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있어 궁궐방문은,
흥선대원군의 거처 운현궁을 제외한
정식 궁궐방문은 처음이라
사뭇 기대했던 관광모임이었습니다.
집결지
서울우리소리박물관 도착.
관광 시작 전에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우리소리가 참 청명하고
전통 깃다는걸
단번에 알수 있었습니다.
헤드셋을 쓰면
원하는 옛소리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감상해 보시겠습니까 ?
첫번째소리는 자장가이며
두번째소리는 책읽는소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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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창덕궁 관광 시작합니다.
3개조로 나누고 저는 3조.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친 동궐도
가로 6미터. 세로 4미터
18개의 접이식 책으로 연결된 꽤 큰 궁궐지도.
식물전문가가 바라본다면
해당 식물이 어떤식물인지 알 정도로 디테일.
금천교(돌다리입니다. ) : 비단 금 / 물 천
궁궐중심까지는 반드시 다리가 있었다합니다.
창덕궁은 유일한 세계문화유산.
1405년 태종때 지어졌고 시대별 골고루 분포
자연훼손없이 조화롭게 배치된 궁궐입니다.
금천교는 그대로 남아있는 돌다리
완쪽은 일반인이 다니는 관문.
오른쪽은 왕이 사는 세계로 인식.
누구나 건널수는 없었고
가운데 보시면 삼각형 귀신얼굴 보이십니다.
나라를 지키는 귀신이겠지요.
금천교옆 아름다운 나무들
창덕궁은 찍으면 작품입니다.
돈화문
창덕궁의 입구. 정문입니다
광화문의 화는. 될 화 : 널리가르쳐 깨운다
돈화문은 유교로써 "돈독"하게 가르친다는 뜻
당시 광화문을 거쳐서 돈화문으로 이동했고
일대 종묘가 있어
종묘보다 멀리 정문은 맨우측 동남문입니다
창덕궁 배치도
금천교를 지키는 상상의 동물.
45도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 눈에는 원숭이로 보였습니다
진선문
태종때 백성의 소리를 듣겠다는 신문고.
사실상 전시행정이었으며 한번도 울리지 못합니다
임금 행차시 백성이 꽹과리치고 격쟁을 하였고
불경죄로 곤장으로 때린후 다스렸으나
격쟁 올려서 바로 처리해주었다 합니다
원래 취지와는 달랐으나
백성의 소리를 들어주기는 했나봅니다.
정청
삼사라고 불리는 사헌부.사간원.홍문관
오늘날 감사원 정도 되겠네요
이조정랑이 거처하던 곳 이랍니다.
김효원이 이조정랑으로 있을때
심의겸의 아들 심충겸이 이조정랑 추천되었는데
김효원은 반대하였고 심효원과 정쟁합니다.
덕수궁근처. 서쪽에 살았던 심의겸.
서인의 시초가 되었고 관록있는 정치인 많았습니다
건천동근처. 동쪽에 살았던 김효원.
동인의 시초가 되었고 젊은피 정치인 많았습니다.
오늘날 당쟁의 메카 인가요.
인정문
인정전 입구이며 : 어질 인
경복궁의 근정전은 : 근면할 근
넘어가는 턱이 꽤 높습니다.
계단도 한칸 한칸 꽤 높았구요.
한걸음에 빨리 오르려다가
우당탕 자빠졌습니다 ( 본 사람 별로없쥬? )
당시는 창피해서 모르겠던데
지금 삭신이 쑤십니다.
시크님이 말씀하셨네요.
그 시대에 안 태어난게 정말 다행이라고...
박석 : 울퉁불퉁한 돌
왜 돌이 울퉁불퉁 할까요 ?
1. 왕앞에서 넘어지지않게 조심하라.
2. 목화장화 밑바닥 돼지가죽이라 미끄럽지않게.
3. 평평하면 태양빛 받아 눈이 부셔서.
정답은 해설사님도 모르셨습니다.
다 맞다고 하실까요....^^
일본이 모란심고 어지럽혀 놓은걸
최근에 새 돌로 다시 재건했습니다.
품계석
인정전
사극에서 흔히 듣던 조정입니다.
외벽이 황금색 : 황제상징
용말루 꽃문양의 "오얏리 자두꽃"의 왕실문양
대개의
세개의 문을 거쳐 들어가고
세개의 다리를 통과해야 합니다.
큰행사. 초하루. 보름. 동지. 사신올때만.
조정에서 큰 행사가 있을때
지금의 운동회처럼 천막을 쳤겠지요 ?
천막을 칠때 지지대역할의 차일축
24개 품계
왼쪽은 무반
오른쪽은 문반
합쳐서 양반의 유래가 됩니다.
자세히 보면 3층구조입니다.
왕은 1층으로 다녔겠지요.
저도 1층을 고집했습니다.
임금은 이곳에 당도하여
어떻게 계단을 올랐을까요 ?
네 맞습니다.
체통이 있어
여의 라는 뚜껑없는 가마로 올라갔다 합니다.
불났을때 또는 불귀신 쫓아낼때 쓰던 드므
얼지않게 저어주는 당번도 있었다 합니다.
답도 : 밟는길
임금시점에서의 조정
자~~왕이 되셔서
아침조회 진행한다고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앉는 자리
노란색 황제 의미.
왼쪽의 달. 오른쪽의 붉은해
다섯산봉오리
일월오봉도
옛 모습 재현
윗쪽 사진은
새집 짓지말고 뱀을 방지하고자 망을 설치하였고
중국이름 : 부시
아랫쪽 사진은
단청이 새부리 모양입니다.
새둥지 못 짓게 그렇게 모양을 냈다 전합니다
선정문
편전의 기능이었다가
혼전의 기능으로 바뀌었습니다.
정조 순조 철종의
혼이 깃든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왕이 매일 일하는곳입니다.
1919년 고종이 덕수궁에서 승하.
창덕궁의 순종은 덕수궁으로 탈상까지 문상.
옷 갈아입고 전화로 곡을 했다합니다.
왔다갔다 힘들었겠지....
최초의 전화를 덕율풍이라합니다.
telephone을 음차했지요.
우물자리 장마루의 전통마루입니다.
조립이 가능하죠
복도각
비 맞지 말라고요.
왕의즉위식은 사실은 엄청 슬픈날이었습니다.
상왕이 돌아가셨으니까요.
면류관 인정문앞에서 즉위식 소박하게
악대는 진열만 했습니다.
상왕이 죽었는데 피리 부를수는 없었겠지요.
태종이 세종에게 물려주었을때는
상황이 다릅니다
상왕이 살아있을때이며 기쁜날이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식을 올렸습니다.
상기의 넓은 마당같은곳은
내시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맨날 모여 왕의 뒷담화를 하고있으니
숙종이 빡쳐서
온돌대신 대청마루로 갈아서 응징(?)했으며
대청은 후에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청기와
희정당
임금의 친전이며 편전을 겸용.
호텔현관 처럼 보이죠 ?
맞습니다.
어찰(왕의 리무진) 을 대던곳입니다
차방향을 자세히 보세요
조수석위치로 보아
현재의 일본식입니다.
일본의 영향아래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보경당 잔디
영조모친 숙빈최씨 거처
대조전 : 크게 왕자 잘 만드세요..라는 뜻
왕비의 침소. 또는
왕과 중전이 사랑을 나누던곳.
가운데 대청마루
좌우대칭 동서침실
동.서는 비밀 : 암살을 방지
중전의 중 : 가운데 중
세자의 거처 동궁 : 동녁 동
해설사님 말씀에 의하면
러브체어 라는뎁...!
소녀..안해봐서 잘 모르겠사옵니다........ㅡ.,ㅡ
문틈으로 찍었는데
현대식 세간입니다.
희정당
바깥산식.
외제라는 말입니다.
프랑스식의 맞춤가구를 들여놨으며
중앙난방이고 금강산벽화를 걸어 두었습니다.
약 짓는곳 입니다.
현판을 자세히 보시면
왕을 칭하는 단어가 살짝 솟아있습니다.
왕격감법
왕을 높이는 필법입니다.
희우루
기쁜비
장락문
신선이 살고 들어가는곳
낙선재
헌종이 책읽고 거주하고자 지음.
민가의 형태
경빈김씨가 후궁때 지었으며
후세를 고대했으나 2년뒤에 승하.
20개의 여러문양의 문짝
호리병 문양
다산을 상징
다리가 좀 아팠습니다.
틈만나면 앉으려 했습니다.
창덕궁의 까치
( 저에게는 이 사진이 오늘의 하이라이트 입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던지
뚝딱 한그릇 맛있게 게눈 감추듯.
막걸리는 얼마나 시원하던지요.
커피숖으로 이동했고
늘 마시던 비타민 레몬차 마시며 대화삼매경
만보는 보너스 였습니다.
창덕궁 도보여행
찍으면 작품이 되었고
참 이쁘고 멋진 왕의 궁궐 입니다.
참 좋았습니다.
@아가랑 그러게요. 철들고 나이먹어
공부를 더하는듯~~
모그래도 좋아요.
녹슬어가는 머리는 자주 굴려주어야지요
ㅎㅎㅎ
창덕궁 역사 탐방 후기글을 섬세하게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많은 내용들을 빠뜨리지 않으시고요.
우리 1조팀에서는 없었던 해설 내용도 있어서 다시 한번 복습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날이 궃은데 유쾌한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