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버리다니, 요새의 내 꿈은
방이 많은 집 하나 짓는 일이야.
그래 이 세상의 떠돌이와 건달들을 먹이고 재우고,
이쁜 일탈자들과 이쁜 죄수들,
거꾸로 걸어다니는 사람과 서서 자는 사람,
눈감고 보는 사람과 온몸으로 듣는 사람,
끌어안을 때는 팔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사람,
발에 지평선을 감고 다니는 사람,
자동차 운전 못 하는 사람,
원시주의자들,
말더듬이,
굼벵이,
우두커니,
하여간 그런 그악스럽지 못한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게
방이 많은 집 하나 짓는 일이야.
아냐, 호텔도 아니고 감옥도 아니며
병원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야.
무정부적인 감각들의 절묘한 균형으로
집 전체가 그냥 한 송이의 꽃인 그러한 곳.
그러니까 자기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이나
어떤 경우에도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은 들이지 않을 거야.
도대체 슬퍼하지 않는 사람도 물론 들이지 않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벽창호,
각종 흡혈귀,
모르면서(모르니까?) 씩씩한 단세포,
(또는 자기가 틀렸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도 물든
흔적이 보이지 않는 글을 쓰는 먹물들은 들이지 않을 거야.)
앵무새는 물론 안 되고,
모든 전쟁광들과 무기상들,
핵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출입 금지.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있겠지만
이하 생략.
허나 어떤 사람이든 환골탈태를 하면 언제든지 환영이야.
누구를 제외하는 데서 얻는 쾌감은 제일 저열한 쾌감의 하나이니.
꿈을 버리다니, 요새의 내 꿈은
한 그루 나무와도 같아
나는 그 그늘 아래 한숨 돌리느니.
- 정현종, <한 그루 나무와도 같은 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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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막심과 사샤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주 사샤를 처음 만났을 때 덩치가 큰 탓에 입을 수 있는 옷들이 없어 안동에 나가 옷을 사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던 터라 약속을 잡고 함께 나가게 된 것이지요. 사샤가 의성에 온 지는 한 달여.. 모든 것이 낯설고 나서서 도와주는 이 없는 사샤의 처지를 생각하니 저라도 기댈 언덕이 되어주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차를 타고 오가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저와 비슷한 연배이거나 더 많을 꺼라 생각했는데, 웬걸요. 저보다 9살이나 적은 나이였습니다. 제가 형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앞으로 형이라 부르라 했습니다. 러시아에 있는 17살 아들과 아내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요? 멀리 있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이곳 의성에서의 삶이 사샤에게 보람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지인을 통해 안동에는 빅 사이즈 옷을 취급하는 옷가게가 아마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다행히 한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겨울을 대비한 일상복을 사고, 재래시장에도 가보아 편하게 입을 츄리닝도 하나 골라 구입했습니다. 옷을 사고는 안경점에 들었습니다. 막심이 멀리 있는 것이 잘 안 보인다고 검사도 받아보고 안경값이 얼마인지도 알아보자 하여 저희 가족이 이용하는 안경점으로 향했지요. 검사를 하니 양쪽 시력이 0.1밖에 되지 않았고 난시도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안경을 맞추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에 나올 때 맞추겠다고 저의 팔을 잡아당겼습니다. 제가 도울 수도 있었지만 저의 팔을 강하게 붙잡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다 싶어 안경점을 나왔습니다. 집에 가는 길 차 안에서 막심은 자신의 숙소에 돈은 충분히 있다고, 자신이 살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라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사샤는 또 하나의 고민거리를 이야기했습니다. 알뜰폰 유심을 사용하고 있던 사샤는 한달 요금을 지불해야 정상적인 통화가 가능한데 대리점에서 가르쳐준 방법대로 해도 돈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했습니다. 바로 고객센터에 연락해 가상계좌를 받고 그곳으로 송금해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옷 구입, 시력 검사, 휴대폰 요금문제라는 3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막심과 사샤는 기분좋게 자신들의 숙소로 향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들인데, 이들에게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숙제였던 것이지요.
성경은 하나님을 나그네와 과부들과 고아들의 아버지로 묘사합니다. 특히 나그네의 고달픈 삶을 잘 살피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며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신10:17-19). 더불어 우리도 나그네였음을 잊지 말라 하십니다(출22:21). 그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건 그저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더욱 분명히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정현종 시인의 꿈이 우리 모두의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방이 많은 집 하나" 지어 설 자리 없어 서러운 모든 이들이 마음 놓고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포근한 보금자리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편하게 누울 방은 다름 아닌 우리입니다. <2023.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