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오중만 카페 124
진철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홀 안에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병점이라는 도시가 강남만큼이야 번화스럽지는 않은 곳이지만 레스토랑은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여자가 고개를 조금 숙이며 눈으로 어서오라고 인사를 건넨다.
-어이! 여기야.
들리는 목소리는 정석의 것이었다. 그 곁에는 정석의 부인이 앉아있었고 그 반대편에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는데, 진철이 들어서자 정석의 부인이 그 여자 곁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정석의 옆에 앉으라고 손으로 가리킨다.
진철은 정석의 옆에 앉으면서 곁눈으로 여자를 보았다.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가 눈을 살포시 치켜뜨다가 진철과 눈이 마주친다. 진철은 얼른 눈길을 정석에게 돌리면서,
-오래 기다렸어? 가게는?
-아니, 나도 지금 금방 왔어, 가게야 잠시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놓고 왔지, 아무래도 너 올 때 까지 함께 있다가 인사라도 나누고 나면 나는 가게로 가 봐야지.
그만큼 두 부부가 그를 위해서 마음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한편 고맙기도 했다.
-뭘 그렇게까지, 부인만 계서도 되는데.
-야, 임마! 그래도 이게 어디 만만한 일이냐? 인륜지대사를 논하는 자리인데. 하하하
정석이 기분 좋게 웃는다. 진철 역시 그의 말에 웃음으로 답을 건네자
-저, 인사 나누세요. 이쪽 분은 내가 말했듯이 김진철씨구요, 이쪽은 우나영이예요.
정석 부인의 소개로 그제야 두 사람은 일어서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눈다.
-서로에게 이미 말씀드렸듯이 나영씨는 우리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미용실을 하고 계시지요, 크지는 않지만 직원 둘을 쓰고 있는, 그런대로 잘 되는 미용실이예요, 단골도 많고, 돈도 꽤 모았을걸요.
정석의 부인이 말하는데 나영이라는 여자가 부끄러운지 손으로 정석 부인의 옆구리를 찌른다, 그런 말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처럼.
-저쪽 진철씨는 우리 신랑 친구예요.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지요. 비록 어렵게 성장했지만 그래도 자수성가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은 개인적인 일을 하지만 앞으로 우리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아! 적당하게 해, 어느 정도 말할 거리를 남겨 두어야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거 아냐? 우리는 이제 가야지, 다리를 놓아 줬으면 건너가는 일이야 본인들의 문제이니, 우리는 가자고.
정석이 부인에게 이만하면 되었으니 자신들은 자리를 비켜주자고 말을 하자
-아네요, 식사는 하고 가세요.
나영이라는 여자가 말로 붙들고 있지만 그의 표정에는 두 사람은 이제 비켜 주어도 된다는 표정이 보이고 있었다.
-무슨 식사는, 우리하고는 나중에 식사하기로 하고, 진철이 너 이따 나 좀 보고 가라. 할 말도 있고.
-그래, 이따 들르지.
-여보! 일어나요. 갑시다.
미용실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여자가 곱상하다. 생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와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진철은 이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고민이다. 친구 정석의 마음이 고마워서 나오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마음에 두지 않았던 만남이라서 그런지 입이 열리지를 않는다.
-저, 식사를?
여자가 말없이 앉아있는 진철이 무심하다고 여겼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하지만 진철의 귀에는 무척 사무적이라는 느낌으로 들려온다.
-저는, 별로 생각이 없는데, 그냥 스테이크로 할까요.
-스테이크로 하시겠어요?
여자가 되묻더니 종업원을 불러 스테이크 이인 분을 시킨다.
-수원에 계신다고 들었거든요.
-예, 수원에 있습니다.
-저는 화성이 고향이예요. 정남이라는 곳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그냥 이렇게 화성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시군요.
진철이 별 말을 하지 않자 여자도 먼저 계속 말을 꺼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그 이후로는 두 사람 다 말 없이 무료하게 앉아있었다. 그나마 마침 식사가 나오는 바람에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진철은 식사를 하면서 생각을 한다.
‘그래, 아예 속 시원하게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처음부터 미련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 여자를 위해서도 좋을 거야.’
여자가 식사를 마쳤는지 냅킨을 한 장 집어서 입가를 닦는 것을 보면서 진철이 입을 열었다.
-저, 우선 제 말을 이해하고 들으셨으면 합니다. 제게는 잃어버린 동생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동생의 소식을 알게 될 때까지 결혼이나 여자 친구를 사귈 생각을 하지 않고 있거든요. 오늘도 사실은 나영씨를 만나야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의 입장도 있고 해서 나오기는 했지만 제 마음은 그렇습니다.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진철의 말을 듣더니
-알고 있어요, 슈퍼 언니를 통해서 진철씨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저도 그런 진철씨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 역시 부모님의 걱정도 있고, 제 주변의 친구들도 이제는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가 없을 정도로 다들 가정을 꾸렸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결혼을 급하게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 역시 진철씨를 결혼상대로 만나기보다는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로 만나는 것 까지를 생각하고 나왔답니다.
여자의 말을 들으면서 진철은 이 여자가 자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는 당연히 결혼을 전제로 선을 보러 나온 것이 확실한데 지금 진철에게는 진철의 입장과 자신의 생각이 같다는 의미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셨군요. 나영씨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물론 결혼을 전제하지 않고 서로를 알아가다가 나머지는 그 후에 결정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아직 그 정도의 여유도 없다는 것이지요.
진철은 완강하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레스토랑 앞에서 나영이라는 여자를 보낸 진철은 그 옆의 순댓국집으로 들어가서 술국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왠지 그 여자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정석과 그 부인의 성의를 무시했다는 죄책감이 걸음을 슈퍼 보다는 순댓국집으로 옮기게 했던 것이다.
-시간 있으시면 머리나 자르러 오세요, 혹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지 않으신다면 몰라도, 요새는 남자 분들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많이 자르곤 하시거든요. 부담 같지 마시고요. 지나는 길에 차라도 생각나시면 들르세요. 그 정도는 대접 할 수 있어요.
여자는 진철과 헤어지면서 그렇게 말하곤 돌아서서 걸어가는데 그 모습에서는 선을 본 남자에게서 딱지를 맞은 여자의 느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진철과의 만남을 자연스러운 일상 중 하나처럼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댓글 ㅉㅉㅉㅉ 순진하고 착한 여인의 가슴에 대못을 일찌감치 박아두는 구나~~ 언능 빼 주거라 아프다`````
스쳐 지나가는... ㅋㅋㅋㅋ
자존심이 무지하게 상했을 겁니다,,,뭐 진철이도 잘 난것이 하나도 없구 과분 하련만..작가의 자존심인가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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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문제라기 보다는 진철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 때문이지요.
진우가 마음에있는데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올라구~남자도 절개는 자켜야지~선본 아가씨는 더 좋은 남자 만나면되고~
그러게 말입니다. 누님의 말씀이 일리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