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천안 병천순대국
예부터 오일장 상인 즐겨 찾아
요즘엔 직장인·관광객들 북적
잡내 적은 소·돼지 소창 사용
사골육수에 머릿고기 등 함께
돈설·간·귀…순대모듬 ‘별미’
충남 천안 병천순대거리 ‘청화집’의 대표메뉴는 순대와 볼살·머릿고기가 듬뿍 들어간 순대국밥이다.
순대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병천순대’다. 충남 천안 동남구에 위치한 병천면 이름에서 유래됐다. 병천순대는 입문용 순대라 불릴 정도로 맛이 깔끔하고 담백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순대집 간판이 걸린 전국 어디서나 병천순대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유명세가 대단하다. 50여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병천순대거리’에서 그 비밀을 찾아봤다.
천안역에서 차로 20분 정도 가면 길가에 한집 걸러 한집씩 20여곳이 모여있는 병천순대거리가 펼쳐진다. 점심때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부터 가게 앞엔 사람들이 모여 문전성시를 이룬다.
예로부터 천안은 교통 요충지로 꼽혔다. 충북 청주·진천, 충남 예산 등지에서 지역 특산물과 사람이 천안에 모여들었다. 오일장인 병천장(아우내장터)이 열리는 날이면 거리가 북적북적해졌다. 이때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이 막걸리 한잔을 걸치며 속을 든든히 채우던 음식이 바로 병천순대다.
1990년대 들어 천안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업들이 들어섰다. 이곳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간편하고 빠르게 점심을 해결한 음식이 순대국이었다. 퇴근 후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모듬순대’ 한 접시를 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요즘엔 입소문 난 병천순대 명성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로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병천순대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다. 소·돼지 내장 가운데 잡내가 거의 없는 소창을 사용한다. 소창은 사람 소장에 해당하는 부위로 얇고 식감이 부드럽다. 소창을 대나무 막대기에 끼워 겉과 속을 뒤집은 다음 굵은 소금을 뿌려 깨끗이 세척한다. 여기에 따로 만들어 둔 속을 터질 듯이 꽉 채워 넣는다. 속은 선지에 살짝 데친 양배추·양파·피망과 파·마늘을 다져 버무린 것이다. 선지는 특유의 향이 강해 선지를 많이 넣으면 비린맛이 날 수 있어 양 조절이 중요하다. 당면을 조금 추가해 재료가 흩어지지 않고 잘 뭉쳐지도록 한다.
뽀얀 국물에 촉촉이 적셔 먹는 순대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 순대국을 만들 때 과거에는 한솥에서 사골 육수도 내고 거기에 또 순대·머릿고기를 삶으며 향을 더했다고 한다. 하지만 짙은 향보다는 구수한 사골 육수 본연의 맛 그대로를 느끼고 싶어하는 손님이 많아 솥을 따로 쓰게 됐다. 주문이 들어오면 뚝배기에 푹 끓인 사골 육수를 한국자 덜어낸다. 여기에 따로 만들어 둔 순대와 머릿고기·오소리감투(돼지 위)·볼살을 넣고 한번 더 뜨겁게 끓여 손님 상에 낸다.
4대째 운영하고 있는 ‘청화집’은 병천순대거리 터줏대감이다. 5년 전 정식으로 주방을 꿰찬 이연숙씨(46)는 20년 동안 할머니와 엄마 곁에서 순대 만드는 비법을 익혔다.
이씨는 “포장을 제외하고도 하루 평균 500그릇 정도 나간다”며 “단골손님이 자녀를 데리고 와서 자신이 연애할 때부터 자주 오던 가게라고 이곳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설명했다.
순대와 허파·간이 함께 나오는 모듬순대.
청화집 메뉴판은 간단하다. 모듬순대와 순대국 둘 뿐이다. 모듬순대를 시키자 오동통한 순대가 두겹으로 쌓여 나온다. 한켠에는 돈설(돼지 혀)·간·오소리감투·귀·볼살·머릿고기·허파가 있다. 순대를 입에 넣어본다. 소창은 얇고 부드러워 씹자마자 터지고 고소한 선지가 입안 가득 느껴진다. 양배추 단맛이 기분 좋게 마무리해준다.
접시를 절반 정도 비울 때쯤 순대국이 나온다. 뚝배기 열기 때문에 한참을 보글보글 끓고 있다. 순대 예닐곱개, 볼살이 가득 들어 있다. 손님 취향에 맞춰 순대국에 들어가는 고기 비율을 달리한다고 한다. 최근엔 살코기를 선호하는 젊은 손님이 많아져 볼살을 많이 넣는다. 취향을 미리 파악한 단골손님에겐 오소리감투를 더 넣어 주기도 하고 비계 부위가 좋다고 미리 말하는 손님에겐 머릿고기를 챙겨 넣어주는 식이다.
색다른 맛을 보고 싶다면 갖은 양념을 곁들여 보라. 우선 뽀얀 국물을 충분히 맛본다. 깊이 우러난 부드러운 국물이 빈속을 달래준다. 고소한 맛을 더 올리고 싶을 때쯤 들깻가루를 뿌려준다. 뚝배기를 절반 정도 비웠다면 매콤하게 먹어볼 차례다. 청양고추와 다진 양념고추(다대기)를 잘 풀어주면 얼큰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이씨는 “국밥과 같이 먹기 좋게 김치는 최대한 깔끔하게 만든다”며 “젓갈을 많이 쓰지 않고 새우젓·멸치액젓만 조금 넣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최근 순대랑 와인을 같이 먹거나 순대 위에 고추냉이를 올려 먹는 별식이 유행하고 있다. 먹는 방법이 무궁무진하게 많이 생길 정도로 순대의 매력은 끝이 없다. 이번 주말엔 병천순대거리를 찾아 순대를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천안=서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