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부장 (E)지금 일본일들을 강제 수용소에 처넣고 있습니다. 조선
인들 눈에 띄지 않 게 조심하셔야 합니다.
사카키, 결연한 표정이 되어
사카키 (혼잣말)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과 우리 아이... 내 손으
로 지킬거야! 어느 누구도 ... 우리 행복 깰 수 없어!
씬 3. 동, 마당
물질을 하기 위해 도구와 망태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노파. 사카키,
방에서 나오다 노파를 보고는
사카키 저... 어르신...
노파 (보면)
사카키 죄송한 부탁 말씀 좀 하나 드려야겠는데요....
노파 뭐유?
사카키 집사람이 기운을 못차리는 것 같아서요... 예전에 산모한테
잉어가 좋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좀 구해주
실 수 있으시겠어요?
노파 잉어? ... 갑자기 잉어를 어디서 구하나? ... 장에나 나가보
면 있으려나...
사카키 부탁드립니다, 돈은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노파 (한숨) 보아하니 부인은 조선사람 같던데... 알었수, 내 구해
보리다. 먼길 떠날 사람이 그렇게 기운이 못차리면 안돼지.
사카키 고맙습니다, 어르신.
씬 4. 평양기생학교 전경
씬 5. 동, 안방
분임 앞에 앉은 학교사람들.
춘임 이런 법이 어딨어요? 이 학교가 언니 혼자거야? 어떻게 학교
를 그만 두냐, 마느냐하는 중요한 문젤 언니 혼자 결정해?
분임 잘들 들으라이.
식구들 보면
분임 해방되면서 후원자들도 대부분 일본으로 떠났고... 더 이상
학교를 꾸려나갈 수가 없다이, 아무래도 다른 길을 찾아봐야
갔어.
식구들 ... (한숨)
분임 내래 니들을 옆에만 끼고 있을 생각은 없으니끼니 나가고 싶
은 사람은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지 나가라우.
옥심 어무이! 이제 와서 나가라꼬 하시몬 저희가 어델 갑니꺼?
향란 그럼요, 저희 어머니만 놔두고 아무데도 못가요!
국보 저도 향란씨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샅이 죽는 거예요!!
봉수 마음 강하게 잡수세요, 마님! 마님께서 저희들 기둥이신데 흔
들리시면 안돼죠!
춘임 으이그 언니가 다른 복은 없어도 인복 하나는 있나보우.
분임 ... (눈물이 고여 식구들을 바라보는) 기렇게 말해주니 고맙
구나이!!
씬 6. 바닷가 집, 방
사카키, 문을 열고 들어오다 인애, 몸을 돌려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런 인애의 모습을 소리 죽여 보는 사카키. 인애,
아기의 젖을 다 먹이고는 그제야 사카키를 본다.
인애 (부끄러운) 언제부터 거기 계셨어요?
사카키 (다가와 인애의 옆에 앉으며) 한 여자가 어머니가 된다는게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일 줄 미처 몰랐어.
인애 ...
사카키 (인애의 손을 잡으며)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당신 모습 보니
깐... 이제서야 당신, 정말 내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맘이 놓
여.
인애 ... (미소)
사카키 (아이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배 부르게 많이 먹었어
아가야 (하다가) 아차! 아직 우리 공주님 이름을 안지었네?
인애 뭐 생각해 두신거 있으세요?
사카키 글세... 근데 난 말야... 우리 아이가 커서 강같은 사람이 됐
으면 좋겠어.
인애 강요?
사카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흘러가지만 늘 누군가에게 깊은 인상
을 남기는... 수면은 잔잔하지만 심연은 강인해서 바다까지
흘러가는 그런 강말야.
인애 (생각하다) 그럼 우리 아기 이름은 강이라고 짓죠.
사카키 강이...? 그래 강이... 좋은데... (아기를 보며) 강아? 우리
강이 울지도 않고 착하기도 하지.
인애 (흐뭇한)
사카키 나말야...
인애 (보면)
사카키 우리 강이한테 정말 좋은 아빠, 당신한테는 존경받을 수 있는
남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인애 고마워요.
사카키 (인애에게 다가와 아이와 인애를 동시에 안는) 내가 지금 이
순간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 모르지? ... 고마워... 고마워 여
보, 내 옆에 있어줘서...
인애 ... 미안해요 ... 그동안 너무 힘들게 해서 ...
포옹하는 세 식구.
씬 7. 평양기생학교, 건넌방
장군, 방바닥을 기어다니고 옥심, 기저귀를 개고 봉수, 앉은뱅이 책상
에 앉아 공부하는 중이다.
봉수 옥심아!
옥심 와요?
봉수 넌 후회 안하냐?
옥심 뭘예?
봉수 나 만난거 말야. 밥벌이도 제대로 못하고 너 만나서 지금까지
너한테 짐만 되잖냐?
옥심 장군이 아부지 사법고시에 턱 붙어 판검사 돼가 그동안 고생
했던거 다 보상해 주몬 된다 아입니꺼?
봉수 (땅 꺼지게 한숨)
옥심 내 십 년이고 이십년이고 당신 뒷바라지 할테니끼네 아무 걱
정마시고 공부에만 전념하이소고마!
봉수 (자신 없다)
씬 8. 동, 향란의 방
향란과 국보, 음악에 맞춰 왔다리 갔다리 딴쓰를 하고 있다.
국보 정말 당신이랑 스텝 밟아보는거 오랜만이다!
향란 으이그 먹고 살기 힘든데 스텝 밟을 시간이 어디 있었나?
국보 (향란의 손을 만지며) 옛날에는 떡잎처럼 부드럽던 향란씨 손
이 어느새 이렇게 두꺼비 등짝이 됐니?
향란 칫! 이게 다 제1회 변사시험 수석합격자 김국보씨 잘못 만나
서 이렇게 된거지이!
국보 내가 ... 이 국보가 죽일 놈이예요, 향란씨이!
향란 그나저나 학교 문 닫으면 그나마 일자리도 없어지는데 당장
어쩔 셈이예요?
국보 (할 말 없는)
향란 무슨 대책을 세워야될 거 아녜요, 대책을?
국보 난 그저 영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예술인으로서 초야에 묻혀서
후학들을 양성
하는데
향란 (꽥) 당신 마누란 독한 빠마약에 손이 남아나질 않는데 뭐 초
야가 어떻고 후학이 어째? (노려보다 국보를 꼬집기 시작한
다)
국보 무섭게 왜 이러니 향란아~!
향란 암튼 이 인간은 딴스할때나 쓸모있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
다니깐!
씬 9. 바닷가 전경
씬 10. 바닷가 집, 마당
노파는 마당 구석에 큰 솥을 걸고 잉어를 열심히 고는 중이고 사카키,
윗도리를 벗고 장작을 패는데 생각만큼 잘 쪼개지지가 않는다.
노파 눈치를 보니 험한 일 한 번 해본 적 없나보네.
사카키 (민장한) 예? ...예
노파 부인만 만삭이 아니었어도 우리 집에 들이지도 않았어. 내 왜
놈이라면 이가 갈리는 사람이라구.
사카키 (얼굴 벌개지는)
노파 멀쩡한 남의 나라에 쳐들어와서는 35년이나 주인행세를 하더
니... 죄없는 사람들 전쟁터에 다 끌어가 씨를 말리고....
사카키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노파 그나저나 언제 떠날거유?
사카키 ... 글쎄요... 오늘 밤엔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노파 서둘러요, 집에다 일인 숨겨준거 알면 나도 곤란해지니깐.
(부엌으로 들어가면)
사카키, 한숨을 내쉬며 서있다 장작을 다시 패기 시작한다.
씬 11. 동, 일각
사카키와 노파가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형사부장.
부장 (눈을 빛내며) 오늘 밤이라...!
씬 12. 바닷가 집, 방
아기에게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있는 인애.사카키, 약사발을 가지고 들
어온다.
인애 뭐예요, 그게?
사카키 산모한테는 잉어가 좋다고 하길래... 내 어르신께 부탁을 했
어.
인애 (눈물이 핑 도는)
사카키 (약사발을 인애에게 건네며) 식기 전에 마셔요.
인애 고마워요 (마시는데)
사카키 (어두운) 당신한텐 무리인 줄 알지만...
인애 (보면)
사카키 오늘 밤엔 떠나야 귀국선을 탈 수 있을 것 같은데말야... 갈
수 있겠어?
인애 (역시 어두워지며) ... 네...
사카키 (마음 아픈)
인애 (아기를 보고) 언제쯤 다시 조선에 올 수 있을까요? 우리 강
이가 걸을 수 있게 될 쯤이면 ...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사카키 (인애의 어깨를 보듬고) 그럼 ... 꼭 그렇게 돼야지.
씬 13. 평양기생학교 대문 앞
봉수와 국보, 현판을 끙끙대며 떼낸다.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
는 분임, 춘임, 옥심, 향란. 봉수와 국보, 현판을 떼면 분임, 현판을
아프게 손으로 쓸어본다.
씬 14. 바닷가 집, 방
(늦은 오후)
사카키, 장롱 속에 숨겨 두었던 가방을 꺼내 금괴를 확인하고는 가방
을 덮는다. 그 옆에서 인애, 한숨을 폭 내쉬며 아기의 짐을 싸고 있
다.
인애 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바다 한 번 보고 싶은데...
사카키 (보면)
인애 지금 떠나면 언제올지 기약도 없는데... 우리 강이한테도 조
선의 바다 냄새를 맡게해 주고 싶어요.
사카키 (망설이면)
인애 잠깐만 나갔다 올께요.
씬 15. 동, 마당(늦은 오후)
인애, 강보에 아기를 싸서 나온다. 사카키, 인애를 걱정스럽게 뒤따라
나오며,
사카키 아무래도 안되겠어. 당신과 강이만 보내는게 영 마음이 안놓
여.
인애 다른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쩔려구요? 강이랑 저만 얼른 갔다올
께요.
사카키 당신 몸도 안 좋은데 바닷바람 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
쩌나? (사정조로) 내 멀리서 지켜만 볼테니까 같이 가자구.
인애 (픽 웃고) 그래요, 그럼.
사카키, 신발을 신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쏜살같이 방으로
들어간다. 의아해하는 인애. 사카키, 금새 방안에서 금괴 가방을 들고
나온다.
사카키 빈 집에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씬 16. 동, 일각 (늦은 오후)
형사부장, 사카키 손에 든 가방을 주시하다 인애와 사카키가 대문 쪽
으로 오자 빠르게 몸을 숨긴다.
씬 17. 동, 마당 (늦은 오후)
인애와 사카키, 대문을 나서려는 찰나.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하는 아
기.
인애 (멈춰서서 아이를 얼르며) 얘가 왜 이러지?
사카키 배가 고픈 모양인데...
인애 (쑥스러운지 사카키를 피해 돌아앉아 젖을 먹이려고 하면)
사카키 (빙그레 웃으며) 나 먼저 나가있을테니깐 천천히 와요. (대문
을 열고 나간다)
인애 우리도 빨리 맘마 먹고 아빠 따라 나가자! (젖을 물리는)
씬 18. 바닷가 (늦은 오후)
바다를 바라다보는 사카키.
씬 19. 동, 일각 (늦은 오후)
사카키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
씬 20. 바닷가 (늦은 오후)
사카키, 바다를 보고 있다가 순간 어떤 느낌으로 재빨리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닷가를 쭉 훑어보는 사카키. 하지만 사람
은 보이지 않는다. 사카키, 경계를 풀고 다시 바다로 시선을 돌린다.
씬 21. 바닷가 집, 방
(늦은 오후)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인애. 아기, 계속 울어댄다.
인애 (아이 이마에 손을 대보며) 어디 아픈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네... 강이야? 왜 그래? 어디가 아픈거야? (강이의 볼
에 자신의 볼을 비벼보는)
씬 22. 바닷가 (늦은 오후)
사카키, 금괴가 들은 가방을 한 손에 들고 회한 어린 시선으로 바다를
보고 있는데 사카키 머리에 총구가 겨누어 진다.
형사부장 (E)움직이지마!
사카키, 고개는 움직이지 않은 채 눈을 돌려 보면 형사부장이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다. 얼어붙는 사카키.
씬 23. 동, 바닷가 길
(늦은 오후)
인애, 강이를 품에 안고 걸어온다.
인애 아버지 어디 계신가 찾아보자. (바닷가 쪽으로 걸어가는)
씬24. 바닷가 (늦은 오후)
형사부장의 총부리, 사카키의 이마를 향해있다.
사카키 도대체 왜 이러는건가?
형사부장 금괴 이리 내!
사카키 당신 이러면 안돼! ... 이러는거 아냐!!
형사부장 금괴만 내놓으면 헤치진 않겠어!
사카키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가면 내 오늘 일은 문제 삼지 않겠어.
형사부장 (다급한)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당장 가방 이래 내!
사카키 (노여움으로 형사부장을 보는)
형사부장 (지지 않고) 목숨보다 돈이 소중하다 이건가?
사카키, 천천히 가방을 형사부장에게 넘기고 형사부장도 가방 손잡이
를 잡는 순간, 사카키의 시야로 인애가 아이를 안고 자신에게 다가오
는 모습이 보인다. 하얗게 질리는 사카키. 형사부장 사카키의 시선
따라가서 인애를 보고 당황한다. 아직까지도 팽팽하게 한 개의 가방
손잡이를 반반씩 잡고 있는 두 사람. 인애, 사카키와 형사부장을 보고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다. 사카키와 인애 사이에서 둘을 번갈아 바라
보는 형사부장. 순간 깊은 정적. 그러다 그 짧은 정적을 깨고 강이의
자리러지는 울음소리. 사카키, 빠르게 가방에서 손을 떼며 인애에게
소리친다.
사카키 (가파른) 돌아가! 돌아가라구!!
인애, 이제야 모든 상황 파악이 되어 경악한다. 형사부장, 당황한 나
머지 총부리를 인애와 사카키에게 번갈아 겨눈다. 사카키, 재빠르게
형사부장이 손에 있는 총을 걷어낸다. 형사부장, 여전히 가방을 든 채
로 총을 집으려고 다가가고, 사카키 역시 몸을 날려 총을 집으려고
한다. 총을 동시에 집는 두 사람. 목숨을 건 싸움. 그러다 어느 순간
단발의 총성이 바닷가를 가득 메운다. 두 엉켜 있는 두 사람. 사카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곧이어 형사부장이 피가 잔뜩 묻은 자신의 손
과 총을 보더니 총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뒷걸음질로 도망치는 형사
부장. 인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다. 그러다 한발 한발 조심
스럽게 사카키에게 향하는 인애. 사카키,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고 있
는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려 하다가 앞으로 푹 고꾸라진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미친 듯이 달려오는 인애. 그런 인애를 애절하게 바라
보는 사카키의 힘없는 눈동자.
씬25. 비젼
11회 씬14. - 깨진 미안수병을 줍는 인애에게 다가와 돈을 내밀던 사
카키.
14회 씬1. - 학습장에서 인애를 평양호텔 모델로 쓰겠다고 말하는 사
카키.
22회 씬34. - 태서관에서 술 취해 인사하는 인애를 받아주던 사카키.
30회 씬2. - 인애에게 비단으로 표지를 만든 학습장을 받는 사카키.
34회 씬36. - 창립만찬에서 인애에게 강제로 키스하던 사카키.
50회 씬1 - 사찰에서 잠든 인애의 얼굴을 조심스레 만지다 인애의 입
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보는 사카키.
56회 씬1. - 인애를 확 잡아끌어 안으며 선전포고를 하는 사카키.
72회 씬32. - 결혼식날, 턱시도우를 입은 사카키가 인애에게 손을 내
미는 장면.
73회 씬17. - 양복호주머니에서 어머니의 유품인 머리꽂이를 꺼내 인
애의 머리에 꽂아주는 사카키.
74회 씬29. - 뒷춤에 꽃을 숨기고 들어와 인애에게 꽃을 주며 부끄러
워 하는 모습.
79회 씬29. - 아기 침대를 만들어 인애에게 보여주는 사카키.
81회 씬15. - 아기를 낳고 누워 있는 인애와 강보에 싸인 아기를 눈물
이 핑 도는 눈으로 바라보는 사카키.
81회 씬26 - 시장에서 아기에게 줄 꽃신을 사던 사카키.
씬26. 바닷가 (늦은 오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사카키. 사카키를 나오려는 눈물을 겨우
참고 사카키를 응시하는 인애.
사카키 (힘겹게 손을 들어 인애의 손을 잡고 인애 곁의 강이를 일견
한다) .........
사카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인애를 향해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조금
씩 눈이 감긴다. 넋이 나간 인애. 심하게 떨리는 손으로 사카키의 얼
굴을 만진다. 그리곤 자신의 얼굴을 사카키의 얼굴에 마주 대고 부빈
다. (아주 느리게, 그리고 눈물이나 울음은 보이지 않게...)
마치 편안 잠을 자고 있는 듯 보이는 사카키의 얼굴.
캄캄한 밤.
멍하니 초점 없는 눈빛으로 그대로 앉아있는 인애. 목이 터져라 울어
대는 강이. 인애, 사카키의 주검을 맥을 놓고 바라보다 사카키의 주검
앞으로 스르르 쓰러진다. 그 모습 길게 ...
D I S.
씬27. 바닷가 집 전경
씬28. 동, 방 안
인애, 의식을 잃고 누워있고 노파, 옆에서 간호해주고 있다. 인애, 힘
겹게 눈을 뜨면 노파의 모습이 들어온다.
노파 이제야 정신이 좀 들우?
인애 (사방을 둘러보면)
노파 (사카키의 금 간 안경을 건네주며) 애아버지거지? 애엄마 손
에 꼭 쥐어있습디다.
안경을 받아든 인애, 손으로 애틋하게 만져보다가 꺽꺽 짐승같은 울음
소리를 토해내다 절규한다.
씬29. 몽타주
O. 어둠 속 - 고양이처럼 바닷가집 툇마루에 웅크리고 앉은 인애.
O. 밤바다에 나와 소리를 지르며 절규하는 인애.
O. 벽에 기대앉은 인애, 아무 것도 모르고 누워있는 강이를 힘없이
바라보다 가슴에 안고 눈물을 흘린다.
씬30. 동이 트는 바닷가
인서트
씬31. 바닷가 (새벽)
동이 트는 바닷가에 아기를 안고 서있는 인애. 인애의 얼굴에 서서히
태양빛이 스며든다. 입을 앙 다물고 뭔가를 결심한 듯한 인애의 얼굴
에서 ...
해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인애는 다시 태어납니다. 나약하기만
했던 한 여자에서 강한 이 땅의 어머니로, 새로운 운명을 개
척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끝.
매 화 연 가 제 83 회.
씬1. 시골장
떠들썩한 시골장의 모습들 위로
(E) 탁탁 나무 도마에 생선 자르는 소리.
인애 (E)(활기차게) 그럼요 오늘 아침에 펄펄 잡아뛰는 놈 떼온거
예요. 저희 생선 물 좋은거야 잘 아시잖아요.
잠시 후, 나무도마에 고등어를 자르고 잰솜씨로 소금을 뿌려 종이에
싸서 손님에게 건네는 인애의 모습이 보인다. 신산스러워웠던 세월을
견딘 인애, 짧은 머리에 간편한 바지차림의 모습이 다부져보인다.
인애 고등어 두 손입니다. (돈을 건네 받으며) 예... 고맙습니다
(인사) 다음에 또 오세요.
인애, 돈을 세서 전대 주머니에 넣는다. 이마에 난 땀을 닦고는 다시
일하기 시작한다.
씬2. 동, 일각
장사를 끝마치고 장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사는 인애. 손에 들려있는
망태기 속에푸성귀와 과일이 들어있다. 인애, 집으로 향하다 걸음을
멈추고는 가게방(잡화점)으로 들어간다.
씬3. 동, 가게 안
인애, “저 왔어요” 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주인 벌써 떨이한거야?
인애 예 ... 오늘은 좀 일찍 끝냈어요.
주인 암튼 장사 수완 하나는 끝내준다니깐.
인애 (미소 짓고는) 소주랑 담배 좀 주세요.
씬4. 산소 (해질 무럽)
노을이 지고 있다. 인애, 사카키가 잠든 산소에 올라온다.
인애 (소주를 무덤가에 부으며) 미안해요 ... 요즘 너무 뜸했죠?
인애,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성냥불을 붙여 한모금 빤다. 콜록콜
록 기침. 담배에 불이 붙으면 무덤가에 놓는다.
인애 당신 좋아하는 담배예요, 오랜 만에 한 대 태워보세요.
인애, 무덤가에 난 잡초를 뽑고는 무덤에 몸을 기댄다.
인애 당신 옆이니깐 ... 나도 한 잔만 할께요. (소주를 한 잔 마신
다)
인애, 눈가 젖어들고 ... 흐린 눈으로 한참 동안 멍하니 하늘을 응시
한다.
인애 장에서 곧장 오느라 혼자 왔네! 당신 강이 많이 보고 싶을텐
데... 담엔 꼭 같이 올께요... (눈물 참으며) 요즘 부쩍 강이
가 아버지 얘길 해달라고 얼마나 조르는 줄 아세요? 당신 닮
아서 고집이 정말 보통이 아니라구요. (눈물 후두둑 떨어진
다) ...... 미워죽겠어, 정말! ... 어쩜 날 이렇게 남겨놓고
떠날 수가 있어요? (산소에 엎드려 우는)
저녁 어스름. 멍하니 앉아있는 인애.
인애 미안해요... 오랜만에 와서 약한 모습만 보여서 ... 너무 걱
정하지 마세요, 내려가서는 씩씩하게 살테니깐... (일어나며)
저 가요... 힘들면 ... 정 힘들면 당신한테 푸념하러 또 올게
요...
짐보따리를 들고 내려가는 인애, 몇 발자국 옮기다 뒤돌아보고 다시
내려가는...
씬5. 바닷가 집, 마당 (저녁)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애.
인애 다녀왔습니다.
안방 댓돌 아래 사카키가 강이를 위해 사주었던 꽃신이 놓여있다. 안
방 문 열리면서 앙징맞고 조그마한 발, 꽃신 속으로 쏘옥 들어간다.
카메라, 쭉 빠지면 강이가 환하게 웃으며 “엄마아~!” 부르며 뛰어나
와 인애의 품에 안긴다.
인애 (강이를 안으며) 잘 놀았어? ... 할머니 말씀 잘 듣고?
강이 응.
노파 (부엌에서 쌀을 가지고 나오며) 잘 놀긴? 엄마한테 가자고 하
루종일 칭얼대서 죽을 뻔 했는데...
인애 (강이의 볼을 꼬집으며) 너 또 할머니 귀찮게 해드렸구나?
강이 할머닌 나 미워해! 맨날 혼만 내켜!
노파 저... 저 여우같은 에미나이 보게나. 지 에미 없을땐 나한테
착 달라붙더니만 에미 오니깐 난 아주 찬밥일세.
인애 (웃으며) 그냥 두세요, 제가 할께요.
노파 하루종일 땡볕 아래서 고생했는데... 방에서 좀 허리 좀 펴고
나와.
인애 아녜요. (쌀그릇 빼앗으려고 하면)
노파 나 아직 송장 아냐, 밥은 내 손으로 끓여먹을 기운은 있다구!
(인애를 방으로 들이밀며) 어여 들어가지 않구 뭐해?
하는 수 없이 강이와 방으로 들어가는 인애.
씬6. 동, 안방 (저녁)
인애, 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강이, 그림을 그리느라 방 안 가득 어
질러놨다.
인애 방이 이게 뭐야? 엄마가 어질르지 말랬잖아. (하는데)
방 한 가운데에 시열과 인애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놓여있다.
인애 (깜짝 놀라 집어들며) 너 이거 어디서 났어?
강이 엄마 가방에서 ...
인애 엄마 허락도 없이 누가 이런거 맘대로 꺼내랬어?
강이 ...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우리 아빠 아닌데... 우리 아빤
안경 썼는데... 이 아저씨 누구야 엄마?
인애 음... 누구냐 하면 ... 누구나 하면... (말 끝을 맺지 못하
는데)
노파 (E)강이야! 나와서 손 닦아야 밥 먹지.
강이 예. (팔짝 뛰어나가면)
인애, 시열과 자신이 찍은 사진을 주워들고는 한참동안 한스러운 눈길
로 바라본다.
씬7. 동, 전경 (밤)
씬8. 동, 마당 (밤)
모깃불이 펴있고 평상에서 인애와 노파, 그물코를 꿰고 있다.
노파 아무래도 심상치않어!
인애 (보면)
노파 물질하러 바다에 나갔더니 곧 전쟁이 터질거라고 쑥덕거리더
라구.
인애 (놀라서) 전쟁요?
노파 그래, 왜놈들이 일본으로 쫓겨? 평난되었다고 좋아한지가 엊
그제 같은데... 또 난리라니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정
말!
인애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남쪽으로 내려가야하는거 아닐까요?
노파 나야 내일모레 송장 치를 사람인데... 빨갱이고 뭐고간에 고
향에서 죽어야지. 강이엄마나 피난갈 준빌 하라구.
인애 할머닐 여기에 혼자 놔두고 어떻게 저 혼자 갈 수 있겠어요?
노파 그동안 팔자에도 없는 손녀 재롱도 보고... 좋았지... 나야
지금 떠나면 길바닥에서 죽기 딱 십상이니깐... 강이 엄마나
떠날 채빌 서두르라구.
인애 (한숨)
노파 같은 핏줄끼리 좌익이 뭐고 우익이 다 뭔지...
(E) 공습경보.
인애 (깜짝 놀라) 왜 이러죠 또?
노파 (고개를 내저으며)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어!
(E) 공습경보에 놀라 자리러지게 우는 강이.
노파 강이 깼나보네!
방으로 뛰어들어가는 인애.
씬9. 동, 안방 (밤)
뛰어들어오는 인애.
강이 (눈을 비비며) 엄마!
인애 (강이를 안으며) 괜찮아... 괜찮아 엄마 여?어!
강이, 훌쩍거리며 울면
인애 엄마랑 노래 부를까?
강이 (고개를 끄덕이면)
인애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인애와 강이, 함께 노래를 부른다. 그 위로
씬10. 인서트
a. 6.25 전쟁 발발
b.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행렬.
c. 휴정협정 조인식의 자료화면 ... 등등
해설 인애모녀에게만 유독 잔인하게 손톱을 세웠던 세상은 또 한
번 전쟁의 모진 소용돌이 속에 인애모녀를 내던집니다. 그리
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한 세월은 쉬지않고 강물처럼 흘러
갑니다.
F. O
F. I
씬11. 서울 시장통
냉차 리어커가 한 켠에 놓여있고 사람들 웅성웅성 둘러 모여있다.
향란 (E)(고래고래) 뭐 삼팔따라지? 이게 진짜! 너 말 다했어?
여1 (E)다 했으면?
옥심 (E)기래, 우리 삼팔선 너머 피난왔다. 우리 피난올 때 가스나
니들이 뭐 보태준거 있나, 어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면 향란과 옥심, 팔을 걷어부치고 삿대질을 하
며 여자1,2와 싸우는 중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두 여자, 예전의 풋
풋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파마머리에 생활에 절고 절은 모습이다.
향란 (표독스럽게) 온갖 사람들이 다 지나 다니는 시장통에 니 구
역 내 구역이 어딨어? 니들이 대한민국 땅 샀냐? 서울땅 통째
샀어?
여1 이거 완전 저질이구만!
옥심 뭐라카노? 저어질? ... 우리가 냉차 리어커나 끈다고 이것들
이 사람 알기를 뭘로 아노, 어이? 우리가 누군줄이나 알고 주
둥일 놀리나, 시방?
여1,2 ?
향란 야 차옥심! (말하지 말라고 옆구리를 찌르는데)
옥심 (득의의 웃음) 우리로 말하자몬 평양기생학교 제 7회 졸업생
이시다, 알겠노, 어이?
여2 어쩐지 ... 냉찰 팔면서도 눈웃음을 살살 치며 꼬릴 친다했더
니만 기생출신이었구만~ 화류계 출신이 어디 가겠어?
향란 뭐... 이것들이 찢어진 입이라고 놀리면 단줄 아나? (여2의
머리끄덩이를 잡는데)
여1, 향란의 머리를 잡고 옥심, 두 손 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 여1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늘어진다. 뜯고 물고... 삽시간에 엉망진창이 되는
시장통 안. 이때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봉수와 아이스께끼통을
어깨에 맨 국보, 여자들 틈에 끼어들어 갈라놓는다.
국보 스또뿌! 스또뿌!!
봉수 못살어, 동네 창피해서 내가 못살어!!
봉수와 국보, 간신히 여자들에게서 옥심과 향란을 떼놓는다. 머리가
산발이 돼서 서로 노려보는 여자1,2와 옥심, 향란.
국보 (속 터지는) 정말 왜 이러니 향란씨이? (향란의 옷을 ㅌ어주
며)
향란 (손을 ㅌ며) 내가 뭘? ... 이것들이 먼저 건드렸다니깐.
봉수 (옥심을 향해 꽥) 빨리 따라와! (먼저 걸어가면)
옥심 (아까의 기세와는 달리) 예... (여자1,2에게 주먹을 들어보이
고는 봉수의 뒤를 순한 양처럼 따라가는)
씬12. 동, 풀빵 드럼통 앞
풀빵을 파는 봉수의 드럼통 놓여있고 허리에 큰 전대를 두른 춘임, 나
무의자에 앉아 있다. 짙은 화장에 특이하게 빨간바지를 입은 춘임, 기
생학교 때와는 달리 꽤나 세련된 모습이다. 행인, 지나가면 춘임, 잽
싸게 뛰어간다.
춘임 (뛰어가 얼굴을 들이대며) 아가씨 딸라 있어? 내가 잘 쳐줄
게.
여 뭐야? (춘임을 흘겨보고는 종종걸음으로 뛰어간다)
춘임 (전대에서 돈을 꺼내 침을 퉤 뱉어 세어보다) 오늘은 어째 이
렇게 매상이 안오르냐 그래? (하는데)
맞은편에서 머리가 산발이 된 옥심과 향란 걸어오고 봉수와 국보, 냉
차 리어커를 끌고 뒤따라 온다.
춘임 암튼 쌈닭이 따로 없다니깐! (옥심과 향란을 보며) 니들은 허
구헌날 쌈질이냐? 시장사람들한테 호가 났어!
향란 우린 잘못 없어요, 그 년들이 먼저 건드렸다니깐요.
국보 이젠 말끝마다 육두문자라니깐! 향란씨, 교양과 품위를 좀 생
각해서
향란 (OL) 교양이, 품위가 밥 먹여줘?
옥심 하모!
봉수 (꽥) 얘가 뭘 잘했다고!
옥심 (입을 다무는데)
춘임 언니가 점심 차려놨다구 손님들 들이닥치기 전에 와서 먹으
래.
향란 (옥심에게) 가자! 먹어야 힘내서 쌈하지.
옥심 오야. (사이 좋게 향란과 걸어가면)
춘임 옥심이야 원래 그렇다치고... 향란인 애가 왜 저렇게 점점 독
하게 변하냐 그래?
국보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 남편 잘못 만나서 그렇죠 뭐. (속상
한데)
지나가던 행인, 국보에게 다가와
행인 께끼 하나만 주세요.
국보 아~ 예 (통에서 아이스께끼를 하나 꺼내주며 목소리 깔고) 맛
있게 드십쇼!
행인, 국보에게 돈을 주고 ?면
국보 (목소리 깔고) 아이스께끼! ... 아이스께끼!!
봉수 (춘임에게) 풀빵은 사러 온 사람 좀 있었어요?
춘임 파리 한 마리도 얼씬 안했어!
봉수 (한숨)
씬13. 동, 국밥집
향란과 옥심, 문을 열고 들어온다. 기생학교 시절의 호사스러운 한복
을 벗어던지고 간편한 차림을 한 분임, 주방에서 국밥을 말아가지고
나온다.
분임 니들 또 쌈박질 했네?
옥심 니북여자들 그중에서도 평양여자들이 얼마나 맵고 짠지 알려
주고 오는 길입 니더.
분임 왠만큼들 하라우. 돈도 좋지만 그카다 인심 잃어서 손님들이
오갔네?
국밥을 먹는 옥심과 향란.
분임 (한숨)
향란 왜요, 어머니? 무슨 걱정있으세요?
분임 (의자에 앉으며) 기냥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다이.
옥심,향란 ...
분임 우리 아이들은 다들 어드렇게 피난을 무사히 나왔는지... 또
학교는 어드렇게 됐는지...
향란 어머니도 참... 남의 손에 넘어간지가 언젠데... 여태 학교
생각을 하세요?
분임 (한숨) 아이들이 보고 싶구나이, 다들 어데서 뭘 하고 있는
지...
옥심 어무이!
분임 (보면)
옥심 인앤 지금쯤 일본에서 잘 살고 있겠지예?
향란 그렇겠지. 사카키 사장이 여왕처럼 받들고 살겠지 뭐. 나쁜
기지배... 어쩜 연락 한 자락 없냐? 우리는 그렇다치고 어머
니가 저한테 오죽 끔찍하셨냐?
분임 쓸데없이... 잘 살면 된거이야, 연락은 무신... (못내 서운해
손가락에 한짝 남은 가락지를 보는)
씬14. 서울역
커다란 짐가방을 들고 어깨에는 핸드백을 맨 인애, 강이의 손을 잡고
역에서 나온다. 두려운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는 인애.
강이 (등 뒤에서) 엄마... 나 배고파!
인애 어 그래...
인애, 강이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로 발길을 돌린다.
씬15. 시장통
강이를 손에 잡고 걸어오는 인애. 둘러보다 가락국수집 안으로 들어간
다.
씬16. 동, 가락국수집 안
강이와 마주앉은 인애. 주인, 가락국수 한 그릇을 말아가지고 탁자 위
에 놓는다.
주인 자, 가락국수 나왔습니다.
인애 아주머니...
주인 (보면)
인애 저 혹시... 여기 어디 일할 사람 구하는데 좀 없을까요?
주인 글쎄요 ... 요즘 같은 때야 워낙 일자리가 귀해놔서...
인애 ... 예... 알겠습니다.
강이 엄마, 나 배고파!
인애 어, 그래! 자 먹자. (강이에게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가락국
수를 먹여준다)
강이 엄마도 먹어.
인애 (미소) 알았어, 강이 많이 먹는거 보고 엄마도 먹을게.
인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강이에게 가락국수를 먹인다. 인애, 지갑
을 꺼내 보면 동전 몇 개만 들어있다. 포옥 한숨을 내짓는 인애.
이때 거칠게 문 열리면서 기웅 들어온다. 소리내어 껌을 ㅆ으며 헐렁
한 남방에 청바지, 군화까지... 껄렁대는 폼이 영락없는 양아치다.
기웅 어이 김사장 오랜만이야?
주인 왔어.
기웅 (금붙이랑 시계들이 들은 보자기를 툭 던지며) 얼마나 되나
값 좀 쳐보슈?
주인 먼저 오신 분부터 봐드리고.
기웅 그러던가. (소파에 벌렁 앉다 맞은 편에 앉은 강이를 보고는
장난스럽게 윙크를 한다)
강이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면)
기웅 너 누구랑 왔니?
강이 ... 엄마랑요...
기웅 (주인과 뭐라 말하고 있는 인애를 보며) 저 사람이 니 엄마
냐?
강이 (고개를 끄덕이면)
기웅 (씨익 웃고는) 아저씨가 껌줄까?
강이 꺼엄?
기웅 껌 몰라? (풍선을 불어 보이며)
강이 (멀뚱히 보다 손으로 풍선을 터뜨리려고하면)
기웅 (얼른 입 안에다 껌을 넣고는 청바지 뒷춤에서 껌을 꺼내 포
장을 풀어 강이에게 입에 넣어주면) 삼키면 안돼!
주인, 보자기를 끌러보면 시계와 반지들이 가득이다. 깜짝 놀라 기웅
을 바라보는 인애. 꼼꼼히 살펴보는 주인.
주인 김사장 또 속았어.
기웅 (보면)
주인 (금가락지 두 개를 꺼내 보이며) 이거만 빼고 나머진 다 가짜
야.
기웅 에이썅! (머리를 긁적거리며) 미치겠네, 정말!
주인 (실실 웃음) 번번히 속으면서 왜 그래? (인애를 보며) 내 인
수증 써줄테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E) 강이, 컥컥대며 기침을 한다.
인애 (깜짝 놀라 다가가) 왜 그래 강이야? (등을 두드려주면)
강이 ... (기웅을 가리키며) 이 아저씨가 준 거 삼켰어.
인애 (깜짝 놀라 기웅을 보면)
기웅 (머리를 긁적거리고 인애의 눈치를 보며) 아저씨가 삼키지 말
랬잖아! 걱정마세요, 껌을 삼켰나봐요... (강이에게) 나중에
응아하면 다 나오니깐 울지마!
인애 (물을 떠가지고 와서 강이에게 먹이고는) 괜찮아?
강이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 (내실에서 나오며 돈을 건네준다)
인애 (세어보고는) 이것 밖에 안되나요?
주인 많이 쳐드린거예요.
기웅 (인애를 바라보는)
인애 (한숨 짓고 망설이다 핸드백에서 사카키가 줬던 머리꽂이를
꺼낸다) 그럼 이건...
주인 (바라보다) 이건 값이 조금 나가겠는데요...
인애 제가 지금은 돈이 급해서 맡기지만... 며칠내로 꼭 찾으러 올
거니까 다른 사람한테 파시면 안돼요... 아셨죠?
주인 알았어요.
기웅, 머리꽂이를 유심히 바라본다.
씬19. 동, 밖
강이의 손을 잡고 2층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오는 인애.
씬20. 동, 안
씬18에 이어.
기웅 아까 그거 나한테 파슈.
주인 뭐?
기웅 방금 전에 애엄마가 맡긴 머리꽂이말야...
주인 며칠 있다 찾으러 온다잖아.
기웅 보아하니 땡전 한 푼도 없는 모양이던데... 무슨 재주로? ...
나한테 넘겨요, 엉?
주인 ...
씬21. 거리
강이의 손을 잡고 걷는 인애. 강이, 거리에서 풍선을 파는 사람을 보
고는
강이 저거 사줘, 엄마!
인애 풍... 선?
강이 (고개를 끄덕이면)
인애 그래. (풍선을 파는 좌판 앞으로 다가가는)
씬22. 달리는 기웅의
오토바이
속력을 내서 달리는 기웅의 오토바이. 오토바이 거울로 빨간 풍선을
손에 든 강이와 걸어가는 인애의 모습이 잡힌다. 기웅, 두 모녀를 보
다가 시선을 거두고 속력을 내서 달린다.
씬23. 비어홀,
샌프란시스코 앞
Sanfrancisco라고 멋드러지게 갈겨쓴 간판에 반짝이 전구들로 화려하
게 장식이 되었다. 기웅의 오토바이 다가와 멈춰선다. 안에서 뛰어나
오는 똘마니.
똘마니 다녀오셨어요, 사장님?
기웅 (똘마니의 머리를 때리며) 어휴 이 자식!
똘마니 왜 그러세요, 사장님?
기웅 야 이 자식아! 눈은 뒀다 뭐할래? 술값대신 손님들이 맡긴 금
붙이랑 시계들 다 가짜라잖어! (꿀밤을 주고는 안으로 들어간
다)
씬24. 동, 안
아담한 홀 안. 앞 쪽에는 빠가 차려져있고 팝송이 흘러나온다. 서양식
으로 모던하게 인테리어로 꾸며진 실내. 기웅, 들어온다.
기웅 손님은 좀 들었냐?
종업원 며칠 계속 파리만 날리는데요?
기웅 (재미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 되는 일이 없구만! 야 시원
한 맥주 한 잔만 가져와라.
종업원 예.(주방으로 들어가면)
기웅, 담배를 꺼내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다가 전당포에서 가져온 머리
꽂이를꺼내 바라본다. 머리꽂이를 유심히 돌려가며 바라보는 기웅.
씬25. 거리
강이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인애. 강이와 인애, 걸어가는데 맞은 편에
서 빈 술통을 뒤에 가득 실은 용녀의 리어커가 온다. 이때 강이, 손에
들고있던 풍선을 손에서 놓친다. 강이, 풍선을 잡으러 리어커 앞으로
뛰어들고 용녀, 강이를 피하려다 리어커 뒤에 실었던 술통들 땅바닥으
로 와르르 쓰러진지고 강이, 넘어진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강이.
“강이야!” 하얗게 질려 뛰어가 강이를 안는 인애.그런 인애를 깜짝
놀라 바라보는 용녀.
강이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인애. 강이와 인애, 걸어가는데 맞은 편에
서 빈 술통을 뒤에 가득 실은 용녀의 리어커가 온다. 이때 강이, 손
에 들고있던 풍선을 손에서 놓친다. 강이, 풍선을 잡으러 리어커 앞으
로 뛰어들고 용녀, 강이를 피하려다 리어커 뒤에 실었던 술통들 땅바
닥으로 와르르 쓰러진지고 강이, 넘어진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강
이.“강이야!” 하얗게 질려 뛰어가 강이를 안는 인애. 그런 인애를
깜짝 놀라 바라보는 용녀.
용녀 (인애를 보고는 깜짝 놀라) 너 ... 인애 아니냐?
인애 ... 사... 사장님!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는 용녀와 인애.
용녀 맞지 ... 인애? ... 평양기생학교에 다니던...?
인애 예 ... (별로 반갑지 않은) 안녕하셨어요? (하는데)
강이 (안기며) 엄마아~!
인애 (강이를 안으며) 그러니깐 엄마가 조심하랬잖어. 걸을 수 있
겠어?
강이 (고개를 끄덕이면)
용녀 (강이의 볼을 만져주며) 이쁘게 생겼네! 근데 서울에는 니가
왠일이냐? 소문에는 사카키사장이랑 결혼해서 일본으로 건너
갔다고 들었는데...
인애 ...
용녀 여기서 살러 온건 아닐테고... 잠깐 다니러 건너온거니?
인애 ...... 사정이 좀 있어서요... 근데 사장님은?
용녀 너도 알다시피 그 아편 사건 이후로 태서관이 아편굴이라는
소문이 쫙 깔려서 파리만 날리지 않았니?
인애 ...
용녀 그래서 다 처분하고 경성에 올라왔지. 저기 저 골목 지나서
경성양조장이라고 술도가하고 있어.
인애 양... 조... 장... 요?
용녀 그래, 화류계 팔자가 잘 풀려봤자 술장사지 뭐. 근데 사카키
사장님은 같이 안왔어?
인애 다음에 또 뵐께요. (강이에게) 인사해야지.
강이 안녕히 계세요.
인애 그럼. (인사하고 가면)
용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떻게 된거야? 행색도 좀 그렇고 이상
하네...! (리어커 다시 끌고 가는)
씬2 양조장 앞
‘경성양조장’ 이라고 간판이 붙은 양조장. 구인광고 붙어있다. 용녀
의 리어커 멈춰서고 안으로 들어가는 용녀.
씬3 동, 안
장씨, 술통을 물로 부시고 있는데 용녀 들어온다.
장씨 아니 술통 걷으러 간 사람이 왜 이렇게 늦어요?
용녀 오는 길에 아는 사람을 좀 만나서... 별 일 없었지?
장씨 별 일 없긴요?
(E) 딸랑딸랑 방울소리
장씨 사모님 나가신 뒤부터 지금까지 쭉이예요.
용녀 으이그 지겨워! (안에다 대고) 가요, 가! (안으로 들어가는)
장씨 (피식 웃고 다시 일하는)
씬4 샌프란시스코 앞
기웅, 오토바이에 올라타려는데
종업원 (좇아나와) 또 어디 가시게요?
기웅 (꿀밤을 주며) 사장 맘이야, 임마!
종업원 사장님이 가게를 자꾸 비우시니깐 매상이 점점 바닥을 기잖아
요
기웅 짜식아! 오늘이 우리 엄마 기일이다. 모처럼 산소에 가서 절
올리고 효자 노릇 좀 하겠다는데... 왠 상관이야, 임마?
종업원 그럼 술 드시지말고 일찍 오세요.
기웅 끝까지 잔소리는... (시동걸고 출발한다)
씬5 시장통, 미장원 앞
사람을 구한다는 방이 써붙여있다. 인애, 강이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
어가고 기웅의 오토바이 반대쪽으로 달려간다.
씬6 동, 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애.
주인 머리 하시게요?
인애 그게 아니라... 사람을 구하시는 것 같아서요...
주인 (강이를 보고는) 애엄마는 필요없는데... 우린 처녀 미용사를
구해요.
인애 뭐든지 시켜만 주시면 잘 할 수 있어요.
주인 ... (떨떠름하게) 미용기술은 있어요?
인애 아뇨, 배운 적은 없지만... 가르쳐주시면 잘 할 수 있어요.
주인 (코웃음) 됐어요, 기술자들도 판판히 노는데 경험도 없이 게
다가 애까지... 됐어요!
인애, 한숨.
씬7 동, 밖
힘없이 나오는 인애와 강이.
강이 엄마아~! (걱정스럽게 인애를 보면)
인애 걱정마! 몇 가운데만 더 알아보고... 정 안되면 시장에서 생
선이라도 팔면 돼! 가자. (걸어가는)
씬8 경성양조장 앞
힘없이 걸어오는 인애와 강이. 인애, 양조장 앞에 배달원을 구한다는
방을 본다.
용녀 (E)저 골목 지나서 경성양조장이라고... 술도가 하고 있어
인애, 고개를 내젓고는 뒤돌아서서 간다.
씬9 시장통, 국밥집 전경 (저녁)
씬10 동, 안 (저녁)
국밥을 먹으러 온 손님들, 서너명 탁자에 앉아 있다.
분임 국밥 나왔다이.
옥심 예, 어무이. (손님상에 날라다 주며) 많이 드이소.
이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춘임.
옥심 오늘은 우째 좀 벌었심니꺼?
춘임 으이구 개도 안물어갈 팔짜아~! 하루종일 다리 품만 팔았네!
분임 그러니끼니 뭐하러 하루종일 밖에 나가 앉아있네? 나랑 국밥
이나 말아서 팔면 될걸 가지고.
춘임 싫어요, 나도 이젠 떳떳하게 내 돈 벌어서 내가 쓸거유. 괜히
언니 눈치 보면서 그렇게 살지 않을거라구요.
분임 저... 저 (눈을 흘기는)
향란 (주방에서 나오며) 놔두세요. 우리 시장통에 있는 딸라는 빨
간바지 아줌마가 다 쓸어간다고 소문이 파다하더구만.
춘임 (펄쩍)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릴해?
이때 아이스께끼통을 들고 들어오는 국보.
국보 다녀왔습니다. (아이스케끼통을 내려놓는데)
향란, 국보를 끌고 쪽방으로 들어간다.
씬11 동, 쪽방 (저녁)
허름하고 작은 쪽방. 국보를 끌고 들어오는 향란.
국보 왜 이래요, 향란씨?
향란 (손바닥을 펴며) 오늘 매상 내놔봐요.
국보 (지겹다는 표정을 짓고는 전대에서 동전을 한 웅큼 꺼내 준
다) 자 여기요!
향란 (세어보고는 의심의 눈초리로) 이게 다예요?
국보 (머뭇거리면) 다지 그럼... !
향란 (코를 벌름거리며) 돈냄새가 나는데...
국보 (망설이다 바지벨트 안에 껴넣었던 지폐를 한 장 꺼내) 자요,
진짜 없어요!
향란 (득의의 웃음 지으면)
국보 향란씨 정말 왜 이렇게 변해가는거니? 옛날에 그 아기사슴 같
던 향란씨가 어쩌다 이렇게 돈만 밝히는 늙은 여우가 다돼가
니?
향란 늙은 여우라뇨? 말 조심하세요.평양에서 젤 잘 나가는 기생
심향란이를 이렇게 만든건 샌님이니깐... 샌님은 저한테 그런
말 할 자격 없으신 분이세요. (나가면)
국보, 씨익 웃고는 양말 속에 숨겨놓은 돈을 꺼내려는데 향란의 손,
쑥 들어와 양말 속의 돈을 빼내간다. 국보, 깜짝 놀라 보면
향란 (무섭게 노려보며) 귀신을 속여요!
국보 미치겠네, 정말!!
씬12 시장통, 풀빵 파는 곳 (저녁)
봉수, 풀빵을 뒤집으며 법전을 읽으며 공부 중이다. 장군과 옥심, 손
을 잡고 걸어온다.
장군 아버지!
봉수 그래, 우리 장군이 풀빵 하나 줄까?
장군 (입맛 다시며) 아입니더, 집에 가서 밥 ?으면 됩니더.
봉수 장군아! 아버지가 다른건 몰라도 우리 아들한테 이깟 풀빵이
야 실컷 못먹이겠냐? (따끈따끈한 풀빵을 호호 불어 건네주
면)
장군 고맙습니데이. (아껴 먹는다)
옥심 매상은 좀 어떻심니꺼?
봉수 그냥 그렇네!
옥심 전쟁 뒤끝엔 먹는 장사가 제일이라카는 말도 틀린 말인가봅니
더. 냉차도 영 안팔리고, 국밥집도 심심하고 ..
봉수 ... (한숨) 장군이 엄마!
옥심 (보면)
봉수 나 만나서 고생 많이 한다. (장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군
이도 그렇고.
옥심 요만한 고생도 안하고 사는 사람이 어데 있심니꺼? 당신 이제
사법고시에 떡 붙어가 판검사되면 우린 그 날로 고생 끝이라
아입니꺼?
봉수 이 나이에 무슨 사법고시냐 옥심아! 이젠 허무맹랑한 꿈 접을
때도 되지 않았냐?
옥심 와예? 저번에 신문보니께네 당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사람도
합격했습디데이. 내는 우리 고봉수씨가 언젠가는 꼭 판검사가
될 줄 굳게 믿습니데이. 아들도 믿제?
장군 예, 어머니!
봉수 (부담스럽다)
드럼통에 모여 서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세 식구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
다.
씬13 산소 (저녁)
흰국화 한아름 산소 앞에 놓여있다. 기웅, 무덤 옆에 팔베게를 하고
누워 잠이 들었다.
씬14 거리 (저녁)
커다란 가방은 손에 들고, 어깨에 핸드백을 맨 인애, 강이와 걷는다.
강이 배고파, 엄마!
인애 그래, 맛있는거 사줄게. 가자.
인애와 강이, 걷는데 뒤편에서 두 모녀를 따라오는 남1,2. 남1, 인애
를 확 떠다민다. 길에 쓰러지는 인애. 남2, 인애의 핸드백을 빼앗아
들고 뛰어간다.
인애 도... 도둑이야...! (뛰어가다 다시 돌아서서 강이에게) 강이
야, 꼼짝 말고 여기 있어! ... 움직이면 안돼!!
강이 (고개 끄덕이면)
인애, 힘껏 뛰어간다. 강이, 인애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강이 엄~ 마~ 아~ 아~
씬15 동, 일각 (저녁)
소매치기들 도망치고 그 뒤를 따라 뛰는 인애.
인애 (뛰어오며) 도둑에예요... 저 사람 좀 잡아주세요! 내 가방을
훔쳐 갔어요!!
인애, 숨을 가빠하면서 뒤좇아간다.
씬16 동, 일각 (저녁)
강이, 훌쩍이며 앉아 인애를 기다리다가 사방이 점점 어두워지자 울음
을 터뜨린다.
강이 엄마아~ (울면서 어디론가 걸어가는)
씬17 동, 일각 (저녁)
뛰어가던 남1,2 뒤를 돌아보면 인애, 끈질기게 좇아오고 있다. 남1,
인애의 핸드백을 던져준다. 인애 앞에 떨어지는 핸드백. 인애, 가뿐
숨을 몰아쉬며 핸드백을 주워 가슴에 안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핸드백을 열어보면 속은 텅텅 비어있다.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는
인애.
씬18 강이가 있던 거리 (저녁)
인애,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강이가 보이지 않는다.
인애 (깜짝 놀라) 강이야... 강이야...!
대답 없으면 하얗게 질려 강이를 부르며 찾아 다니는 인애.
씬19 거리 (저녁)
강이를 부르며 찾아 다니는 인애.
씬20 다른 거리 (저녁)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엄마를 찾아 헤매는 강이.
기웅 (off) 꼬마야!
뒤돌아보는 강이.
씬21 경찰서 (밤)
인애, 하얗게 질려 미아신고를 하는 중이다.
순경 너무 걱정마십쇼, 곧 찾을 수 있을겁니다
인애 (울음을 터뜨리며) 꼭 찾아주셔야해요, 꼭이예요! (흐느끼는)
씬22 자장면집 (밤)
강이에게 자장면을 먹이는 기웅.
기웅 엄만 어디 가셨는데?
강이 (고개를 저으면)
기웅 거기서 기다리라고 했지? 엄마 조금 있다가 올거라고.
강이 (고개 끄덕이면)
기웅 (확신에 차 혼잣말로) 첨 볼때부터 얼굴 표정이 심상치 않더
니만... 몹쓸 여자네, 이거! 어떻게 애를 버리냐?
강이 (기웅을 보다 울음을 터뜨리면)
기웅 아냐, 아냐 울지마! 엄마 곧 찾을 수 있을거야. (강이를 안아
주며) 이 여잘 어디서 찾나 그래?
씬23 거리 (밤)
강이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헤매는 인애.
씬24 경찰서 안 (밤)
기웅, 잠든 강이를 업고 들어온다.
기웅 수고 많으십니다.
순경 무슨 일이십니까?
기웅 어떤 벼락 맞을 여자가 지 자식을 한길에 버렸더라구요.
순경 네?
기웅 제가요, 그 여자 얼굴은 아니깐요... 그걸 뭐라고 하지? 범인
의 얼굴을 자세히 말씀드릴테니깐요 종이에 그대로 옮겨 그려
서 (하는데)
하얗게 질린 인애, 문을 열고 들어오다 기웅의 품에 잠들어있는 강이
를 보고는
인애 강이야!
강이 (눈을 비비고는) 엄... 마!
인애 도대체 어딜 갔던거야, 엉? 엄마가 그 자리에 그냥 있으랬잖
어! (강이를 안고 서럽게 운다)
기웅 ...!(미안한 생각이 드는)
씬25 경찰서 전경 (밤)
(E) 통금 사이렌
씬26 동, 안 (밤)
통금에 잡힌 사람들, 잡혀와 앉아있다. 기웅, 통금사이렌이 울렸기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다는 순경의 말을 듣고 분통을 터뜨린다.
기웅 아니 나는 미아를 지 엄마한테 되찾아준 선량한 시민입니다.
순경 그런데요 ... ?
기웅 아무리 통금사이렌이 불었어도 전 집에 보내줘야하는거 아닙
니까? 전 착한 일 하려다가 통금시간을 넘긴 사람이라구요.
순경 안됩니다. 요즘 빨갱이들이 설쳐대서 ... 특별 단속기간이예
요.
기웅 미치겠네, 정말! (왔다갔다하는)
순경 정신 사나우니깐 좀 앉아있어요!
기웅 (다가가 순경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저기요, 사실은 오늘이
저희 어머니 기일입니다. 제가 꼭 가봐야해요!
순경 당신 죽은 어머니가 살아오신대도 어쩔 수 없어!
기웅 미치겠네, 정말!! (머리를 쥐어뜯으며 왔다갔다하다 인애의
옆자리에 앉는다)
인애 ... 죄송... 해요!
기웅 (인애를 노려보며) 도대체 (하다가) 그만 둡시다!! (횅 돌아
앉으며) 미치겠네, 정말!!
씬27 동, 전경 (밤)
씬28 동, 안 (밤)
기웅, 새근새근 잠들어 있고 강이를 품에 안은 인애, 잠이 오지 않는
다. 인애, 핸드백을 꺼내 보면 빈ㅌㅌ이다. 한숨을 내쉬는 인애.
씬29 동, 앞 (새벽)
안에서 나오는 인애와 기웅. 기웅, 앞서 걸어가면
인애 죄... 송해요...
기웅 됐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뭐... (뚜벅뚜벅 앞서 걸
어가면)
뒤따라가는 인애. 그나마 있던 돈도 도둑질 당해 무일푼이 된 인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인애, 한숨을 내쉬고는 용녀에게로 찾아갈
결심을 한다.
기웅 (머리를 갸우뚱거리다 뒤돌아서며) 아줌마!
인애 ?
기웅 왜 자꾸 따라오는거요, 엉?
인애 그 쪽 따라 가는거 아녜요.
기웅 아까 경찰서에서부터 계속 날 따라 왔잖아요.
인애 그런거 아녜요...
기웅 (피식 웃으며) 그러세요? (걸음을 멈추고는) 그럼 먼저
가시지요.
인애, 기웅을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두리번거리며 걸어간다. 껄렁껄렁
뒤따라 오는 기웅.
씬31 양조장 앞
인애, 경성양조장이라는 간판을 보고는 걸음을 멈춘다. 기웅, 우리 집
인데? 하는 눈으로 인애를 바라보는데 이때 양조장 문을 열고 나오는
용녀.
용녀 (기웅을 보고는 짜증스럽게) 이젠 어머니 제삿날도 까먹는거
야, 엉? 어젯밤에 아버지 걱정 하시느라 밤새 한 잠도 못주무
셨어어 (하다가 인애를 보고는) 인애야!
기웅과 인애, 의아해서 마주 바라보는.
씬32 동, 안
인애, 용녀에게 일을 하게 해달라고 사정 중이다.
인애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할께요, 정말이예요 사장님!
용녀 글쎄 안된다두 그러는구나. 우린 밥하고 빨래할 사람이 필요
한게 아니라 배달일 할 사람이 필요한거야.
인애 배달일도 할 수 있어요.
용녀 장정도 어려운 일을 니가 어떻게 해? 하루에도 수 십통씩이나
되는 술통을 짐자전에 싣고 배달해야 하는데...
인애 할 수 있어요 ... 하게해주세요.
용녀 근데 난 진짜 이해가 안간다.
인애 (보면)
용녀 아니 사카키 사장하고 결혼해서 일본에서 잘 산다는 애가 왜
갑자기 서울엔 나타나서 이러는냔말야?
인애 ...
씬33 동, 안방
중풍으로 누워있는 기웅부, 의식은 또렷한데 몸은 움직일 수가 없다
기웅 죄송해요 아버지! 어머니 제산줄은 알고있었는데요 ... 급하
게 일이 생겨서 말이죠...
기웅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 미...미... 친...ㄴ!
기웅 제삿밥만 꼬박꼬박 챙겨드리면 다 되는건가요?
기웅부 ... 천하의 ... 불상놈!
기웅 (발끈) 그렇게 어머니 생각해주시는 분이 살아계실 땐 왜 그
렇게 속을 썩이셨어요? 평생 첩질에 어머니 속을 시커멓게 재
로 만들어 태워죽이더니...
기웅부 (손에 들고 있던 종을 기웅의 얼굴에 집어던지는)
속이 상하는 기웅.
씬34 동, 양조장 안
인애, 용녀에게 일을 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중이다. 안채에서 나오
다 우연히 듣게 되는 기웅.
인애 남자 못지않게 할 자신 있어요.
용녀 ...
인애 자전거 오늘 당장 배울게요, 네?
용녀 암튼 너랑 나랑도 보통 질긴 인연은 아닌 것 같다.
인애 어제 소매치기 당해서 가진 돈도 한 푼 없구요... 사장님께서
저 받아주시지 않으면 강이랑 저... 정말 ... (목이 메이는
데)
용녀 사정 딱한거는 알겠는데 (하는데)
기웅 (나오며) 어이 새어머니!
용녀 (치뜨고 보면)
기웅 양조장 배달일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뜸을 들이십니
까? 대충 맡기면 되겠구만!
용녀 뭐야? (노려보면)
어색하게 마주보는 기웅과 인애.
씬35 달리는 짐자전거
패달을 부지런히 밟는 여자의 발. 카메라 죽 위로 올라가면 인애가 짐
자전거를 달리고 있다. 짐자전거 뒤에 막거리가 가득 담긴 술통이 보
이고... 힘껏 패달을 밟으며 배달을 나가는 인애의 얼굴 위로...
해설 인애의 서울생활이 시작됩니다. 비록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을
지라도 강이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 꿋꿋하게 이겨내 꼭
성공하겠노라고 인애는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