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상으로 북방이 허한 전주의 기를 보하기 위해 숲을 조성해 놓아 숲이 칙칙하게 우거진 곳이라 해서 숲정이라고 불렸다. 이곳은 군사훈련장으로 사용되었고 자연히 죄인들의 사형장으로도 사용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유항검의 가족이 피를 흘린 후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은 곳이다. 연이은 박해 때마다 많은 이들이 순교했는데, 신원이 밝혀진 사람은 1839년 기해박해 때 16 명, 1866년 병인박해 때 6명 등이다. 또 1867년에도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이곳은 1984년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었다.
예전에는 해성학교가 자리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순교자 조윤호의 이름을 딴 윤호관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