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연휴는 잘 보내시고 계십니까? 자주 뵙지못해 죄송합니다.
오늘 올리는 글은 진변한 24소국에 대한 글입니다. 제가 역사문에 올린 한참 모자란 글들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신라사에 대한 저의 의견을 대충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제글을 읽지 않으시거나 아직 이해가 가지않으신분들을 위해 짧게나마 다시 설명드리자면 원래 신라는 동예지역에서 남하한 세형동검세력이 한의 태기왕을 죽이고 지금의 원주, 충주지역까지 세력을 키워서 자리잡은 것을 고구려의 지원을 받은 매금세력이 다시 점령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남한강 유역과 경북북부지역에 남은 고구려식 돌방무덤이 이때 생겨난 것이고 광개토대왕의 임나정벌후 대가야 지역을 흡수한 이 매금신라는 자신들의 역사서와 임나 즉 대가야의 역사서에서 왜라고 부른 진한의 영역을 조금씩 점령해 마침내 우리가 익히 아는 신라의 영역을 차지하고 난후 자신들의 역사서와 동예의 역사서 임나의 역사서를 한데 묶어서 역사서를 만드는데 이것이 박씨(동예), 석씨(임나), 김씨(매금)의 신라고기라는 것이 나의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위지동이전에 남아 있는 3세기 중엽의 한의 모습에서 신라가 보이지 않는 것은 나에게 있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진한 12국
1. 기저국
거칠산국(居漆山國)
신라의 굴자현(屈自郡)·구사군이라고 불린곳 오늘날의 칠원, 칠북 창원시 북부지역
삼국사기(三國史記) 거도전에는 탈해이사금때 거도(居道)가 마숙(馬叔)이라는 말달리기 놀이를 빙자하여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을 멸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우시산국은 아시량군((阿尸良郡), 거칠산국이 이 기저국으로 생각된다.
탈해이사금이 신라의 왕이 아니라 대가야의 시조왕이라는것이 나의 주장이다. 동이전의 쓰일때만 해도 아직까지 진한의 땅이였다.
2. 근기국
금관국(金官國)
오늘날의 김해,진해이다.
큰구지라는 뜻인듯 하다. 지금은 낙동강 하구에 퇴적물이 많이 쌓여서 구분하기 힘들지만 위성지도를 자세히 보면 이지역이 하나
의 큰 곶으로 보인다.
김해가야 즉 금관가야의 왕인 수로왕은 원래 임나 즉 우유국에 자리했다가 탈해왕에게 우유국을 빼앗기고 난후 이 근기국으로
옮겨온것으로 생각한다.
3.염해국
삼국사기 지리지가 신라의 파사왕이 취해 굴아화현(屈阿火縣)을 둔곳을 고려의 울진 지금의 울산지역으로 비정한것은 지금 강원도
울진의 잘못이다. 파사왕이 두었다는 굴아화현은 고구려가 장수왕때 두었던 고우이군(古于伊郡), 신라가 우진(于珍)이라고 부른곳
이고 오늘날의 강원도 울진이다.
굴아화현은 파사왕이 음집벌국(音汁伐國)과 압독(押督) 두나라를 같이 묶어 만든 현일것이다. 원덕읍과 울진군이다.
염해국은 울주 우화현(于火縣)이 있던곳으로 지금의 울주군, 울산 지역으로 비정되고 있다. 옳은듯하다.
4.군미국(軍彌國)
오늘날 김천시북부지역 감문면 일대와 구미 . 후에 우로가 점령한 감문국
5. 여담국(如湛國)
경북 군위. 위천(渭川)유역 세력
6. 호로국(戶路國)
영천, 경산,하양, 대구 동구,북구 일대 금호강 세력. 실성왕때 경주 명활산성을 침입한 왜이고 눌지마립간을 복병으로 궁지로
몰아넣은 왜. 신라본기의 왜는 진한과 영산강 세력이다. 독산(獨山)의 독은 홀로 독이고 군위 화산산성이 있는 화산이 이 독
산이라고 생각한다.
7. 마연국(馬延國)
뫼안 즉 산내(山內)란 의미로 생각된다. 밀양 무안면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할머니가 말의 옆구리를 밀어서 만든땅이라고 전
해진다. 실제 지도를 살펴보면 밀양은 낙동강을 접하는 남쪽을 제외 하곤 산으로 빙둘러 싸여 있다.
신라가 이땅에 추화군(推(밀다)火郡),밀성(密城) 등의 이름을 붙인 것은 밀진(密津) 즉 오늘날 무안면지역에서 내려오는 빨래하던
할머니가 빨래방망이로 말의 옆구리를 찔러서 터전이 만들어졌다는 이 지역의 설화에서 이름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8. 난미리미동국(難彌理彌凍國)
미리는 은하수를 뜻하는 미리내에서 보이듯 강(江)을 뜻한다고 생각된다. 낙동강의 옛이름 황산강(黃山江)의 황은 누를황이므로
"난미리"는 이 낙동강을 나타내는 말인듯 하다.
미동의 "동"은 우리말의 단단하다, 되다, 등의 어원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바닷물이 잔잔한 천연항구를 뜻한다고 생각 한다.
낙동강 하구의 천연항구 동래 부산 지역이다.
9. 우유국(優由國)
가장 좁은의미의 임라.
고령
동이전이 쓰여질 당시만해도 아직 이 임라가 진한의 영역인 상태이다. 직후에 반파국을 차지한 고순시국의 석탈해가 임라를 점
령한 후 나라이름을 고순시의 첫글자와 우류(임나)의 첫글자를 따서 계림이라 짓게 되고 수로왕은 김해지역으로 밀려가서 금관
국에 새로히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10. 불사국(不斯國)
사로국이 경주라고 못박고 보면 신라사는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않는다.
경주의 명활산성(明活山成)은 "밝은살이"라고 풀이되고 이 불사국은 경주 안강 포항 등지의 형산강세력으로 보인다.
<첨해 이사금 15년 봄 2월, 달벌성(達伐城)을 쌓고 나마 극종(克宗)을 성주로 삼았다.>
대가야는 이 때 대구 경산의 압량토성을 쌓아서 호로국을 견제하고
<실성 이사금 4년 여름 4월, 왜의 병사들이 명활성(明活城)을 공격해왔다. 그들이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자, 임금이 기병
을 이끌고 독산(獨山)의 남쪽 길목에서 요격하였고, 다시 싸워서 그들을 깨뜨리고 3백여 명을 죽였다.>
영산강 세력과 마한의 근초고왕과 연합하여 국권을 회복한 실성왕때 와서야 경주 보문단지 까지 영역을 뻗어서 달벌성과 명활성
두개의 전초기지로 호로국과 불사국을 한꺼번에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는 실성왕이전까지는 진한의 영역이였고 이 후에도
신라본기에서 왜라고 부르는 진한세력에게 끊임없이 침입을 당하게 된다.
11. 사로국(斯盧國)
상주 사벌면, 계림동과 선산군 여기가 사로국이 아니면 어디가 사로란 말인가?
대가야의 우로태자가 감문국과 함께 편입한 땅이고 후에 우로가 죽게 되자 대가야는 우로를 시조로 하는 "습비부"와 왕자 이음
을 시조로 하는 "본피부"로 분열하게 된다. 본피부의 마지막왕이 진흥왕때 항복하는 항복하는 대가야의 "도설지"이고 백제 성왕
과 함께 신라에 반기를 드는 "가량"이 바로 습비부이다.
선산군과 상주 개령면은 신라본기의 가량으로 신라 습비부이며 성주군과 고령군은 신라본기의 가야로서 신라 본피부인 것이다.
12. 주선국(州鮮國)
창령은 신라때 서화현(西火縣)또는 비자화군(比自火郡)이라 불렸고 청도의 비슬산은 비슬산(琵瑟山)또는 소슬산(所瑟山)이라
불렸다.
그리고 성주군은 신라때 본피현(本彼縣)이라고 부르다가 경덕왕때 신안(新安)으로 고쳐 성산군(星山郡)에 붙였다가 후에 벽진
군(碧珍郡)으로 부르게되었다고 한다. 이런점으로 보건데 원래 주선국은 지금의 성주군, 대구 달성군 서부 일대와 청도지역
그리고 창녕까지 포함한 나라였다가 대가야에 의해 점령된다음 성주군지역은 대가야의 직할지로 붙이고 달성군과 청도,창
령군 일대는 비슬 또는 비자로 부른것으로 생각된다. 실성왕이란 명칭이 이나라의 이름에서 나온것으로 생각한다.
변진12국
1.변진미오사마국(弁辰彌烏邪馬國)
삼국유사의 우시산국(于尸山國). 신라가 점령하고 난후 아시량군((阿尸良郡)으로 부른곳이다. "미"는 물이고 "오","아","우"는 아래 또는 안쪽이란 의미인 듯하다. "사", "시"는 솟아올랐다는 의미로 보인다.
따라서 미오사마는 물아래(안)솟은뫼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남강과 낙동강으로 둘러쌓이고 남고북저형인 지형을 의미한듯하다. 함안의 서부지역.
2.변낙노국(弁樂奴國)
경남의령군은 원래 장함현(獐含縣)과 주오촌(朱烏村)였던곳을 경덕왕때 의령현(宜寧縣), 신이현(新尔縣)으로 이름을 고치고 고려때 이 두곳을 합쳐서 의령현(宜寧縣)으로 부른곳이다.
장함현의 "장(獐)"은 노루이고 "함(含)"은 머금다는 뜻이니 장함의 의미는 노루목이라고 풀이된다. 노루는 중세언어에서 "노로"라고 확인된다.
의령은 동쪽은 낙동강, 남강을 사이에 두고 창녕과 함안을 남쪽은 남강을 경계로 진주 서쪽과 서북쪽은 산청과 합천을 접하니 이런 이름이 붙는게 당연해 보인다.
신이현은 우리말중 이곳과 저곳을 이어주는 길을 샛길이라고 하는데 이 샛길의 본말은 사잇길이고 주오촌의 뜻도 저쪽과 이쪽이며 신이현도 결국 저쪽과 이쪽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좀 재밌는 것은 사이길은 구조적으로,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병렬적 구조다 저쪽과 이쪽이란 것을 도치해서 이쪽과 저
쪽이란 말도 당연히 가능한 것이고 그렇게 볼때 이 노루국이 "사이기국"이며 "이서고국"이라고 볼수있다. 우리말의 어휘가 다양한것은 우리민족구성이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3. 변진고자미동국(弁辰古資彌凍國)
삼국사기지리지에 의하면 경남 고성은 본래 고자군(古自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성(固城)으로 고쳤다."라고 수록하였다. 그리고 경남통영은 툭튀어나온 곶이면서도 그 앞바다가 거제도와 여러섬으로 둘러싸인 덕에 바닷물이 잔잔한데 이런 지리적특성으로 통영은 옛부터 항구가 생겼고 따라서 이런 이름이 생긴것 같다. 곶이면서도 바잣물이 잔잔한 경남 고성, 통영일대라고 생각된다.
4. 변진반로국(弁辰半路國)
반로’의 ‘로(路)’는 양직공도(梁職貢圖〉에 나오는 백제주변 소국의 하나인 ‘반파(叛波)’의 ‘파(波)’나 일본서기 계체기(繼體紀)에 보이는 반피국(伴跛國)’의 ‘피(跛)’가 잘못 쓰여진 것으로 본다. 합천의 야로면은 원래이름이 적화현(赤火縣)이였다가 757년(경덕왕 16)야로현(冶爐縣)으로 이름을 고쳐 고쳐 고령군의 영현으로 하였다가 고려 현종 때 합천군으로 이속시켰다. 반파는 밝벌의 음을빌린것이고 적화는 뜻을 빌린것으로 보인다. 경덕왕때 이름을 야로 즉 대장간으로 바꾼것은 이지역에 내려오던 석탈해의 설화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보인다.
5. 변진감로국(弁辰甘路國)
감천면을 포함한 김천시 남부일대
6. 변진주조마국(弁辰走漕馬國)
경남 함양은 고려때 이름이 바뀌기 전엔 천령군이였다. 그전의 이름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신라의 속함군(速含郡, 또는 含城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원래 있는 운봉현에다 마리현(馬利縣)을 이안(利安)이라 개칭하여 속현으로 삼고 군의 이름을 천령군(天嶺郡)으로 바꾸었다. 속함의 속은 빠르다는 뜻이고 이지역에 고갯길이 많은것으로 보아 지름목이라고 풀이 할수 있으니 원래 의미는 지름재山國 정도로 풀이 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운봉현은 지금의 남원시 운봉읍이다. 마리현을 속현으로 삼기전 속함군이 주조마국이라고 생각된다. 원래는 남원시부터 주천면,운봉읍, 인월면까지 이 주조마국의 영역이였다가 삼국시대 말기에 남원시지역은 백제로 넘어가서 교룡군이 되고 나머지는 신라의 속함군이 된것으로 보인다.
7.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
경남 마산시는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굴자군이 의안군으로 개칭되고 합포현(合浦縣)으로 바뀌어 굴자군의 영현이 되기전 이름이 골포현(骨浦縣)이였다. 우리말의 "손톱"의 예로 보면 뼈(骨)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전까지 우리말의 뼈는 돌(石)과 같은 발음이 아니였나 생각한다. 그리고 마산 앞바다에는 돝섬이 있으며 동이전에서 이 독로국이 왜와 접한다고 하였는데 고려때 마산에서 여몽 연합군이 일본정벌을 위해 떠났음을 볼때 여기가 일본으로 향하는데 있어서 고대에 가장 널리 이용되던 항만였다고 짐작된다.
8. 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
전남 광양시는 백제에 편입되고 난후에 이름이 마로현(馬老縣)이였다. 미리미동이라는 말은 강(江)자체가 전부 나루(津)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섬진강은 옛날에 구례까지 배가 드나들었다고 하고 그 이름 자체에 진(津)이 들어간다. 전남광양과 경남하동
9. 변진접도국(弁辰接塗國)
오늘날의 경남 진주시는 백제가 점령했을때는 거열성(居列城)으로 불렀으나 후에 신라의 문무왕때 빼았은 변진한일대를 한데 묶어서 거열주를 설치하였다가 신라 신문왕5년에 지금의 남원과 구례 지역을 완산주에 붙이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변진한지역을 뽑아내서 菁州를 설치 하였다고 본다.
"菁"은 청이나 정으로 발음되는데 "청"이라고 읽을것이 아니라 접도에서 따온 "정"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에 강주(康州)라고 이름을 바꾼것은 고순시국의 영역이였던 궐지현(闕支縣)의 이름에서 따온것으로 보이고 그뒤 고려때 접,정(菁)과 발음이 비슷한 진(晉)주로 이름을 바꾼것이다.
10.변진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
오늘날 거창군은 신라때 이름이 거열군(居烈郡)이였다. 열(烈)은 거열성이나 거열주의 열(列)과는 다른데 거창군의 열(烈)은 점점세지다.거세다라는 의미이고 거열주의 열(烈)은 벌일 열이다. 따라서 거열주 또는 거열성의 열(烈)은 벌 즉 들판을 의미한다고 보이며 접도국의 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거열군의 열(烈)은 고순시의 순의 음을 한자의 뜻으로 나타낸것으로 짐작된다.
이같은 풀이는 일본서기 흠명기에 보이는 걸손(찬)국(乞飡國)이라는 이름에서도 확인되며 이 걸손국과 함께 흠명기에 같이 보이는 산반하국(散半下國)은 산청군 생비량면일대로 생각된다. 따라서 고순시국은 석탈해가 걸손국과 산반하국을 병합하고 난뒤에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원래 석탈해는 변한진의 소국 걸손국, 즉 오늘날의 거창지역에서 세력을 일으켜 산반하국 즉, 오늘날 산청지역을 병합한 다음 나라이름을 고순시로 지었다가 반파국, 즉 오늘날의 합천지역을 점령하고 우류국, 즉 오늘날의 고령지역을 통합한 다음 나라이름을 계림으로 지었다는 것이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석탈해조는 바로 이때부터 일어난 대가야의 역사로 보는 것이다.
11. 변진안사국(弁辰安邪國)
신라의 마리현(馬利縣)은 경덕왕이 이안(利安)이라 개칭하여 천령군(天嶺郡)의 영현으로 삼았다가 1390년(공양왕 2)감음현(感陰縣)에 이속시켰다. 또 이 고려때 감음현은 신라 때의 남내현(南內縣)인데, 통일신라시대의 경덕왕 때 여선(餘善)으로 고쳐 거창군의 속현이였다가 고려시대 초기에 감음현이 되어 합주(陜州), 즉 지금의 합천(陜川)에 예속되었다. 마리현은 오늘날의 함양군터이고 감음현은 오늘날의 함양군 안의면이다.
마리현과 이안현은 모두 주조마국의 안쪽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고 감음현은 거창군(걸손국)안쪽이라는 의미로 쓰인듯 보이며 이 감음현의 신라때 이름 남내현도 안쪽이라는 의미이며 경덕왕때 여선이라고 고친것도 이곳이 안사국의 영역으로 볼 근거가 된다.
또 산청군 생초면의 "초(草)"는 풀이라는 뜻이므로 결국 생초도 일본서기에 보이는 산반하(해)국의 영역이라 볼수 있다. 따라서 이 산반하(해)국은 원래 지금의 산청군과 비슷한 영역인데 이 위지동이전이 쓰여질 당시에는 일부는 석탈해의 걸손국에 병합되고 일부는 이 안사국의 영역으로 나누어 진것으로 생각된다.
12. 변진구사국((弁辰狗邪國)
지금의 전남 순천 지역은 백제시대까지는 감평군(欿平郡) 또는 사평(沙平)·무평(武平)이라고 하였다. 또 전남 구례군은 백제때 이름이 구차례현(仇次禮縣)이였으며 전북 임실군 청웅면은 거물성을 짓고 나당연합군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던곳이며 백제때 거사물현( 居斯勿縣)이 있던 곳이다. 따라서 이 구사국은 오늘날의 임실군 남부부터 구례군,순창군과 순천시와 여수시까지를 영역으로 하는 대국으로 보인다. 위지동이전에 나오는 신리아(臣離兒) 불례(不例) 구사(拘邪) 진지(秦支)염(廉)之號 의 구절로 보건데 삼국유사에 나오는 보라국(保羅國)즉 불례(不例)국의 영산강유역 세력은 이곳을 손에 넣음으로써 오늘날의 전남지역대부분을 차지하여 세력을 키워 진염치로 불리면서 대가야와 더불어 한반도 남변과 일본열도를 두고 자웅을 겨루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어원 관련된 부분에서 생각 드는 것이 있어 조금 적어 봅니다.
난미리미동국 등에서 '미리'를 미리내를 연상하시면서 강(江)의 의미로 푸셨는데, 이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합니다. 일단 미리내(은하수)에서 강을 의미하는 쪽은 '미리' 쪽이 아니라 '내' 쪽입니다. ('시내', '냇물' 할 때의 그 '내' 입니다. 용비어천가의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구절처럼 작은 강만이 아니라 바다에 들어가는 규모 있는 강도 '내'라 할 수 있음) 고유어로 용(龍)을 '미르' 라고 부르기 때문에 미리내는 '용의 강'이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미리' 부분은 강(江)의 의미가 아니라 용(龍)의 의미가 되는 것이죠.
* 난미리미동국의 '미리' 가 용(龍)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닙니다. 전 이 단어를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 지는 불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미리'에 강의 의미를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미주가효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날카로운 지적도 고맙습니다. 미주가효님의 지적이 타당해 보입니다. 참조하여 본문의 내용을 고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