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를 왕의 위상으로 격상시켜 놓은 부처님의 화법
오늘날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물질·권력·명예 등에 대한 욕망은 매우 크다. 이 삼대 욕망이 실현된 ‘왕(王)’이라는 신분에 대한 선망이 고대인들에게는 유별나게 컸던 것 같다. 특히, 불교 경문 상에는 왕들이 아주 많이 나오는데 그 왕들 가운데에는 지상의 여러 부족국가 왕들도 있고,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저승 세계의 왕들도 있으며, 미래 불국토의 왕들까지도 언급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이 왕에게 설법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왕과 관련된 비유적인 수사(修辭)도 적지 않다.
이 같은 현상에는, 부처가 왕자 출신이기에 왕과 왕실에 대해서 비교적 많이 알고 있다는 점과,실제로 왕의 요청으로 설법 강론함으로써 자문 역할을 해준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뿐 아니라, 그 지체 높은 왕에게까지 설법하고 자문해 주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부처님의 위상과 그의 가르침이 실로 위대하다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기 위함도 작용했을 것이다. 혹, 이런 배경 탓인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불교가 융성할 때에는 최고의 원로스님에게 ‘왕사(王師)’ 또는 ‘국사(國師)’라는 직위·직함을 주어서 국정에 대한 자문 역할을 하게 했었다.
부처님이 왕자 출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큰 스님이나 큰 보살이 된 후대의 사람들 가운데에도 왕자 내지는 왕족 출신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아마도 잘 모를 것이다. 예컨대,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초대 선종(禪宗)의 조사가 된 고대인도 승 ‘달마다라’도 부처님처럼 왕자 출신이고, 중국에서 지장보살의 화신이 된 신라인 ‘김교각’이란 사람도 왕족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경·율·론 등을 모두 합쳐 94부(部), 425(卷)을 번역하여 중국 불교 팔종지조(八宗之祖)로 널리 알려진‘구마라즙(鸠摩罗什:Kumārajīva, 344~413)’도 왕족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 바라문의 재상이었고, 어머니는 공주였다. 또한,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니율타(阿尼律陀)’도 왕족 출신이다. 이처럼 왕자 내지는 왕족 출신이 아니면 불가(佛家)의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니겠으나 왕족 출신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는 점만은 틀림없다. 그만큼 왕족으로서 물질적 풍요와 권위로써 유복하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좋은 조건들을 다 물리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부처님 세계에는 정치 권력과 물질적 풍요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점을 은연중 강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아함경』 속 「삼십유경(三十喩經)」에는, 왕이 서른 가지를 가지고서 화려하게 의식주 생활은 물론 국정을 살피는데, 수행자들도 마찬가지로 그 내용은 다르지만 서른 가지를 가지고서 산다는 비유적인 부처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 서른 가지만을 뽑아 놓으면 아래와 같다.
1. 계덕(戒德)으로써 장엄하게 장식하는 도구를 삼느니라.
2. 금계(禁戒)를 가지는 것으로써 범행의 으뜸으로 삼느니라.
3. 6근(根)을 보호하는 것으로써 합문(閤門)을 지키는 사람으로 삼느니라.
4. 바른 생각으로써 문을 지키는 장군을 삼느니라.
5. 자기 마음을 욕지(浴池)로 삼느니라.
6. 착한 벗을 목욕시키는 사람으로 삼느니라.
7. 계덕으로 바르는 향을 삼느니라.
8. 부끄러워함으로 의복을 삼느니라.
9. 4선(禪)으로써 평상을 삼느니라.
10. 바른 생각을 이발사로 삼느니라.
11. 기쁨으로 음식을 삼느니라.
12. 법미(法味)로써 음료수를 삼느니라.
13. 공(空) 무원(無願) 무상(無相)의 세 가지 선정[定]으로써 꽃다발을 삼느니라.
14. 천실(天室) 범실(梵室) 성실(聖室)의 세 가지 집으로 집을 삼느니라.
15. 지혜로써 집을 지키는 사람을 삼느니라.
16. 4념처(念處)로써 조세(租稅)를 삼느니라.
17. 4정단(正斷)으로써 네 종류의 군사(軍士)를 삼느니라.
18. 4여의족(如意足)으로 수레를 삼느니라.
19. 지관(止觀)으로써 수레를 삼느니라.
20. 바른 생각으로써 차 부리는 사람을 삼느니라.
21. 자기 마음으로써 높은 기[幢]를 삼느니라.
22. 편편하고 바른 8지성도(支聖道)로써 길을 삼아 평탄한 길을 따라 열반으로 나아가느니라.
23. 지혜로써 주병신(主兵臣)을 삼느니라.
24. 지혜로써 큰 정전(正殿)을 삼느니라.
25. 위없는 지혜의 높은 궁전에 올라, 자기 마음이 두루 하고 바르며, 부드럽고 연하며, 기뻐하고 악을 멀리 여읜 것을 관찰하느니라.
26. 4종성(種聖)으로써 종정경(宗正卿)을 삼느니라.
27. 바른 생각으로써 좋은 의사(醫師)를 삼느니라.
28. 걸림이 없는 선정으로써 정어상(正御床)을 삼느니라.
29.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해탈로써 명주보(名珠寶)를 삼느니라.
30. 자기 마음을 관찰함으로써 몸의 지극한 깨끗함으로 삼느니라.
이 짧은 문장들에 동원된 용어들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설어 보이겠지만 수행자들에게는 귀가 솔깃해지면서 관심이 가는 내용이자 화법(話法)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수행자가 왕처럼 산다거나, 왕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이 말을 듣는 순간 자부심이 생기면서 귀담아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서 하나하나 따지듯 새기어 보면, 수행자는 온갖 계율을 지키고, 선정수행으로 정진하며, 몸과 마음을 늘 청정하게 하고, 마음과 현상을 대상으로 삼아 관찰로써 지혜를 얻어 번뇌 없이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 실현해 주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사실, 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복락과는 정반대되는 덕목들로서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수행자들의 시선을 끌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자부심을 느끼도록 왕의 일상적인 생활수단에 빗대어서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일목요연하게 부각해 놓은 것이다. 물론, 부처님은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듯이 자신의 불법세계에도 그 바다와 같은 특성들을 두루 갖추고 있기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바다 좋아하듯이 좋아한다는 멋진 수사적인 화법을 구사하셨지만 많은 사람이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왕과 수행자를 동격으로 여기는 듯한 이 화법 역시 탁월한 지혜에서 나온 것이라 판단된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원하는 바가 거의 다 종합되어 있는 위 서른 가지를 음미할 때마다 필자는 우리 주변에 있는 불교사원들에서 수행 중인 ‘현실적인’ 스님들을 떠올리곤 했었다. 오늘날, 우리의 사원들은, 한사코 죽은 자의 명복이나 빌어주고, 산 사람의 소원이나 비는 기도처나 하숙집 구실을 하고, 경전 속 어쭙잖은 지식 나부랭이를 팔며,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이나 구걸하거나 벌어들이는 사업장이 된 지 오래되었고, 오히려 속가(俗家)의 사람들보다 더 감각적인 욕구를 즐기면서 추구하는 생활을 하는 곳이 되어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언제부턴가, 내 마음속에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아차렸으니 아무래도 내가 먼저 눈을 씻고 귀를 막아야 할 것만 같다.
- 2014. 08. 27.
- 2017. 05. 1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