원에 사진 찍을 만한 곳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어쩐지 왼쪽 길로 가고 싶어져서(진짜임) 현욱이를 따라가게 되었는데 우리가 선택한 길에는 진짜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수다나 떨면서 산책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도 나름 어딘가를 찾긴 했다. 바닥이 자갈밭이고 물밭인 게 문제였을 뿐이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 채원이가 적당한 곳을 찾아서 다같이 그곳으로 이동해 영상을 찍었다.
점심을 먹고 흰여울 마을로 향했다. 졸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여전히 더웠다. 푹푹 찌는 더위가 아니라 타들어 가는 더위였다. 내 마음도 타들어…가진 않았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자는 목적으로 흰여울마을의 입구부터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지도에서 가장 가깝게 보이는 게 피아노 계단이었는데 아아주 긴 고불고불 계단을 내려가면서 도대체 어디가 피아노 계단인 건가 생각했다. 여기가 끝인가?를 두 번 정도 느끼고 나서야 기다리고 찾아 헤매던 피아노 계단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피아노 계단은 무척이지 길고 가팔랐다. 짐을 주렁주렁 들고 내려가다 보니 종종 정신이 아찔해지곤 했다.
타들어 가지 않으려, 넘어지지 않으려 아등바등 계단을 내려오고 나니 무엇도 할 힘이 들지 않았다. 근데 영상을 찍어야 하고… 여기서 하기엔 너무 뜨거웠다. 결국에 우리는 눈 딱 감고(사실 눈을 감아도 덥지만) 단 한 번만 영상을 찍기로 마음먹었다. 해가 작열하는 2시였다. 영상을 찍고 나서 나는 내가 터질 것 같다고 느꼈다. 바로 옆에 동굴이 있는데 제발 저기서 쉬자고 애원했다. 그렇지만 이 친구들… 제법 열정적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보도 턱에 앉아서 영상을 찍자고 한다. 이젠 그냥 즐겨야겠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영상을 찍고 나서야 우리는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은 바깥에서 보는 것에 비해 길었다. 그리고 당연히 시원했다. 살 만하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피부가 조금 식었다고 바로 뙤약볕에서 영상을 찍어버렸다(제법 스파르타식인지도 모르겠다). 영상을 찍기 전에 행인분들이 지나가시라 기다렸는데 슬쩍 지나가시면서 “귀여워~”하셔서 매우 뻘쭘했다. 우리는 그냥 귀여운 애들이 되었다. 이때가 한 세 시 반 즈음이었는데 우리는 더는 태양 아래를 걷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카페, 카페에 가자! 이러다가 더위를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라기보다는 원초적인 생존 욕구)였다.
우리는 물 멍 뷰 카페에서 5시까지 시간을 때웠다. 바깥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에어컨이 빵빵한 카페에서조차 창으로 들어오는 태양 볕이 뜨겁다고 느껴졌다.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물멍과 정신력 회복의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이 심심해질 무렵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적어도 그늘로 걸으니 걸을만 했다. 그래서 나는 그늘에서 바람이 부는 내리막길의 부산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조건이 까다롭긴 한데 아무튼 그렇다. 오늘은 당장의 뜨거움에 급급해서 연주를 즐기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어제보다는 더 많이 웃으면서 영상을 찍었다. 덕분에 더 많이 틀리기도 했다(얘들아 미안). 내일은 오늘만큼 웃되 덜 틀리면 좋겠다.
9월 6일 수요일
우리의 첫 행선지는 몰운대였다. 다대포해수욕장과 붙어있는 어느 섬도 산도 아닌 무언가였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그래서 이게 몰운대라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넓었다. 상상 속의 몰운대는 전망대 따위의 높은 건물 또는 언덕이었는데, 현실의 몰운대는 외딴 산이었다. 우리는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산행을 감행했다. 산은 의외로 가팔랐다. 어제는 계단을 내려오더니 오늘은 오르막이라는 거냐?!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힘들어하면 유현욱은 그게 웃긴 지 “운동하셔야죠~^^”라며 헬스 트레이너 같은 말이나 했다. 오르막이 너무도 힘든 탓에 초반에는 막막하고 우울했다. 나중에 가서는 정신을 반 놓아 버리고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멈췄다 다시 걷는 게 더 힘들다는 걸 깨달아버린 거다.
몰운대가 넓다 보니 괜찮다 싶으면 멈춰서 영상을 찍었다. 산속에서 디즈니 메들리를 연주하고 있으면 노래와 장소의 분위기가 꽤나 어울리는 듯했다. 오전에는 날도 살짝 흐리고 숲이라 그늘도 많아 산행이 험난한 점 빼고는 아주 편안하고 만족스러웠다. 연주의 합이 어제보다 발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만큼 재밌었다. <-라고는 썼지만 사실 산행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버리고 정신이 가출한 상태라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해서 친구들에게 대부분의 결정을 위임했다. 나는 그냥 빨리 내려가서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어딘가의 꼭대기(아마 화순대였던 것 같다)에서 몰운대 마지막 영상을 촬영한 뒤 산에서 내려와 근처에서 해물칼국수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바로 옆에 있는 다대포해수욕장으로 걸어갔는데 아침과 달리 해가 개어서 엄청 뜨거웠다. 가다가 도중에 길을 헤매서 왜가리와 게를 보게 되었는데 동물 친구들이 오늘은 동물 친구들을 잘 보고 있으려나 생각했다. 금방 갈 거리를 거의 두 배 걸려서 간 것 같다(보민이를 탓 하는 건 아니다! 난 길을 찾지도 않았으니까…). 모래사장에 앉아서 한 번 찍고 바다에 발 담그고 한 번 찍었다. 모래사장에 있을 때는 해가 절망적으로 뜨거웠는데 발을 담그자마자 해가 구름 뒤로 숨어버려서 조금은 허무했다. 해가 들어가기 전에는 너무 더워서 앉았다 일어날 때 현기증이 났다. 순간 머리가 답답하게 아파서 더위를 먹어버린 건 아닌가, 걱정할 뻔했다. 다행히 이후부터 괜찮았다(난 강하다). 영상을 찍을 때 사람들이 지나가면 괜히 뻘쭘하고 부끄러웠다. 뒤에서 소란스럽게 치는 파도에 옆 친구 악기 소리가 안 들렸다. 반은 감으로 맞춘 것 같다. 그래도 바다에 발을 담갔다는 사실만으로 기분 좋았다. 월요일에도 바다에 들어가려다가 안 들어가서 오늘 발을 담근 게 정말 기뻤다. 파도가 내 다리에 닿아 부서질 때면 기분이 보들거렸다. 하얗게 무너지는 물거품이 보기 좋았다. 바닷물이 다시 쓸려 내려갈 때 따라 쓸려가는 조개껍데기가 따끔거렸다. 그 안에 게나 갯가재가 있을까 봐 조금 쫄기도 했다.
발을 말리고 3시 즈음 감천문화마을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시간이 오늘은 견딜 만했는지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고 느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한 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감천문화마을이 너무나도 ‘마을’이라 영상을 찍는 게 너무 시끄러웠던 거다! 당장 사람이 사는 집 앞에서 딩가딩가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멀리 왔는데 영상을 안 찍을 수도 없고… 최대한 사람이 없고 집도 없되 마을이 잘 보이는 장소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해도 뜨거운 마당에 다들 넋이 나가서 우울한 분위기가 지속됐다(어쩌면 그냥 내가 우울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마을이 경사면에 위치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걸어 다녀서 진짜 힘들었다. 이 와중에 유현욱은 여기서도 나에게 이게 힘드냐, 운동해야 한다며 놀렸다.
우리는 결국 어디에선가 영상을 찍었다. 마을을 사방팔방 돌아다닌 데 비해 두 번밖에 못 찍었지만 말이다. 이건 우리가 게으른 게 아니라 사람 사는 곳에서 지켜야 할 예의 같은 거였다. 마지막에는 마을 꼭대기에 전망 좋은 어딘가에서 영상을 찍었는데, 영상을 찍고 나서 결국 채원이와 나는 지쳐 드러눕고 말았다.
채원이와 나의 gg선언 이후 우리는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모둠 들살이 3일이 정말 짧게 느껴졌다. 사실은 짧게 느껴진 게 아니라 그냥 짧은 거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무언가 가볍고 허전하다고 느낀 것 같은데, 나는 그 어떤 주제도 3일이라면 알차다거나 충만하게 다가올 만큼 깊게 가져갈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들살이 준비를 시작하면서도 똑같이 생각했다. 특히나 무언가 발표한 것도 아닌 이상 ‘끝’이라 지정할 만한 사건이 없었기에 애매하게 마무리가 되었다고 느끼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숲터는 발표의 민족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3일이란 시간을 꼼꼼히 채울 수 있는 활동을 했고, 그게 아쉽거나 부족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그냥 딱 노력한 만큼의 시간이 아니었나. 내 목적이었던 '서툴러도 재밌게’에는 온전히 부합했다.
모둠 들살이라는 걸 기실 처음 해봤다고 해도 말이 된다. 이전에 학교에서 두레가 단체로 간 들살이를 모둠 들살이라고 부를 순 없으니까. 주제나 활동을 갖고 들살이를 직접 꾸려보지 않았으니까. 이번 3일 동안 모둠 들살이는 간편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다. 역할을 분담하면 혼자 할 일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간편하다. 대신 누구 하나 빠지지 않았나, 두고 온 물건은 없나 이따금 확인하고, 여럿이 힘들어 하면 모둠원 전체의 분위기가 처지는 등등 피곤하다. 사실 나보다 다른 애들이 피곤했을 확률이 높다. 나는 누굴 신경 쓸 만큼의 체력도, 무언가 판단할 만큼의 정신력도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긍정적인 면은 종일 왁자지껄하다는 점이다. 덕분에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긴다. 채원이의 일지에 따르면, ‘나만 미친 게 아니라 다같이 미쳐서 이상한 거 하자고 해도 해준다’. 혼자였으면 안 하게 될 일을 하게 되어서 좋았다. 다만 서로의 컨디션 상태가 바로바로 상호작용하니 +와 -의 격차가 극심하다. 나는 오늘 그 극심한 격차의 변동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느꼈다. 난 의외로 느린 사람인가 싶다. 나머지는 개인 들살이도 마치고 잘 정리해봐야겠다.
9월 7일 목요일
오늘은 일광해수욕장에서 광안리해수욕장까지 걷는 일정이었다. 아득하다. 그래도 처음이니까 열정적으로 일광 해변가를 따라 열심히 걸었다. 바닷바람이 선선해 기분 좋았다. 데크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학리까지 내려갔는데 바닥에 [길 없음]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이 있다고 의심조차 하지 않고 직진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함을 느껴서 지도를 봤더니 진짜로 길이 없었다. 아… 길 없다고 할 때 돌아갈 걸… 길이 얼마나 없었으면 학리까지 2km 내려왔는데 다시 일광까지 2km 걸어가야 했다. 이때부터 내 멘탈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길을 잃은 탓에 일정이 너무 지체되어서 ‘거리를 줄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엄청 빠르게 걸었다. 일정을 수정하자니 너무나도 귀찮고, 미리 알아본 식당에서 꼭 먹고 싶은 메뉴가 있어서 그냥 되는 데까지 걸어보고 나중에 수정하자는 마음으로 빨리 걸었다. 원체 보폭이 작고 걸음이 느린 편이라 남들만큼 걷는 것도 잘 못 하는데 지체된 시간을 맞추려 더 빨리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왜 나는 빨리 못 걷는 걸까?’하고 우울한 생각을 짧게 했다. 심지어 가는 길이 마을 길이 아니라 자유로 같은 6차선 도로밖에 없어서 자전거 한 대, 지나가는 사람 한 명 없는 인도를 외롭게 걸었다. 해안가를 걸을 때는 파도 소리가 들려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외진 도로의 가장자리를 걸으니 외로움이 느껴졌다. 이런 곳에서는 호신 기기의 핀을 뽑아 소리가 울려 퍼져도 아무도 안 와주겠다고 생각했다.
우울함과 조급함으로 걷다 보니 두 시간 반 만에 12km를 걸을 수 있었다(폼 미쳤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물을 채웠다. 제주도 때는 고작 초 6이 몇십kg이 되는 짐을 지고 땡볕을 걸었는데 지금은 가벼운 배낭을 메고 길을 걷는 19세였다. 그때는 1시간마다 10분씩 쉬었는데 지금은 거의 쉬지 않아도 힘들지 않았다(내일 아침의 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주도 들살이와 자전거 들살이에서 가장 힘든 건 애들이 아닌 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애들은 체력도 많고 나쁜 거 금방금방 잊는데 어른들은 정신도 말짱하고 애들도 챙겨야 하고… 이서 언니는 어떻게 제주도 보조교사를 자진 한 거야?! 이런저런 생각. 또, 혼자 걷는 느낌이 나쁘지도 않았다. 엄청나게 심심하지도 않고 엄청나게 신나지도 않는다. 제주도 때처럼 사탕을 먹는 것도 아닌데 당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너무 무식하게 걸어서 그런가, 이러다가 더위를 먹으려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식당에서 시원한 물을 먹으면 금방 회복되었다. 걷는 내내 ‘고민해야 해’, ‘생각해야 해’라는 말이 머리에 둥둥 떠다녔지만, 실질적으로 뭔가 생각해낸 건 없다. 졸작 어쩌지하는 막막함뿐.
밥을 먹고 나서 송정해수욕장에서 시간을 때우려 했는데 해가 너무 뜨거워 고통스러웠다. 아침에는 바람도 선선하고 이 정도면 뜨겁지 않아 걸을만 하다 생각했는데, 12-3시가 진짜 극악이었다. 실시간으로 피부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주차장 인근 그늘에서 생각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시간 맞춰 다급하게 오느라 아무런 생각을 못 했다는 걸 깨달았다.
광안리로 가는 길도 길이 없어서 요상한 산비탈을 오르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송정 옛길이었다. 어쩐지 길이 잘 깔려 있더라고. 산길이 지도에도 뜨더라고. 그렇지만 오르막이 너무 가팔라서 10m 갈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굴러 내려갈 순 없잖아’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제주도 들살이는 농담 삼아 나와의 싸움이라는 말을 했다. 근데 정말로 나와의 싸움이었다. 몇 번이고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꼴에 엄마랑 아빠가 보고 싶었다. 외로움과 고통이 극에 달할 즈음, 평지가 나와 그늘에서 시원하게 걸었다. 지도에서 꺾으라고 나와 있길래 꺾었는데 이상한 길로 빠져서 풀숲을 헤치며 내려왔다. 눈앞에서 인도가 끊겼다. 뒤를 돌아보니 [주의. 공사 중.]라고 적힌 푯말이 휘어져 있었다. 뭐지 이 공포영화 도입부는?! 지도를 보니 내가 잘못 왔음을 깨달았다. 인도가 없어서 차도의 가장자리를 걸어서 300m쯤 가야 했는데 돌아갈까 생각하기에는 내가 지나온 풀숲이 너무 아득해서 방황하던 차, 인간이 걸어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흙길을 찾았다.
산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해 아침과 똑같이 다급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이 정도면 도보여행이 아니라 경보여행 아닌가?! 내가 숙소 카드키를 가진 탓에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들어가면 안 돼서 계속 조급했다. 일정표를 밀리지 않으려고 송정에서 30분 일찍 출발했는데 30분 늦을 지경이었다. 나는 또 한 번 부스터를 발동한다. 그렇게 민락교에 빠르게 도착했다. 사실 민락교에서조차 길을 헤맸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 걸어갔다. 광안리 해변을 지날 때는 부산이라는 게 실감 났다(드디어). 내가 생각하는 부산의 이미지가 딱 광안리 해변이었구나. 파도가 몰아치는데도 물가에 사람이 많았다. 외국인도 많고 번쩍거리는 가게도 많았다. 종일 해변을 여럿 지나면서 아이들과 졸업 여행으로 부산에 올까, 가볍게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 찍을 때 익숙한 인영이 느껴지기도 했다. 찰칵, 이 사람은 현욱이 같네ㅋㅋㅋ …어?! 진짜로 현욱이였다. 현욱이와 인사를 하고 수영까지 걸어가 저녁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폰을 확인해보니 28km, 4만 보 걸었단다. 23km 일정이었는데 얼마나 뺑뺑 돈 건지 감도 안 온다. 거의 30km 가까이 걷고도 꽤 괜찮은 내 다리가 더 놀라웠다. 짐이 없는 게 크긴 큰 것 같다.
9월 8일 금요일
오늘 일정은 광안리에서 다대포까지 걷는 계획이다. 뭐랄까 일정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일정을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하고 있고, 내일도 할 예정이다. 숙소에서 나와 버스를 탈 때까지만 해도 오늘은 어쩐지 생각이 잘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신나있었는데 노을과 만나 제주도 들살이와 자전거 들살이 얘기를 하다가 그만 생각이란 걸 멈춰 버렸다. 말하는 도중에도 내가 수다나 떨고 있는 게 옳으냐는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노을과 못골역에서 헤어질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내가 중간에 선크림을 사느라 기다리신 김에, 어쩌고저쩌고 기타 등등으로 경성대역에서 노을과 헤어지게 되었다. 수다 떤다고 걱정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좋은 기회임이 분명한데 정신 차리기까지 몇 km 걸렸으리라.
중구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가게 이름이 기사식당이라 허름하고 사람 없을까 봐 긴장하며 걸어갔는데 내부가 깨끗하고 사람도 많았다. 무엇보다 밀면이 진~짜 맛있었다. 이번 부산 여행에서 처음 먹은 밀면이 거기라는 게 감사할 정도였다. 밥을 먹고 나서는 좀 쉬려고 민주공원으로 걸어갔는데, 가는 길이 또 오르막이라 ‘이게 뭐지?’ 싶었다. 어찌어찌 도착하니 정자에 할아버지들이 모여 앉아 장기를 두고 계셨다. 근데 그런 장기 모임이 대여섯은 되어 보일 만큼 어르신이 많았다. 대도시이고 외국인이나 관광객이 많은데 어르신도 많다. 서울은 젊은이 모임인데 부산은 늙은이와 예비 늙은이 모임인 것 같다. 아침에 노을과 걸으며 부산에 어르신이 많다는 얘기를 한 게 생각났다. 이제부터 내 안의 부산: 어르신의 도시. 사실 중구에 도착하기 전부터 다리 근육이 땅겼는데 오르막을 오르니 그게 극치에 달해 민주공원에서 아무 필기도 못 하고 멍 때리면서 쉬다가 시간이 다 갔다. 나는 다시 다대포로 걷기 시작했다(살려줘). 다대포로 가는 길 초입에 전부 오르막이라 옆에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붙잡고 탈 뻔했지만, 꾹 참고 걸었다. 근육이 굳을 대로 굳어서 넘어질 것 같아 몇 번이고 앉아서 다리를 풀어야 했다. 다대포까지 9km 남았는데 벌써 17km였다. 내가 20km 이상 걷겠다고 했지만 30km는 아니었단 말이다…. 개중에 오르막이 있다는 게 제일 억울했다. 아니다. 사실 그렇게 억울하진 않았다.
길을 잃지 않은 관계로 오늘은 다대포에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도착했다. 저녁을 뜨끈~하게 먹고 가게를 나오니 저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찰나, 황홀함에 ‘헉’ 소리를 질렀다. 원래 일정에는 다대포해수욕장을 가는 게 없지만, 냅다 달려서 해수욕장에 갔다. 가는 길에 해가 다 사라져버렸지만, 낙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오래 있고 싶었는데 아침에 광안리에서 물멍을 해 질리기도 했고, 해도 다 져버려서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9월 9일 토요일
오늘은 개인들살이 마지막 날이다. 도보여행의 묘미는 3일만으로 얻을 수 없지 않을까 아침부터 생각했다. 영도를 입구부터 한 바퀴 도는 일정이었는데 영도대교 개교 행사가 있다고 해서 걷기 시작하는 위치를 바꿨다. 아침에 숙소에서 든든하게 조식을 먹고 출발했다. 영도가 너무나 멀어 가는 데만 1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가는 길에 버스에서 졸았지만 내려야 할 곳이 종점인 덕분에 잘 내렸다. 감지해변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버스 시간이 지연된 탓에 그냥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했다. 태종대유원지 아래에서 영도대교까지 두 시간 동안 걸으면서 졸작으로 무언가 아주 오랜 시간이 들고 번거로운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으른 성격에 편리한 선택을 하는 나를 되돌아본 거였다. 근데 뭘 하면 좋을지는 모르겠어서 일단 보류. 가는 길에 인도가 다 깔려 있어서 금방금방 잘 걸어졌다. 해도 등지고 걸어서 뜨겁다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신 물의 양에서도 알 수 있었다. 내 걸음이 느리다는 편견 아닌 편견 때문에(편견이 아닐지도…) 이따금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영도 시장 부근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는 영도대교 근처를 서성거렸다. 그런데 해가 너무 뜨겁고 그늘이나 앉을 데도 없어서 건너편에 있는 영도 관광센터에 들어갔다. 전망대가 있어서 좋았다. 사실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을까 하고 들어갔는데 하나도 안 시원했다. 그래도 태양을 피했으니 다행이다. 영도대교 개교를 볼 때는 내가 이걸 왜 보려고 했는지 떠올렸다. 그냥 버스 정거장에 붙은 전단지 보고 ‘부산 온 김에 봐야지~’했었다. 그런 알량한 마음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 들살이가 여행인지 고민하게 되는 찰나였다.
3시에 노을과 만나서 마지막 걷기를 출발했다. 영도대교에서 태종대유원지까지, 다시 영도 안으로 들어가는 루트였다. 노을이 선생님은 신경 쓰지 말라 하셔서 진짜 신경 안 쓰고 내 페이스대로 걸었다. 사실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은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노을은 나를 보지도 않으실 텐데 뒤통수가 계속 뜨뜻미지근했다. 굉장히 느리게도 걸을 수 있는데 어째선지 빨리 걸어졌다. 생각도 잘 안 됐다. 이건 오늘 종일 그랬다. 최근 일주일 내 듣지도 않은 케이팝 노래가 속에서 흥얼거려졌다(쌤은 모르셨을지도). 흰여울 마을을 지나, 해안가를 따라서 쭈우욱 길게 데크길이 늘어져 있었다. 이것도 갈맷길이겠지…(당연함 부산 여행 내내 걸었음). 도중에 태풍 피해로 인한 갈맷길 수리가 있다는 표시가 있었는데 길이 멀쩡하길래 중리바닷가까지 터벅터벅 걸었다. 중리바닷가가 부산 여행에서 본 바닷가 중 가장 예뻤다. 물도 맑고 사람도 적고…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오전에 시내 길을 걸어 오후에는 산길로 가려고 했는데 도무지 산길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지?! 결국 다시 시내 길로 가야만 했다. “올 때 시내 길로 와서 다행이네요. 갇힐 뻔했어요.”라고 말해도 사실은 똑같은 길을 걸어 가야 해서 우울했다.
똑같은 길이라 거의 지도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나를 못 믿는 탓에 중간중간 잘 가고 있나 확인하는 게 다였다. 사실 오전에도 그랬다. 그야 길이 하나뿐이라 길을 잃기도 쉽지 않았다…. 한 번 온 길이라 그런지 진짜 빠르게 느껴졌다. 정신 차리면 태종대유원지 밑이었다. 5시쯤이었을 거다. 조금 쉬다가 태종대유원지를 올랐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이 오르락내리락해서 내 정신도 같이 오르락내리락했다(대충 발목 아팠다는 얘기). 3일 내내 시내 길만 걷다가 산길을 오르니 너무너무 즐거웠다. 이전에도 산행이 있긴 했지만 진짜 산!!!!스러운 산은 아니었단 말이다. 전후좌우로 풀이 가득 찬 공간이라니. 작년 이맘때를 회상했다. 자연과 교감하겠다고 하고 나 좋은 일이나 하고 왔던 제주 들살이. 그런데도 내가 나무를 사랑했구나 하고 느꼈다. 걷다가 위로 높게 뻗은 어느 소나무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느릿—하게 걷기도 했다. 나무의 심장박동을 들은 것만도 같았다. 숲을 걸으며 솔향을 맡은 일도 처음이었다.
태종대유원지에서 내려와 노을과 헤어지고 저녁을 먹었다. 메뉴를 시키고 나오기까지 오래 걸려서 마음이 초조했다. 타야 하는 버스의 배차간격이 35분이라 하루닫기 시간에 늦을 것 같았다. 식당 바로 앞이 차고지라 버스가 몇 분 뒤에 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음식이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15분 만에 다 먹고 뛰쳐나왔다. 7시 10분이었다. 버스가 출발할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급하게 길찾기를 돌려 영도를 나갈 수 있는 아무 버스나 타기로 마음먹었다(다른 버스가 언제 출발할지 모르니까). 우연히 출발하려는 버스에 덥석 탔다. 앉아서 일지를 미리 쓰고 있는데 옆에 어떤 할아버지가 서셨다. 뭔가 금방 내릴 것 같아 안 일어났는데 지난 정거장에서 안 내리시는 거다! ‘아, 더 가시나 보다’하고 자리를 내어드렸는데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셨다. 앞으로는 고민하지 말아야겠다….
오늘로 숲터 전체 들살이를 제외한 들살이가 끝났다. 거의 다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주일도 짧게 느껴지는 들살이를 3일씩 하려니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둠 들살이는 적응하기 시작하니 바로 끝나버렸고, 개인 들살이는 도보여행의 참된 고통이나 아름다움도 생각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무언가 깊게 고민하기에는 더 고된 중노동이 필요한 걸까, 생각했다. 산청에서는 왜 잘 됐지? 그땐 적어도 열정이란 게 있었다. 그럼 지금은 열정이 없다는 얘기인 걸까… 열정은 모르겠고 (태양)열은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짧은 시간에 비해 내 안의 고민은 은근히 많이 생긴 것 같다. 가장 근본적으로 ‘내 성격은 뭐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모둠 들살이에서도 개인 들살이에서도. 착하기만 한 사람 없고 나쁘기만 한 사람 없다지만, 정말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사실 걸을 때는 무표정이었다) 팔을 앞뒤로 흔들며 걸었다. 요즘에는 내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는 나를 모르는데 어른은 또 언제 되고요… 내 안의 편린 같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꽤 들 것 같다. 내 성격도 내 세상도 요지경이지만 그냥 그런 와중 나를 사랑하기를 바랐다.
9월 10일 일요일
어젯밤은 숙소의 사유로 1인실로 옮겼다. 혼자 씻고 잘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익숙해서 약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산청에서 아웃턴십을 했을 때와 비슷했다. 혼자 있는 공간이 너무나 조용해서, (같은 모둠에게는 미안하지만) 들살이 중 최고로 잘 잤다. 아침 6시에 번쩍 눈을 뜨고 나갈 채비를 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짐을 다 싸는 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남은 시간에는 조금 더 누워 있었다. 7시에 2층으로 내려가 조식을 먹고 7시 30분에 숙소에서 나왔다. 아침에 누군가가 ”오늘이 부산 마지막 날이야!”라고 하기 전까지 부산을 떠난다는 데에 별 감흥이 없었다. 일어나는 일도, 짐을 싸는 일도, 조식을 먹는 일도 전부 특별하지 않은 과정 같았다. 그렇게 무덤덤하게 부산 여행을 갈무리했다.
8시 반 즈음에 부산역에 도착해서 잠시 대기하다가 무궁화호에 올라탔다. 열차 시간표를 살펴보니 대전이 종착역이길래 한숨 잘까 했지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그냥 뜬 눈으로 3시간 반을 보냈다. 지난번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고 올 때와 같은 시간이었다. 그때도 나는 잠들지 못했다. 그때는 마음이 조급했지만, 이번은 왜였을까, 잘 모르겠다. 아이들 일지를 읽다가, 창밖을 보다가, 멍 때리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금세(는 아니고 어느 순간에) 대전역에 도착했다. 사실 현욱이와 같은 열차를 탔기에 종종 만나 대화를 짧게 했다. 수다는 아니고 그냥 밥 뭐 먹을 거냐, 같은 이야기였다. 대전역에서도 곧바로 헤어지고 각자 밥을 먹으러 갔다. 버스 시간까지 한 시간 넘게 남았으니 넉넉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전역에서 나오는 길을 잘못 찾고, 점심 식사 메뉴를 고민하다 식당에 들어갔을 때는 1시 즈음이었다. 버스 시간이 40분밖에 남아 있지 않을 때였다. 혹여 늦을까 허겁지겁 먹고 나와 버스 정류장에 갔다. 그런데 버스가 1시 40분에 정류장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버스가 1시 40분에 종점에서 출발하는 거였다. 더운데 괜히 급하게 먹었다 싶었다.
아무튼 버스를 잘 타고 숙소로 왔는데 숙소가 자연휴양림 맨 꼭대기더라. 나는 그것도 모르고 쌤이 들고 있는 저녁거리의 짐을 들어 드렸는데 감자가 한가득한 봉지라 너무 무거웠다. 따라서 가방을 앞뒤로 메었는데 그 무게감이 제주도 도보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그 조그만 아이가 어떻게 그 무거운 가방을 메고 그 먼 거리를 걸었단 말인가?! 지난 삼일의 개인 들살이가 무색해질 정도였다. 내 개인 들살이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진행 중이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뽀송했던 옷이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짐도 무거운데 오르막에다가 어제 이후로 발목의 앞 근육이 땅겨서 너무 힘들었다. 같이 걷던 친구들에게 칭얼거려서, 짐까지 넘기자니 끈기 없는 것 같아 그냥 끝까지 들고 갔다. 그래도 종아리 근육이 굳었던 개인 들살이 2일 차보다는 어쩐지 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나만 힘들지는 않았는지 다 같이 늘어져 쉬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는 가벼운 레크레이션(이라 쓰고 험난한 여정이라 읽는다)을 연우, 민애, 솔과 함께 준비했다. 열심히 준비하고 진행한 데 비해 흐지부지 엔딩이… 쩜쩜… 야심 차게 준비하고 신명 나게 추리한 데 비해 약간 아쉬운 엔딩이었다. 몇몇은 허무 해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 후에 눈치 게임으로 여러 당번을 정하고 쉬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팀이었다. 2시간 안에 저녁을 요리하고 먹고 정리를 다 하는 일정이라 마음이 매우 조급했다. 결국 저녁 식사가 조금 늦어버리기는 했지만… 다들 맛있게 먹어준 것 같아 기뻤다. 요리하는 건 정말 어렵다. 여러모로.
이후에는 모둠별 정리 시간과 단체 정리 시간을 보내고 가볍게 산책을 했다. 하늘에 별이 잘 보였는데 어느 정도 보고 나니 지루해졌다. 별을 오래오래 보고 있는 건 어떤 이유인 걸까, 아름다운 걸 오래 보는 거랑 같은 걸까…. 별별 쓸모없는 생각을 했다. 내일은 들살이 마지막 날이다. 여태 들살이 중 가장 무던한 들살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정말이지 생각을 안 했구나, 생각하기 싫어서 가볍게만 굴지 않았나. 작년 이후로 성격이 한 꺼풀 꺾였다고 느낀다. 그 꺾여지는 과정이 내 그릇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라서 턱 끝까지 차오른 비명을 몇 번이나 삼켜냈지만. 한 차례 지난 후 그 불편함이 힘들어 그냥 회피한 것 같다. 이번 들살이는 그런 내 태도를 잘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를 위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9월 11일 월요일
오늘은 들살이 마지막 날이다. 나의 12년의 모든 들살이의 마지막 날. 사실 감회가 새롭다거나 여운이 심하지는 않다. 집에 돌아간다니 즐겁기만 했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짐을 정리하고, 산을 산책하면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평온했다. 자고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기까지 한마디도 안 했다. 그냥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기운에 허우적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다 함께 숲속 어드벤쳐를 즐기고 난 후 버스를 타고 대전복합터미널로 갔다. 원래는 점심을 먹은 후 근처 공원까지 걸어갔다 오려고 했는데, 계획표를 짤 때는 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당일이 되어서야 문제점을 깨달았다. 아침에 다급하게 (사실 그렇게 빠듯하지도 않았지만) 버스 시간을 한 시간 당기고 그냥 걷는 일정을 지웠다. 우쿨렐레까지 포함하면 가방이 셋이나 되어서, 어디에 맡기기도, 들고 걷기도 어렵겠다는 판단이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두 시간이 무색하게 잠만 잤다. 잠자려고 노력하며 눈을 감을 때, 피로한 게 아니라 피곤한 거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뭐가 지치는지는 몰라도. 3년 동안 성격이나 에너지 방향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다. 서울경부터미널에서 내려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집까지 오는 길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집에 와서 아주 오래 쉬는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 밤(혹은 새벽)에서야 이 글을 적고 있다. 나의 12년 들살이를 고작 하루 만에 정리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올해 들살이에서 유독 어렸을 때의 들살이가 자꾸만 떠올랐다. 10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숲터 들살이를 준비하며 (도) 연우와 카페에 죽치고 있던 일, 7학년 때 자전거 들살이를 가기 위해 나무이야기와 단둘이 자전거 연습을 했던 일, 6학년 때 제주도 도보여행 때 화장실에서 씻다가 사람이 들어온 일... 내가 들살이를 간다고 야밤에 엄마가 가방에 짐을 하나하나 넣으며 어느 위치에 어떤 물건이 들어 있는지 알려줬던 일.
뜨거운 한낮의 부산을 걷다가 먹고 싶은 음식이 마구 떠오르거나 친구가 생각나고, 꼴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지면 '아, 내가 들살이를 하고 있구나' 실감이 났다. 들살이 마지막 밤 전체가 다 모여 아이들의 복작복작한 소리에도 드러누워 잘 수 있겠다 느껴지면 '12학년이 되어버렸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7박 8일 내내 아쉽지도 개운하지도 않았다. 즐거운 적은 종종 있었지만 마지막이라거나, 졸업이라거나 여전히 먼일 같다(하지만 금방 오길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들살이 시작 전 생각과 고민을 얻겠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했다가 정말로 내 안의 생각이 너무 많아져 들살이가 잘 정리되지 않는 듯하다. 이번 들살이 경험만을 생각하자면, 동생들에게 좋은 언니, 누나가 되고 싶어 욕심을 부렸고, 친구가 피곤해하는 걸 감각적으로 느끼면 되지도 않는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물론 이 점 때문에 피곤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만족할 수 없는 나의 지점들을 여전히 어쩔 줄 몰라서 피곤했던 것 같다. 그래서 좀 우울하기도 했다. 둥둥 떠다니는 여러 생각을 글로 적기에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다. 그렇지만 타협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번 들살이 후기는 마침표를 찍지 않아야지. 야심한 밤에도 나의 전두엽이 열일한다
첫댓글 12년의 마지막 들살이... 아직 졸업여행이 남았구나~ 즐거웠던 시간이었기를...
야심한 밤 열일한 소운양의 전두엽아 고마워. 들살이 후기를 하나 하나 읽어 가면서 이건 책으로 내야해하는 생각을^^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12년의 들살이의 기억을 따라가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되네요. 내가 간 것도 아닌데... 고작 4년의 들살이 짐을 싸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참 귀한 경험이구나를 생각해요. 아이들의 복작복작한 소리에 드러누워 잘 수 있게된 12학년의 들살이 내공 앞에 숙연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