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견(見)을 설명하여 진심(眞心)을 밝히다
❙ 참고
육식(六識)은 진심(眞心)이 아니고 반연심(返緣心)이다
마음이 무엇인가? 아난은 육식(六識)을 진심(眞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육식(六識)은 진심이 아니고 망심(妄心)이며 분별영사(分別影事)일 뿐이다. 진심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난을 위하여 부처님께서 열 번에 걸쳐 견(見)을 가지고 진심(眞心)을 밝히신다. 견(見)을 가지고 설명하시지만 시각현상을 알아보는 것은 마음이기 때문에 결국 <마음> 에 대한 설법이다.
아난이 도(道)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 근본진리인 ①반연심(攀緣心) ②청정체(淸淨體)를 모르기 때문이다. 두 가지 근본을 모르면 아무리 수행을 하여도 도(무상보리)를 이루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는 진심(眞心)을 알 수 있도록 견(見)을 설명하여 진심(眞心)을 밝히신다. 지금부터 부처님의 십번변견(十番辯見) 법문이 시작된다.
견(見)이란 시각현상을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즉, 눈(안근)(六根)을 통하여, 빛깔(색진)(六盡)을 보고, 인식(안식)(六識)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오음(五陰)의 수(受)에 해당하며, (육근+육진+육식) 을 통하여 (6가지 현상) 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눈(안眼) ― 빛깔(색色) ― 안식(眼識) : 시각현상을 안다
귀(이耳) ― 소리(성聲) ― 이식(耳識) : 청각현상을 안다
코(비鼻) ― 냄새(향香) ― 비식(鼻識) : 후각현상을 안다
혀(설舌) ― 맛맛(미味) ― 설식(舌識) : 미각현상을 안다
몸(신身) ― 감촉(촉觸) ― 신식(身識) : 촉각현상을 안다
뜻(의意) ― 생각(법法) ― 의식(意識) : 지각현상을 안다
눈귀와 같은 육근(六根)은 도구(기관)일 뿐이고, 인식하는 주체는 <나> 다. 따라서 <내> 가 <주인공> 이고 <진심> 이고 <불성> 이고 <여래장> 이다. 그런데 이 몸뚱아리에 진짜 <나> 는 없다. 진짜 <나> 는 어디에 있는가?
아난이 비록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외우지만 그것은 반연심이다. 외우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청각현상) 그것을 기억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육진경계를 반연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므로 반연심이다. 비록 경을 많이 외우고 알더라도 그것은 진심이 아니고 반연심이다.
진심(眞心)을 알아야 도(道)를 이룰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상주진심(常住眞心) 성정명체(性淨明體) 이다. 진심은 항상 있으며(不生不滅), 그 성질은 청정(淸淨)하고 분명(分明)한 바탕이다. 따라서 인연 따라 생기는 육식(六識)은 진심(眞心)이 아니고 반연심(返緣心)일 뿐이다.
그리스 철학에서, 로고스(Logos)는 진리 이성(理性) 이(理) 성리(性理) 이데아(Idea) 본질 등의 뜻이고, 파토스(Pathos)는 로고스와 상대되는 말로서 감정 사(事) 등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 라는 말이 있고, 또한 요한복음에는 'Before Abraham was I am.' 이라는 구절도 있다. 여기서 진심(眞心)은 로고스(Logos), 이데아(Idea), 하느님, 예수님 등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변하지 않고 늘 존재한다는 뜻일 것이다.
소리의 본질(本質.이데아)과 관련하여 중국 선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표현 중에 무공저(無孔箸)가 있다. 무공저(無孔箸)는 구멍 없는 피리지만 구멍을 내는 곳마다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는 모두 다 다르다. 어떤 정해진 특정한 소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구멍 뚫는데 따라서 수많은 소리가 나온다. 또한 줄이 없는 거문고라는 뜻의 몰현금(沒絃琴)이 저절로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낸다는 말도 있다.
소리의 이데아(Idea)가 있긴 있는데 어디에 있는가? 여래장(如來藏) 안에 있다. 모습은 어떤가? 성공덕(性功德)으로서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뛰어난 능력이다. 북을 치면 북소리가 나고 기타를 치면 기타 소리가 난다. 여래장에서 인연 따라 가지가지 소리가 난다. 우리의 진심(眞心)이 바로 여래장 성공덕(如來藏 性功德)이고 여래장 묘진여성(如來藏 妙眞如性)이다.
부처님의 십번변견(十番辯見) 법문
부처님께서 진심(眞心)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하여 열 번에 걸쳐 설명하신다. 정맥소(大佛頂首楞嚴經正脉疏)에서는 다음과 같이 열 가지를 밝히고 있지만, 야청 선생님의 순서에 따라 살펴본다.
① 지견시심(指見是心) 보는 것은 눈이 아니고 마음이다
② 현견부동(顯見不動) 견성은 움직이지 않는다
③ 현견불멸(顯見不滅) 견성은 죽지 않는다
④ 현견불실(顯見不失) 견성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⑤ 현견무환(顯見無還) 견성은 돌려보낼 수 없다
⑥ 현견비물(顯見非物) 견성은 물상이 아니다
⑦ 현견무애(顯見無碍) 견성은 걸림이 없다
⑧ 현견불분(顯見不分) 견성은 나눌 수 없다
⑨ 현견초정(顯見超情) 견성은 생각을 초월한 것이다
⑩ 현견이견(顯見離見) 견성은 견정이 아니다
❙ 원문
阿難聞已, 重復悲淚五體投地, 長跪合掌而白佛言: 「自我從佛發心出家, 恃佛威神, 常自思惟無勞我修, 將謂如來惠我三昧, 不知身心本不相代, 失我本心. 雖身出家心不入道, 譬如窮子捨父逃逝. 今日乃知雖有多聞, 若不修行與不聞等, 如人說食終不能飽. 世尊. 我等今者二障所纏, 良由不知寂常心性. 唯願如來哀愍窮露發妙明心, 開我道眼.」
即時如來從胸卍字涌出寶光, 其光晃昱有百千色, 十方微塵普佛世界一時周遍, 遍灌十方所有寶剎諸如來頂, 旋至阿難及諸大衆, 告阿難言: 「吾今為汝建大法幢, 亦令十方一切衆生, 獲妙微密性淨明心得清淨眼.」
아난문이, 중부비루오체투지, 장궤합장이백불언: 「자아종불발심출가, 시불위신, 상자사유무로아수, 장위여래혜아삼매, 부지신심본불상대, 실아본심. 수신출가심불입도, 비여궁자사부도서. 금일내지수유다문, 약불수행여불문등, 여인설식종불능포. 세존. 아등금자이장소전, 양유부지적상심성. 유원여래애민궁로발묘명심, 개아도안.」
즉시여래종흉만자용출보광, 기광황욱유백천색, 시방미진보불세계일시주변, 변관시방소유보찰제여래정, 선지아난급제대중, 고아난언: 「오금위여건대법당, 역령시방일체중생, 획묘미밀성정명심득청정안.」
❙ 해설
아난이 이 말을 듣고, 거듭 다시 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오체를 땅에 던지고, 공손하게 꿇어앉아 절하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부처님을 따라 발심하여 출가하였으나, 부처님의 위신만 믿고, 항상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애써서 수행하지 않아도, 장차 여래께서 나에게 삼매를 주실 것이라고 여기고는, 몸과 마음이 본래 서로 대신하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여, 저의 본심을 잃어버렸습니다.
비록 몸은 출가하였으나 마음은 도(道)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마치 빈궁한 아들이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비록 법문을 많이 듣는다고 하여도, 만약 수행하지 아니하면 듣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 마치 어떤 사람이 먹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코 배부를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두 가지 장애에 얽매인 까닭은, 참으로 고요하면서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원하오니 부처님께서는 빈궁하고 고달픈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묘하고 밝은 마음을 설명하시어, 저의 도안(道眼)을 열어주소서.」
즉시 부처님 가슴의 만(卍)으로부터 보배로운 광명을 쏟아내시니, 그 빛이 밝고 빛나서 백 천 가지의 색이 되어, 시방의 티끌과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를 한꺼번에 비추시고, 시방의 보배로운 국토에 계신 모든 여래의 정수리에 그 광명을 대시고, 다시 아난과 여러 대중들에게 돌아와 비추시고는, 아난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큰 법의 깃발을 세워서, 시방의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묘하고 비밀스러우며 성품이 청정하고 분명한 진심을 찾아서 깨끗한 안목을 얻게 하겠다.」
❙ 보충
장궤(長跪)란, 두 무릎을 땅에 디딘 자세에서 허벅지와 상체를 곧게 일으켜 세우는 자세로 예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시불위신(恃佛威神), 부처님은 아난의 스승이면서 또한 사촌간이므로, 아난은 부처님께서 터득하신 여러 삼매 중에서 하나를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신심본불상대(身心本不相代), 몸과 마음은 서로 대신하지 못한다. 내가 배고프면 내가 밥을 먹어야지 남이 먹는다고 배부르지 않는다. 도안(道眼)을 열어주소서. 진심을 똑바로 알게 하여주소서.
이장(二障)이란,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두 가지 장애를 말한다. ①번뇌장(煩惱障)은 주로 감정적인 요소인 탐(貪), 진(瞋), 치(痴), 만(慢), 의(疑), 견(見) 등 번뇌로 인하여 도(道)를 이루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말한다. 번뇌장이 끊어지면 아집(我執)이 없어진다. 원각경에서는 바른 앎(正知)과 바른 견해(正見)을 막아 본각진여를 보는 것을 장애하기 때문에 이장(理障)이라 하였다. ②소지장(所知障)은 아는 것이 장애가 된다는 뜻이다. 바른 견해가 아닌 알음알이로 분별함으로 인하여 결국 무지(無知)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무지(無知)는 사물이 고정되어 있고 스스로 존재한다고 보면서, 모든 사물은 항상 변하며 상호의존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소지장으로 인하여 법집(法執)을 일으키고 따라서 소지장을 끊으면 법집이 없어진다. 원각경에서는 번뇌로 인하여 생사의 세계에 끊임없이 윤회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장애하기 때문에 사장(事障)이라 하였다. 번뇌장의 원인은 소지장이다. 대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탐내고 성내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만(卐)은 부처님 가슴에 있는 길상(吉祥)의 표시이다. 온갖 재앙을 소멸하는 불광명(佛光明)을 상징한다(吉祥海雲 萬德莊嚴 消災聚福). 당나라 측천무후가 만(卍) 이라는 글자로 변경하기 이전부터 고대 인도에서 사용된 글이다. 법당(法幢)이란, 번뇌를 쳐부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깃발에 비유한 것이다
여인설식(如人說食), 어떤 사람이 먹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코 내가 배부를 수는 없다. 설식불포(說食不飽)는 그림의 떡이다. 화엄경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에는, 종일수타보(終日數他寶) 자무반전분(自無半錢分), 어법불수행(於法不修行) 다문역여시(多聞亦如是)라는 말이 있다. 하루 종일 남의 돈을 헤아린다고 할지라도 나에게 조금의 이득도 없는 것과 같이, 법(法)에 있어서 수행하지 않고 많이 들어 지식만 쌓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출처:https://blog.naver.com/sesimdang/223327323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