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on Tree'
65년도에 발표된 'Trini Lopez'의 'Lemon Tree' 는
70년대 말 까지만해도 우리나라 팝 팬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은 곡이다
이 노래는 헐리웃영화 'Secret Agent Man' (국내영화 제목 ; 에이젠트) 에
'Trini Lopez' 가 직접 출연하여 동명 주제곡과 함께 부르기도 한 노래이며
당시 라디오방송 음악 프로그램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자주 흘러나올 정도로
인기를 끈 '트리니 로페즈'의 대표곡이라 할수있다
그러던 노래가 8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기 시작 하더니
90년대에 등장한 'Fool's Garden'의 동명이곡 'Lemon Tree'가 발표되어
이 노래가 대세를 이루면서 'Trini Lopez'의 '레몬 트리'는
점차 잊혀진 노래가 되었다.
리메이크의 귀재 'Trini Lopez'
'Trini Lopez'는 1937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출생한 멕시칸계이다
1963년 1집 앨범 'Trini Lopez Live at PJ's'로 데뷔한 그는 일찌기
기타리스트 로서도 명성을 쌓았으며 상류사회의 사교클럽을 주무대로 활동했다
아래 동영상 'Sinner Man'에서 보듯이
당대의 헐리웃 스타 '프랭크 시나트라'와 '딘 마틴' 그리고 '데보라 카' 등
저명한 거물급 인사들이 그의 공연을 관람하며 같이 춤추고 즐길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고'비틀즈'의 외국 순회공연에 게스트 싱어로 참여하는 등
그의 인기와 연예계 인맥은 화려했으며 이는 곧 그의 높은 위상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어떠한 노래든 자기만의 색깔과 개성으로
신명나게 노래 하므로서 듣는이로 하여금 흥겨움을 유발시키는 남다른
재주를 타고 났는데 그런 소질과 관록은 어찌보면 국내가수 '조영남'과
매우 흡사한 존재라고 할수있다
라틴풍의 그의 노래스타일이 대체적으로 흥겨울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특히 노래 중간 중간에 추임새처럼 내뱉는 괴성과 특이한 애드립은
그의 전매특허로서즐거움을 배가 시키고 대중들에게 어필 하는데 크게 한몫했다
예를들어 'Ritchie Valens'가 부른 '라밤바'는 '트리니 로페즈'의 리메이크로 인해
원곡을 뛰어넘는 인기와 명성을 쌓아 명곡으로 재 탄생할 수 있었으며
'If I Had A Hammer'와 'You Are My Sunshine' 'Guantanamera' 'America'
그리고 'Blowin' In The Wind' 나 'Perfidia' 'Cansas City'등 많은 노래들을
그의 탁월한 음악성과 독특한 애드립 으로 탈바꿈 시켜
인기행진을 계속하게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경쾌한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는데 그를 두고 '리메이크의 귀재'라고 한들
이상할게 하나도 없는 수식어라 하겠다
그는 2003년 국제 라틴음악 명예의 전당에 헌정 되었다
America
Guantanamera - Trini Lopez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관타나모의 여인이여, 관타나모의 시골여인이여
관따나메라, 과히라 관따나메라,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관타나모의 여인이여, 관타나모의 시골여인이여
관따나메라 과히라 관따나메라
1.Yo soy un hombre sincero
나는 진실한 사람이라오
요 소이 운 옴브레 신쎄로
De donde crece la palma
야자수가 자라는 마을 출신이랍니다
데 돈데 끄레쎄 리 빨마
Yo soy un hombre sincero
나는 진실한 사람이라오
요 소이 운 옴브레 신쎄로
De donde crece la palma
야자수가 자라는 마을 출신이랍니다
데 돈데 끄레쎄 라 빨마
Y antes de morirme quiero
그리고 내가 죽기 전에
이 안떼스 데 모리르메 끼에로
Echar mis versos del alma
나는 내 영혼의 시를 쓰고 싶어요
에차르 미스 베르소스 델 알마
2.
Mi verso es de un verde claro
나의 시는 신선한 초록색이며
미 베르소 에스 데 운 베르데 끌라로
Y de un carmin encendido
불타는 쟈스민입니다
이 데 운 까르민 엔쎈디도
Mi verso es de un verde claro
나의 시는 신선한 초록색이며
미 베르소 에스 데 운 베르데 끌라로
Y de un carmin encendido
불타는 진홍색(쟈스민)입니다
이 데 운 까르민 엔쎈디도
Mi verso es un ciervo herido
나의 시는 상처입은 사슴입니다
미 베르소 에스 운 씨에르보 에리도
Que busca en el monte amparo
산에서 피난처를 찾는..
께 부스까 엔 엘 몬떼 암빠로
이 노래는 관타나메라Guantanamera)라는 쿠바 음악이다.
이 노래는 음률도 아름답고 가사도 서정적이어서 쿠바에서는 제2의 국가와 같이 많이
불리는 노래이다.
스페인 식민통치시절 고단한 삶을 영위하던 쿠바사람들의 저항의 시(詩)이고 밑바닥에서
승화된 쿠바 특유의 음악 형태로 표출된 가락이기 때문이다.
쿠바에서는 국가(國歌) 이상으로 모국을 상징하는 노래로 애창되고 있으며
시(詩) 구절(句節)을 원전으로 한 민요적인 멜로디로 이루어 졌기 때문에 쿠바는 물론
당시 스페인의 통치를 경험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사랑을 받는 노래이다.
살사의 음률과 남미의 독특한 리듬을 섞어서 최초로 악보화 되어 발매 된 것은
1945년 호세 페르난데스 디아스(Jose Fernandes Dias)가 과히라(Guajira)라는
고유의 음악형식을 빌려 발표한것이 효시이다.
그러나 그 후 음반이 페판되면서 세상에서 잊혀지는듯 했으나 1963년 미국 포크음악의
대부 피트 시거(Pete Seeger)가 다시 노래를 불러 빛을 보게 되었다.
때마침 쿠바에서의 소련 핵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과 소련과의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에서 쿠바인들의 평화를 염원하는 각종 집회와 시위의 단골메뉴로 이 노래가
불려지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넓리 퍼지게 되었다.
노래제목인 관타나메라(Guantanamera)는
쿠바 동남쪽의 한 시골 항구마을인 “관타나모의 여인”이라는 뜻이고
후렴에 나오는 과히라(Guajira)는 농사짓는 시골 여인네를 뜻한다고 한다.
호세 마르티(Jose Marti)
가사를 쓴 호세 마르티는 쿠바의 국민영웅이며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853년 쿠바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침략자 스페인에 대항해서 독립전쟁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17세 되는 해에 스페인 총독에 의해 추방 당하고 남미의 여러나라를 전전하다가 뉴욕에
정착하면서 평소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재능을 살려 시와. 소설. 평론. 등 70여권의
저서를 발간한다.
뉴욕에서도 계속 망명운동을 한 그는 42세 되는 해 1895년 미국의 도움을 받아 혁명군을
모집하여 스페인군에 결사 항쟁했지만 애석하게도 고향땅인 산티아고 시 동쪽에 위치한
“관타나모”에서 전사하고 만다.
마르티는 조국해방의 큰뜻을 가슴속에 묻은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조국에서 역사상
가장 추앙 받는 혁명가와 문학가로 길이 아로 색이면서 쿠바를 비롯해 전 남미가 애창하는
민요 “관타나메라”라는 작사를 남겨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관타나모(Guantanamo)
-----쿠바 지도-----
관타나모는 쿠바 아바나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특별한 역사를 지닌 조그만 도시이다.
1903년 이래 지금까지 미국의 군사기지로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들과
이라크 전쟁의 포로들이 지금까지 수감되어 있는 곳이다.
관따나모는 카리브해의 악명높은 허리케인을 피할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천혜의
항구도시이지만 쿠바인들에게는 치욕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1494년 콜럼부스가 상륙한 곳이 바로 관따나모였고 그 때문에 신대륙의 황금을 찾아
나선 열강들이 군사적 요충지로 눈독을 들이면서 멕시코에서 영국으로 다시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점령당해 왔었다.
미국은 쿠바에 있는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함 메인호를 하바나항에
정박시켰는데 의문의 폭발사건(미국의 조작설이 있음)으로 격침되었다.
1898년 미국의 매킨리 대통령은 이 사건을 빌미로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하고
관따나모를 점령. 미군기지를 건설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미.서 전쟁”이다.
이 전쟁의 결과로 미국은 쿠바외 필리핀을 사실상 식민지화 할 수 있었고
일본과는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은 조선을.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화하는 것을 승인해 주었다.
1903년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매년 금화 2,000개(약 4,085달러)의 기지 임대료를
쿠바에 지불하고 미국이 원할 때까지 관따나모의 부지를 사용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혁명이 성공했음에도
미국은 포기하지 않고 기지 주변에 28마일 길이의 철책을 둘르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쿠바 미사일 기지가 해결되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관따나모의 중요성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체포된 탈레반과 알카에다 포로들.
그리고 2003년 이라크전쟁의 포로들이 이곳에 수감되면서 세계인의 이목이
다시 집중되는 아이러니(Irony)한 지역이다.
쿠바에서는 제2의 국가로 불린다고 한다.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
관타나메라 관타나모의 농사짓는 아낙네여
Yo soy un hombre sincero
De donde crece la palma
Yo soy un hombre sincero
De donde crece la palma
Y antes de morirme quiero
Echar mis versos del alma
Y antes de morirme quiero
Echar mis versos del alma
나는 종려나무 고장에서 자라난 순박하고 성실한 사람이랍니다
내가 죽기 전에 내 영혼의 시를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
관타나메라 관타나모의 농사짓는 아낙네여
Mi verso es de un verde claro
Y de un carmin encendido
Mi verso es de un verde claro
Y de un carmin encendido
Mi verso es un ciervo herido
Que busca en el monte amparo
내 시 구절들은 연두빛이지만,
늘 정열에 활활 타고 있는 진홍색이랍니다
나의 시는 상처를 입고 산에서 은신처를 찾는 새끼 사슴과 같습니다
혁명의 열정과
체 게바라의 기억이
남아 있는 쿠바의 노래
(쿠바의 '아리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암튼 음악만 나오면 아무데서나 , 아무하고나 춤을 춘다는 나라
관따나메라(Guantanamera)는
스페인의 식민통치 아래 고단한 삶을 영위하던 쿠바 사람들의
저항의 노래이자 저항의 시(詩)이다. 노래 가락도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쿠바 독립의 아버지인 호세 마르티의 싯구절을
원전으로 한 민요이기 때문에 쿠바는 물론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경험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사랑받고 있는 노래다.
모국인 쿠바에서는 공식적인 국가(國歌) 이상으로
쿠바를 상징하는 노래로 애창하고 있다.
이 노래는 민요의 특성상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최초로 악보화 되어 음반으로 발매된 것은
1945년 호세 페르난데스 디아스(Jose Fernandez Dias)가
과히라(guajira)라는 고유의 음악형식으로 발표한 이다.
그러나 그 해 미국에서 음반이 폐판 되어 세상에서 잊혀졌다.
그 후 1961년 미국 포크음악의 대부 피트 시거(Pete Seeger)가
쿠바 청년에게서 노래를 채보하여 1963년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때마침 쿠바 내의 소련 핵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과 소련과의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에서,
이 노래가 "A hard rain gonna fall"과 함께 평화를 염원하는
각종 집회와 시위에서 단골메뉴로 불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1966년에 ‘샌드 파이퍼스’(Sand Pipers)라는 보컬 트리오가
발표한 싱글 앨범이 미국 내 판매 10위권에 들어가고
앨범차트 9위에 오르면서 널리 알려지고,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는 노래로 불려지게 되었다.
관따나모의 비극
노래 제목인 ‘Guantanamera’는 쿠바 동쪽의 한 시골 항구마을인
‘관따나모의 여인’이라는 의미로 관따나모는 1903년 이래 지금까지
미국의 군사기지가 있는 곳으로,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들과 이라크 전쟁의 포로들이
수감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관따나모는 대서양의 태풍 허리케인을 피할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천혜의 항구도시이지만,
쿠바인들에게는 치욕의 장소이다.
콜럼부스가 상륙한 곳이 바로 관따나모였고,
그 때문에 신대륙의 황금을 찾아나선 열강들이
군사적 요충지로 눈독을 들여 콜럼부스 이후
지금까지 멕시코, 영국, 스페인, 미국 등에
점령 당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1889년 하바나항에서 일어난 미국 군함 메인호의
폭발사건(후에 미국이 조작했음이 밝혀짐)을 빌미로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하고 관따나모에 미군기지를
건설 하는데, 이것이 바로 ‘미·서 전쟁’이다.
이 결과로 미국은 쿠바에 친미정권을 세우는 한편,
일본과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조선을
일본에 넘기고 필리핀을 식민지화할 수 있었다.
1903년 미국은 매년 금화 2,000개(약 4,085달러)의 기지
사용료를 쿠바에 지불하는 대신 미국이 원할 때까지
관따나모의 기지를 사용한다는 계약을 맺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혁명이 성공하자
미국은 기지 주변에 28마일 길이의 철책을 둘렀다.
쿠바 핵위기가 해결되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관따나모 기지의
중요성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체포된 탈레반과 알카에다 포로들과,
2003년 이라크전쟁의 포로들이 이곳에 수감되면서
세계인의 이목이 다시 집중되기도 했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 (호세 마르띠 Jose Marti)
(1853 1.28 - 1895 5.19, 스페인 식민시절 쿠바 아바나 출생)
Helmut Lotti _ Guantanam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