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가출하다!
천마성 내부의 화려한 실내.
자단목으로 지어진 정갈한 탁자에 독고소소와 매영선파가 마주앉아 있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그들의 표정은 사뭇 심각해 보였다.
“삼신재가 앞을 다투어 성내에 도착했다고 해요.”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는 매영선파를 향해 독고소소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미 예정된 일이죠. 장공자가 천마장경동에 들었다는 소문이 퍼졌으니 저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매영선파는 미간을 좁히며 무겁게 말했다.
“겨우 한 달인데 그 동안 장공자가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는지 궁금하군요.”
독고소소 역시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에게 큰 기대를 건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죠.”
매영선파도 그녀의 말에 동감하는 듯했다.
“그렇겠지요.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십만여 권이 넘는 비급 가운데 얼마나 성취를 했을지……!”
안색을 흐리는 매영선파를 향해 독고소소가 자위하듯 말을 던졌다.
“그가 절정고수가 될 거라고는 애당초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단지 사형들에게나 원로원의 장로들에게 창피나 당하지 않을 정도면 되겠죠.”
매영선파는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이라고는 접해 보지 못한 자가 그 정도의 성취라도 이루었다면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겠지요.”
그녀는 이미 비불범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지만 자신을 어미처럼 키워준 매영선파에게만은 독고소소가 진심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독고소소는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오늘로써 그가 천마장경동에 든 지 딱 한 달이 되는군요. 장경동의 문을 열 시간이에요.”
매영선파도 같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노신도 함께 가겠어요.”
독고소소는 걱정스러운 안색을 감추려는 듯 매영선파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천마장경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천마장경동의 입구.
육중한 철문의 양쪽에 시립해 있는 네 개의 마신상은 오늘따라 유난히 더 살아 있는 듯 생생한 느낌을 준다.
독고소소는 수심이 가득한 안색으로 천마장경동의 철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매영선파가 먼저 말했다.
“소성주,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고 그 사람의 인연입니다. 어서 문을 여시지요.”
독고소소는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매영선파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애당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문을 열자니 그가 얼마나 변해 있을지 걱정이 되는군요.”
그녀는 은은한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며 철문 중앙의 홈에 반지를 가져다댔다.
그그긍!
육중한 철문이 굉음을 내며 활짝 입을 벌렸다.
헌데 조심스레 문 안쪽을 살피던 독고소소의 미간이 금세 찌푸려졌다.
“이런……!”
그녀의 옆에서 문안으로 접어들던 매영선파도 장내의 광경에 경악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장경동의 내부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여기저기 비급들이 흩어져 있었고 군데군데 서가들이 어지럽게 자빠져 있었다. 천마성의 자존심이랄 수 있는 천마장경동이 이처럼 난장판이 되어 있으니 두 사람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독고소소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공을 익히라 했더니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어놓다니… 대체 어디로 간 거야?”
그녀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매영선파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파, 저쪽부터 찾아보도록 하세요. 전 이쪽을 찾아보겠어요.”
매영선파는 독고소소가 가리킨 좌측의 서가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으으……!”
어디선가 사내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저기예요!”
독고소소는 매영선파를 향해 외치고는 먼저 신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독고소소의 눈이 부릅떠졌다. 산더미같이 쌓인 책 속에서 깡마른 손 하나가 불쑥 삐져 나오더니 뒤이어 피골이 상접한 비불범이 엉금엉금 기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뭘 했기에 거기서 기어 나오는 거죠?”
독고소소와 매영선파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비불범을 바라보았다.
“으윽……!”
비불범은 초점이 풀린 듯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이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장공자!”
독고소소는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비불범에게 달려들었다.
“괜찮은 건가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비불범은 한동안 넋을 잃고 독고소소를 바라보다 힘겹게 말했다.
“배… 배가 고파! 제발… 먹을 것 좀 주시오!”
과연 비불범다운 말이었다.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군요.”
독고소소와 매영선파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화려한 실내.
정갈하게 깔린 천축식 포단과 자단목으로 지어진 탁자, 그리고 옅은 천이 화려하게 깔린 침상은 말끔하게 정돈된 채 주인을 맞아들였다.
이곳은 바로 비불범의 방이었다.
배에 거지가 들었음에 분명했다. 비불범은 천마장경동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음식타령을 늘어놓았다. 독고소소가 그토록 체면을 좀 지키라고 사정을 했건만 비불범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는 말이었다.
결국 비불범이 먹을 것을 내놓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까지 폭로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지금껏 자신의 고집을 한번도 꺾은 적이 없는 독고소소마저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우쩝! 쩝!”
탁자 위에는 이미 십여 개의 빈 접시들이 쌓여 있었다. 비불범은 마치 접시마저 삼키려는 듯 입안으로 마구 음식을 쑤셔 넣고 있었다.
“소저! 방금 내가 먹은 이 음식이 무엇이오? 거참… 맛이 기가 막히는구려.”
그는 열흘 굶은 개처럼 싹싹 핥아 비운 접시를 독고소소에게 내밀며 물었다.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이야.’
독고소소는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지만 주위의 시선이 시선인지라 애써 상냥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공자의 입맛에 맞으시는 모양이군요. 그것은 서북지방의 별미 회과육(回鍋肉)이라 해요.”
“쩝! 회과육이라?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요?”
비불범은 말을 하면서도 연신 다른 접시의 음식을 입가로 가져갔다.
태어나서부터 손수 음식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독고소소가 그것을 알 리 만무했다. 그녀는 안색을 살짝 찌푸리며 비불범을 바라볼 뿐이었다.
‘군소리 말고 먹기나 할 것이지……!’
비불범은 탁자 옆에 시립해 있는 시녀를 불러 물었다.
“이리 잠깐 와보시오.”
시녀는 그의 앞에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공자, 부르셨사옵니까?”
비불범은 고개를 끄덕하며 물었다.
“이 회과육이란 건 어떻게 만드는 거요? 내가 원래 궁금한 건 못 참는 성미라서… 쩝!”
시녀는 연신 음식을 입에 넣고 말하는 비불범의 모습에 겨우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회과육이란 먼저 돼지 다리 살코기를 끓는 물에 익힌 다음 얇게 저며야 해요. 그리고 그것을 고온의 기름에 살짝 튀긴 다음 다시 완두, 첨면장(甛面醬), 홍장유(紅醬油), 마늘과 함께 살짝 볶아 만든 음식이죠.”
비불범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이걸 한 접시 더 갖다주시겠소?”
입안의 음식물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랑곳없이 비불범이 욕심을 부렸다. 시녀는 그에게서 접시를 받아들고는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나갔다.
“잠깐!”
비불범이 다시 시녀를 불러 세웠다.
“더 명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시녀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다시 비불범 앞으로 다가갔다.
비불범은 허리띠를 풀며 시원하게 트림을 했다.
“끄윽……! 이제 배가 반 정도는 찬 것 같은데……!”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독고소소와 매영선파는 신기한 듯 비불범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 정도라… 저게 사람이야?’
‘소성주의 앞날이 걱정이로구나. 대체 어쩌자고 저런 천한 놈을……!’
비불범은 그녀들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 없이 시녀에게 명했다.
“술도 한잔해야 할 것 같은데… 여기 서봉주(西鳳酒)라는 술이 있나 모르겠군. 내 풍문에 들으니 그 맛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서봉주란 산시성(陝西省) 펑샹현[鳳翔縣]에서 나는 배갈의 일종이었다. 고래로 그 맑기는 수정 같고 향기롭기는 유란(幽蘭) 같다고 하는 명주다. 펑샹현 유림진(柳林鎭)에는 유난히 맑고 찬 우물이 많았다고 한다. 그 물에 수수와 누룩을 담가서 연속 발효법으로 양조한 고급주가 바로 서봉주였다.
시녀는 고개를 조아리며 공손하게 말했다.
“소녀도 처음 듣는 술이지만 찾아보면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공자님!”
그녀는 공손히 대답한 후 뒷걸음질로 방문을 빠져나갔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군.’
독고소소는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비불범을 노려본 후 시립해 있던 시녀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그만 물러가도록 해라!”
“예, 소성주!”
시녀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방문을 빠져나갔다.
독고소소는 시녀들을 다 물리치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비불범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먹을 만큼 먹었으니 아까 했던 얘기를 계속해 봐요. 정말 설삼단 여섯 알을 한꺼번에 먹었단 말인가요?”
비불범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배가 고픈 걸 어쩌겠소? 한 알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던걸……!”
독고소소와 매영선파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이마를 짚고 있었다.
독고소소는 짜증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설삼단 한 알이면 십 년의 내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닷새 동안은 물 한 모금 먹지 않고도 견딜 수가 있어요. 하지만 닷새가 지나기 전에 다시 설삼단을 먹으면 아무런 효과도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닷새마다 한 알씩만 먹으라고 한 거였는데……!”
비불범은 마치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는 일인 양 접시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쩌겠소? 지나가던 개도 먹는 것으로 구박하면 안 되는 법인데… 이거야 원! 쩝!”
정말 밉상도 저런 밉상이 없었다. 독고소소는 혼신의 인내심을 다해 울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육십 년 수위의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여섯 알의 설삼단으로 겨우 십 년 수위의 내공밖에 얻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비불범은 어느새 또 접시 하나를 비워 내려놓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데 이런 말을 하긴 좀 뭐하지만 소저의 계산에는 좀 더 오차가 있을 거요.”
머리를 긁적거리며 입을 여는 비불범의 모습에 독고소소는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설마!’
그녀는 다급히 언성을 높이며 다그쳤다.
“서… 설마… 당신 내공심법도 익히질 않고 설삼단을 먹어치운 건 아니겠죠?”
비불범은 흥분하는 그녀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헤헤! 역시 소저는 귀신이구려. 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소.”
부르르르!
독고소소는 이를 악물고 눈을 내리 감았다. 사실 냉막하고 직설적인 그녀가 이 정도 참는다는 것은 가히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비불범은 눈치 없이 그런 그녀의 불난 가슴에 또다시 기름을 끼얹고 있었다.
“소저의 말을 어긴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내 탓만도 아니질 않소? 사전에 설명이라도 해주었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거 아니요.”
‘쯧쯧… 아주 불난 집에 기름을 말로 붓는구먼.’
매영선파는 안색을 찌푸리며 눈치 없이 나불대는 비불범과 최선을 다해 울화를 참고 있는 독고소소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모를 일이니… 강막을 쳐놓는 게 좋겠군.’
우웅!
그녀는 만약에 일어날 사태(?)를 대비해 방 주위로 무형의 강막을 펼쳤다.
한동안 묘한 침묵이 흐른 뒤 비불범이 그예 결정타를 날리고 말았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일, 이제 그만 잊어버리시구려. 설삼단을 다시 주면 이번에는 반드시 먼저 내공심법부터 익히고 먹…….”
그의 말은 그러나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퍽!
독고소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몸을 일으켜 비불범의 뺨을 그대로 휘갈겼다.
꽈당!
비불범은 의자에 앉은 채 뒤로 벌렁 자빠졌다.
“윽……!”
독고소소는 팔을 걷어붙이며 탁자를 돌아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 뭐가 어쩌고 어째?”
비불범은 아직도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독고소소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참고 참았던 울화가 폭발하자 독고소소는 앞뒤 가리지 않았다. 그녀는 탁자 위에 널려 있는 접시를 하나 들더니 비불범을 향해 휙 집어던지려 했다.
“설삼단이 무슨 어린아이 과자 이름인 줄 알아? 백년 만에 겨우 한 뿌리 발견된 천년설삼(千年雪蔘)으로 만든 무가(無價)의 영약이란 말야! 나도 아까워서 먹지 않고 비장해두었던 영약인데… 그걸 한꺼번에 주워 먹고 똥으로 만들어?”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분해서 못 참겠는지 다시 접시를 집어든 채 씩씩거렸다.
비불범은 금방이라도 날아들 듯한 접시를 보고는 기겁을 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사람 살려! 아이구, 이 여자가 사람 잡네!”
매영선파가 더는 안 되겠는지 벌떡 일어나 독고소소의 팔을 잡았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소성주!”
독고소소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저런 인간은 타일러서는 안 돼요. 매로 다스려야 사고를 안 친다구요!”
매영선파는 그녀의 팔을 힘주어 잡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행여 저자가 죽기라도 하면 그나마 만사휴의가 된다는 걸 생각하세요. 소성주, 제발 고정하시지요.”
그제야 독고소소는 분을 삭이려는 듯 한숨을 연신 내쉬며 비불범의 옆에서 한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 매서운 눈으로 비불범을 노려보았다.
“귓구멍 후비고 잘 들어둬라, 이 밥벌레 파락호야!”
비불범은 여전히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쥐죽은듯 엎드려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독고소소의 독설은 계속 이어졌다.
“만에 하나 네놈이 가짜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그 날로 우린 같이 죽는 거다!”
그 말을 내던짐과 함께 독고소소는 씩씩거리며 방문을 열고 휭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저런 인간에게 내 운명을 걸다니……!”
비불범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일어나며 투덜거렸다.
“아이구! 아녀자가 사내를 이렇게 무자비하게 패다니……!”
그는 아직도 뺨이 얼얼한 듯 손으로 연신 비벼대고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매영선파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쯧쯧! 그러기에 적당히 하질 않고서……!”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독고소소를 따라 방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매영선파가 뒤를 홱 돌아보며 비불범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모를 일이로군. 이성을 잃은 아가씨의 손찌검에는 금석(金石)도 두부처럼 으깨버릴 암경이 실려 있을 텐데 그걸 맞고도 멀쩡하다니……!’
그녀는 잠시 동안 비불범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닐 거야. 저런 인간이 어찌… 아가씨께서 내력을 빼고 손찌검을 하셨을 테지.’
매영선파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녀들이 밖으로 나가고 나자 비불범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우라질! 누구는 하고 싶어서 이 짓을 하고 있는 줄 아나? 이거야 원!”
그는 짐짓 화풀이로 밖을 향해 외쳤다.
“술은 왜 안 갖고 오는 거야? 준비했으면 얼른 가지고 와!”
스륵!
그제야 시녀가 주담자를 받쳐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시녀는 다소 흐트러진 방안을 살피며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비불범에게 다가와 주담자를 건넸다.
벌컥벌컥!
비불범은 시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담자째 술을 들이켰다.
“그럼, 소녀는 나가보겠습니다.”
시녀가 방문을 빠져나가자 비불범은 신경질적으로 주담자를 탁자 위에 내팽개쳤다.
“나도 이젠 도저히 못 참아!”
그는 벌떡 일어서며 뺨을 어루만졌다.
“장부일언은 중천금이라고 얼떨결에 한 약속이나마 지키려고 이렇게 참아왔거늘… 계집에게 쥐어 터지면서까지는 이 짓을 못하지!”
비불범은 방안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사라지면 자기만 아쉽지 뭐!”
대충 짐을 챙긴 비불범은 마지막으로 침상 밑에 놓인 담로신도를 어깨에 둘러맸다.
“어차피 가겠다고 순순히 말하면 또 죽이네 살리네 할 테니 조용히 빠져나가야겠군.”
그는 다시 한 번 빠진 물건이 있나 방안을 한차례 쓰윽 살펴보고는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장경동인가 하는 곳에 있는 동안 체력은 많이 좋아졌으니 이 정도는 뛰어내릴 수 있겠지.”
휘익!
비불범은 대략 눈짐작으로 거리를 살핀 후 서슴없이 창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무공이라고는 전혀 몰랐던 비불범의 몸이 마치 깃털과 같이 가볍게 바닥으로 사뿐히 내려앉는 것이 아닌가.
비불범은 그 놀라운 사태에 자신도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무공이라는 게 좋긴 좋군.”
그는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머물던 건물 주위에 철갑으로 중무장한 무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서 걸리면 안 되지.”
비불범은 몸을 숙여 조심스럽고도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경비를 담당하는 무사들의 내공과 청력이 엄청난 수준에 달해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비불범의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됐다!”
비불범은 내심 쾌재를 부르며 정원의 울창한 숲으로 숨어 들어갔다.
***
천마군림탑의 정상.
그토록 당당하던 천마군림탑이었지만 독고무적의 죽음 뒤로 상층부가 터져 나간 폐허로 남아 있었다.
지금 이곳에 흑색 궁장을 걸친 독고소소가 서 있었다. 가을의 삭풍을 온몸으로 받으며 흑발을 휘날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몹시 고독해 보였다.
아버지의 죽음과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음모의 손길들. 외면은 강했지만 그만큼 내면은 여린 독고소소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큰 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손에 쥔 물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불범에게서 받은 주먹만한 크기의 수정이었다. 그녀는 지금 가죽주머니를 내밀던 비불범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 장형님이 사신군도에서 가져온 결혼예물이오!
독고소소의 눈빛이 이채롭게 빛났다.
‘만년빙정(萬年氷精)! 빙하(氷河)의 영기(冷氣)가 백만 년 동안 응고되어 이루어졌다는 빙문(氷門)의 무가지보(無價之寶)!’
만년빙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독고소소의 뇌리 속으로 다시금 비불범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령 이것의 진정한 가치를 몰랐다 해도 누구나 탐욕을 일으킬 만한 보물이다. 더구나 사신군도에서 이것을 예물로 보냈음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 만일 그가 나쁜 마음을 품었다면 만년빙정은 내 수중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만월이 덩그러니 떠 있는 늦가을의 창공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는 짓마다 복장을 터지게 만드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순진하고 정직한 사람인데… 아무래도 내가 좀 심하게 대한 듯하구나.’
그녀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책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가씨!”
외마디 외침과 함께 날아드는 인영은 다름 아닌 매영선파였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독고소소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큰일났어요!”
독고소소는 의아한 듯 매영선파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죠?”
매영선파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 그가 사라졌어요!”
독고소소는 크게 충격을 받은 듯 전신을 휘청했다.
“어… 언제쯤이죠?”
그녀는 애써 몸을 바로잡으며 물었다.
“좀 전에 아가씨가 방을 떠난 뒤라고 합니다.”
매영선파는 무안한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독고소소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어서 그를 찾아보도록 하세요! 그가 지금 없어진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걸 잘 알고 계시잖아요?”
매영선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미 조치를 취해 두었어요!”
독고소소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며 허공의 만월(滿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제발… 제발!’
매영선파는 그녀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성주, 모든 것이 노신의 잘못이에요. 제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그만…….”
독고소소는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저 허공만을 바라보다 문득 눈을 부릅뜨며 매영선파를 바라보았다.
“그… 그 사람이 위험해요! 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핼쑥하게 변했다.
***
부스스!
관목 아래에서 기어 나오는 괴인영이 있었다.
천마성 내부의 깊은 곳에서 이런 괴인영이 돌아다닌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날아다니는 새조차도 함부로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이 철옹성에 수상한 인영이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등뒤에 큼지막한 칼 하나를 비껴 차고 보따리를 비스듬히 둘러멘 촌스럽기 짝이 없는 그 인영은 바로 천마성을 빠져나가려던 비불범이었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숲 너머 멀리 천마군림탑의 윗부분이 언뜻 보이는 듯했다.
비불범은 안색을 찌푸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 넓기는 정말 우라지게 넓구나. 대체 얼마를 왔는데… 아직도 천마성을 벗어나지 못하다니!”
그는 허리가 아픈 듯 몸을 쭈욱 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그곳은 오랫동안 버려진 듯한 황량한 정원이었다.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잘 가꾸어진 잔디 대신 무성한 잡초만이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황폐하구나.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군. 황제가 거하시는 자금성에 못지않게 화려한 천마성 안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비불범은 의아한 시선으로 중얼거리며 정원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정원 너머의 월동문 안에서 나지막하게 여인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자장가 같은데… 듣기 좋은 목소리야!’
비불범은 자신도 모르게 노랫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월동문의 안쪽으로 발을 들여놓은 비불범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의 중앙에는 지저분한 물이 고여 있기는 했지만 제법 그럴듯한 연못이 있었고 연못 위로 허름한 정자 한 채가 우뚝 서 있었다.
‘저기군.’
비불범은 정자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정자에는 한 명의 중년부인이 흔들의자에 앉아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어둠 속이라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이목구비가 반듯한 것이 상당한 미인으로 보이는 중년부인의 품에는 강보에 싸인 아이가 안겨져 있었다.
그녀를 보는 비불범의 시선이 한순간 흔들림을 일으켰다.
‘분명 처음 보는 부인인데… 왠지 눈에 익다. 대체 어떤 분이기에…….’
비불범은 마치 자석에라도 끌린 듯 여인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 순간 여인의 눈빛이 번뜩 빛나며 비불범 쪽을 노려보았다.
“네놈도 내 아기를 훔치러 들어왔느냐?”
밑도 끝도 없이 대뜸 여인이 이를 바득 갈며 알 수 없는 말을 건네 왔다.
비불범은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말했다.
“오해 마십시오, 부인! 소생은 단지 길을 잘못 들어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비불범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여인은 여전히 날카로운 경계의 빛을 늦추지 않았다.
“호호호! 둘러대도 소용없다. 네놈은 분명 독고무적이 보낸 졸개일 것이다.”
여인은 강보에 싸인 아이를 의자에 조심스럽게 놓고는 몸을 일으켰다.
“내 아기에게 눈독을 들인 이상 네놈을 결코 살려 보내지 않다. 한세궁(恨世宮)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이곳이 네 무덤이 될 것이다!”
여인은 한 맺힌 악귀와 같은 눈빛으로 비불범을 노려보았다.
비불범은 난처한 기색으로 여인에게 다가갔다.
“부인… 난 그저……!”
그가 여인에게 다가서자 여인의 안색이 갑자기 홱 변했다.
“다… 당신은 독고무적!”
그녀는 재빨리 의자에 내려놓은 아이를 안아들며 비불범에게서 한걸음 물러났다.
‘독고무적이라… 내가?’
비불범은 의아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이까지 덜덜 떨며 계속해서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제발… 이 아이만은 제발…….”
비불범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은 몹시 불안정하게 흔들렸고 날카로운 경계의 가시를 품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강보를 품에 바짝 끌어안으며 강한 의지가 담긴 음성으로 소리쳤다.
“안, 안돼요! 당신이라도 내 아기를 데려가진 못해요!”
그녀의 아이에 대한 집착은 너무 완강해서 강렬하게 내쏘는 경계의 눈빛은 어찌 보면 섬뜩해 보일 정도였다.
그녀는 아마도 비불범을 독고무적으로 알고는 지레 겁에 질려버린 듯했다.
비불범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녀의 낯빛이 파랗게 질려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상태가 몹시 심각하고 진지해 보였다. 아이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심한 공포와 불안이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눈가로 짙게 깔려 있었음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영문을 알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비불범은 그러나 머리가 나쁘지 않은 탓에 이내 여인이 뭔가 큰 착각을 일으켰다고 생각하고는 나름대로 그녀의 오해를 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극심한 긴장감에 굳어 있는 여인을 가능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임으로써 안심시키고자 했다.
“저는 독고무적이 아닐 뿐더러 아무도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아주머니!”
그는 여인을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흔들며 무심코 한 발자국 정자로 들어섰다.
그 모습에 여인의 경계심은 극에 이르렀다.
“오, 오지 말아요! 안돼요 제발! 내 아기를 빼앗지 말아요!”
그녀는 거의 필사적으로 울부짖으며 구석으로 물러앉았다. 애처롭고도 가슴 찡한 모성애를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이거야 원……!’
졸지에 아기를 빼앗으려는 나쁜 놈(?)으로 오인 받은 비불범은 여인의 지나친 경계에 그만 민망해지고 말았다. 어찌 설명을 해야 좋을지 난감하기만 했다.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리던 그는 문득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인이 안고 있는 것이 진짜 아기가 아니라 인형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주머니, 그건 아기가 아니라 인형……!”
그는 여인이 정신적으로 혼란을 느끼고 있는 듯하자 현실을 일깨워주려 했으나 그럴수록 여인은 필사적으로 강보에 싸인 인형을 꼭 끌어안으며 고개를 도리질했다.
“그런 말로 날 속이진 못해. 이 아기는 내 아기야! 물러가! 물러가란 말이야, 독고무적!”
아기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에 비불범은 여인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가엾은 여인이다! 어떤 일로 큰 충격을 받아 정신이 이상해졌구나!’
그는 여인이 뭔가 사연이 있다고 생각하며 짙은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그가 연민의 눈길로 여인을 바라보며 다시 뭔가 위로의 말을 찾고 있을 때였다.
“아녜요. 전부 제 잘못이에요, 상공. 모두 고백하겠어요! 그러니 제발… 신첩의 아기만은 빼앗지 말아주세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여인이 애원 조로 비불범에게 매달리며 사정했다.
“제가 상공께 접근한 것은 사형이 시켜서였어요. 사형은 당신의 조부에게 멸문당한 사문의 복수를 하려면 그 길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녀는 비불범이 알지 못하는 그간의 사정을 줄줄 쏟아내며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으로 간절하게 말했다.
“하지만 신첩의 마음은 진심이었어요. 신첩은 단 한 번도 상공을 배신한 적이 없어요. 믿어주세요!”
구구절절 진심을 토로한 여인은 급기야 비불범 앞에 엎어지며 격한 오열을 터뜨렸다.
그 내막이야 어떻든 비불범이 보기에는 여인의 말이 모두 진실 되게 느껴졌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비불범은 자신도 모르게 여인을 향한 연민의 마음에 가슴이 애틋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정하십시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소생은 정말 독고무적이 아닙니다!”
그는 가능한 여인이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조심스럽고도 진지한 목소리로 다시 자신이 여인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하지만 비불범의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부드러운 설득 조로 들리는 그의 말에 여인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당신… 끝내 신첩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녀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입술을 잘근 깨물더니 뭔가 결심한 듯 표정을 굳혔다.
“좋아요. 그럼 내가 얻은 모든 것을 포기하겠어요. 본문의 절기뿐만 아니라 천마장경동에서 얻은 비밀도 당신에게 돌려주겠어요. 하지만 내 아기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부인.”
비불범이 계속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여인의 태도에 당황하여 고개를 저었지만 여인은 문득 안색을 싸늘하게 굳히더니 냉랭한 비웃음을 흘렸다.
“호호! 군자인 척하지 말아요, 독고무적! 당신도 내가 천마장경동에서 얻은 고금십대절기를 탐내고 있죠? 제 사형처럼 말예요!”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도취한 듯 점점 격앙된 어조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좋아요. 가져가요! 내가 얻은 사대절기는 바로 망량이에요.”
그녀는 비불범이 미처 만류할 틈도 없이 그 사대절기라는 것에 대해 줄줄이 설명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망량의 정체는 상고괴인 유령천존(幽靈天尊)의 유령허환신법(幽靈虛幻神法)이에요. 팔만사천의 모공으로 선천강기(先天罡氣)를 흘려내어 상대의 어떠한 가격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전설의 호신기공이죠. 그 구결은 이러해요!”
“아주머니, 사실 나는 무공이라고는 전혀…….”
비불범이 급히 손을 내저으며 구결을 외우려는 여인을 만류하려할 때였다.
“거절하는 척해도 소용없어요!”
번쩍!
갑자기 여인의 눈에 섬광이 솟구쳤다.
무심결에 그녀를 바라보던 비불범은 그녀의 눈에 솟구친 섬광을 본 순간 그만 최면술에 걸려들고 말았다.
‘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비불범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인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음을 느끼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비불범의 모습에 여인은 걸려들었다 싶었는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심안이령대법(心眼移靈大法)이 시전되었으니 유령허환신강의 비결을 받지 않겠다고 발뺌할 수도 없을 거예요.”
여인의 두 눈이 점점 뜨겁게 백열되어갔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유령허환신강의 구결을 줄줄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기타혈(以氣打穴) 환허만묘(幻虛萬妙) 개공토단(皆空吐丹) 오행탄월(五行彈月) 심어발경(心御發勁)……!”
현기증을 느끼는 비불범의 뇌리로 마치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이해하지 못할 구결들. 비불범은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는 대책 없는 이 상황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으으으! 저 여인의 생각이 내 뇌리에 제멋대로 각인된다!’
그가 강제적으로 여인이 읊어주는 구결을 뇌리 속에 완전히 각인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여인은 말을 멈추었다.
“으음!”
말을 마친 여인은 갑자기 쓰러질 듯 몸을 휘청거렸다. 극도의 피로에 지친 모습이었다.
“아주머니!”
비불범은 쓰러지는 여인을 급히 받아 안으며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비불범을 올려다보며 여인은 다시 눈물을 뿌렸다.
“죄송해요, 상공. 처음에는 저도 사문의 복수를 하기 위해 당신께 접근했어요.”
그녀는 그 동안 혼자만 감당해야 했던 괴로운 심정을 기탄 없이 털어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첩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당신을 암습하라는 사형의 명령을 따를 수가……!”
여인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슈학!
정자 밖에서 한줄기 인영이 유령처럼 날아들며 비불범을 급습해 왔다.
“누구……?”
비불범은 반사적으로 한 손을 내밀어 암습자의 장력을 맞받아 쳤다.
퍼펑!
요란한 폭음이 정자를 뒤흔들어 놓았다.
비불범은 엄청난 타격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멀리 날아갔다. 그리곤 정자 밖으로 날아간 그는 담벼락과 거세게 부딪치며 충돌했다.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와르르 무너지는 벽돌 더미에 묻혀 그의 모습은 찾을 수조차 없었다.
스스스!
비불범이 돌 더미에 묻혀 모습을 감춘 직후 한줄기 돌풍을 일으키며 멋들어지게 정자 안에 내려서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머리에 사각의 도관을 쓴 백발의 중년인인데 수려한 자태에 긴 수염을 길러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기이하게도 이 중년인은 머리와 수염이 모두 백발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아직 젊음을 잃지 않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래도 제 1권 끝>
재미있었는데 아쉽네...
즐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네요..
감사히 잘 읽었읍니다.
즐감 감사&^^&
감사 감사
우와~~~ 절단신공~~~
다음이 기대되네요
ㄱㅅ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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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했어요
잘 읽었읍니다
감사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