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 면할 날은 / 김창수
옷은 새 옷이 좋다, 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설렘으로 새 차를 기다린다. 여덟 번째 차다. 운전대를 잡은 지도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자동차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내 삶은 아직도 초보운전 수준이다. 사는 일의 완숙은 시간의 퇴적과는 무관한 것인가도 싶다.
퇴근이 늘 늦었다. 80년대 중반 초겨울, 퇴근 시간에 구청 정문을 미끄러져 나가는 ‘프레스토’ 승용차의 빨간 후미등에 시선이 꽂힌다. 경제적 사정이 나은 극히 일부 직원만 타는 차였다. 그러다가 88서울올림픽이 끝난 후, 공무원 사회에도 ‘마이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대개 중고차를 첫차로 선택했다. H사의 ‘포니2’ 중고차가 인기였다. 프레스토를 거쳐 ‘엑셀’ 모델이 등장하면서 직원들의 승용차가 구청 마당을 서서히 잠식해갔다. 80년대가 저물어가던 가을, 나도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도로에서 고장 난 차량에 당황하는 광경을 가끔 목격했다. 그런 탓일까, 차량은 노후 되기 전에 바꾸자는 게 내 지론이다. 네 번째 차를 바꿀 때, 장모님이 대학생 둘을 두고도 차를 바꾸느냐고 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7대를 소비하고, 이번에 여덟 번째 차량을 장만했다. 연료 절약형 SUV 인기 차종은 인수까지 1년 이상 걸린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H사의 가솔린형 세단을 5개월 만에 건네받았다. 내 체면을 세워주려는 아내가 고맙다. 운전이 어설펐던 지난 시절의 잔영이 떠오른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쯤 처녀 운행에 나선다. 두 아들을 태우고 경북대 치대 네거리 부근에서 버스에 막혀 멈춰 섰다. 앞지르기 위해 차선 변경하려다 앞범퍼에 버스의 머플러가 걸려 휘어졌다. 승객을 모두 하차시킨 운전기사가 돈을 달라고 한다. 자동차 보험 처리도 할 줄 모른 채 그의 요구에 응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쥐구멍을 찾아야 했다. 진땀 흘리며 겨우 집까지 왔는데 “큰 버스가 우리 차에 받혀 찌그러졌다.”라며 아이들이 제 엄마에게 개선장군처럼 보고했다. 나의 새로운 걸음마는 그렇게 초라했다.
승용차를 가진 직원이 많지 않기도 했지만, 인사부서의 내 자리 탓에 주위의 시선을 의식했다. 인근 교회 주차장을 주로 이용하고 구청까지는 걸어 다녔다. 용기와 배짱도 없이 그렇게 소심했다. 친하게 지내던 한 언론사 기자가 출근길에 운전하는 걸 보고 웃었다고 했다. 의자를 바짝 당기고 앞만 보고 어설프게 운전하는 모습이었으리라.
차를 장만하고 처음 맞는 설 연휴 귀성길은 눈이 녹아 질퍽거렸다. 해 떨어지자 얼어붙기 시작하던 터에 어린 조카 마중에 나섰다. 철길 밑 지하도를 지나다가 빙판에 미끄러지는 차에 행인이 받혀 넘어졌다. 당황한 나와는 달리 그는 오히려 괜찮다면서 툭툭 털고 일어선다. 병원 문을 두드렸다. 타박상 하나조차도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의 행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차림이 너무 남루했다. 신발은 사고 현장에서 잃어버렸는지 한 짝뿐이다. 신발가게에서 제일 비싼 운동화를 사 신기고 주머니를 몽땅 털어 꽤 큰돈을 쥐여주며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은 몸이 불편한 듯했다. 마음의 평정을 찾은 다음 그 집 문턱을 넘는데 다리의 맥이 탁 풀린다.
다음 날 설 차례를 마친 후 그의 집에 안부 차 전화했다. 그의 아내가 어눌한 말씨로 남편은 아침에 서울 가고 없다고 한다. 나를 피하려고 끌어다 붙인 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 설 연휴가 끝나고 직장에 복귀한 날 그의 친인척이 연락해 왔다. 몸이 많이 안 좋다고. ‘아하, 돈을 요구하는구나.’ 나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날로 담당 경찰서로 달려가 사고 사실을 신고했다. 자동차 보험사에도 알렸다. 그런데 누구도 내게 책임을 묻지 않았고, 사건은 종결됐다. 그제야 오금을 펼 수 있었다.
한때 교통위반 단속에 걸려든 운전자가 많았다. 단속 실적을 올리는 데 함정단속이 한몫했다. 어느 가을, 칠곡군 가산면 천평리를 지나 다부동 고개로 향하던 길이었다. 한 단속 경찰관이 내 차를 도로변 가장자리로 안내하더니 운전면허증을 보여달라고 한다. 과속했다는 것이다. 의아했다. 차량 대여섯 대가 한데 섞여서 왔는데 왜 내 차를 지목하느냐고 따져도 소귀에 경 읽기다. 사바나에서 사자는 누우 무리에서 절뚝거리거나, 어린 녀석을 먹잇감으로 골라 공격한다. 목표 특정의 용이성 때문이란다. 윤기 흐르고 싱싱하면서 건강한 것을 밥상에 올리고 싶지만, 목표물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내 차가 드러나는 색상이어서 먹잇감으로 골랐을까. 그들의 속내가 읽히기는 했다.
다른 차들은 제 갈 길 가고 내 차만 사자에게 목덜미가 잡힌 신세가 되었다. ‘사자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려야지.’ 속도위반 채증 자료를 제시하면 백번 수긍하겠다고 했다. 그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이 양반아, 나라에 돈이 없어 좋은 장비를 못 사서 증거 못 대요.”라고 한다. 부아통이 치민다. 쉬운 말을 어렵게 비틀어서 들이대는 바람에 실랑이가 길어졌다.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그의 상사가 그를 불렀다. 쑥덕거린 후 내게로 와서는 범칙금 없는 ‘지도장’이라는 걸 발급해주겠다고 한다. 그의 너절한 사설은 다부동 뒷산 접동새 울음소리인가 했다.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지도장’을 주고 싶었다.
초보운전을 떠올릴 때마다 지난날의 초상을 마주한다. 사는 일이 세련되지 못하고 서툴렀다. 비 오는 날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해 무작정 직진만 했던 적이 있다. 외길만 고집했던 40여 년의 직장 생활도 직진의 세월이었다. 원칙이라는 어설픈 신념에 갇혀 옆에서 끼어드는 걸 용납하지 못해 부딪친 경우가 많았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잠시 발걸음 멈추고 어디까지 왔는지를 한 번 돌아볼 줄도 몰랐다. 만족할 줄 모르고 무언가에 늘 갈급했다. 이끼를 뒤집어쓴 돌다리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늘그막에는, 문학에 대한 본령도 지니지 못한 채 글 쓴다고 덤벼들었다. 무모한 짓이었다. 넝마장수처럼 남의 글밭을 뒤적거리며 오늘도 붓방아만 찧고 있다.
마음 깊은 곳에 박힌 모난 돌 하나, 세월 가면 둥글게 다듬어질까. 건삽한 글이 비단처럼 윤색될 날은 언제쯤일까. ‘초보운전’ 스티커를 떼어내고 삶도 글도 가을 햇살 아래 곡식처럼 영글어 갔으면.
첫댓글
ㅎㅎㅎ 이 정도의 입담이시면 문학적 초보 운전은 이미 넘으신 듯 아뢰옵니다~^^ _()_
넉넉히 잡고 40년 세월에 여덟 번째 차를 바꾸셨다니 결제 과정이 궁금해 집니다. ㅎㅎ
최성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다부동 뒷산 접동새 울음소리에서 빵 터졌습니다.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