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만나는 옛길의 역사와 문화. 2016년 제 12회 길 문화축제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서 제 12회 길 문화 축제를 개최합니다. <전주에서 만나는 옛길의 역사와 문화.> 라는 주제로 2016년 11월 12일(토요일)에서 13일(일요일)에 전라북도와 전주시 일대에서 이틀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이번 제 12회 길 문화 축제의 첫날, 오전은 고즈넉하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완주의 화암사와 경천 저수지 일대를 거닐고, 오후에는 승암산에서 기린봉으로 이어지는 전주의 아름다운 산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일요일에는 아름다운 옛절인 귀신사와 후백제를 창건한 견훤이 도읍을 정했던 천년 고도 전주의 한옥마을을 거쳐 남부시장을 거닐고, 오후에는 청연루에서 한옥마을에서 길문화 축제의 꽃인 전통 상여놀이를 펼칠 예정입니다.
“절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아름다운 정경이 15세기에 만들어진 <화암사중창기華巖寺重創記>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절은 고산현高山顯 북쪽 불명산佛明山 속에 있다.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봉우리들은 비스듬히 잇닿아 있으니,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없어 사람은 물론 소나 말의 발길도 끊어지지 오래다. 비록 나무 하는 아이, 사냥하는 남정네라고 할지라도 도달하기 어렵다. 골짜기 어구에 바위벼랑이 있는데, 높이가 수십 길에 이른다., 골골의 계곡물이 흘러 내여 여기에 이르면 폭포를 이룬다. 그 바위벼랑의 허리를 감고 가느다란 길이 나 있으니, 폭은 겨우 한자 남짓이다. 이 벼랑을 부여잡고 올라야 비로소 절에 이른다. 절이 들어선 골짜기는 넉넉하여 만 마리 말을 감출만하며, 바위는 기이하고 나무는 해묵어 늠름하다. 고요하되, 깊은 성처럼 잠겨 있으니, 참으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둔 복된 땅이다.” 그렇게 오르기 힘들었던 바위벼랑 아래 철 계단을 만들어서 옛길을 오르는 사람만이 그 옛날의 정취를 떠올릴 수 있는 화암사가 고려 때 사람 백문절白文節의 글에 실려 있다.
“ 어지러운 산 틈 사이로 급한 여울 달리는데, 우연히 몇 리 찾아가니 점점 깊고 기이하네. 소나무. 회나무는 하늘에 닿고 댕댕이 줄 늘어졌는데, 백 겹 이끼 낀 돌다리는 미끄러워 발 붙이기 어렵구나. 말(馬)버리고 걸어가니 다리는 피곤한데, 길을 통한 외나무다리는 마른 삭정이일세. 드물게 치는 종소리는 골을 나오기 더디고, 구름 끝에 보일락 말락 지붕마루 희미하다.(중략)
조용히 와서 하룻밤 자니 문득 세상 생각을 잊어버려, 10년 홍진紅塵에 일만 일이 틀린 것 알겠구나. 어찌하면 이 몸도 얽맨 줄을 끊어버리고, 늙은 중 따라 연기와 안개에 취해볼까. 산 중은 산을 사랑해 세상을 나올 기약이 없고, 세속 선비도 다시 올 것 알지 못하는 일, 차마 바로 헤어지지 못해 두리번거리는데, 소나무 위에 지는 해 세 장대( 三장)기울었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글이다. ”
신정일의 <사찰기행>
“조선 초기의 학자인 성임成任은 전주를 두고 “안팎으로 산과 강이 전주의 영역을 휘감아 돈다.”하였는데, 풍수지리상 전주를 행주형(行舟形)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한 배 가득 싣고서 순풍에 돛을 달아 항로에 오른 배를 지그시 잡아 매어둔 형상이란 뜻이다.
윤곤尹坤의 그의 기에서 “나라의 발상지이며, 산천의 경치가 빼어나다.”라고 하였으며 서거정 기(記)에서 “(전주는) 남국의 인재가 몰려 있는 곳이다. 물건을 싣는 데 수레를 사용하며, 저자는 줄을 지어 상품을 교역한다.”라고 기록하였던 곳이 바로 전주였다. 이 전주에서는 수많은 인물들이 태어났다. 세조 때 우의정을 지낸 이사철(李思哲)과 명종 때 우의정을 지낸 황헌(黃憲), 선조 때 우의정을 지낸 정언신,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이상진이 그들이며 기축옥사(己丑獄死) 혹은 <정여립의 난>의 주인공 정여립이 선조 때의 사람이었다.
<주기州記>에 “기름진 땅과 메마른 땅이 섞여 있으며, 사람들의 눈치가 빠르고 영리하다.” 고 실려 있는 이곳 전주를 최충헌에 의해 사록겸장서기(司錄兼掌書記)로 이곳에 왔던 이규보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전주는 완산이라고 부르는데, 옛 백제국이다. 인물이 번호(繁浩)하고 가옥이 즐비하여, 고국(古國)의 풍이 있다. 그러므로 그 백성은 어리석거나 완고하지 않고 모두가 의관을 갖춘 선비와 같으며, 행동거지가 본뜰 만하다. 그러나 완산이란 이름은 근교의 작은 산봉우리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해서 고을의 이름이 되었는지 이상하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조상이 살았다고 해서 객사(客舍) 이름조차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고 붙인 전주에는 호남제일문인 풍남문과 경기전, 오목대, 이목대 등의 문화유산들이 많아 있다. 1894년 5월에는 동학농민군들이 무혈입성을 한 뒤 위하여 전주화약을 맺었던 곳이며 현재의 지방자치제의 효시라 할 집강소를 설치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전주는 현재 문화관광도시를 모색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꿈꾸고 있으며, 전주비빔밥과 한정식 그리고 콩나물국밥이 유명하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진 것들도 많다. “전주 부성의 네 개 문중 호남 제일문인 풍남문만 남아 있고, 그 안에 자리 잡았던 매월정梅月亭이나 진남루鎭南樓. 제남루濟南樓등의 정자와 누각은 사라지고 없으며 오직 옛사람의 글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전라도’ 편에서
이렇듯 역사와 문화의 고장 전주에 우리 땅 걷기에서 조성한 전주 천년 고도 엣길 12코스가 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길의 날인 11월 11일의 의미와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되짚어보는 행사에 많은 참여바랍니다.
행사 내용,
11월 12일(토요일)
서울과 전주에서 출발하여 오전에 완주 화암사와 경천 저수지 일대 답사.
점심 식사 후,
동고사, 승암산, 동고산성, 기린봉,
11월 13일(일요일)
아침 일찍 금산사와 귀신사 일대를 거닐고, 한옥마을을 굽어다보며 전주 향교, 오목대, 한옥마을. 전동성당, 풍남문, 남부시장
오후에는 교동과 동서학동 사이에 위치한 청연교(옛 남천교)에서 오후 1시 30분에서 50분까지 간단한 길의 날 기념식이 있고,
1시 40분부터 길 문화 축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전통 상여놀이(상여 소리 꾼 이준태)와 풍물굿 한마당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리고 전주 한옥마을 일대를 걸은 뒤 12회 길 문화 축제를 마무리 할 예정입니다.
이번 제 12회 길 문화 축제는 아름다운 전라도의 풍경과 온 고을 전주의 옛길을 걸으며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1.일시: 2016년 11월 12일(토요일)에서 13일(일요일)까지
2. 출발시간 및 장소: 서울 오전 7시 서울 양재역 12번 출구 국립외교원 앞
오전 9시 30분. 전주 종합경기장 정문 앞 출발
3, 어디로 가나요.
첫날(토요일),
완주 화암사와 경천저수지일대, 점심 식사후 동고사, 숭암산, 동고산성, 기린봉
둘째 날(일요일), 금산사, 귀신사. 한옥마을 길 문화 축제, 전주천길을 걸으며 폐막,
4. 참가비:
토요일과 일요일(숙식 포함): 선착순: 90명, 서울 7만원. 전주와 광주 일대, 5만원.
전주 하루 참가하시는 분은 15,000원,
일요일: 서울 45명(25,000원), 전주(15,000)원
5 안내 도반. 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6. 신청방법: 댓글로 신청하고 참가비 입금해야 완료
7. 참가비 입금계좌: 국민은행 754801-01-479097 우리땅걷기
8. 참가비 입금 후 취소 시 환불 규정
(1) 행사일 5일전 까지: 은행 수수료를 공제 후 전액 환불
(2) 행사일 4일전부터 3일전까지: 참가비 50%를 공제 후 환불
(3) 행사일 1일전부터 당일까지(미 참가 포함): 환불액 없음
위와 같이 행사 참여 취소 시 행사비 환불을 명심하시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회비를 입금하시고 대기자로 기다리셨다가 참여를 못하시는 회원님들의 불편함을 없게 하고자 함이오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9. 문의전화: 010-8954-2554 또는 010-9144-2564
10. 주의사항: 모든 걷기의 안전에 대해서는 참석자 본인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카페나 진행자는 안전사고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길축제 참석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최종 명단과 일정표까지 나왔음을 보았는데 참가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모처럼 참가한다고 많이 기대했는대요...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