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칼럼
SAMSUNG forever
삼성 퇴임임원 회보
2023 여름, Vol 117, p16~19
풍수기행(27)
인재 배출의 요람, 대학교 풍수(2)
글·사진 김정인 회원
성균관대 경영관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에 올랐다. 나라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인재들이다.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대학은 주산의 정기를 받는 산자락에 위치한다. 그리고 대학본부, 도서관, 교수회관, 주용대학 등이 캠퍼스의 중심에 있거나 주맥(主脈)에 위치한다,지난 호에 이어 서울의 여러 대학을 탐방하면서 대학 캠퍼스가 갖는 입지적 의미를 조명해 보았다.
600년의 역사, 성균관대학교
성균관은 1398년(태조 7년)에 세워졌고, 조선시대 유학을 가르치는 최고의 학교였다. 유교 경전 시험인 생원시에 합격하고, 시나 문장을 짓는 진사시에 합격한 인재와 왕세자까지 입교하였다.
'성균관'이라는 이름에서 '성균(成均)'은 성인재지미취(成人材之未就), 균풍속지부제(均風俗之不齊) 각각의 앞 글자들을 따온 것으로, '인재로서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풍속으로서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라는 뜻이 있는 조선시대 으뜸가는 교육 기관이었다.
태조 3년 1394년에 경복궁을 짓고, 경복궁의 동쪽 응봉 아래 성균관을 세웠다. 경복궁이 제1의 명당자리에 들어섰고, 그다음 명당자리에 성균관이 들어섰다. 그 후 성균관의 백호맥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이 들어섰고 한양의 청룡인 낙산은 성균관의 청룡이 되기도 한다. 성균관대 앞의 대학로에는 구 서울대가 있었고 지금은 각 대학의 부속건물이 있다.
성균관대는 성균관의 맥을 이어받았다. 주맥이 위치하는 곳에 법학전문대학, 호암관, 경영대, 교수회관, 중앙도서관 등이 자리 잡았다. 서을 캠퍼스가 부족해지자 자연계는 수원 율전동에 제2의 캠퍼스를 확보했다. 이곳은 삼성전자를 시작할 때 후보지 중의 하나였고, 경부선 수원역과 가까워 미래를 위해 확보해 둔 땅이었다. 삼성이 성균관대 경영에 참여하면서 성균관대는 또 하나의 명당자리를 확보하였다.
성균관대 주산, 한양의 청룡인 낙산은 성균관의 청룡이 되기도 한다.
성균관 은행나무
산관인정, 수관재물의 한양대학교
한양대가 있는 왕십리는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왕궁터를 잡기 위해 남산의 끝자락, 왕십리까지 왔는데, 밭을 가는 농부가 북서쪽으로 10리를 더 가라고 하였다는 왕십리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조선조 초기에는 왕십리 일대가 비만 오면 침수되는 상습 침수 지역이었고, 한양대가 있는 행당산은 평지 가운데 솟은 돌산이니 당시로서는 왕궁이 될 수 없는 곳이었다.
세월이 지나 때가 되니 물이 모이던 왕십리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돌산으로 우뚝 솟은 행당산에는 인재를 배출하는 공과대학이 들어섰다. 1939년 한양대를 설립한 백남 김연준 박사는 25세의 젊은이였다. 기술이 천대받던 시절에 동아공과학원을 설립하였고, 광복 이후에 국내 최초의 사립 공과대학인 한양 공과 대학을 설립하여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끌었다.
서울의 순환선 2호선에는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홍익대, 한양대, 건국대 등 대학들이 많은데 한양대역은 한양대를 위하여 세워진 역이다. 한양대역 2번 출구, 애지문을 통과하면 바로 대학 본관이며 캠퍼스 가장 가까운 곳에 전철역이 위치한다. 대학 본관 앞에는 사자상을 세웠다. 고대가 호랑이, 연대가 독수리이고, 한양대는 사자상을 학교의 상징으로 하였다. 사자는 위엄과 압도적 이미지가 있으며, 태양과 봄을 상징한다. 유럽에서는 왕궁이나 관공서에 사자를 수호신으로 조각하여 세웠다.
행당산 꼭대기에는 인문대, 자연대, 사범대가 위치했었다. 산정(山頂)에서는 물이 흩어지고 바람 맞는다. 홀로 버티기가 어려운 곳인데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서 서로 의지하는 비보(裨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행당산 꼭대기에 있던 사범대는 사라지고 미술대학과 교육 관련 학과만 남았다.
한양대 본관, 한양대역 2번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본관이 나온다,
한양대 정몽구 마래자동차연구센터
한양대는 우리나라를 도약시킨 산업계 등 각계의 리더들을 많이 배출했다. 김봉영, 구자준, 정몽구, 이영애, 최원석, 천경준, 윤부근, 추미애, 박찬호, 황규빈, 박항서, 김무성, 이상완, 김쌍수 등 이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의 사진과 이름이 역사관에 기록되어 있었다. 삼성, 현대, LG 등 기업의 CEO들도 많이 배출했다. 한양대의 중심 맥에 현대 정몽구 회장이 지은 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가 자리 잡았고, 공과대학이 핵심적인 자리에 배치되었다. 한양대는 수많은 공학도를 기업으로 배출하였고, 그들이 한국의 기술 수준을 높이고 한국의 부를 창출하였다.
한양대 입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주변의 너른 평지 한복판에 남산의 끝자락이 우뚝 솟았다가 중랑천을 만나 마무리된다. 한양대에서 제일 높은 인문대 옥상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면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용마산), 남한산, 관악산, 청계산, 남산 등이 병풍처럼 감싸준다. 청계천, 중랑천이 감싸 안고 한강이 멀리서 조수 하니 산관인정, 수관재물의 명당터라고 볼 수 있다.
천장산의 정기, 경희대학교
경희대학교가 위치한 곳은 천장산 아래에 있다. 천장산(天藏山)은 “하늘(天)이 숨겨 놓은(藏)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주산의 이름이 명당임을 암시하고 있다. 천장산에는 경희대, 의릉, 연화사 등이 위치한다. 하늘이 숨겨 놓은 명당에는 조선조 영조의 이복형인 경종의 능인 의릉이 있고, 연화사는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한 원찰로 세워진 후 의릉의 능침사로 지정되었다.
경희대 본관, 천장산을 배산으로 캠퍼스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경희대 평화의 전당
경희대 본관은 천장산을 배산으로 캠퍼스의 중심에 자리했다. 본관 석조 건물 앞 양쪽으로 학교의 상징인 웃는 사자가 좌우로 있어 수호신 역할을 한다. 대학의 주요 기관인 도서관이 청룡맥 가운데 자리 잡았고, 좌우의 능선을 따라 대학 건물들이 배치되었으니 본관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형상이다. 경희대학교 좌측 능선으로 더 내려가면 한국외국어대학이 위치해 있다. 천장산 아래 명당 지역에 있으나 캠퍼스가 좁고 본관과 주변 건물, 정문과 도로가 유정하지 못함이 아쉬움이다.
신촌 대학가의 서강대와 홍익대
조선시대 왕궁 후보지로 검토되었던 안산 아래에는 연세대와 이화여대가 먼저 들어섰다. 그 후에 서강대는 노고산 자락에 자리 잡았고, 홍익대는 와우산 자락에 자리 잡았다. 서강대는 서쪽 정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학교의 상징인 앨버트로스 상징물과 만난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게페르트 남덕우관을 만난다.
게페르트는 1960년 서강대를 세운 설립자 신부이고, 남덕우는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한국의 경제성장에 한 획을 그은 서강학파의 창시자이다. 게페르트 동상을 지나 좀 더 올라가면 캠퍼스의 중심부에 대학 본부가 있고 좌우와 후면으로 각 대학이 배치되었다. 홍익대는 서강대 인근 와우산에 자리 잡고 있는데, 좁은 곳에 위치하다보니 교문과 본관 부속건물의 배치가 유정하지 못하다. 운동장 쪽을 리모델링하고 있는데 보완되기를 바란다.
서강대는 노고산 자락에 자리잡았다.
건국대학교는 용마산, 아차산 아래 위치해 있다.
용마ㆍ아차산의 정기, 건국대학교
건국대학교는 넓은 캠퍼스에 각 기관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상허문을 들어서면 설립자 동상이 있고, 설립자 동상 뒤 언덕에는 도서관이 자리 잡았다. 바로 옆 일감문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수의과 대학이 있고 우측으로 일감호가 나오며 일감호의 동쪽 언덕에는 대학의 설립자 묘소가 있고 묘소 앞으로는 학생들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일감호 북쪽에는 새천년관이 자리 잡았고 새천년관과 행정관 앞에는 학교의 상징 동물인 황소상이 있다. 상허문과 일감문으로 들어가는 좌우로는 한치가 높은 곳에 각 대학과 부속 건물이 배치되었고 일감문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건국문이 있어 광진로와 연결된다.
건국대학교는 용마ㆍ아차산 아래 물이 모이는 낮은 곳에 있다. 건국대가 있는 건대역 주변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먹자골목이 있고 2호선 건대역, 7호선 건대입구역, 5호선 아차산역에서도 어린이 대공원을 지나면 건대와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높은 언덕이 없고 낮은 언덕이라 캠퍼스 간 이동도 편리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