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꽃(정지용 삶과 시 2)
지난 시간에 정지용 시인이 빠져있었고, 시 창작에 큰 영향을 받았던 '타고르'라는 시인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는 시간 가졌어요.
인도 콜카타에서 배다른 15형제 가운데 열셋째아들로 출생하였다. 타고르는 방글라데시의 국가와 인도의 국가를 작사·작곡하였으며, 그가 시를 짓고 직접 곡까지 붙인 노래들은 방글라데시와 인도 서벵골 주를 아우르는 벵골어권에서 지금도 널리 불리고 있다. 그는 간디에게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는 103편의 시로 엮어있어요. 그 중에 몇 개의 시를 함께 읽었어요.
19
만약 님이 말하지 않으시면 나는 이 마음을 님의 침묵으로 채우고 견디어 내렵니다. 나는 저 별들이 밤샘하는, 하여 참을성있게 머리를 드리운 밤과 같이 꼼짝 않고 기다릴 것입니다.
아침은 기필 올 것이니, 어둠이 사라지면, 님의 목소리는 하늘을 꿰뚫는 금빛 흐름으로 쏟아져 내리겠죠.
그러면 님의 말씀은 노래가 되어 나의 새들의 둥지 하나 하나에서 날아오를 것입니다. 님의 선율은 나의 모든 수풀 속에서 꽃으로 활짝 피어날 것입니다.
21
이젠 배를 띄워야 되겠구나. 기슭에서 어영부영하는 사이 맥없이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봄은 꽃을 피우더니 이내 가 버렸고. 지금은 시들어 쓰잘데 없는 꽃더미 함께 나는 기다리며 망설이고 있다. 물결은 소란스러워졌고, 그늘진 골목의 방죽 위엔 노란 잎들이 펄럭이며 지고 있다.
그대는 어느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가? 그대는 저편 강기슭에서 흘러오는 아득한 노래가락 더불어 공기 속을 스쳐 가는 어떤 전율을 느끼지 못하는가?
28
질곡은 완고하나, 내가 그것을 깨려고 할 때엔 마음이 아픕니다.
자유야말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지만 그것을 바라기란 부끄러워요.
님 안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재보가 있고, 님은 내 최선의 벗이라 확신하나, 내 방을 채운 저 번쩍거리는 값싼 물건들을 쓸어버릴 용기는 없습니다.
나를 싼 수의는 먼지와 묵음의 수의올시다. 나는 그것을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하여 쓸어안고 있습니다.
나의 부채는 크고, 실패는 엄청나며, 부끄러움은 깊고 무겁지요. 하지만 내가 자신의 행복을 청하게 될 땐, 나는 내 기원이 받아들여질까봐 덜덜 떤답니다.
<마음의 일기>
큰 바다 앞에 두고 흰 날빛 그 밑에서
한 백년 잠자다 겨우 일어 나노니
지난 세월 그마만치만 긴 하품을 하야만.
아이들 총 중에서 성나신 장님막대
함부로 내두르다 뺐기고 말었것다
얼굴 붉은 이 친구분네 말씀하는 법이다.
창자에 처져 있는 기름을 씻어내고
너절한 볼따구니 살뎅이 떼어내라
그리고 피스톨알처럼 덤벼들라 싸호자!
참새의 가슴처럼 기뻐 뛰어 보자니
성내인 사자처럼 부르짖어 보자니
빙산이 풀어질만치 손을 잡아 보자니
시그날 기운 뒤에 갑자기 조이는 맘
그대를 실은 차가 하마 산을 돌아오리
온단다 온단단다나 온다온다 온단다.
"배암이 그다지도 무서우냐 내 님아'"
내 님은 몸을 떨며 "뱀만은 싫어요"
꽈리가치 새빨간 해가 넘어가는 풀밭 위.
이즈음 이슬이란 아름다운 그 말을
글에도 써본 적이 없는가 하노니
가슴에 이슬이 이슬이 아니 나림 이여라.
이 밤이 깊을수록 이 마음 가늘어서
가느단 차디찬 바늘은 있으려니
실이 없서 물들인 실이 실이 없어 하노라.
한 백년 진흙 속에 묻혔다 나온 듯.
게처럼 옆으로 기어가 보노니
먼 푸른 하늘 아래로 가이없는 모래밭.
이 시는 일본에서 일어에 젖어 유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시인의 가슴 속에는 항상 모국어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 당시엔 가슴 속의 모국어를 품고 일본어로 생활하고, 영어를 공부했다.
<압천>
압천 십 리 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잦았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어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어짜라. 바수어라. 시원치도 않아라.
여뀌풀 우거진 보금자리
뜸부기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 쌍 떴다,
비맞이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 오는 저녁 물바람.
오렌지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압천 십 리 벌에
해가 저물어⋯⋯ 저물어⋯⋯
시인은 학교를 마치고 압천을 지나 하숙집으로 갔을 것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하숙집 앞 압천을 지나며 많은 시적 상상을 펼쳤다. 그러나 그는 압천을 소재로 서정적인 시만 쓰지는 않았다.
1926년 3월에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시인은 동무들에게 <향수>를 읊어주었고, 시를 듣고 동무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모두가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월 정지용은 〈카페 프란스〉로 등단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인정받는 시인이 된다.
<카페 프란스>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
비뚜로 선 장명등,
카페 프란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슈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늑이는 불빛
카페 프란스에 가자.
이놈의 머리는 비뚜른 능금
또 한 놈의 심장은 벌레 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간다.
“오오 패롯 (앵무) 서방! 굿 이브닝!”
“굿 이브닝!” (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 아가씨는 이 밤에도
경사 커튼 밑에서 조시는구려!
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 강아지야
내 발을 빨아다오.
내 발을 빨아다오.
이 시는 1926년 조선어로 발표한 정지용의 문단 데뷔작이다. 가난한 조선인 유학생이 톡톡 튀는 감각으로 표현한 이 시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어나 이국적 분위기도 한몫했겠지만, 집과 나라를 잃고 슬퍼했던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정지용은 비 오는 밤, 유학생 친구들과 교토의 한 카페에 간다. 함께 간 친구들은 러시아풍의 옷을 입은 사람, 보헤미안 넥타이를 한 사람, 삐쩍 마른 사람이다. 4연에 나오는 친구들은 2연에 나오는 친구들일 수도 있고, 새로운 친구들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모두 그 당시 청년 유학생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손이 하얀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다. 무기력한 지식인, 교토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인 ‘나’는 친구들과도, 앵무새와도, 졸고 있는 아가씨와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다른 나라 종(이국종)인 강아지는 마치 타국으로 유학 온 ‘나’의 모습 같다. 터를 잡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집도 나라도 없는 화자가 이곳에서 의지할 것은 자신과 처지가 같은 이국종 강아지밖에는 없는 듯하다. 그래서 화자는 이 강아지에게 내 발을 빨며 나를 위로해달라고 한다.
<발열>
처마 끝에 서린 연기 따라
포도 순이 기어 나가는 밤, 소리 없이,
가믈음 땅에 스며든 더운 김이
등에 서리나니,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아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쉬노니, 박나비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 입술을 붙이고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다신교도와도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아득한 하늘에는
별들이 참벌 날듯 하여라.
1927년 7월에 발표한 이 시의 맨 마지막에는 ‘1927년 6월 옥천’이라는 말이 덧붙어 있다. 일본 유학 중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옥천으로 왔거나, 여름방학 중에 고향으로 왔다가 아픈 아이를 병간호하며 쓴 시라고 볼 수 있다.
덥고 습한 어느 여름밤, 포도 순 넝쿨이 처마 끝에 서린 연기와 함께 기어나가고, 여름날 더운 김이 등에 서린다. 이 덥고 습한 여름밤은 아이의 발열로 이어진다. 열이 심하게 나는 아이는 애처롭게 보챈다.
아픈 아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박나비(나방의 한 종류인 박나방)에 빗대어 표현한다. 열이 내리는 약을 아이 머리에 발라보지만 소용이 없다. 부모는 아이를 안고 모든 신께 간절히 기도한다. 화자는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마음을 참벌이 나는 듯한 별에 빗대고 있다.
한국어뿐 아니라 일본어로 된 시와 여러 편의 번역시를 발표하면서 다양한 문학 활동을 이어간다. 1929년 6월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그해 9월에는 모교인 휘문고보의 영어 교사로 일하게 되어 1945년까지 16년 동안 교사로 지낸다.
1929년 10월, 김영랑의 소개로 시인은 박용철을 만난다. 당시 새로운 시동인지 발간을 기획하고 있던 박용철은 시대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지용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930년 3월 박용철,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여러 시를 발표하고, 1933년에는 《가톨릭청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가톨릭에 심취하여 신앙시를 발표하기도 한다. 그 시기에 시인의 종교적 고민과 시에 대한 고민이 생생하게 시에 담겨 나타난다. 특히 1935년에 발표했던 <비극>에서는 신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인의 번민의 이유가 또렷하게 나타나있기도 하다.
<비극>
<비극>의 흰 얼굴을 본 적이 있느냐?
그 손님의 얼굴은 실로 미(美)하니라
검은 옷에 가리어 오는 이 고귀한 심방에 사람들은 부질없이 당황한다.
실상 그가 남기고 간 자취가 얼마나 향그럽기에
오랜 후일에야 평화와 사랑의 선물을 두고 간 줄을 알았다.
그의 발 옮김이 또한 표범의 뒤를 따르듯 조심스럽기에
가리어 듣는 귀가 오직 그의 노크를 안다.
묵(墨)이 말라 시가 써지지 아니하는 이 밤에도
나는 맞이할 예비가 있다.
일찍이 나의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드린 일이 있기에
혹은 이 밤에 그가 예의를 갖추기 않고 올 양이면
문 밖에서 가벼이 사양하겠다!
1935년 10월 27일에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때 박용철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시집의 서문을 써주기도 했다. 1939년 《문장》 창간과 함께 시 분야의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 여러 시인을 추천하여 등단시켰다. 이렇게 추천된 시인들 역시 훗날 한국문학사에 큰 이름을 남긴다.
<유리창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산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의 가까운 친구였던 박용철은 이 시가 정지용이 아이를 잃고 난 후 쓴 것이라 했다. 스물아홉 살 젊은 아버지가 첫 딸을 폐렴으로 떠나보낸 뒤 아이를 그리워하며 시를 썼다.
유리는 안과 밖을 나누는 벽이 되기도 하지만, 안과 밖을 서로 볼 수 있게 하는 창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유리창은 단절과 소통이라는 양면을 가지고 있다. 화자는 겨울밤 홀로 유리창 앞에 서 있다. 서서 유리창에 입김을 불고 닦는 것을 반복한다.
겨울밤 유리창에 언 날개를 파닥거리는 산새가 박힌다. 유리에 입김으로 만들어진 모양이 산새같이 보인다는 뜻이다. 유리를 닦으면 그 산새 같은 입김은 사라진다. 사라지는 그 모습이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날아가버린 아이처럼 보인다.
보석처럼 박히는 ‘물 먹은 별.’ 눈물 젖은 눈으로 별을 바라보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눈물이 고인 채 사물을 바라보면 사물이 어른거리면서 커 보인다. 정지용은 슬픔을 돌려 말한다. 한 걸음 떨어져서 절제하듯 슬픔을 말한다. 유리창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별을 보고 있는데, 그 슬픔을 감춘다.
말꽃(소나기)
이번 시간에는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었어요.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소나기'는 어떤 뜻을 담고 있는 단어일까요?
[소나기]
1.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 특히 여름에 많으며 번개나 천둥, 강풍 따위를 동반한다.
2. 갑자기 들이퍼붓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소나기는 열두 살 소년과 소녀가 아주 짧은 시간 깊은 마음을 나누는 성장소설이에요. 마음은 깊어지지만, 몸이 원래 약했었던 소녀는 소년과의 만남 때 거센 소나기로 인해 많이 안 좋아지고, 마치 소나기와 같이 소년을 떠나지요. 찰나와 같이 왔다가 사라지는 소나기에는 우리 인생을 닮았어요.
또한 <소나기>에는 소년과 소녀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비유적으로 설명해주는 문장들이 이곳저곳 눈에 띄었어요. 마지막 소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대목에서도 소년의 마음은 보이지 않아요. 표현되진 않아도 우리에게 소년의 먹먹하고 슬픈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해요.
1. 읽고 나누기
(1) 소녀는 소년에게 어떤 존재(의미)였을까요?
→ (꿈슬기) 소녀는 서울에서 또래들과 어울렸을 것 같은데, 시골로 오면서 외로웠을 것 같다. 그러다가 소년을 만나 반가웠을 것 같다. 소년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소녀의 존재가 새로웠을 것 같다.
→ (이슬마리) 잘 모르겠지만, 불쑥 찾아왔다가 갑자기 그치는 소나기처럼 소년한테는 되게 뜬금없다가도 반가운 존재였을 것 같다.
→ (맑은물) 사랑하는 존재. 잃고 싶지 않고 소중하고 가슴이 뛰는. 신선하고 기쁜.
(2)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해서 잃고 싶지 않은 것과 그 까닭은 무엇인가요?
→ (꿈슬기) 무언가를 잃는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해보자면, 지금 내 곁에 가깝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없으면 안될 것 같다. 이들이 소중하다.
→ (이슬마리) 모두 다. 그래도 고르자면... 함께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같이 공부할 수 있고, 같이 밥 먹어주는 그런 사람들이 없으면 너무 쓸쓸하고 외로울 것 같다.
→ (맑은물) 너무 많다. 추려서 말하자면 우리 학년, 2,3학년 선배들, 빛알찬중학교 선생님들, 엄마, 아빠, 서현언니. 까닭은 늘 고맙고, 사랑하고 필요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게 느껴진다.
책에서 나오는 낯선 낱말 살피고 예문 지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