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625]맹호연(孟浩然)-초가을(初秋)
初秋(초추) : 초가을
孟浩然(맹호연)
不覺初秋夜漸長(불각초추야점장)
가을은 길어지는 밤을 따라 다가왔나
淸風習習重凄凉(청풍습습중처량)
살랑살랑 불어오는 맑은 바람 시원해
炎炎暑退茅齋靜(염염서퇴모재정)
찌는 볕 물러가니 초가 그늘 깊어지고
階下叢莎有露光(계하총사유로광)
뜰아래 풀 섶엔 이슬 총총 맺혀있네
☆ 지은이
孟浩然(맹호연 689년 ~ 740년)
맹호연은 이백이나 두보, 왕유와 동시대에 활동한 중국 당나라의 저명한 시인입니다.
이름은 호(浩)이며, 자는 호연(浩然), 호(號)는 녹문거사(鹿門處士)입니다.
중국 양양(襄陽,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사람으로 젊어서 과거에 실패하고,
한때 녹문산(鹿門山)에 숨어 살았답니다.
40세 때 장안(長安)에 나가 시(詩)로써 이름을 날리고, 1
0년 연상의 장구령(張九齡), 10년 연하의 왕유(王維) 등과 비슷한 시풍을 지녀서인지
나이를 넘어 친하게 사귀는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맺었다고 합니다.
그는 격조 높은 시로 산수의 아름다움을 읊어 왕유와 함께
‘산수전원시인(山水田園詩人)’의 대표자로 불립니다.
절친하였던 장구령은 당나라의 재상까지 지낸 고관(高官)이기도 했습니다.
맹호연은 장구령을 통하여 벼슬을 구하고자 「임동정호상장승상(臨洞庭湖上張丞相)」
이라는 시(詩)까지 보내기도 하지만,
죽기 3년 전에 장구령의 막객(幕客, 일종의 고문)을 지낸 것이
공직(?)의 전부라고 합니다. 그것도 1년을 채 채우지 못했다고 하네요.
시(詩)에서 첫 구인 ‘不覺初秋夜漸長(불각초추야점장)’을 직역한다면
‘초가을밤이 차차 길어짐을 깨닫지 못했다’입니다.
하지(夏至)가 지나면 밤이 조금씩 길어지고,
길어지는 만큼 가을이 오고 있는데, 찌는 더위 때문에 가을이 옴을 잊게 되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몸의 끈적임이 없어지고, 서늘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갑자기 가을이 옴을 느낍니다. 그런 느낌을 담아서
저는 ‘가을은 길어지는 밤을 따라 다가왔나/ 살랑살랑 불어오는 맑은 바람 시원해’로
번역하였습니다.
‘茅齋靜(모재정)’에서 ‘茅齋(모재)’는 ‘초가집’입니다. 진짜 초가집일 수도 있고,
아니면 소박한 일상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적 표현일 수도 있겠지요.
‘靜(정)’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확 갔습니다. ‘고요하다’는 글자인데,
어떨 때 초가집이 고요할까요. 사람이 없어서? 저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가을이 시작되면 그늘이 유난히 깊어집니다.
깊어진 그늘을 보면 저는 고요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고요하다’ 대신에 ‘그늘이 깊어진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출처] 봄은 가까운 땅에서 오고 가을은 먼 하늘에서 온다|작성자 moonkok711
☆ 한 자 한 자 살피기
不覺初秋夜漸長 (불)아니다 / (각)깨닫다 / (초)처음 / (추)가을 / (야)밤 / (점)점점 / (장)길다 |
淸風習習重凄凉 (청)맑다/(풍)바람/(습)익히다/(습)익히다/(중)거듭하다 (처)쓸쓸하다 / (량)서늘하다 |
炎炎暑退茅齋靜 (염)불꽃 / (염)불꽃 / (서)덥다 / (퇴)물러가다 / (모)띠/ (재)집 / (정)고요하다 |
階下叢莎有露光 (계)섬돌 / (하)아래 / (총)모이다 / (사)사초 / (유)있다 / (로)이슬 / (광)빛 |
☆ 뜻풀이 살피기
- 不覺(불각) : 깨닫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함, 어느새
- 習習(습습) : 바람이 솔솔 부는 모양
- 重(중) : 보태다, 곁들이다
- 凄凉(처량) : 슬퍼질 만큼 쓸쓸함
- 炎炎(염염) : 이글이글할 정도로 매우 더움
- 茅齋(모재) : 초가집
- 階下(계하) : 섬돌(집채의 앞뒤에 오르내릴 수 있게 놓은 돌층계) 아래
- 莎(사) : 사초(莎草: 바닷가의 모래땅에서 자라는 풀, 잔디, 향부자)
- 叢沙(총사) : 풀덤불. ‘莎’는 ‘향부자香附子’라는 약초를 가리킨다.
-叢=초목이 더부룩하게 난 곳
이하=동아일보 입력 2023-08-31 23:45
초가을 유감[이준식의 한시 한 수]〈228〉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어느새 초가을이라 밤 점차 길어지고,
청풍 산들산들 더더욱 서늘하네.
이글이글 무더위 사라진 고요한 초가,
계단 아래 풀숲엔 반짝이는 이슬방울.
(不覺初秋夜漸長, 清風習習重凄凉.
炎炎暑退茅齋靜, 階下叢莎有露光.)
―‘초가을(초추·初秋)’ 맹호연(孟浩然·689∼740)
오랜 무더위를 씻는 맑은 바람을 즐기며 더러 풀숲에 반짝이는 이슬방울을 찾아냈던
가을밤 정경, 누구나 맛보았을 법한 정겨운 추억이다.
시골 마을에 특별히 고요한 계절이 따로 있을 리 없고
또 달빛 아래 이슬이 가을이라고 유난히 영롱할 것도 없으련만
시인에게는 가을의 맛이 예사롭지 않은 듯하다.
‘어느새 초가을’이라며 짐짓 계절 변화에 둔감한 척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는 가을의 발걸음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밤이 점차 길어지는’ 것조차 알아챌 만큼 섬세하게 관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시는 평생 벼슬을 추구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낙향해버린 시인의 만년작.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 한가로이 마당을 거니는 것인지,
장안의 명사들과 교류했던 화려한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불면의 외로운 밤을 견디는 중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당대 산수전원시파의 조종(祖宗)으로서 왕유(王維)와 함께
‘왕맹’이라 추존되는 맹호연. 서른 후반 뒤늦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낙양 등지를 유람하다 마흔이 다 되어서야 과거를 치렀지만 급제하진 못했다.
더욱이 우연히 당 현종을 배알한 자리에서 시를 읊었는데 하필이면 그중에
‘재주 없어 명군께서 날 버리셨다’는 시구가 담기는 바람에 황제로부터
‘내가 언제 그대를 버렸단 말인가’라는 핀잔을 들으며 그길로 속절없이
낙향해야 했던 시인. ‘황망 중에 보낸 30년 세월,
학문과 무예 둘 다 이룬 게 없구나. …
이젠 그저 술이나 즐길 뿐,
누가 다시 세상의 공명을 논하랴’라며 울분을 삼켜야 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