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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5일 NLDS 3차전. 이 경기는 시애틀에서 21년만에 열린 포스트시즌 경기였다.
그리고 이 의미있는 경기의 시구자는 15년간 시애틀의 암흑기 속 에이스였던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였다.
펠릭스의 루키 시절
1. 흙속의 진주를 찾아내다.
만 14세에 94마일(151km)의 포심을 던진 펠릭스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만16세가 되던해인 2002년 그는 많은 팀들의 제안 중 시애틀 매리너스를 선택하였고 71만달러의 사이닝보너스를 받고 입단 하였다.
이후 싱글 A, 싱글 A+, 트리플 A를 박살냈고 마이너리그를 평정하였다. 이때부터 그의 별명은 킹이였다.
그렇게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만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콜업 되었고 8월 4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전에 빅리그 데뷔와 커리어 첫 선발로 등판 했다. 5이닝 2실점 1자책이라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였지만 타선의 빈타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후 펠릭스는 84.1이닝 동안 4승 4패 ERA 2.67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안착했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펠릭스는 2년차때 커리어 첫 10승을 달성하였고 계속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시애틀의 선발진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킹"이라고 불렸던 기대에 비하면 약간 아쉬운 성적이였다. 그러나
전용 응원석과 피칭하는 펠릭스 에르난데스
2. 시애틀의 왕이 되다.
2009년 잠잠했던 킹의 포텐셜이 폭발한다. 펠릭스는 만 23세에 19승 5패 238.2이닝 ERA 2.49 217K fWAR 6.9를 찍으면서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다승왕과 승률왕이라는 타이틀 홀더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레인키에 밀린 사이 영 2위를 기록하며 더욱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듬해였던 2010년 시애틀과 5년 7800만불의 계약을 맺으며 시애틀은 그에게 초특급 대우를 약속했다.
그리고 펠릭스는 괴물로 성장했다. 당시 시애틀의 타선은 개막장이였기 때문에 13승 12패라는 초라한 클래식 스탯이였지만 당시 249.2이닝 ERA 2.27 232K fWAR 6.7 bWAR 7.2를 기록하였다. (당시 4점 이상의 득점지원을 받은경기는 34경기중 단 7경기)
결국 2010년 사이 영 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펠릭스는 고국인 베네수엘라에서 이 소식을 듣자마자 펑펑 울었다.
그리고 시애틀은 구장에 펠릭스의 전용 응원석을 만들었고 그가 2 스트라이크를 잡게 되면 관중들은 K! K!를 외쳤다.
시애틀의 암흑기 속 팬들의 유일한 볼거리는 5일에 한번씩 찾아오는 펠릭스의 선발경기. '해피 펠릭스 데이' 였다.
하지만 2011년에는 구속과 구위 모두 하락하면서 14승 14패 ERA 3.45 200.2이닝 222K를 기록하면서 전년도 사이 영 수상자라는 타이틀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그는 시애틀의 에이스이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였다.
2012시즌 초반에도 구속저하로 고생을 했지만 6월 말부터 구속이 다시 올라오면서 다시 폭주 하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역대 23번째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펠릭스 에르난데스
그리고 2012년 8월 15일, 템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 9이닝 무실점 12K를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역대 23번째, 시애틀 매리너스 사상 첫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펠릭스의 퍼펙트게임은 현재까지도 마지막 퍼펙트게임이다.
하지만 9월에 조금 부진하며 13승 9패 232이닝 ERA 3.06 fWAR 6.6을 기록하였고 시즌이 끝난 뒤 기존 계약인 2년 3950만불에
5년 1억 3550만불을 추가한 총 7년 1억 7500만불 규모의 연장게약에 합의 하였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대 투수 총액과 연 평균 금액의 역사를 새로 썼다.
대형계약을 체결한 2013시즌 전반기에만 무려 10승을 달성하며 기대를 높였지만 후반기에 부진하면서 12승 10패 204.1이닝 ERA3.04 216K fWAR 6.1을 기록했다. 2014시즌에도 여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5시즌 부터 그의 하향세가 시작되었다. 후반기에서의 부진이 더욱더 심해져 텍사스 8이닝 무실점 경기를 제외한 모든 후반기 경기에서 실점을 하였다.
6년 연속으로 이어가던 200이닝- 200K의 대기록도 마감을 하였고 세부 지표에서 2006년 이후 커리어로우를 기록하였다.
3. 예상하지 못한 왕의 몰락.
2016년 펠릭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0마일(144.8km)까지 떨어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된다.
예전의 모습은 더이상 찾아 볼수 없었고 그의 ERA는 해가 갈수록 끊임 없이 오르게 된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7년간 연평균 WAR이 5.4였으나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그의 연평균 WAR은 0.4를 기록하며 추락했다.
그리고 그의 부활은 없었다.
킹이 빨리 무너진 이유는 팀의 훈련 프로그램을 거절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훈련을 하고 오프시즌에 쉬지 않고 비디오 분석도 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혹사이다. 그는 29세 시즌까지 2262이닝을 던졌는데 이는 1985년 이후 데뷔한 투수 중 1위에 해당 된다. 만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지금까지 굴려진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시애틀 소속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펠릭스 에르난데스
2019년 9월 26일 시애틀 소속으로 마지막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그는 106개의 공을 던지면 5.1이닝 5피안타 1피홈런 4볼넷 3K 3실점을 기록했다. 경기 내용을 좋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5회까지 버텨냈다. 그렇게 팀의 암흑기 속 유일한 희망이였던 펠릭스는 마운드에서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하였고 선수들과 코칭스탭 그리고 팬들의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으며 시애틀에서의 커리어를 끝냈다. 그리고 그의 등번호인 34번은 임시 결번 처리 되었다.
이후 2020시즌 애틀란타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고 시범경기에서 4경기 13.2이닝 ERA 1.98 14K로 클래스를 보여주었고 무난히 40인 로스터에 들어가는듯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40인 로스터 진입이 지연되었고 결국 2020시즌 참가를 포기하였다.
2021년에는 볼티모어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지만 이제는 90마일 이상을 나오지않는 구속과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공을 던지지 못했고 결국 개막 로스터 진입에 실패하며 팀을 나왔다. 이후 팀을 찾지 못하자 만 35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를 했다.
2022년 그가 떠난 시애틀은 21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고 홈구장에서 21년만에 열린 포스트시즌 경기에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바로 암흑기 시절 팀의 에이스였던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시구를 하러 방문 한 것 이였다. 그렇게 그의 포스트시즌 첫 투구는 애석하게도 시구가 되었다. (팀은 이 경기 패배하면서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했다)
한 기자와의 인터뷰
Q. 왜 시애틀에 그렇게 충성 하는가?
A. 나는 매리너스를 사랑하고 매리너스는 내 가족이자 내 인생이다.
펌)화려했던 로켓의 추락 - 로저 클레멘스
펌)낭만을 던졌던 우리들의 교수님 - 로이 할러데이
펌)누구보다 화려했다 - 팀 린스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