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파출소
푸른색과 흰색으로 겉면이 도색된 봉고 차량 한 대가 정안파출소 주차장에
주차했다. 차량의 뒷면에는 수원 동부라는 네 글 자가 쓰여 있었다. 형사기동대 차량이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빛에 건조해진 파출소 마당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점심시간 이어서인지 순찰차가 현관 앞에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형기차에서 내린 이정민이 따가운 햇빛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뒤이어 장문석과 김철웅, 곽원섭이 차에서 내렸다. 이정민을 제외하고는 다들 거구라고 부를만한 체구의 소유자들이어서 파출소 마당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파출소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막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던 서너 명의 파출소 직원들이 들어서는 그들에게 분분히 인사를 했다. 파출소 직원과 강력반 형사는 서로 볼 기회가 자주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어차피 같은 경찰서 직원인데 전혀 얼굴을 모르지는 않았고, 파출소 직원들 중에는 형사계에서 근무하다 다시 파출소로 나간 직원들도 많았다. 보직은 순환되기 때문이다.
"웬 일이야?"
"당직이라 한 바퀴 돌고 있는 중이야."
이정민은 반갑게 자신을 맞이하는 한정수 경사에게 심드렁한 어조로 대답했다.
한정수는 이정민과 비슷한 키에 눈이 크고 둥글어서 심성이 좋아 보이는 사내였다. 나이에 비해 머리숱이 적은 그는 늘 웃는 얼굴의 사내로 성격도 모난 데가 없어서 인근 주민들에게도 평이 좋은 정안파출소 갑조의 부소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정민과 경찰입문 동기였다.
"임경장 만나러 온 거지?"
"어딨냐?"
이정민은 지난 보름 동안 여러 차례 이곳에 들렀었다. 한정수의 질문에 이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한정수가 피식 웃더니 손을 들어 이층을 가리켰다.
"아직 밥 먹어. 좀만 기다려. 곧 내려 올 거다."
이정민은 한정수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출소 안에 마련된 민원인용 의자에 털썩 앉았다. 원탁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쪽 벽에 설치된 17인치 텔레비전을 보던 경장 한 명과 순경 두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문석등에게 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강력반 형사들은 대부분 파출소 직원들보다 고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의를 차린 것이다.
하지만 장문석등은 그냥 서 있는 쪽을 택했다. 남의 사무실에 불쑥 찾아와 의자까지 뺏기는 아무리 후배들이라 해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저런 씨벌 놈들은 전부 옷 벗기고 교도소로 보내 버려야 합니다."
"잡놈들이야. 저런 놈들 때문에 묵묵히 일하는 직원 대다수가 도매금으로 넘어가 같이 욕을 먹게 된다. 정말 죽이고 싶다."
옆에 있던 순경 두 명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눈을 부릅뜨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정민은 그들이 보는 텔레비전을 보고는 그들이 왜 씩씩거리는지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를 방송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지검에서 긴급체포한 서울 모 경찰서의 서장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뉴스였다. 두 명중 곱살하게 생긴 순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오전에 신호위반한 운전자 딱지 떼다가 기막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열이 받든지 심장이 터져 죽는 줄 알았어요."
"무슨 얘기를?"
이정민이 묻고 싶은 말을 고참인 듯한 다른 순경이 물었다.
"돈 처먹는 경찰이 신호위반 같은 교통단속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하더군요."
"뭐! 그런 개새끼가! 대놓고 그런 말을 했단 말이야?"
고참 순경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흥분할 만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저도 흥분이 되더군요. 제가 돈 받는 거 봤냐고 따지며 말다툼을 했어요. 딱지를 떼긴 했지만 정말 입맛이 쓰더라구요. 딱지 끊길 때 기분 좋을 사람 없으니 싫은 소리들은 게 한두 번도 아니어서 굳이 흥분할 말은 아니었는데, 저 뉴스가 어젯밤부터 뉴스시간마다 나오니 아무래도 제 반응도 격해지더라구요."
곱살한 순경의 말끝이 힘을 잃었다. 고참순경이 이제는 다른 뉴스를 방송하고 있는 텔레비전을 때려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돈을 처먹어도 어떻게 불법 오락실에서 주는 돈을 처먹느냔 말이다. 그것도 정기적으로. 그러면서도 맨날 부하직원들에게는 청렴한 경찰이 되라고 개소리를 했을 거 아니냐고. 저런 후레자식 때문에 천원짜리 한 장 받아본 적도 없는 많은 직원들이 민간인들에게 더러운 짐승 보듯 하는 눈길을 받아야한단 말이냐."
흥분한 고참 순경의 말을 들으며 이정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경찰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 안 되는 신임순경들이었다. 고참들이 여럿 있으면 쉽게 꺼내기 어려운 내용인데도 입에서 침이라도 튈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꽤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지금 말을 하는 후배들이 그런 사고방식을 퇴직하는 그 날까지 유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저들의 어찌 들으면 순진하기까지한 말이 그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도 속으로 돈을 받아 긴급체포된 경찰서장을 욕하고 있었다. 서장이라면 돈을 받을 이유가 없다. 월급도 충분하고 판공비도 있다. 돈욕심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경찰생활을 십수 년째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민간인에게 돈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거나 술 한잔 얻어먹은 적도 없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사건과 관련된 사람에게 돈을 받거나 향응을 제공받은 적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경찰의 대우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조금 절약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월급은 나오는 것이다. 정말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월급만을 주며 일은 끔찍할 정도로 많이 시키던 시절이 불과 십여 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일반회사에 다니는 자신의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형사들에게 차량이 지급되지도 기름값이 지급되는 것도 없으며, 자기 차를 이용해 수사를 하고 자기 돈으로 기름 값을 넣는다고 말을 했을 때 그 친구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것이 생각났다.
아직도 형사들은 자신의 차를 이용하고 자기 돈으로 기름 값을 넣으며 수사를 한다. 그나마 반원들의 한 달 밥값은 나오니 좋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이마저도 주어지지 않았었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주며 수사에 사용되는 비용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으면 결론은 두 가지밖에 없게 된다. 부실한 수사를 하던지 아니면 제대로 된 수사를 하기에 필요한 비용을 어딘가에서 조달해야 하는 것이다. 이정민도 모자라는 수사비를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조달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은 점점 깨끗해진다. 모든 기록은 전산으로 관리되고 각종 인권단체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수사절차상의 하자가 발생하면 형사들을 잡아먹으려 덤벼들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쓰리캅스인가 하는 영화에서처럼 형사생활을 하면 한달 이내에 교도소 철창 구경을 할 것이 확실할 만큼 세상은 변했다.
그리고 형사들도 이제는 가정적인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이정민이 처음 형사생활을 시작할 때처럼 한달 내내 집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고 밤이슬을 맞으며 수사를 하는 형사의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무리한 수사를 하려는 형사들도 많지 않았다.
주어진 비용에 맞추어서 수사를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좋은 현상이었다.
부패는 확실히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비용에 맞추어 수사를 할 때 그 비용이 수사에 필요한 수준까지 지원되지 않는다면 수사역량의 축소는 불가피하다. 예전처럼 무조건 위에서 까란다고 깔 수 있는 세상도 아닌 것이다.
'언제나 제대로 예산이 지원되려나. 나 정년퇴직하기 전에는 후배들이 수사비 걱정안하면서 수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이정민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층으로 연결된 후문에서 장신의 사내가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굵은 눈썹과 각이 진 큰 눈, 우뚝 선 콧날과 꾹 다물려 있는 입술이 강인해 보이는 사내. 한이었다.
제복 특유의 분위기가 그의 분위기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정민이 자리에 앉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한이 그와 장문석 등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너 이 새끼. 죽을래?"
"예?"
한이 어리둥절하여 이정민을 쳐다보자 이정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의 귓불을 잡았다.
"형님, 왜 그러세요?"
"잔말 말구 나와!"
이정민은 한의 귓불을 잡고 파출소 마당으로 그를 끌고 갔다. 한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지만 이정민이 끌고가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10센티는 작은 이 보통 체격의 왕고참은 성질이 아주 더러워서 개기면 그만한 대가를 꼭 치르게 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문석등이 그들의 뒤를 느긋한 팔자걸음으로 따랐다 김철웅은 웃음을 간신히 참는 듯 그 큰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다.
주차장의 형기차 앞까지 한의 귓불을 잡아끌고 온 이정민이 손을 놓았다. 이정민이 고개를 들어 한과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지방청에서 전화 왔었지?"
"아셨어요?"
"이 자식이. 너 왜 안 간다 그랬어?"
이정민의 음성이 높아졌다. 이정민이 성질을 부리는 이유를 안 한이 뒷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넓은 어깨가 더 넓게 느껴졌다.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 거기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압니다."
"아는 자식이 그 딴 소릴 해! 그곳에 있는 동기 놈한테 연락을 받고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큰 사건도 많이 하고 특진할 기회도 많은 데 왜 안가!"
이정민은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옆에서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이정민을 보던 장문석이 입을 열었다.
"가고 싶지 않다잖아요. 저 자식 성질을 제일 잘 아는 형님이 입 아프게 뭔 말을 그리 많이 합니까. 그만 해요."
이정민은 장문석이 밉살스러운 듯 노려보았지만 그 말이 맞다는 걸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만큼 잘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터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눈앞의 후배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누구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한이 휴직을 끝내고 복귀한 지도 보름이 지났다. 그가 휴직원을 낼 때 정안파출소 소속이었기 때문에 그의 복귀 장소도 당연히 정안파출소가 되었다.
그의 복귀와 함께 그를 저격했던 범인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났지만 그 관심도 이제는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 아무런 일이 없었고, 한 자신도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복귀를 가장 반긴 것은 이장후 반장과 이정민 등 강력4반 직원들이었다. 복귀를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이장후반장은 무사히 돌아와주어 고맙다는 말로 그가 한의 복귀에 대해 느끼고 있는 감정을 표현했었다. 이반장은 좀처럼 후배들에게 그런 식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한은 이장후가 그에게 갖고 있는 깊은 관심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한에게 경기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에서 전화가 온 것은 어제 밤이었다. 이번 7월 정기인사이동 때 기동수사대에 들어 올 생각이 있느냐는 상대의 제안을 그는 거절했다.
기동수사대는 경기도 전역의 중요 범죄 사건을 수사하는 지방청 직할 부서였다.
그만큼 형사 개인의 활동영역도 넓고 할 일이 많은 부서였다. 바쁜 부서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수원이라는 지역 외의 장소로 잦은 이동을 하기엔 곤란할 때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기다려야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시기가 맞지 않았다. 그래서 거절했던 것이다.
"정민이 형이 열받는 거 이해해라. 사실 널 기수대에 추천한 게 정민이형이었거든."
옆에서 김철웅이 장문석을 거들었다. 김철웅의 말에 한의 시선이 이정민을 향했다.
이정민이 험험 거리며 그의 시선을 비꼈다.
"기수대에선 사람을 뽑을 때 경찰서 형사들 개인별 실적도 보지만 형사 생활을 많이 한 고참들의 추천도 참고를 해. 기수대에서 이번에 몇 명을 교체 충원할 계획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정민이형이 너를 강력하게 추천했던 거야. 정민이형이야 기수대에서도 능력을 인정하는 양반이니 말빨이 먹힌 거지. 그걸 네가 한 마디로 거절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열불이 나신 거야. 흐흐흐"
김철웅이 웃으며 말을 맺었다. 한은 파출소 앞의 도로를 달리고 있는 차량에 말없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이정민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쳤다.
"죄송합니다. 형님. 대신 오늘 제가 술 한 잔 사죠."
"두잔 사라."
"알겠습니다."
한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들을 보며 웃고 있는 김철웅의 귀밑으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햇빛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