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학 국사책이나 일본 중3 공민(사회) 책을 완독하면, 영어를 가르치면서 world history의 동아시아 역사를 제대로 해석하여 전달해 주는 데에, 큰 도움을 받는다. 기초적 일본어 능력만 있으면 한자 덕분에 한 학기 정도에 일본 교과서 완독이 가능하니, 우리 아닌 세계에서 우리 역사를 어떻게 기술하는지 알고 싶으면 한 번 도전해 보길 권한다.
수많은 얘기 중에, 오늘은 임진왜란을 세계에서 어떻게 가르치는지 시간이 허락하는 내에서 적어볼까 한다.
우리는 임란 직전인 16세기부터 중국인이 되지 못하면 중국인 흉내라도 내겠다고, 중화사상을 넘어 모화사상을 가지면서, '소중화'를 자처하고 중국 外 이웃을 오랑캐라 했지만(모화사상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박인로의 선상탄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정말 중국처럼 국가를 경영한 건 일본이었다. 小中華라도 자처하려면 중국처럼 주변국을 부용국으로 만들어 조공이라도 받았어야 했는데, 우리는 중국 이외의 주변국을 오랑캐라고 무시만 했지 한 번도 중국처럼 조공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반면 일본은 왕이 아닌 황제가 존재하면서, 독자적 연호를 썼고, 놀랍게도 주변국의 조공을 받는데, 대표적으로 류큐(오끼나와)와 다두, 동녕(타이완) 두 왕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는다. 류큐와 다두는 중국과 나누어 조공을 받고 동녕왕국에는 일본 혼자서 조공을 받는다. 이 사실 역시 영어로 된 세계사 교과서 어디에나 나오는 내용이다.
그리고 임진왜란의 명칭이 또한 그런데, 일본은 국가차원 전쟁에 'の役(노에끼)'라는 말을 황제 연호 뒤에 붙여서 명명한다. 중국이 전쟁을 황제 연호 뒤에 之役을 붙여서 그 황제의 큰 사업, 황제의 큰 업적으로 명명하는 것과 똑같다. '임진왜란'이 일본에서 임진왜란이라 불리지 않음은 당연하고, '분노쿠게이조노에키(文祿慶長の役)' 라고 불리는데 분노쿠 천황, 게이조 천황 때의 업적이란 뜻이다. 중국에서도 임진왜란은 황제 연호 만역을 따서 萬歷之役(완리쯔이) 이라고 이름붙여 부른다. 만역 황제 때의 큰 업적이란 뜻이다. 우리는 왕 이름이 등장치 않고 그냥 임진왜란. 영어로는 억울하게도 전쟁 주체인 우리가 빠지고, 중국과 일본 간 한반도에서 벌인 East-Asian War(동아전쟁)이다. 동아시아 7년 전쟁이라고도 하고, 제 1,2차 東亞 전쟁이라고도 한다.
놀라운 건, 美 world history 교과서 속 임진왜란의 성격, 영향에 대한 기술이다. 먼저 한국인인 내가 가장 황당했던 영어로 된 세계사 교과서 속에 임진왜란의 영향부터 보면, East-Asian War(임진왜란)로 인해 한국에 큰 변화가 있는데, 지배층은 Confucianism(아마 성리학이겠지)의 질서에 더 심취하고 피지배층은 중국 민간신앙에 조직적, 전국적으로 영향받는다고 돼 있다. 내가 한국인인데, 도대체 어떤 중국 민간신앙이 왔단 얘기일까? 그 답은 일본 교과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일본 국사책에 보니, 명은 조선에 파병하며 자신들의 군신 관우를 전국으로 숭배시킬 것을 조선 왕에게 요구했는데, 선조는 이에 응했다. 이로써 중국의 軍神이고 戰神인 관우가 조선에서 숭배되는데, 조선 각지에 관우의 묘가 세워지고 매해 제사를 지내며 숭배하게 된다. 지금 서울에 있는 동묘가 바로 관우의 묘다. 우리가 아는 그 삼국지의 도원결의의 주인공 關羽가 맞는데, 어서 빨리 동묘라는 지명을 없애야 한다.
일본 국사책에서 더 놀라운 걸 처음 알았는데, 정유재란이 명나라의 거짓에 의해 벌어진 전쟁이란 거다. 임진난 강화 때, 명은 조선 남부 4도(경기, 충청, 영호남)를 일본에 할양하겠다 멋대로 약속했고, 실제로 선조에게 평양으로 천도하라 명하고 방어선은 평안도까지임을 통보했다. 조선이 이에 응하지 않아 벌어진 것이 게이조노에끼, 즉 정유재란이다.
처음부터 중국놈들은, 우리가 일본의 "길을 내달라"는 제안을 거절하며 원군을 요청할 그 때부터, 조선과 일본이 연합하여 명을 한반도에서 협공할 위험성만 걱정했고, 조선과 일본이 길게 전쟁을 벌여 오랑캐끼리 피를 보는 것이 가장 국익이라 판단해서, 평양이 점령될 때까지 명군을 파견하지 않았다. 중국에 진출하게 길을 내달라는 일본의 '정명가도' 요구를 우리는 순수한 명과의 의리로 거절하고 항전했지만, 명은 평안도를 방어 하한선으로 책정하고, 명군의 군량미를 댈 것, 再造之恩(나라를 다시 만들어준 은혜)을 기념하여 조선의 전(全)군과 백성에 관우를 관성제, 성제로 부르며 숭배토록 할 것을 전제 조건으로 평안도까지만 파병했다. 이후 더 이상 진군없이 일본과의 강화에만 진력한다. 조선은 의리로 유린됐으나 중국은 자신들의 본토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는 실리만 챙긴 것이다. 어디 조선 500년사에 이런 의리-배신의 구도가 한 두번이랴.
마지막으로, 영어로 된 세계사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임진난의 성격' 까지만 언급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East-Asian War(임진난)은 "16세기 동아시아의 주요 행위자인 Ming(명)과 japan이 전쟁 당사자로서, 조선, 여진까지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동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국제전"으로 규정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일본이 명에 진출한다는 구실로 조선을 침공한 한일전'이 아니라, 일본과 명 사이의 패권 전쟁으로서 조선은 방패막이 전쟁 조연으로만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이 세계인들이 배우고 있는 '임진왜란(아니 이스트아시안 워, 분로쿠노에끼 혹은 완리쯔이(萬歷之役))' 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