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제원 목사
우리나라 영화관에서는 ‘연소자 입장불가’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외국에서는 ‘adult only’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성인만 들어오라’는 뜻이죠. 물론 ‘연소자 입장불가’와 동일한 표현이지만 한쪽은 부정적인 표현이고 한쪽은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19:24절, 막10:25절)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예수님도 쉽다고 표현하셨지 어렵다고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부정적이고 어렵지 않다고 긍정적이어서는 안됩니다.
전 우리 아름다운 덕소가족들이 어렵고 힘들때일수록 더욱 소망을 가지시고 긍정적인 사고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잠깐 읽어드리겠습니다.
어떤 분이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가보니 벌써 수술 중이었고 자정이 조금 넘어서 의사가 수술을 마치고 나와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나 돌아가셨습니다"
이 분은 수술실로 들어가 부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맥없이 나왔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허전해지면서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왔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위로받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 구내 공중전화 박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수첩을 폈습니다. 수첩을 펴 보니 전화할 수 있는 친구들의 이름이 5장에 걸쳐 반듯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모두 93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할지 다이얼을 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밤에 "내 아내가 교통사고로 운명했으니 와서 나를 좀 위로해 주게"라고 말할 친구가 93명의 명단 중에서 한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수첩만 뒤적이다가 전화 한 통 하지 못하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고 전화박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삶에 대해서 엄청난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전화할 친구 하나 없으니.... 이제까지 무엇하고 살았나? 내가 정말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가장 어렵고 힘든 그 순간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습니까? 언제 어디서나 나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진정한 친구가 있습니까?
데이비드 리스만 이라는 사람은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을 했습니다. 내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고독을 느끼며 산다는 말입니다.
실질적으로 가장 사교적인 사람이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세월이 흘러 가면 갈수록 만남과 교제의 장은 넓어지고 모임도 많아지는데 많은 사람들이 더 고독해하고 허전해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왜그럴까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사회적인 영향 때문 이라고 합니다.
즉 사회가 너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사회가 우리의 교제를 금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분주하고 바쁘다보니 교제가 단절되고 결국 고독해 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문화적 영향입니다.
미시간 대학에서 "문화생활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한 가족이 모여 있는 시간에 그 가족의 단면을 들여다봤더니 각자의 문화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편안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고 있고, 엄마는 다른 채널로 드라마를 보고, 큰형은 헤드폰을 귀에 꽂고 녹음기 들으며 춤추고 있고, 막내는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도 제 각각 자기 나름의 문화를 즐기고 있습니다.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지만 대화가 단절된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관계란 서로 만나서 나누고 함께해야할 일들이 많은데 자기만의 오락 문화속에 빠저들다보니 그 속에서 교제가 단절되고 결국 고독해지고 외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각 개인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 자기가 우선적인 가치관 때문에 결국 많은 사람들이 고독해 하고 허전해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 본문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고독하게 살아가는 한 인생이 나옵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마지아니하며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여기서 '어떤 사람'은 수고하고 열심히 부를 추구하지만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고 아무도 없는 고독한 존재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왜 그렇게 고독한 존재가 되었는지 바로 그 이유가 8절 하반부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하나니..."
이 말씀을 보면 이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지 주위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수고하지 않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사람이 고독하게 됩니까? 자신만을 위해 수고하고 자기의 목적만을 위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남을 위해 수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은 아무리 그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는 고독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삶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헛된 삶이라고 말합니다.
본인은 부인할지 모릅니다. 나는 친구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이지 진정한 친구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족들이 헛된 삶이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인간 관계를 맺는 방법이 세 가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사귀고 알아 나가는가? 가장 기초적인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활동에 기초하는 친구관계입니다.
9절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저희가 함께 수고함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같은 활동을 하면서 인간관계는 시작이 되고 확장이 되어 나간다는 말입니다.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사귀게 됩니다. 또 같은 운동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함께 배워가면서 교제하게 됩니다. 이렇게 "함께 활동하는" 그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함께 수고하면 "좋은 상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하고 어울려서 하면 거기에 대한 보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즐거움과 효율성을 높여줍니다. 이것이 인간 관계의 기초입니다. 같은 활동을 하면서 사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 활동이 중지되면 관계도 끝납니다. 같이 할 때는 친하지만 일이 끝나면 서로 남남이 된다는 말입니다.
둘째, 도움에 기초한 인간관계입니다
이것보다 한 단계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이 10절에 나옵니다.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사회학적으로 말한다면 도움에 기초한 인간관계입니다.
서로 도와주면서 맺는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이 넘어졌는데 다른 하나가 그 동무를 일으켜 주는 일, 그 일을 통하여 인간관계는 더 깊이 발전하게 됩니다. 의사와 환자와의 만남이 그러하고 선생님과 학생의 만남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쓰러질 때가 생기는데 그럴 때 누가 일으켜 주면, 도움을 주는 자나 받는 자가 그것을 통해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도움 받는 사람이 회복되면서 도움 받을 필요가 없어지면 그 관계는 중단 됩니다.
셋째 헌신에 기초한 친구관계입니다.
11절에 그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두 사람이 함께 눕는 관계, 정말 깊은 관계의 우정입니다.
내가 따뜻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함께 하는 사람!
이러한 헌신에 기초한 인간관계를 하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를 얻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반드시 패하고, 반드시 헛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덕소가족 여러분!
너무 바쁘게 목표를 위해서만 살지 마십시오.
옆 사람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데에도 시간을 써야 합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며 손잡아 주는데 소용되는 시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이웃도 없이 빨리 달려가는 사람을 향해서 성경은 헛되다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한분 한분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 12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십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끊어지지 않느니라."
참으로 이상한 구절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한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단결하면 산다"라고 하지 않고, 왜 갑자기 "삼겹줄은 끊어지지 않느니라"라고 말했을까요?
여기 "삼겹줄은 끊어지지 않느니라"는 말은 두 사람 사이에 견고한 하나의 줄이 더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사람간에 공통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견고한 관계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그 하나의 줄.....? 무엇이 있어야 끊어지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 =돈이 그 하나의 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질은 결코 사람 관계를 견고하게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녀가 그 하나의 줄입니다. 사랑스런 자녀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견고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관계에서는 항상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취미가 하나의 줄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끊어질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 사이를 맺어주는 가장 위대한 또 하나의 줄 끊어지지 않는 줄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믿음의 줄입니다. 다시말하면 성령님께서 연결시켜 주시는 신앙의 줄이라는 것입니다.
둘이 믿음으로 하나되고 견고한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환경적인 그 어떤것도 아닌 믿음안에서의 줄= 신앙의 줄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가족여러분!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행복의 조건을 물질에 두었습니다. 헛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독하고 외로웠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참된 행복의 조건은 바로 좋은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좋은 이웃과의 관계속에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의줄= 신앙의 줄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아름다운 덕소가족들이 이런 신앙의 줄= 믿음의 줄로 견고하게 연결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야 고독하지 않은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늘 공동체 안에서 힘을 얻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