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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3일 야구계를 충격에 빠뜨린 소식이 발표 되었다.
조지 미첼 전 민주당 상원위원이 이끈 '미첼 위원회'가 20개월동안 2000만 달러를 투입해 만든 <미첼 리포트>가 발표된 날 이였다.
당시 <미첼 리포트>에는 수많은 슈퍼스타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이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 리스트에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라 불리던 "로켓" 로저 클레멘스의 이름도 있었다.
*이 시절에는 약을하지 않았던 걸로 추측. 하지만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한 시점은 본인만 알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순 없다.
1. 화려했던 보스턴 시절과 보사구팽.
클레멘스는 대학을 졸업한 후 1983년 1라운드 지명을 받고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하게 된다. 클레멘스는 입단 후 2년간 준수한 성적을 보이다가 1986년부터 미친 성적을 찍어냈다. 그는 정규이닝 20K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24승 4패 238K 254이닝 2.48 ERA라는 기록을 남기며 시즌을 마쳤고 만장일치 사이 영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그의 괴물적인 피칭은 이듬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계속 되었다. 그는 1987년 20승 281.2 이닝 18완투 7완봉이라는 독보적인 성적을 찍으며 사이 영 2연패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클레멘스는 90~92년 3시즌 연속 ERA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90년에는 정규시즌 ERA 1점대를 찍을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 였다. 하지만 90년에는 ERA 2.95에 27승을 기록한 밥 웰치가 92년에는 마무리의 패러다임을 바꾼 에커슬리에 밀려 이 기간동안 사이 영은 한번만 수상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폭주한 탓인지 이후에는 4점대 ERA도 찍고 94년에는 선수노조 파업때문에 10승에 실패하였다. 그렇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거 처럼 보였지만 1996년 그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정규이닝 20K와 탈삼진 1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보스턴은 클레멘스를 토사구팽 하였다. 당시 언플로는 "클레멘스의 황혼기를 함께 하고 싶었다"는 등의 발언을 하였지만
오히려 이 황혼기 발언은 클레멘스의 심기를 건들렸고 결국그는 4년 4000만불의 계약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하면서 192승 112패라는 기록을 남긴 보스턴 생활을 끝냈다.
2. 제2의 전성기이자 약물 복용의 시작.
토론토로 이적하자마자 1997년 21승 7패 ERA 2.05 264이닝 292K를 기록했고 이듬해였던 1998년에는 20승 6패 ERA 2.65 234.2이닝 271K를 기록하면서 다저스의 전설 샌디 코팩스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트리플 쿠라운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다.
당연히 사이 영은 클레멘스가 차지하였으며 이로써 그는 통산 4,5번째 사이 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렇게 클레멘스는 자신의 부활을 화려하게 알렸다.
클레멘스의 스플리터
이 시기의 부활은 스플리터의 장착으로 이해가 됐었으나 <미첼리포트>에 따르면 이 시기부터 자신의 트레이너였던 맥나미를 만나서 약물에 손을 댔다고 한다. 당시 그는 경주마에 주입하기도하는 윈스트롤을 주입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때마다 맥나미는 클레멘스의 아파트에 방문해 주사를 해줬고, 맥나미가 기억하고 있는 횟수는 4번이다. 당시 클레멘스는 맥나미에게 '효과가 대단히 좋더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1998년 만 35세 시즌을 보냈던 클레멘스는 약의 힘을 빌린 이후 시즌 마지막까지 14승 무패 ERA 2.29를 기록했고 마지막 11경기에서는 123K를 기록하였다.
SI의 표지를 장식한 로저 클레멘스
3.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반지를 얻다.
클레멘스는 당시 우승권 팀이 아니였던 토론토를 떠나고 싶어했고, 지난 2년간의 활약을 지켜보던 양키스가 클레멘스를 트레이드로 영입하였다. 클레멘스는 맥나미를 뉴욕으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당시 맥나미는 토론토와 계약 중이여서 따라갈 수가 없었고 클레멘스는 약물과 트레이너로써 도움을 주던 맥나미가 없었기에 이적한 첫 시즌이였던 1999년 14승 10패 187.2이닝 ERA 4.60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커리어 로우를 찍었다. 하지만 그는 커리어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하였다.
상황이 좋지 않자 결국 맥나미를 양키스로 불러들였으나 이미 동일한 역할을 하는 코치가 있었기때문에 당시 선수단은 탐탁치 않게 여겼고 이로 인해 소동이 벌어졌다. 어쨌든 맥나미는 양키스에 합류하고 이는 구단에 약물을 더 퍼지는데 이바지 하였다.
맥나미를 불러들인 다음 이후 시즌이였던 00년도를 기점으로 점차 다시 성적이 좋아졌고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는 8이닝 무실점 호투를 하여 양키스의 우승에 어느정도 기여하였다. 결국 2001년에는 통산 6번째 사이 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
이후 2002시즌에 잠시 부침이 있었지만 만 40세 시즌 이였던 2003년에 다시 재기에 성공하며 올스타에 뽑히는 등 아직까지 건재하였다.
클레멘스에게 약을 전해주고 투여해주었던 트레이너, 브라이언 맥나미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약물로 만들어진 커리어와 영광이였다.
<미첼리포트>와 맥나미의 증언에 따르면 클레멘스는 잠시 약물을 끊기도 하였지만 2000년 시즌 중반부터 다시 약물을 복용하였고 당시 클레멘스는 자신이 얻어온 성장호르몬과 스테로이드를 맥나미에게 가져가 투여를 부탁했고 맥나미를 그것들을 주입했다. 이후 전반기 ERA 4.33이던게 3.15까지 내려왔고 후반기 7승 2패를 거두며 사이 영 6위를 차지했다.
2001년에는 맥나미가 성폭력 혐의로 구속이 되어 양키스와의 관계를 정리했지만 클레멘스와 앤디 페티트는 계속 맥나미와 함께 훈련했다. 이듬해였던 2002년에도 클레멘스는 계속해서 맥나미에게 소포를 통해 성장호르몬을 받는 등 약물을 계속해서 사용했고 그 결과 2003년 대망의 300승과 4000K를 기록하였다. 당시 은퇴시즌이 유력했기 때문에 모두 클레멘스의 대기록인 300승과 400K를 축하 해주었다.
이후 클레멘스는 월드시리즈에서 7이닝 3실점으로 피칭을 마치고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마운드 내려왔고 그렇게 커리어가 끝나는거 같았다.
4. 로켓의 본고장으로 가다.
하지만 클레멘스는 은퇴를 번복하고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1년 500만불의 계약을 했다. 로켓의 본고장에서 로켓맨은 다시 한번 폭발했다. 만 41세 시즌이였던 2004년 그는 18승 4패 ERA 2.98 214.1이닝 218K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령, 개인 통산 7번째 사이 영 상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그렇게 그는 전설이 되었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투수가 되었다.
2005년에는 저번년도에 적게받은 연봉까지 합하여 무려 1800만불이라는 연봉을 받게 되었고 이는 또다른 휴스턴의 레전드인 베그웰의 이른 은퇴에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보란듯이 무려 만 41세라는 나이에 13승 8패 ERA 1.87 211.1이닝 185K를 기록하였으나 포스트시즌에는 크게 활약을 못했다. 2006년부터 클레멘스는 자신의 체력을 인지하였고 이후 소위 말하는 알바 짓을 시작 하게 되었다.
시즌 중반에 PO 진출 가능성 있는 팀들이 자신의 몸값을 올려놓자 그때 계약에 나서는 얍삽한 짓을 했다.
이후 2007년 그는 양키스로 다시 돌아갔고 당시 투수 역사상 최고 연봉을 갱신하였다. (2800만불)
하지만 떨어진 구위가 발목을 잡았고 그의 커리어 마지막 시즌은 먹튀라도 해도 할말 없는 성적이였다.
만 44세에 AL 최고령 선수였던 클레멘스는 그렇게 은퇴를 선언하였고 라이브볼 최고의 투수로 길이길이 남을꺼만 같았다.
2008년 미국 의회 위원회에서 선서하는 맥나미(왼)와 클레멘스(오)
5. 약물에 격추된 로켓.
2007년 말 <미첼리포트>가 발표되면서 야구계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미첼리포트> 발표되자 당시 클레멘스는 약을 절대 하지 않았다고 반발했고 청문회에서도 경기력 강화를 위해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맥나미의 폭로와 팀 동료였던 앤디 페티트의 진술, 그리고 심리전분가의 분석등으로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그렇게 그는 위증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고 그는 최악의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이후 재판에서 위증에 대한 판결은 무죄가 선고 되었다.)
그렇게 금자탑을 쌓아올린 그의 커리어는 단지 숫자로만 남게 되었고, 그의 명성은 끝없이 추락했다.
덩달아 민디 맥크리디라는 가수와 섹스스캔들이 폭로되었다. 민디가 만 15세일 적부터 불륜을 저질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간 자신이 등판하지 않는 원정경기에 불참하고 가족과 함께 있는 가정적인 사나이라는 명예까지 실추되었다.
이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본즈와 함께 해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득표율을 올렸지만 결국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하였다.
한편 같은 해에 다른 약쟁이는 첫 턴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었다.
트레이너였던 브라이언 맥나미가 주장하는 클레멘스의 약물 복용시기는 1998시즌 5월 초부터 이다.
맥나미의 주장이 맞다면 그는 데뷔 이후 97시즌까지 14시즌간 213승을 기록한 레전드였으나
그의 욕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약물에 손을 댔고 괴물이 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욕심은 화를 불렀고 그의 명예와 커리어는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첫댓글 사실전 클레멘스를 싫어했어요 유치원때부터 그냥 존슨 페드로랑 찬호형하고달리 싫었어요
존슨 사이영을 뺏은 느낌도 자꾸들고
지나고나니 더 추악한거죠
내려오는게 무서웠을꺼라는게 이해는 되지만 참..
모르겠네요 타에이스들은 보고싶은데 클레멘스는 그런생각이 안드는
명전간 다른약쟁이가누구죠..?
오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