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옆집 아이들이 개학을 했거나 개학준비를 하면서 분주해지기 시작하네요.
그러나 우리 얼굴이네 아이들은
그런 변화에 별반 반응이 없습니다.
혹시나 다른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것에 부럽지 않을까 했는데
이건 순전 엄마 마음인가 봅니다.
요즘 종윤이는 영어공부에 푹 빠져 삽니다.
나름 고3인 친구들이 수능준비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만남도 스스로 절제하고 있고,
자신도 친구들처럼 수능 보는 즈음 토익시험을 보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지요.
종윤이 말에는 시간관리가 소홀히 되고 있다고,
요즘은 아침밥만 먹으면 가방 싸매고
동네에 있는 시립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살다 옵니다.
아무래도 집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두세배는 집중이 잘된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저녁시간에는 12월 국기원에 가서 4단자격을 따기위해
매우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종하는 악기 연습에 심취해 있습니다.
이번에 다시 구입한 아코디언까지해서
피아노, 플릇, 바이얼린, 하루에 한시간씩 연습해도 4시간이 필요하니까
오전에는 종은이랑 오빠랑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책을 빌려 읽고,
오후3,4시쯤 점심 먹으러 와서는 악기연습만 합니다.
추석지나고 우간다로 가게 되는 종하는
그 외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간다에 가면 같이 살게 되는
돈과 다니엘라 가족은 새벽4시 30분부터 하루일과을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종하가 아침잠이 많거든요*^^*)
우리집 재치쟁이 종은이는 두 아이들과 또 다른 미래의 길이 열렸습니다.
아시는대로, 프랑스의 세인트 루이나 학교에서의 입학허가가 있긴 했지만
저희 부부는 너무 이른 조기교육이 종은이의 밝고 고운 성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수도 있겠다 결정하여
좀더 커서 보내기로 결정했거든요.
그래서 7월20일 인천항에 도착했을때
덕성여대 불문과 교수인 선희 언니한테 전화를 해서
종은이의 불어 수업에 관해 문의를 했더니
유학을 보내려고까지 했으면 차라리 프랑스 국제학교는 어떻겠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우선 알아나보자고 인터뷰를 신청했는데
그 국제학교 입학 자격이 만 3년 외국에 체류했다는 증명이 있어야 한다는거예요.
저희의 여행이 딱 만3년 18일이잖아요.
그래서 또 이것이 길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인터뷰 전날 컴을 이용해 국제학교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까
우와- 교육비가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1년에 거의 천오백만원-
그래서 힘들겠다 생각해서
다음날 인터뷰할때 교감 선생님께 돈이 좀 문제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종은이가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열심히 보시며
왜 불어를 배우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교육비 납입에 관한 여러가지 배려를 해줄수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종은이는 9월부터 시작하는 국제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카 종희와 주희는 중국에서 유학할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둘다 한국 학교로의 복귀를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꾸준히 공부해왔던 경험으로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자신있어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마다 각자의 소원을 깊게 만들기 위해
한국에서의 또다른 여행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제 가슴을 뛰게 하는,
꼭 해야만 할것같은 일을 하면 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희 얼굴이네는 무엇이든 않되는 일은 없다라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이 여행을 통해 얻었습니다.
단지, 않되는 일이 있다면
내 자신이 않된다고 포기하는 일인 거지요.
저희 역시 내년 3월 여행학교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3년 여행을 다녀온 지금,
놀기만 하고 왔는데도
3년동안 노는게 어디 쉬운 일이냐며
나름 저희의 배포를 인정해주시는 칭찬 속에
기회만 있다면 저희 여행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시니까
저희 아이들에게도 좋았던 이 여행을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해줘야 겠다는 의무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결정 생각보다 쉽지가 않네요.
아시죠? 한국이 너무 좋은거요.
해야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마음속에선 지금은 아니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다음은 우리아이들에게
여행을 정리하며 준 숙제입니다.
'단어에 연상된 것 적어오기'였는데
생각보다 훌륭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도감이 듭니다.
우리의 3년 여행이
각자의 우리아이들에게 귀중한 재산으로 남아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용기 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종은-안나푸르나를 등반하기 전, 거머리들이 득실거린다는 말을 듣고도 등반을 결정했을 때.
종희-중1을 들어가는 해여서 학교로 갈까? 여행을 계속할까?를 아프리카에서 고민해야 했을때 용기가 필요했다. 난 그때 여러가지 여행을 선택했을때 어려운 점을 들었지만 용기있게 여행을 하겠다고 결정한 것을 아주 잘한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주희-몽골에서 공부를 않해 큰엄마께서 앞으로 잘하고 싶으면 매를 잘 맞아내는 것으로 나의 각오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을때 평소 매를 무서워하는 내가 매 맞겠다고 결정했을때.
종하-오빠가 여행중 아빠한테 적금을 들고나서 부자가 되는 것을 보고 난 후, 나도 30만원짜리 적금을 들고 싶었지만 적금을 들 만큼 공부가 않되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을 떨칠때-
종윤-우리가 여행을 나간것. 왜냐하면 아무나 못하는 일이고, 모든 사람들이 걷는 길에서 다른길로 빠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감사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 추억>
주희-산티아고 Foncebadon 알베르게에서 만난 안(Anne)이모
종은-엄마, 아빠가 나를 이 여행에 데려가 주신 것
종희-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여행을 잘하게 기도해 주신 것
종하-산티아고에서 안 이모가 9명이나 되는 우리에게 9유로씩 하는 저녁을 사준신 것.
종윤-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부모님께 이 여행을 하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
<행운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 추억>
종희-여행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수 있었던 것.
종은-프랑스에서 두달간 있으면서 패션데자이너가 되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세인트 루이나 학교가 입학허가서를 주었을 때.
주희-스페인의 카미노데 산티아고를 걸을때 우리가족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모두 얻을수 있었던 것.
종하-이집트에서 산 신발 바닥이 얇아서 산티아고 500km를 걸을때 발바닥이 많이 아팠는데, 하느님께 기도 한 날, 바로 쓸만한 등산화를 전깃줄위에서 구한 것.
종윤-우리가 여행을 나와서 안전하게 여행하고, 많은 것을 본것은 정말 행운이다.
<교육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주희-케냐에서 만난 한 유학생 언니가 어른한테 예의없게 행동했을때 내 자식은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겠다고 느끼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알았다.
종은-유럽사람들이 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아끼고 절약하는 모습.
종희-여행 중 평생 잊을 수 없는 큰부모님들의 남다른 교육.
종하-우간다에서 본 간판없는 유치원이 떠오른다.
종윤-우간다의 던 가족의 교육, 아이들을 엄격하게 교육하는 던가족의 교육이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진정한 미국의 교육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주희-신기하고 멋있는 나라를 볼수 있다.
종은-폰디체리에서 오르빌을 버스타고 가서 알지도 못하는 길을 하염없이 걸어서 갔던 일.
여행은 길찾기란 생각을 했다.
종희-우리가족이 있어서 좋았다.
종하-아낌을 배우지 못했을 것 같다. 구멍뚫린 옷, 와이어 나온 브래지어, 낡은 팬티, 공책 아껴쓰기, 물아껴쓰기등
종윤-우리가족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친절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주희-각나라 사람들이 친절했지만, 특히 르완다에서 나를 유난히 챙겨주신 보나벤쳐 신부님과 산티아고를 걸을때 딱 한번 선발대에 끼여서 걸은 적이 있는데 종은이 언니가 옆에서 나에게 기운을 주고, 힘을 준 일
종은-터키 페티에에서 만난 고양이 키우는 아줌마. 가난해 보였는데 우리에게 얼음물도 주시고, 가지 고 가라고 과일도 내주셔서 정말 고마웠고, 탄자니아 루쇼토에서 우리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부침개를 만들어 나누어 준 일.
종희-스페인 산티아고에서 만났던 안이모와 자신의 시간을 소비하면서 우리가 질문장을 들고 갔을때 친절하게 대답해 주신 분들.
종하-지금처럼 성격이 좋은 아이도 아니였는데 특별하게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우리 할아버지 닮은 쩐디거르의 나린더씨 할아버지와 몽골인들이 처음 본 우리한테 기꺼이 자신의 게르를 빌려준 일
종윤-여행을 하며 우리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족에게 많은 친절과 배려를 해주었지만 무엇 보다 우리가족 사이에서 서로 아끼고, 도와주는 친절과 배려가 좋았다.
<아픔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주희-종하언니가 인도 오르빌에서 눈에 다래끼가 생겼을 때 큰아빠가 짜주었을 때.
종은-루완다에서 아빠가 사주신 토끼인 코레를 우간다에 와서 돈 아저씨네 맡기며 헤어질 때.
종희-우리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영국인들이 우리 가족을 17시간 조사한다고 홀딩룸에 가뒀던 일.
종하-산티아고 걸으면서 엄마가 힘들어 했을 때와 인도 오르빌에서 키웠던 미나와 수잔이 죽었을 때.
종윤-부모님께 복종하지 않았을 때 혼났을 때. 죄송해서 무지 슬펐다.
<자존심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주희-공부를 못해 야단을 맞았을 때.
종은-영국에세 무시 당했을때, 다음엔 한국의 힘을 꼭 보여줄꺼예요.
종희-아프리카에서 공연을 하였을 때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자신들의 공연을 보여준 것.
종하-아프리카에서 공연할때마다 제대로 된 악기도 아닌 플라스틱통을 들고와서 열심히 연주해 주었 을때.
종윤-영국에서 거부 당했을 때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걸로 인해 많은 것을 느껴서 나라의 힘을 강하게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소중함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주희-조르단에서 그동안 사용하던 전자사전을 실수로 깨뜨렸을 때.
종은-우리 가족이 떠오른다.
종희-인종차별을 당하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불쌍한 고아원의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도 우리처럼 소중 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종하-우리에게 늘 열려진 마음으로 대해주었던 사람들의 마음
종윤-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다.
<발견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종하-나의 꿈
주희-프랑스에서 아침마다 염소떼를 몰고오면서 찾았던 밤.
종은-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발견했을 때
종희-프랑스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걷기를 연습하기 위해 큰아빠가 비닐로 비박을 해보라는 미션을 주었을때 호찬오빠와 짝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어떻게 집을 지을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종윤-내 머리도 공부를 한다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눔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주희-아프리카에서 공연을 했을때 자신들의 공연도 보여주었던 그들의 마음.
종은-안이모가 스페인의 유명한 요리인 철판볶음밥을 사주었을 때, 그리고 말과 당나귀를 끌고 다니며 힘든 사람들을 태워주시거나 짐을 들어주셨던 비비안 할머니, 전 비비안 할머니처럼 되고 싶어요.
종희-안이모를 비롯한 산티아고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종하-한국에 돌아와서 완도에 갔을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족에게 잘해준것, 빵집에서 이쁘다 고 디스카운트 해줄때.*^^*
종윤-프랑스의 파스칼과 존룩.친절히 항상 웃으며 우리 아홉명의 식구에서 집과 음식을 기꺼이 제공 해주었기 때문이다.
<때 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주희-오르빌에서 학교차를 놓쳐서 못탔을때...서두를 걸...
종은-인도의 암릿차르에서 나이토우란 일본인 오빠와 우리가족이 위험을 당할뻔 했을때, 적시에 경찰 이 와서 도와준 일
종희-우리가 영국에 못갔기 때문에 스페인에서 안이모를 만났고, 케냐에서 방콕갈때 제때를 맞춰가지 못했으면 아쉬웠을 송크랑축제에 참여하면서.
종하-가슴에 와 닿았을때 실천하는 그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종윤-행운과 연관되어져 각 나라마다 그 나라의 유명한 과일의 때를 맞춰 맛볼수 있었다는 것.
<깨달음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주희-궁금한 것이 있을때 언니, 오빠들한테 물어봐서 깨달음.
종은-우리가족 여행으로 처음 네팔과 인도에 갔을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낭비를 많이 했었는지 알게 되었다.
종희-선진국과 후진국은 얼마나 물건을 아끼고 잘 쓰는지에 대한 차이였다는것을 알았다.
종하-한국에 와서 내가 달라졌다고 느꼈을 때. 전과 달리 음악도 좋아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맨날 칭찬받을 때 내 자신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낌.
종윤-가족은 언제 어디서나 떨어져있어도 모이게 되어있다. 벨지움에서 비행기표를 못구해 엄마랑 종하, 종은이랑 떨어져 이집트로 왔을때 많은 우여곡절속에서도 만나지는 경험을 하면서.
<희망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의 추억>
주희-매주 토요일 큰엄마한테 일주일동안 공부했던 것 시험볼때, 혹시나 이번엔..? 하는 기대감.
종은-여행중 유명한 패션디자이너가 될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을때.
종희-우리가 다음 장소나 나라로 이동할때 제발 비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종하-한국에서 우리를 본 많은 사람들이 다음엔 우리 아이도 데려가 달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때
우리가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고, 우리가 세상을 바꿀수 있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종윤-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끼고, 배우면서 나에 대해, 우리 가족에 대해, 우리나라에 대해 많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르완다에 있을 때 종하가 제 또래의 아이들에게 종이접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korea라고 적혀있는 도복을 입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종윤이입니다.
이곳은 시리아의 메인도로입니다. 지나가는 시리아의 하마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워하며 관객이 되어주었습니다.
지금은 캐나다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현수가 가장 행복했던 때로 기억하고 있는 인도의 오르빌입니다. 현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오토바이 타는 법을 종윤이한테 배웠는데 나중엔 오토바이 매이아가 되었답니다*^^*
종윤이 중학교때 담임선생님이신 신미자 선생님과 시리아에서 만나 잠깐 여행을 같이 했었습니다. 이 사진은
공부만 하는 얼굴이네 아이들에 감동하여 신선생님께서 저희 카페에 올려주신 사진입니다. 아마, 알렉포의 역사같은데요.
인도의 오르빌입니다. 종윤이가 다녔던 학교에서의 워크샵이 있던 날, 우리가족이 모두 참여했었습니다. 아이들의 작업의도를 구체적으로 묻고, 진지하게 들어주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 프랑스의 선생님에게 반한 날이기도 했었습니다.
종윤이 아빠가 디파남 스쿨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당시 만났던 여행자들은 죄다 디파남 스쿨에 데려다 점심주고, 보조교사하는 봉사를 시켰더랬지요*^^* 오른쪽 옆에 긴머리 하고 있는 친구 보이시죠? 그친구도 저희의 보조교사였습니다*^^*
이제 한국으로의 여행을 즐기고있는 아이들입니다. 벌써 한달 쯤 되었다고 여행의 티가 없어지고, 말쑥해졌습니다. 그쵸?*^^*
8월 12일부터14일까지 2박3일간 75km 걷는 캠프에 종은이가 참여했었습니다. 워낙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한 도보여행때문이기도 하고, 산티아고 500km를 걸은 경험도 있어서인지 매일 25km씩, 가방도 없이 걷는 일은 종은이에겐 식은죽 먹기였는데 다녀와서 종은이 하는 말은-
"엄마, 난 별로 이 캠프가 즐겁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불평불만이 많은지, 게다가 서로 욕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걷는것보다 그 아이들과 함께 있는게 더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엄마말씀처럼
친구들 사귀어 보려고 노력하다가 그나마 욕을 덜 하는 애들 둘을 고르긴 했는데
나중에 헤어지면서 이메일을 주고 받자고 하니까
그 애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이메일을 받으면 뭐하니? 우린 다시는 못만날텐' 하더라구요."
음-. 깊은 한숨이 나왔습니다.
손녀딸 넷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 아버님-
하루종일 하하하하 싼타할아버지 이십니다.
이렇게 사는게 사람사는 모습이라며
애교떨며 할아버지앞에 앉아있는 손녀딸들을 사랑스럽게 보아주십니다.
종하의 새로운 악기 아코디언입니다. 지난번 것은 시리아 말무사에 두고 왔는데, 이번것은 우간다에 갈때 가져간다고 하네요. 우리 종하 어렸을때 다른 아이들처럼 피아노학원엘 다녔을때는 매일 학원가서 졸기 일쑤였던 아이였는데, 여행이 또 한 아이를 다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즘, 호찬이는 9월에 있을 부사관 시험공부로 열공입니다. 앉아서 꾸준히 공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호찬이가 그래도 요즘은 도서관에 가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니 참 반가운 소리입니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된 훈련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부탁하며 열공이 잘되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글을 다 보진 못 했지만 몇몇 글들을 보면 멋진 부모님을 만난 아이들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전 이제 29살인데 그 동안 키워왔던 세계일주의 꿈이 눈앞에 다가왔네요. ^^ 아이들이 일찍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 일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좋네요. 평생 좋아하는 일을 못 찾거나 찾아도 못 이루는 사람이 태반이잖아요.. ^^
아.. 그리고 아시다시피 영어 공부는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을 붙든다고 실력이 잘 안 늘잖아요. 언어는 말을 해야 빨리 늘죠. 저도 지금 4개월째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데 물론 저도 아직 실력이 부족하지만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ena01@hanmail.net로 메일주시거나 종윤이를 강남역으로 한 번 보내주세요. 연락처는 메일로 알려드릴께요. ^^
감사합니다. 메일보내드릴께요. 그러찮아도 종윤이는 계속 공부하고, 틈나는대로 우리끼리는 영어로 말하는데, 대화의 한계가 있다보니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이나 어른들께 메일을 보내 더 좋은 문장표현을 배우고 있습니다. 꼭 도움을 주실수 있으면 좋겠네요-. 메일 보내겠습니다*^^*
아.. 궁금한 것이 있어서 예전에 이메일 드린 적이 있는데 스팸으로 처리되었나봐요.. ...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연락드려도 될지요?
죄송합니다. 그랬었나요. 제가 받은 메일이나 쪽지에는 늦어도 꼭 답장을 드리는 편인데..다시한번 죄송합니다. 언제든 연락주세요. koreasuny@gmail.com입니다.
아이들이 바르게 잘컸네요...훌륭한 교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