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 법구경 풀이, 시조단상]325 - 풀이
세존의 설법은 인연과 상황에 따라 설해졌다.
세존께서는 설법을 듣는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문구와 언어를 택하셨기 때문에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었고 특히 법구경에 나타난 이러한 시의
형식은 외우기도 편하다.
이 게송을 날마다 한 번씩 또는 두세 번씩
외우게 되면 몸과 입과 뜻이 욕망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혹은 자각 없음의 측면에서
먼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생각을 정리하여
자각하게 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인도의 지배 계급인 귀족(크샤트리아)들은
자기 자신의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서 그것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하여 자신이 외우기도 했고
게으른 사람들은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일정한
시간에 그 시를 자기를 향해 외우게 하여 자신을
깨우치게 하는 경우도 허다 하였다.
이는 마치 원수를 갚기 위해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 원수를 상기하는 이야기를 하여 원수를 갚았다는
이야기와 동일한 방법과 맥락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식탐이 심하고 게으른 파사익 왕은 살이 너무 쪄서
세존께 예배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비만 이었다.
그래도 식탐을 조절하지 못하고 세존께 가르침을
청하자 세존께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요즘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보다 영양과다나 영양의
부조화(편식) 혹은 잘못된 식습관의 후폭풍에
의한 비만과 합병증으로 병을 얻어 죽는 인구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이 게송이 현대인에게도
얼마나 시기 적절한 말씀인지 알 수 있다.
멍청하게 먹기만 하는 집돼지처럼
이리저리 뒹굴며 자는 어리석은 사람은
계속해서 자궁에 들어감을 면치 못한다(325)
당시 인도 대륙 반쪽에 해당하는 나라를
다스리던 패권자인 왕에게 이런 내용의 상소나
글을 올렸다면 분명 괘씸죄로 귀양을 가거나
형벌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왕은 신심있는 왕비인 말리의 영향으로 불교에
대해 호감이 있었고 나중에는 부처님께 신심을
일으켜 자주 공양청을 하며 법문 듣기를 즐기는데
왕의 탐식 습관을 고치기 위해 특별하게 청한
공양청에서 세존께서 이 게송을 법문으로 설하셨다.
법문을 들은 왕은 그대로 실천 하여서 요즘 말로
다이어트에 성공하여 몸도 날씬해지고 식탐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수행의 측면으로 보면 부정관의 한 부류에
해당하는 32부 정신의 수행을 겸한 것으로 몸의
무상과 부정함에 대한 명상과 함께 이러한 게송을
늘 외워 현실에서의 나쁜 습관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일본의 일휴스님이 사미 시절 절을 방문한
당시 막부의 장군(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당시의 세도가)이 아무리 좋은 음식에도 맛을
못느끼고 투정을 부리자 절에서 먼저 조건부로
시키는 일을 다하고 배고프게 만들어 결국
간소한 절 음식이 꿀 맛이라는 경험과 함께
입맛을 회복하였다는 이야기 또한 유명하다.
일휴 스님도 원래는 그 본시 출신이 막부 장군의
아들이었고 어머님의 뜻에 따라 일찍 출가하였으며
백제 혈통의 인물로 일본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선사이다.
단무지로 유명한 다꾸앙 선사도 역시 백제 혈통
출신의 스님으로 우리가 현재 많이 먹고 있는
무우로 만든 노란색의 단무지를 일본어로 다꾸앙이라
하는데 스님의 이름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 외에도 일본에 있는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백제관음상 같은 국보급 유물이 모두 백제 혈통
예술가의 작품이며 그들의 선진문화의 근원은 모두
백제의 왕자와 박사 등이 건너가서 성립된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것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지금도
칼날을 세워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을
보면 아직도 한반도를 자기네 땅으로 여겨 회귀하려는
욕망이 있는 듯 하다.
독도가 지정학적으로도 국제법으로도
그들의 땅이 아님이 분명한데 그런식으로
하자면 대마도는 우산국으로 현재 우리땅으로
편입 되야 하며 중국에 소속된 간도에 해당되는
동북부 길림, 장춘, 흑룡강성 등의 고구려의 옛
영토도 우리 땅으로 돌려 줘야 마땅한 것이다.
국력이 약해지고 나라의 지도자가 일관성이
없으며 국민들이 몰라도 너무 모르니 자기의
땅과 자기의 몫도 못 챙기는 못난 역사적 왜곡을
견디며 사는 것이다.
-----2567. 9. 2 법주도서관 심적 대견 합장
자림 시조 단상 325
게을러 탐식해 돼지처럼 사는 이
이런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은
윤회의 괴로움 속에 자기 자신을 내던진 삶.
-----자림 대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